[명혜망](랴오닝성 통신원) 중공(중국공산당) 당국에 납치돼 4년 형을 선고받았던 랴오닝성 헤이산현 파룬궁수련자 한춘룽(韓春龍.남)이 10월 2일에 또다시 납치됐다.
한 씨는 2일 선양시 선허(沈河)구 황청(皇城) 파출소에 납치돼 현재 팡자란(方家欄)에 있는 선허구 구치소에 불법적으로 감금돼 있다.
한춘룽은 헤이산현 전안(鎭安)향 잉판(營盤) 마을에 살고 있으며 수련 전 마을에서 유명한 ‘병투성이’로 여러 질병에 시달렸는데, 그중 요추 결핵, 오른발 엄지 결핵, 신장결석, 왼쪽 신장 기능 상실 등으로 반 장애인이 됐다. 노동은 말할 것도 없고 걷기도 어려웠으며, 의료비로 수만 위안을 썼지만 치료하지 못했다. 그가 몹시 괴로워할 때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아내가 그와 이혼했다.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1998년 3월, 한춘룽은 운 좋게 대법을 수련해 몸이 하루하루 좋아졌고 얼굴이 붉고 윤기가 돌았으며, 활력이 넘치고 점점 더 건강해졌다. 정말 ‘병 없이 온몸이 가벼움’을 경험했다. 또 흡연과 마작 습관도 고쳤고, 힘든 일도 할 수 있게 됐으며 다시 가정의 주역이 되어 행복하고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게 됐다. 정말로 겹경사였다. 부부는 현(縣)에 작은 노점을 하나 세내어 장사하며 행복하게 살았다. 파룬따파(法輪大法)는 그에게 두 번째 생명을 주었고 친지들과 마을 사람들도 모두 대법의 신기함을 목격했다.
1999년 7월, 중공은 파룬궁과 파룬궁수련자들을 광적으로 박해하기 시작했다. 2001년 9월 5일, 헤이산 공안국 부국장 쉬구이저우(許貴州)는 국보대대의 샤오충잉(肖忠影), 비스쥔(比詩君) 그리고 양(楊) 씨라는 사람과 전안향 파출소의 치(齊) 소장 등 일당을 이끌고 노점에 한 씨를 납치하러 갔는데,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다른 대법제자를 납치했다.
2011년 7월 1일 새벽, 한춘룽은 다시 헤이산현 공안분국 펑장(馮江) 등에게 납치돼 박해당했고, 구치소에 끌려가 심한 구타를 당했다. 14일 후, 극도로 허약해진 한춘룽은 마싼자(馬三家) 노동수용소에서 박해당했다. 한춘룽은 수용소의 건강검진에 합격하지 못해 수용이 거부됐고 경찰들은 그를 석방할 수밖에 없었다.
2012년 12월 11일 오전 9시가 넘어, 한춘룽과 다른 동료가 단둥에 출장 가서 업무를 상담하는 동안, 단둥시 국보지대(國保支隊), 단둥시 전싱(振興)분국 형사대대, 쓰다오차오(四道橋) 파출소 등 경찰 6~7명이 갑자기 그들 방에 침입해 한춘룽과 동료를 파출소로 납치했고, 노트북 두 대, 휴대폰 두 대, 지갑, 현금, 은행카드, 사무용 인터넷 카드 등 소지품들을 전부 강탈했는데 압수목록은 주지 않았다. 한춘룽과 동료는 자신들이 법을 어기지 않았는데 고문과 학대를 당했다고 말했다. 쓰다오차오 파출소의 경찰 두 명이 한춘룽과 동료에게 주먹질, 발길질을 하고 뺨을 때렸다. 다른 경찰이 “이 방에는 CCTV가 있어”라고 말하자 경찰은 그들을 CCTV가 없는 곳으로 끌고 가 고문하고 자백을 강요했다. 경찰 장웨이(張巍)는 한춘룽의 뺨을 때리고 바닥에 쓰러뜨렸으며, 이후 6~7명의 경찰이 그를 또 때렸다. 그 후 경찰은 한춘룽의 손을 잡고 강제로 서명하게 했고 얼굴에 고춧물을 뿌려 기침하고 얼굴이 따갑게 했다.
2012년 12월 11일 밤, 경찰은 한춘룽을 구치소로 보내려 했으나 절차가 미비해 보내지 못했다. 2012년 12월 12일, 경찰은 가짜 절차를 밟고 정오에 한춘룽과 동료 두 사람을 단둥시 구치소로 보냈다.
한 씨는 건강검진을 받을 때 혈압이 191, 심박수가 130이었으나 구치소로 보내졌다. 한춘룽은 건강검진을 받은 의사에게 귀가 들리지 않고 오른쪽 다리가 부었으며, 한쪽 다리가 굵고 한쪽 다리가 가늘며, 걸을 때 절뚝거리며 앞가슴과 등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프다고 말했다.
한춘룽은 몸이 허약해 걷기도 힘들었다. 그는 줄곧 단식으로 박해에 항의했고, 7일 후 소장 왕징(王晶)과 부소장 랑전산(郎振山)은 그의 코에 삽입관을 넣어 음식을 강제로 주입하도록 지시했다. 삽입관을 매일 24시간 동안 뽑지 않아 눈곱이 가득했고, 몸에는 음식 찌꺼기가 가득 묻어 있었으며, 몸이 허약해 숨만 쉬고 있었다. 요도에 꽂은 소변 줄도 24시간 내내 뽑지 않았다. 자는 동안 또 그의 팔다리를 수갑 등으로 큰 대자로 고정시켰다. 이후에 한춘룽이 다리가 아파하자 족쇄는 풀고 양손만 고정한 채로 잠을 자게 했다. 당시 한춘룽은 호흡이 아주 미약했고 온종일 흐리멍덩해 있었으며 손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참혹한 박해로 한춘룽은 혼자서 걸을 수 없어 휠체어를 타고 다녔다. 이런 상황에서 단둥시 전싱구 검찰원은 불법 구속을 허락했고 가족들이 검찰을 찾아가자 왕쉐핑(王學平) 검사장은 가족들에게 소리를 지르며 사형을 선고하게 해야겠다고 악독하게 말했다.
2013년 1월 24일, 한춘룽은 오른쪽 허리와 복부에 통증이 나타났고 점차 악화돼 온종일 소변을 보지 못했다. 체온은 38.5도까지 올라가 결국 단둥시 중심병원(제2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받았다. 진단 결과 신부전, 요관결석, 양측 신장에 물이 차서 감염, 양쪽 신장결석, 방광결석, 요로감염, 방광통, 요로통 등 진단을 받았다. 병원에 입원한 지 며칠이 지나자 한춘룽은 다시 구치소에 불법 감금됐다.
2013년 4월 12일, 법원이 한춘룽에 대한 불법 재판을 열었을 때, 한춘룽과 두 변호사가 공안기관의 불법 조작 증거와 폭행 사실을 폭로하자 타오잔화(陶占華) 판사에 의해 법원에서 쫓겨났다. 변호사는 판사에게 “당신이 이렇게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불법입니다. 책임을 져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판사는 “공산당이 몰락하지 않으면 나는 영원히 책임을 지지 않을 겁니다”라고 했지만, 그 후에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610(파룬궁 탄압기구)’과 정법위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라고 털어놨다.
2013년 5월 28일 두 번째 재판에서 법원은 가족을 방청하지 못하게 했고, 한춘룽의 부모를 두 시간 동안 불법 감금했으며 재판이 끝날 때까지 석방하지 않았다.
2013년 5월 31일, 한춘룽은 단둥시 전싱구 법원에서 부당하게 4년을 선고받고 선양시 캉자산(康家山) 감옥에 불법 감금됐다.
한춘룽은 박해 중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지만 10년 후인 2023년 10월 2일, 선양시 선허구 황청 파출소 경찰에 다시 납치됐다. 현재 파출소 담당자는 가족을 회피하며 어떠한 이유도 대지 않고 사람을 풀어주지 않고 있다.
(역주: 관련 박해 기관과 박해자 정보는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3년 10월 23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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