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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권 전복’ 누명을 쓴 80대 할머니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아래 세 편의 짧은 이야기는 수련생 세 명이 들려준 실제 경험으로, 수련자들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어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나는 이 이야기들을 기록으로 남겨 더 많은 사람에게 아름다운 수련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다.

이야기 1. ‘국가정권 전복’ 누명을 쓴 80대 할머니

구술자: N

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막 박해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파룬궁 수련을 포기하지 않고 진상을 알려 악당(공산당)에게 불법적으로 납치돼 다른 도시 구치소에 갇혔는데, 당시 80대 노년 수련생도 나와 함께 감금돼 있었다.

그날 구치소에 50~60대의 중년 남성이 들어왔는데, 그 노년 수련생의 아들이었다. 그는 경찰이 어머니를 국가전복 혐의로 납치했다는 사실을 알고 화가 나서 어머니의 석방을 요구했다. 그는 구속영장을 들고 경찰에게 “저희 어머니는 80대 할머니이고 글자도 몇 자 모르시는데 ‘국가정권 전복’을 한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라며 따졌다.

경찰은 아들 말에 우스워하면서도 진지하게 말했다. “당신 어머니는 평범한 분이 아닙니다. 과소평가하지 마세요. 우리는 당신 어머니 집에서 CD를 잔뜩 발견했어요. 컴퓨터, 프린터, 장비도 갖고 있고 준비가 다 돼 있었어요.”

이에 아들은 80세 할머니가 어떻게 그런 걸 하느냐며 그 컴퓨터를 사용하지 못한다고 반박했다.

“우리도 처음엔 믿지 않았습니다!” 경찰은 아들 말을 가로막으며 “할머니는 우리가 믿지 않을까 봐 우리 앞에서 이 CD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보여줬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당시 그 할머니가 CD 굽기와 자료 제작을 도와준 수련생을 밝히고 싶지 않아 스스로 그 문제를 감당했으리라 짐작했다. 갑자기 감탄이 터져 나왔고 그들의 다음 대화는 우리 모두를 크게 웃게 했다.

경찰 말을 들은 할머니의 아들은 포기하지 않고 크게 웃으며 경찰에게 말했다. “그 보세요, 제가 파룬따파가 좋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다른 80대 할머니들은 안정적으로 걷지도 못합니다. 80세가 넘으신 우리 어머니는 여전히 컴퓨터를 사용해 CD를 구울 수 있습니다!” 경찰은 반박하지 않고 “우리집의 80세 넘은 노인들은 침대에 누워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수련자들은 참 대단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다 결국 그 할머니는 부당한 형을 선고받았다. 나중에 경찰이 대법제자에게 자기 가족에게 파룬궁 수련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다음은 어떻게 됐는지 듣지 못했다.

옳고 그름은 우리 눈앞에 명백하게 드러났다. 중국공산당의 거짓말이 아무리 사악하더라도 파룬궁이 사람을 선하게 가르치고 질병이 없이 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감출 수 없었다.

이야기 2. 새해맞이 전화 통화

구술자: Q

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하던 몇 년간, 나는 여러 차례 불법 감금과 부당한 형을 선고받았으며 나중에는 직장에서 해고됐다. 출소 후에도 철저한 감청과 감시를 받아 휴대폰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고, 대부분 시간에 휴대폰에서 배터리와 유심카드를 빼서 서랍 속에 넣어 뒀다.

설날에 친척이나 친구들에게 연락하기 위해 휴대폰을 켰다. 설날에 전화 한 통을 받았는데 상대방이 하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조금 혼란스러웠다. 상대방은 통화가 연결되자 곧바로 거친 목소리로 “Q 형님, 돈이 있으세요? 계좌번호를 보내주시면 2만 위안(약 370만 원)을 송금해 드리겠습니다!”라고 소리쳤다. 몇 초간 그가 누군지 떠올렸다. 나는 그가 감옥에 있던 내 감방 동료 중 한 사람이고, 먹고 마시고 매춘하고 도박하고 싸우고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조폭 두목인 것이 생각났다. 감옥에서 나는 종종 그에게 파룬궁에 관한 진상과 파룬궁이 우리에게 선한 사람이 되는 법을 가르치는 것에 관해 얘기했다. 수련생들이 감옥에서 겪은 고문을 보면서 그는 우리에게 동정심을 갖게 됐고, 또한 끈기 있게 신념을 지키는 우리를 존경하게 되어 그는 항상 날 형님이라고 불렀다.

나는 그에게 “나왔어요? 요즘 어떻게 지내요?”라며 안부를 물었다. 그는 “나와서 지금은 장사도 하고 마늘도 팔고 부자가 됐어요”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며 “그들이 형님이 일하지 못하게 해서 형님께 돈이 없을까 봐 걱정되어서요. 설날에 돈이 없으면 어떻게 해요? 계좌번호를 알려주세요. 돈 좀 보내줄게요!”라고 말했다.

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 예전에 감옥에 있을 때 그는 스스로를 온갖 나쁜 짓을 하는 쓰레기라고 했었다. 제멋대로 나쁜 짓을 하며 남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제 그는 남을 돕고 싶어하는 따뜻한 마음을 갖게 됐다. 그는 파룬궁에 관한 많은 진상을 듣고 수련생을 존경했다. 비록 그는 수련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수련생을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정말로 날 돕고자 하는 그의 진심을 충분히 이해했다.

물론 나는 아무 이유 없이 남의 돈을 받을 수 없었기에 아직 쓸 돈이 있다며 거절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동의하며 “앞으로 돈이 부족하면 언제든지 연락주세요”라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나는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도 좋은 면이 있음을 깨달았고 그의 선량한 마음과 행동에 감동했다. 비록 그는 대법 수련을 하지는 않았지만, 감옥에서 나온 후에는 진지하게 사업을 시작했고 더는 예전만큼 악한 짓을 하지 않았으며 많이 변했다. 이것이 바로 세인을 제도하는 정법의 표현이 아니겠는가?!

이야기 3. 너무 가난해도 즐겁다

구술자: Y

남편은 나에게 파룬궁을 수련하라고 했지만 그 자신은 수련하지 않았다. 나는 오랜 수련 기간 한 번도 아픈 적이 없었는데, 재작년 남편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딸과 나는 그를 위해 조그마한 땅을 찾아 그를 보냈다.

우리 가족 관계는 매우 화목했다. 딸이 항상 나를 “엄마, 엄마”라고 부르기에 남편과 내가 재혼 가족이라는 사실을 많은 사람이 모른다.

우리 가족의 처음 생활을 이야기하면 주변의 많은 사람은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결혼했을 때, 우리집은 날마다 발칵 뒤집혔기 때문이다. 남편과 나는 맨날 다퉜고 가정이 언제든 해체될 것 같았다.

나중에 그와 나는 기분을 풀기 위해 함께 차를 타고 구이저우(貴州)로 여행을 갔는데, 도중에 매우 가난하고 외딴 작은 마을을 지나게 됐다. 그 마을에 사는 한 가족은 침대와 식탁만 있고 아무것도 없을 정도로 매우 가난한 집에서 살고 있었다. 남들이 보기엔 몹시 가난해 보였지만 그때 우리는 그들의 행복감이 느껴졌다!

나중에 우리는 그 부부가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나에게 “그들을 좀 봐. 그들은 아무리 가난해도 다투지 않아. 우리 가족은 그들보다 훨씬 잘 살지만 여전히 매일 다투고 있지. 당신도 파룬궁을 수련하는 게 어때?”라고 말했다. 이렇게 나는 파룬궁수련생은 집에서 다투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법을 수련하기 시작했고, 이미 수련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실제로 대법을 수련한 후 우리는 확실히 다투지 않았고, 그 당시 그 수련생 가족의 즐겁고 평화로운 상태를 완전히 느끼게 됐다.

 

원문발표: 2023년 10월 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3/10/4/46675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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