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랴오닝성 가이저우시 수련자 관쑤룽, 박해로 불구 돼

[명혜망](랴오닝성 통신원) 랴오닝성 가이저우(蓋州)시 파룬궁수련자 관쑤룽(關素榮)이 ‘진선인(真·善·忍)’에 대한 믿음을 견지했다는 이유로 중공(중​국공산당)으로부터 거듭 박해를 받아 불구가 됐다.

관쑤룽은 1999년 이후 단 하루도 평온한 날을 보내지 못했다. 지금 그녀는 말도 못 하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며, 집안일은 더더욱 할 수 없게 되어 가뜩이나 넉넉지 못한 가정에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관쑤룽은 랴오닝성 잉커우(營口) 가이저우시 구이저우(歸州)향 싼타이쯔(三台子)촌에 살고 있다. 1997년 가을부터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한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질병이 사라지고 병이 없이 온몸이 가벼워졌고, 마음이 밝고 활달해져 아주 편안한 삶을 살게 됐다.

중공 장쩌민 집단이 파룬궁을 박해한 ‘7.20’ 이후 24년 동안 관쑤룽은 5~6차례 불법 감금됐고, 불법적으로 강제노동 처분을 받았으며(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수감을 거부당했음), 세뇌반으로 납치된 적이 있다. 그녀 남편 쑨셴후이(孫憲會)도 역시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잔인한 박해를 받았으며, 여러 차례 납치 및 감금됐고, 불법적인 3년 강제노동 처분과 무고한 3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다음은 쑨셴후이와 관쑤룽 부부가 중공에 박해당한 사실이다.

부부가 모두 불법 구류 처분을 받다

1999년 ‘7.20’ 사건 이후, 가이저우시 구이저우향 파출소장 웨이안강(魏安剛)은 경찰 시광웨이(席廣偉), 자오춘밍(趙春明), 당위원회 서기 뤼융원(呂永文)을 이끌고 구이저우진 수련자들을 괴롭히고 위협하며 가택수색을 했다. 경찰은 관쑤룽의 집에서 대법 책과 법상(法像), 연공 테이프를 빼앗고 소위 ‘보증서’에 서명하도록 강요했다. 관쑤룽이 이를 거부하자 경찰은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와 괴롭혀 노부모를 겁에 질리게 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경찰을 보기만 하면 겁에 질려 설사했고 그녀 가족은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살았다.

어느 날, 경찰이 다시 그녀 집에 와서 괴롭히고 가택수색을 했는데, 관쑤룽과 그녀의 남편 쑨셴후이는 집에 없었다. 경찰은 대법 경문을 강탈하고, 또 가이저우시 양윈(楊運)향에 있는 관쑤룽의 어머니 집에 가서 쑨셴후이를 납치했다. 오후에 관쑤룽은 구이저우진 파출소에 가서 석방을 요구했다가 경찰에게 납치됐다. 경찰은 경문의 출처를 물으며 말하면 집에 보내주겠다고 했다. 그들이 협조하지 않자 6시쯤에 두 사람을 함께 구이저우시 유치장으로 납치했다. 그 시간 동안 파출소 경찰, 구이저우향 싼타이쯔촌 촌장 양더사오(楊德勺), 촌 서기 가오징룽(高景榮)이 구치소에 와서 그들을 심문했고, 그녀 언니와 형부를 데리고 와서 수련을 포기하도록 설득했다. 그들은 협조하지 않았고 15일간 불법 감금됐으며, 식비 100여 위안을 갈취당했다.

그들이 집으로 돌아온 후 가이저우시 ‘610(파룬궁 탄압 기구)’과 지역 경찰, 촌위원회 사람들은 끊임없이 그들을 괴롭히고 위협하며 사람들을 보내 계속 감시했다.

청원하러 베이징에 갔다가 불법 강제노동 처분을 받다

2000년 12월 16일, 관쑤룽은 남편과 함께 5살과 9살 두 자녀를 데리고 베이징으로 가서 정부에 청원서를 제출하고 베이징 금수교(金水橋) 앞에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는 현수막을 펼쳤다. 당시 전국에서 청원하러 온 많은 수련자가 납치돼 천안문광장 근처 파출소로 끌려갔다. 파출소에는 수련자들로 가득 차 있었기에 그들은 파출소 뒤뜰에 갇혀 있었다. 저녁에 경찰은 쑨셴후이를 차에 태워 베이징 근처 옌칭(延慶)현 구치소로 납치하고 관쑤룽과 그녀의 두 자녀를 다른 파출소로 납치했다. 파출소에 도착하자마자 경찰은 관 씨와 두 자녀를 따로 감금하고 두 자녀를 차가운 방에 가뒀다. 경찰 여러 명이 불법적으로 관 씨를 심문했지만 그녀는 이름과 주소를 말하지 않았다. 경찰은 아이에게 캐물었으나 아이도 말하지 않았다. 경찰은 밤 1시가 넘도록 그들을 감금했다가 석방했다.

12월 18일, 관쑤룽은 아이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가이저우시 구이저우향 파출소 경찰, 촌장 뉴자오펑(牛造鋒), 서기 충융쥔(叢永軍)은 관쑤룽을 구이저우향 파출소로 납치해 불법 심문하며 “어디 갔었지? 누구랑 갔었지?”라고 물었으나 그녀는 협조하지 않았다. 경찰은 그녀를 가이저우시 유치장으로 납치했다. 그곳에는 30명 이상의 수련자가 불법 감금됐는데, 중공은 일부 도시와 마을의 부녀 주임들을 이용해 그들을 세뇌하고 대법에 대한 비방 영화를 보여줬다. 그녀는 23일간 불법 감금됐다가 풀려났고, 남편 쑨셴후이는 불법적으로 3년 강제노동 처분을 받았다.

여러 차례 세뇌 박해를 당하다

2001년 이후 관쑤룽은 현지 경찰에게 납치돼 솽타이쯔(雙台子) 세뇌반에서 박해를 받았다. 세뇌반 악인은 그녀에게 파룬따파를 비방하는 동영상을 강제로 시청하게 하고 소위 ‘보증서’를 쓰도록 강요했다.

그녀가 집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구이저우향 파출소의 천셴루이(陳憲瑞)를 비롯한 여러 경찰이 다시 관쑤룽 집에 침입해 잉커우(營口)시 노동수용소에서 조직한 세뇌반으로 그녀를 납치했다. 당시 가이저우시에는 츠광룽(遲廣榮), 둥구이위안(董貴元) 등 20~30명 수련자가 납치돼 있었다. 이들은 매일 파룬따파를 비방하는 TV 프로그램을 강제로 시청해야 했다. 게다가 부녀회 사람들을 이용해 그녀들에게 세뇌를 시키고 24시간 감시했다. 관쑤룽은 24시간 감금된 후, 또 17일간 불법적으로 감금됐다가 서명을 강요당하고 풀려나 집으로 돌아갔다.

쑨셴후이가 불법적인 징역형을 선고받다

2005년 9월 4일 저녁, 관쑤룽과 쑨센후이 등 수련자들은 가이저우시 양윈(楊運)향으로 가서 진상 자료를 배포했다가, 양윈향 파출소 경찰 위안젠후이(袁建輝) 등에게 포위당했다. 관쑤룽은 벗어났고 쑨셴후이 등은 납치됐다. 두 달 후, 쑨셴후이 등 세 명의 수련자는 가이저우시 법원에서 부당하게 3년 형을 선고받았다. 쑨셴후이는 랴오닝성 안산(鞍山) 감옥으로 납치돼 박해당했다.

2006년 봄, 가이저우시 ‘610’ 주임 양난린(楊楠林)이 한 경찰을 거느리고 관쑤룽의 집을 급습해 법상을 강탈했는데 당시 관쑤룽은 집에 없었다.

와팡뎬 구치소로 납치되다

2006년 5월 31일 밤, 관쑤룽은 와팡뎬시 리관(李官)향에 가서 파룬궁 진상 현수막을 걸었다는 이유로, 리관향 파출소로 납치됐다. 구역 경찰은 먼저 관쑤룽에게 그녀가 현수막을 걸었는지, 현수막의 출처는 어디인지 묻는 등 불법적인 심문을 했다. 관쑤룽이 이에 협조하지 않자 경찰은 관쑤룽을 스팀 파이프에 수갑을 채웠다. 관쑤룽은 “나는 법을 어기지 않았으니 빨리 풀어주세요. 좋은 사람을 박해하지 마세요.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나는 인터넷에 당신들을 폭로해 전 세계에 당신이 한 나쁜 일을 알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한 젊은 경찰이 와서 “떠들지 마세요, 제가 풀어드릴게요”라고 말했다. 두 경찰은 집 입구에 침대를 놓고 그녀를 지켰다. 다음 날 아침, 경찰은 완성된 자료를 관쑤룽에게 건네며 서명을 요청했지만 그녀는 거절했다. 경찰 치셴진(齊先進)은 화가 나서 관쑤룽의 머리를 주먹으로 때리고 펜을 바닥에 던진 후 자리를 떠났고, 경찰 리창웨이(李長偉)도 옆에서 그녀를 욕했다. 그녀의 부모가 이 사실을 알고 찾아왔을 때 경찰은 노인을 협박하고 비난을 퍼부었다. 경찰은 관쑤룽에게서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자 그녀 집을 불법적으로 수색했다. 관쑤룽은 심한 구타를 당하고 와팡뎬 구치소로 납치돼 강제 노동을 했고, 그녀가 먹는 국에는 흙이 가득했다.

관쑤룽이 42일간 불법 감금을 당한 뒤인 어느 날 밤, 경찰은 그녀에게 소위 ‘교양증(敎養證)’을 보내주며 내일 그녀를 마싼자(馬三家) 노동수용소로 보내겠다고 했다. 관쑤룽은 박해를 부정하고 증명서를 찢었다. 여경 쑹리쥔(宋麗君) 등은 그녀와 다른 두 사람을 마싼자 노동수용소로 보냈다. 수용소는 건강검진에서 불합격했다는 이유로 이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경찰은 또 다른 수용소에 전화를 걸었으나 그 수용소에서도 수감을 거부했다. 경찰은 어쩔 수 없이 그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쑨셴후이와 관쑤룽 부부는 농민이다. 그들의 고향은 복숭아, 자두, 사과, 포도 등 많은 과일을 생산하는데 모두 대량의 시간을 들여 경영해야 했다. 심기부터 비료, 잡초 제거, 가지치기, 약제 투여, 결실까지 체계적인 노동 과정이 필요했다. 또한 신중하게 재배해야 하는 다른 작물도 있었지만 부부는 사악한 당원과 경찰에게 끊임없이 괴롭힘, 가택수색, 납치, 감금을 당했다. 관쑤룽은 더구나 박해당해 이제 불구가 됐는데 온 가족이 어떻게 살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중국공산당은 정말 사람을 너무나 업신여겨 천리상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한다.

 

원문발표: 2023년 8월 21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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