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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수용소서 박해받은 네이멍구 수련자 장루이퉁, 재차 납치돼

[명혜망](네이멍구 통신원)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노동수용소에서 박해받았던 네이멍구 자치구 바오터우(包頭)시의 장루이퉁(張瑞童.67)이 재차 납치됐다.

장루이퉁은 지난 3월 29일, 바오터우시 공안국 둥허(東河)분국 국보대대와 톄시(鐵西) 파출소에 의해 납치됐다. 바오터우시 둥허구 검찰원은 4월 28일 그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했고, 그는 현재까지 약 5개월간 바오터우시 둥허구 구치소에 감금돼 박해받고 있다.

장루이퉁은 바오터우시 둥허구 사람으로 파룬궁을 수련하고부터 ‘진선인(真·善·忍)’ 법리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됐고 심신에 이로움을 얻었다. 1999년 7월 20일, 중공 사당(邪黨)이 광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한 후, 그는 여러 차례 납치됐고 구치소, 노동수용소, 감옥에서 박해를 받았다.

1. 노동수용소에서의 박해

2001년 가을, 장루이퉁은 납치돼 네이멍구의 우위안(五原) 노동수용소로 보내졌다. 경찰은 이른바 ‘전향률’을 높이기 위해 파룬궁수련자에게 수련 포기를 강요하면서 전기 충격, 가는 줄로 묶어 올리기, 무자비한 구타, 관(棺) 방에 가두기, 수면 박탈, 얼리기, 굶기기, 달리기, 뒤로 수갑 채워 매달기, 채찍질, 세워놓기, 장시간 과부하 노동 등 수단으로 수련자들을 박해했다.

2001년 12월 6일, 우위안 노동수용소 소장 무젠펑(穆建峰)은 관리과장 장톄펑(張鐵峰), 대장 위지광(玉繼光), 두샹양(杜向陽), 왕진뱌오(王錦標) 등 10여 명의 사악한 경찰들을 소집​해 장루이퉁, 량바오츠(梁寶池), 천창린(陳常林), 원융(溫勇), 두즈위(杜志宇), 자오쭝유(趙宗友), 양전치(楊振奇) 등 11명의 수련자를 1층 빈방에 몰아넣고 고압 전기봉, V벨트, 가죽 벨트, 주먹, 발 등으로 약 두 시간 동안 무자비한 폭행을 가했다. 이에 많은 수련생이 중상을 입었고 일부는 대소변 실금, 뇌진탕, 갈비뼈 골절, 장기 손상 등을 당했다. 장루이퉁은 다리 골절, 척추 신경 및 장기의 심각한 손상으로 약 1개월간 전신이 마비됐다.

中共酷刑示意图:殴打
중공의 고문 예시도: 구타

2. 감옥에서의 두 차례 박해

장루이퉁은 이전에 파룬궁 진상을 알렸다는 이유로 불법적인 5년 형을 선고받았고, 후허하오터(呼和浩特)시 위취안(玉泉)구 샤오헤이허(小黑河)진 둥얼다오(東二道河)촌 경내에 위치​한 네이멍구 제2감옥에 불법 감금돼 박해받았다.

네이멍구 제2감옥은 수련자에게 ‘전향(수련 포기)’과 ‘혐의 인정’을 강요했고, ‘전향’과 ‘혐의 인정’을 거부한 수련자 머리에 헬멧을 씌워 철제 탁자에 족쇄로 채운 다음, 고광량 램프로 눈을 비추면서 탁자 위에 TV를 틀어놓아 매일 24시간 잠을 자지 못하게 했다. TV에서는 파룬궁 비방 영상이 계속 방영됐고, 여러 수감자에게 돌아가며 감시하게 했다. 악독한 경찰은 가끔 수련자에게 식사로 작은 만두 하나만 주었고 화장실에 가는 것을 통제해 바지에 소변을 지리게 했다.

장루이퉁은 중공의 ‘세뇌’ 방송 시청을 거부하며 TV를 껐다. 그러자 경찰들은 그에게 수갑을 채워 스팀 파이프에 매달고, 이어폰을 두 귀에 꽂고 ‘세뇌’ 방송을 보름간 틀어놓았다.

2007년 12월, 장루이퉁은 고문 도구 ‘호랑이 의자’에 강제로 앉혀 밤낮 묶인 채 잠을 잘 수 없었으며, 화장실은 하루에 한 번만 갈 수 있었고, 솜옷을 입거나 헬멧을 벗을 수 없었다.

酷刑演示:老虎凳
고문 시연: 호랑이 의자

2013년 4월, 장루이퉁은 바오터우시 경찰에게 납치돼 불법 감금됐고, 2014년 10월 24일, 바오터우시 쿤두룬(昆都侖)구 법원의 불법 재판에서 7년 형을 선고받고 다시 감옥에 감금돼 박해를 받았다. 2019년 3월 31일, 장루이퉁이 7년간의 억울한 옥살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경찰 여러 명이 그를 제압하며 석방 증명서에 지문을 찍게 했다.

3. 구치소에서의 13일간 학대

2020년 6월 18일, 장루이퉁은 외지 파출소에 납치된 후 구치소에 감금돼 박해받았고, 13일간 잔인한 박해를 받아 극도로 쇠약해졌다. 구치소는 책임이 두려워 현지 정법위원회에게 그를 데려가게 했다. 경찰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그에게 종이 두 장에 이름을 쓰게 했는데, 한 장은 질병으로 인한 조기 석방, 다른 한 장은 경찰과 그 사이의 ‘대화 기록’이었다.(장루이퉁은 경찰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음) 장루이퉁은 납치됐을 때부터 구치소를 떠날 때까지 박해에 저항하며 글을 쓰지 않았다.

(역주: 관련 박해 기관과 박해자 정보는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3년 8월 19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3/8/19/46436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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