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헤이룽장성 통신원) 지난 6월, 중공 당국에 의해 16년간 감금됐던 헤이룽장성 미산(密山)시 파룬궁수련자 양샤오광(楊曉光.70)이 또다시 무고하게 3년 6개월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양샤오광은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한다는 이유로 2년 강제노동 처분과 14년 징역형을 부당하게 선고받은 적이 있다.
양샤오광은 1953년 8월 7일생 회족 남성으로, 헤이룽장성 지시(雞西)시 미산시에 거주해왔다. 2023년 3월 3일 오전 8시쯤, 양샤오광은 미산시 이푸(逸夫) 초등학교에서 초등학생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三退)’를 권하던 중 학생들로부터 악의적인 신고를 당하고 경찰에 납치됐다.
3월 3일 저녁 9시쯤, 미산시 공안국 국보 경찰들이 미산시 리민(利民) 파출소(제2파출소) 경찰들과 결탁해 양샤오광 집에 침입해 불법 가택수색을 했다. 급습 과정에서 경찰들은 양손에 총을 들고 양샤오광을 위협하고 사진을 찍었으며, 파룬궁 사부님의 사진, 파룬 도형, 대법 서적 등 개인 소지품을 강탈했다. 양샤오광은 불법적으로 형사 구류처분을 받고 미산시 구치소에 감금됐다.
양샤오광은 위출혈로 병원에서 퇴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몸이 허약해 가족들이 따뜻한 옷을 보냈지만, 구치소 측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구치소 측은 대신 가족에게 반복적으로 돈을 요구해 며칠 만에 800위안이 넘는 돈을 받아 갔다. 가족에게 위챗으로 돈을 보내달라고 요청하고는 영수증을 주지 않았다.
3월 17일, 미산시 검찰원은 양샤오광을 모함해 미산시 법원에 넘겼다. 미산시 법원은 양샤오광에게 소위 보조 변호사(유죄 변호를 했음)를 선임했지만 양샤오광은 이를 거부했다. 가족은 양샤오광을 변호하기 위해 두 변호사 사무소에 가서 변호사를 선임하려 했는데, 파룬궁수련자를 위해 변호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변호사들은 거절했다.
6월 19일, 미산시 법원은 양샤오광에 대한 불법 재판을 열었다. 미산시 검찰원의 주훙(朱紅) 검사는 법원에 양샤오광에게 3년 6개월 형과 1만 위안의 벌금형을 선고할 것을 건의했고, 미산시 법원은 검사의 건의대로 선고했다. 6월 26일, 미산시 법원은 형사 판결문을 내렸다.
앞서 양샤오광은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2년간 불법 강제노동 처분을 받았고, 무고하게 14년 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노동수용소와 감옥에서 극심한 박해를 받았다.
지시 노동수용소에서 당한 박해
1999년 11월 말, 양샤오광은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납치돼 미산시 구치소로 불법 압송됐다. 1999년 12월 30일, 그는 2년간 불법 강제노동 처분을 받았다.
지시 노동수용소에서 양샤오광은 경찰과 그들의 사주를 받은 수감자들에게 자주 구타당했다. 때로는 3시간 이상 세워 두기 고문을 받고서야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큰 눈이 오는 날에 양샤오광은 두 시간 이상 군인 자세로 서 있어야 했다.
2001년 2월 27일, 양샤오광이 대법을 욕하도록 강요하는 경찰에게 저항하자 경비대장 판궈위(范國雨), 경찰 린융쥔(林永軍), 중대장 천전(陳震)은 양샤오광을 불러 한 시간 가까이 교대로 곤봉으로 구타한 후, 발에 족쇄를 채워 ‘독방’에 가뒀는데, 70일 만에 풀려나 중대로 돌아왔다. 이 기간에 양샤오광은 독방 감금, 땅에 수갑 채우기 등 고문을 당했고, 오른쪽 귀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심하게 구타당했다.
이 기간에 양샤오광은 악인 황후이민(黃輝民)에게 물통 안에 눌려 질식해 죽을 뻔했다.
무단장 감옥에서 당한 박해
2002년 4월 25일 오후, 양샤오광은 미산 제3파출소 경찰 두 명에게 집 앞에서 납치됐다. 미산 공안국 형사 경찰대 차고에서 경찰은 양샤오광에게 수갑을 채우고 이쑤시개로 배를 마구 찔렀으며, 양샤오광은 밤새 수갑을 찬 채로 매달려 있었다.
다음 날 아침, 경찰은 양샤오광에게 헬멧을 씌우고 집게로 그의 머리를 힘껏 내리쳤다. 그 후 양샤오광은 미산 구치소에 불법 감금됐다. 정보과의 두융산(杜永山)은 양샤오광에게 뒷짐결박을 채웠다. 양샤오광이 연공을 하자 부소장 한위민(韓玉民)은 그에게 족쇄를 채우고 코와 입에서 피가 날 정도로 심하게 구타했다.
2003년 1월 9일, 양샤오광은 미산 법원에서 무고하게 14년 형을 선고받았다. 지시시 하다(哈達) 감옥 집중훈련대에서 경찰은 린커우(林口)현 출신의 인(殷)씨 성을 가진 죄수에게 나무판자로 양샤오광의 머리를 때리라고 지시했다. 판자가 부러진 후, 다시 철제 핀이 달린 가죽 벨트로 양샤오광의 머리를 구타했다.
양샤오광은 박해에 저항하기 위해 단식을 시작했다. 그러자 감옥경찰들은 양샤오광을 땅에 눌러놓고 식염수를 입에 부었고, 식염수가 기관지로 들어가 그는 거의 죽을 뻔했다.
19일 후, 양샤오광은 무단장 감옥 집중훈련대로 이송됐다. 양샤오광이 연공을 하자 1감구 대대장 바이산밍(白善明), 대대 경찰 리제즈(李潔志), 지도원 둥위장(董玉江)은 양샤오광을 독방에 가뒀다.
경찰 쑹쥔린(宋軍林)은 매번 당직 때마다 술을 마시고 나서 양샤오광을 심하게 구타했다. 어느 날 밤, 쑹쥔린은 양샤오광을 세 번 연속 구타해 양샤오광의 얼굴이 기형적으로 변했고 앞을 볼 수 없게 됐다.
독방에서 20일이 넘게 갇힌 후 양샤오광은 풀려났다. 그가 몸을 씻으러 화장실에 갔을 때, 많은 수감자가 그의 가슴과 등이 보라색과 검은색이고 얼굴이 부어오르고 입안에 온통 상처투성인 것을 보았다. 감방으로 돌아온 후, 양샤오광은 경찰의 선동을 받은 죄수들에게 다시 구타당했다. 이 기간에 양샤오광은 수감자들에게 코와 입에서 피가 나고, 얼굴이 부어오르고, 입 여러 군데가 파열되어 음식을 먹을 수 없을 정도로 구타당했다.
양샤오광이 억울한 옥살이를 하며 당한 더욱 많은 박해 내용은 ‘16년간의 억울한 옥살이, 집과 가족을 잃고 오른쪽 귀 청력 상실’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16년간의 억울한 옥살이 박해를 겪은 후에도 양샤오광은 항상 ‘진선인(真·善·忍)’ 믿음을 견지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비롭게 파룬궁이 좋다는 진상을 전하며 그들이 좋은 미래를 갖기를 바랐다. 이제 70세가 된 양샤오광은 또다시 중공(중국공산당)에 의해 불법적으로 3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역주: 관련 박해 기관과 박해자 정보는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3년 8월 14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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