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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둥성 쯔보시 전기 엔지니어, 무고하게 3년 형 선고받고 감금돼

[밍후이왕](산둥성 통신원) 중국 산둥성 쯔보(淄博)시 파룬궁수련자 가오훙(高宏)은 2020년 7월 15일에 산둥성 치두(齊都) 공안국 국보대대 경찰에게 납치된 후 1년간 ‘처분보류’ 형식으로 풀려났다. 그리고 2022년 12월 5일에 쯔촨(淄川)구 법원에서 불법적으로 3년 형을 선고받았고, 2023년 6월 7일 산둥성 감옥으로 이송돼 박해당했다.

올해 55세인 가오훙은 전기 엔지니어다. 2020년 7월 15일, 산둥성 공안청 치두 공안국 국보대대 경찰이 가오훙 집에 침입해 컴퓨터, 프린터, 대법서적, 진상 자료, 태블릿 컴퓨터, 책상, 램프 등 개인 소지품을 강탈했고, 가오훙의 83세 어머니 량중셴(梁中先)을 파출소로 납치해 불법 심문을 진행했다. 그날 오후 5시 30분, 가오훙은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가 자신의 아파트 아래에서 치두 공안국 국보대대 본대의 장옌린(張彥林) 등 경찰들에게 납치돼 다음 날 오후 2시까지 치디(齊地) 파출소에서 불법 심문을 받았다. 전염병으로 인해 가오훙은 1년간 ‘처분보류’상태에 처해졌다.

2022년 8월 29일, 치두 공안국 북구 분국의 공보대대 경찰 한쥔후(韓俊虎)와 창장(常江)은 가오훙을 불법 소환해 그에 대해 거주지 강제 조치를 취한다고 알려줬다. 그리고 그를 속여 그가 여전히 파룬궁을 연마한다고 말하도록 했고 영상도 찍었다.(실제로는 박해 증거를 수집했음) 그 후 가오훙은 누명을 쓰고 쯔보시 쯔촨구 검찰원에 넘겨졌다.

2022년 12월 5일, 가오홍은 법원에서 불법적으로 3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2023년 3월 14일, 가오훙은 치두 공안국 경찰에게 납치돼 쯔보시 장뎬(張店) 구치소에 불법 감금됐고, 6월 7일 산둥성 감옥으로 이송돼 박해를 받았다. 85세인 그의 어머니는 아무도 돌봐줄 사람 없이 집에 홀로 남겨졌다.

가오훙은 여러 차례 납치됐고 한때는 노동수용소에서 박해를 당해 목숨이 위태로운 적이 있었다.

가오훙은 1991년 중국석유대학 자동화 학과를 졸업하고 산둥성 쯔보 치루(齊魯) 석유화학회사 연구원에서 근무했다. 1997년부터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하기 시작한 그는 ‘진선인(真·善·忍)’의 기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해 근무와 생활 중에 좋은 사람이 되어 명성과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주변 동료들의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전공 근무에서 뛰어났던 이유로 회사의 과학기술 진보상을 받았다.

1999년 7월 20일, 중공(중국공산당) 장쩌민 일당이 공개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한 후, 가오훙은 반복적으로 납치돼 불법 감금됐고 2년간 불법적으로 강제노동 처분을 받았다. 다음은 가오훙이 사악한 중공에 박해당한 일부 경험이다.

2000년 11월 26일, 가오훙은 파룬궁 진상 자료를 배포했다는 이유로 치루석유화학회사 보위과에 불법 감금돼 밤낮 보안요원들의 감시를 받았다. 2000년 12월 5일, 가오훙은 쯔보시 린쯔(臨淄)구 구치소로 끌려가 21일간 감금돼 박해받다가 12월 25일 ‘처분보류’ 형식으로 풀려났다.

2001년 3월 10일, 가오훙은 회사 연구원 세뇌반에 끌려가 한 달간 감금돼 박해를 받았고 4월 10일에 풀려나 집으로 돌아갔다.

2001년 7월 18일, 현지 경찰이 가오훙의 집을 수색하고 그를 납치하려 했는데, 운 좋게 가오훙이 외출해 집에 없었다. 가오훙은 집이 급습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유랑생활을 했다. 경찰은 회사와 결탁해 그의 친구와 친척을 찾아 그와 함께 유랑생활을 하던 부모를 수소문했다. 가오훙의 부모는 외지에서 9년간 유랑생활을 하다가 결국 2010년 9월에야 살던 곳으로 돌아왔다.

2008년 7월 31일, 외지에서 유랑생활을 하던 가오훙은 허베이성 창저우(滄州)시 황화(黃驊) 건설 현장으로 출근하던 중 근무 중이던 무장 경찰에게 납치돼 산둥성 빈저우(濱州)시 잔화(沾化)현 공안국 국보대대로 끌려갔다. 그 후 치루석유화학회사 공안국에 의해 회사로 이송됐고, 제3접대소에서 밤새 불법 심문을 받고 이튿날에 구치소로 이송돼 감금 박해를 당했다.

2008년 8월 26일, 가오훙은 회사의 ‘610(파룬궁 탄압기구)’과 치두 공안국에 의해 불법적인 2년 강제노동 처분을 받았고, 산둥 남성 제2노동교양소[왕춘(王村) 노동수용소]에서 박해를 받았다. 가오훙은 수용소에 2년간 감금돼 박해를 받았다. 이 수용소는 심한 구타, 매달기 고문, 수면 박탈, 작은 의자에 앉히기, 말하기 금지, 강제 노동, 심지어 음식에 독극물을 넣는 등 다양한 수단으로 파룬궁수련자들의 심신에 심한 상처를 입혔다. 가오훙은 믿음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로 꼬박 7일 밤낮으로 수면 박탈, 심한 구타, 등 뒤로 수갑 채우기 등 고문 학대를 당했다.

中共酷刑示意图:殴打
중공 고문 설명도: 구타

가오훙은 파룬궁은 사람들에게 선을 가르쳤고 잘못이 없으며, 그는 법을 어기지 않았고 죄수가 아니라고 주장하며 노예 되기를 거부했다. 그는 단식으로 박해에 저항했다가 3일간 밤낮 수갑을 차고 81일간 앉히기 고문(매일 아침 5시 30분부터 밤 11시까지) 등 박해를 받았고 결국 뼈만 앙상하게 남아 위독해졌다(사진 추가). 결국 2009년 10월 3일에 ‘처분보류’ 형식으로 풀려났다.

图:高宏被劳教所摧残致骨瘦如柴。
노동수용소에 의해 손상을 입어 뼈만 앙상하게 남은 가오훙

2010년 7월 11일, 가오훙은 파룬궁 진상 자료를 배포한 이유로 경찰에게 납치돼 휴대폰과 전동 자전거를 빼앗겼다. 이번에는 둥잉(東營)시 구치소로 끌려가 12일간 박해를 받았다.

(역주: 관련 박해 기관과 박해자 정보는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3년 6월 12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3/6/12/46190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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