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베이징 밍후이 통신원) 부모가 중공(중국공산당)의 박해로 사망했던 베이징 파룬궁수련자 장주하이(張久海, 남, 56)가 올해 초 박해 후유증으로 결국 사망했다.
2017년 5월 장주하이가 중공에 납치돼 투옥된 뒤 부모도 박해에 시달렸는데, 아버지 장쭤제(張作杰)는 갈비뼈가 부러져 운신할 수 없었고, 어머니는 박해로 궁핍한 생활을 하다가 2014년 11월 세상을 떠났다. 장주하이도 4년 형기를 마치고 2021년 5월 출소한 뒤 고문 박해 후유증으로 결국 사망했다.
네 차례 노동수용소 감금
장주하이는 감옥에 투옥되기 전 이미 네 차례 강제노동 처분으로 총 7년간 노동수용소에 감금돼 고문과 박해를 당하다가 풀려났지만, 핍박을 견디지 못해 집을 떠나 외지에서 생활했다.
2000년, 노동수용소 1년 6개월 감금
그는 2000년, 파룬궁에 관한 진상을 알리는 자료를 배포한 혐의로 1년 강제노동 처분을 받고 감금된 뒤 6개월 감금이 연장됐으며 고문 박해도 당했다. 그는 침대 아래로 머리를 누르고 팔을 등 뒤로 들어 올리는 혹독한 고문으로 실신했다.
감금 도중에 퇀허(團河) 수용소로 이송돼 또 파룬궁 수련 포기를 강요받으며 고문을 당했는데, 간수 니전슝(倪振雄)의 지시를 받은 죄수 20명이 그의 양손을 등 뒤로 묶어 놓고 번갈아 가며 신발로 얼굴과 머리를 때렸다. 얼굴과 머리가 붓고 멍이 들었으며, 비명이 새어나가지 않게 그들이 입을 틀어막는 바람에 질식해 기절하기도 했다.
2002년, 노동수용소 2년 감금
2002년 4월, 장 씨는 위위안탄(玉淵潭) 공원에서 파룬궁 자료를 배포하다가 다시 경찰에 납치돼 전기봉 고문을 당했다. 그는 단식으로 항의했고 죽음 직전에 이르자 경찰이 임시로 석방했다. 그는 몸을 피해 4개월간 외지에 숨어 살았는데 그 기간 경찰은 그의 부모에게 아들의 행방을 대라며 온갖 수단으로 괴롭혔다.
2002년 8월 6일, 결국 경찰에 다시 납치돼 핑구(平谷)현 세뇌반에 감금됐다가 구치소로 이송됐다. 간수는 수감자를 시켜 그를 침대에 묶어 놓고 혹독하게 구타하고 고문했다.
그는 2년 강제노동 처분을 받고 퇀허 수용소에 감금돼 결박당하는 고문을 40일간 당했는데, 고문에 대한 항의로 32일간 단식했어도 풀어주지 않았다. 2003년 수면 박탈, 식수 제한, 식사 제한 등 야비한 수법으로 파룬궁 수련 포기를 강요받았다. 또 온종일 작은 의자에 앉힌 채 움직이면 구타하는 고문을 가해 허벅지가 부어오르고 전신에 타박상을 입었으며 갈비뼈 4개가 부러졌다. 그런데도 치료하지 못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달리기 체벌과 청소를 시켰다.
2003년 9월, 새로 부임한 장바오리(張保利) 대대장은 장주하이를 더욱 혹독하고 잔인하게 구타하고 고문했다. 하루 20시간 이상 작은 의자에 앉히는 고문으로 혈뇨가 나왔고, 몇 차례나 단식했어도 고문을 중단하지 않았다.
2008년, 노동수용소 2년 감금
그는 2008년 5월 8일 지역 공원에서 일하다가 경찰에 납치돼 2년 강제노동 처분으로 다시 감금됐다. 2010년 5월 풀려났지만 경찰의 감시와 괴롭힘은 여전했으므로 경찰을 피해 거처를 옮겨 다녀야 했다.
2012년, 노동수용소 2년 감금
2012년 3월 29일, 당시 45세였던 그는 버스에서 파룬궁 자료를 배포하다가 네 번째로 2년 강제노동 처분을 받고. 5월 초 신안(新安) 노동수용소로 이송됐다. 2013년 6월, 정체불명의 독극물을 주입당한 뒤 15개월간 고문 박해를 당하다가 2013년 6월 24일 초에 풀려났다.
4년 징역형과 사망
2014년 11월 중공의 박해로 괴롭힘을 당하던 어머니가 사망한 후 아버지만을 모시고 살던 그는 2017년 5월 8일 오후에 집에서 경찰의 습격을 받았다. 경찰은 불법적인 가택수색으로 노트북, 프린터 등 금품을 강탈한 후 장주하이를 납치했다. 핑구현 구치소에 감금된 후 6월 14일 체포영장이 발부돼 정식으로 구속됐다.
홀로 남겨진 74세 아버지는 2017년 6월 넘어져 골반이 골절돼 돌볼 사람이 필요했으므로 변호사가 장주하이의 보석을 신청했지만 거부당했다. 사건은 2017년 8월 초 핑구현 검찰로 송치됐고 검사 랴오루(廖璐)는 8월 21일 핑구 지방법원에 그를 기소했다.
장 씨의 재판 2주 전인 9월 3일, 그의 아버지는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근육에 구더기가 자랄 정도로 괴사가 심해 의사는 수술 불가 진단을 내렸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변호사가 9월 8일 다시 아버지를 돌보기 위한 보석 신청을 했지만 여전히 거부당했다.
9월 19일 열린 재판에서 변호사는 “검찰이 제시한 증거는 기소의 이유가 될 수 없다”며 무죄 변론을 했지만, 판사는 2017년 9월 30일 장주하이에게 징역 4년과 벌금 8천 위안을 선고했다.
2개월 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다
결국 아버지는 사망했고 장 씨는 4년간 투옥돼 온갖 고문 박해를 당하다가 2021년 5월 7일 집으로 돌아왔으나, 혹독한 고문 후유증으로 몸져누워 고통받다가 2023년 초 세상을 떠났다.
부모가 받은 박해
2002년 장주하이가 두 번째 노동수용소에 감금된 기간에 아버지도 경찰에 납치돼 전신주에 묶여 폭언과 폭행을 당했다. 이 참혹한 광경을 목격한 한 마을 관계자가 분노하며 경찰에게 “당신이 그러고도 인간이요? 그렇게 좋은 사람을 납치하다니, 좀 좋은 일을 할 수 없나요?”라고 비난했다. 경찰은 마을 사람들의 항의로 노인을 풀어줬다가 다시 노인 부부를 납치해 강제노동 처분을 내려 2004년까지 감금했고, 또 2006년 밤중에 장 씨 집을 급습해 또 어머니를 류자뎬(劉家店) 파출소로 납치하기도 했다.
2014년 7월 8일, 장 씨는 파룬궁 자료를 배포했다는 신고로 납치된 후 노트북, 프린터, 파룬궁 서적 및 관련 자료를 압수당했다. 그때 마을 사람이 경찰에게 “그 가족은 모두 좋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배포한 자료는 진실한 내용인데 그들을 좀 그냥 두면 안 되나요?”라고 말했다. 장 씨의 어머니는 여러 해 두려움 속에서 생활하다가 박해 후유증으로 2014년 11월 6일 세상을 떠났다.
원문발표: 2023년 3월 2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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