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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차례 납치돼 7년간 고문당한 헤이룽장 수련자, 5세도 안 된 딸 두고 사망​

[밍후이왕] (중국 헤이룽장성 밍후이 기자)​

이름: 주슈민(朱秀敏)​
성별: 여성​
나이: 51세​
지역: 헤이룽장(黑龍江)성 다칭(大慶)시​
직업: 이불 공장 노동자​
사망일: 2022년 7월​
가장 최근 납치: 2017년 3월 21일​
가장 최근 감금 장소: 치치하얼(齊齊哈爾)시 구치소

2017년 3월 21일, 주슈민과 그녀의 남편은 파룬궁(法輪功)에 대한 신념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경찰에 불법 납치됐다.​

정식 명칭이 파룬따파(法輪大法)인 파룬궁은 1999년부터 중공 정권에 의해 무고하게 박해받고 있는 불가(佛家)의 심신 수련법이다.​

주 씨는 불법적인 감금에 대항하여 5개월간 단식했다. 너무나 몸이 쇠약해진 그녀가 심한 변비에 걸리자 그들은 주 씨를 병원으로 옮겨 신체검사를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주 씨는 충격을 받았다. 이틀 후, 그녀는 석방됐다.​

2017년 12월 8일, 주 씨는 딸을 출산했다. 그러나 6일 후, 주 씨의 남편은 불법적으로 3년 형을 선고받아 그녀는 경찰의 학대를 피해가며 혼자서 힘겹게 아기를 돌봐야 했다. 2020년 3월, 주 씨는 석방된 남편과 재회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족이 함께했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주 씨가 정신적, 신체적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딸이 5살도 되기 전인 2022년 7월, 향년 51세로 세상을 떠났다.​

주 씨가 마지막으로 불법 납치되기 전이었던 2017년, 그녀는 이미 여섯 번 납치됐고 그 7년의 복역 기간 주 씨는 잔혹하게 고문당했다.

주슈민의 갓 태어난 아기​

20년간의 박해​

헤이룽장성 다칭시의 주 씨는 지역에 있는 이불 공장에 다녔으나 공장이 재정적 난관에 봉착해 그녀는 해고됐다.​

1998년 8월 파룬궁을 시작한 그녀는 불같던 성격이 사라지고 평화롭고 사려 깊은 사람으로 변했다.​

박해 초기에 당한 불법 납치​

파룬궁 박해가 시작된 지 1년이 지난 2000년 3월 18일, 주 씨는 파룬궁을 수련할 수 있는 권리를 청원하기 위해 베이징으로 갔다. 그녀는 천안문 광장에서 불법 납치되어 다칭으로 되돌려 보내져 싸얼투(薩爾圖)구치소에 20일간 구금됐다. 경찰은 주 씨에게 베이징까지 그녀를 잡으러 간 경찰들의 여행 경비 명목으로 3600위안(약 66만 원)을 낼 것을 강요했다.​

2000년 4월 29일, 파룬궁 청원을 위해 다시 베이징으로 갔던 주 씨는 천안문 광장에서 불법 납치됐다. 다칭으로 이송된 그녀는 당국에 의해 15일간 구금됐고 전향서(수련 포기)를 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구금 기간은 4개월 더 연장됐다. 그들은 또 그녀로부터 3400위안(약 62만 원)의 돈을 불법적으로 갈취했다.​

몇 개월 후, 사람들과 함께 연공하던 주 씨는 또 납치됐다. 그녀는 3평 정도의 방에 30명의 사람과 함께 감금됐다. 사람으로 꽉 찬 방에, 날씨가 비정상적으로 뜨겁고 공기가 순환하지 않아 주슈민의 몸에 이상이 생겨서 집으로 돌아왔다.​

겨자기름으로 질식시키는 고문​

박해에 대한 진상을 알리기 위해 주 씨는 다른 수련자들과 협력해 TV 신호를 가로막고 파룬궁의 진실을 방송하는 데 참여했다.​

2002년 5월 8일, 당시 30세였던 주 씨는 그 일로 무단장시 기차역에서 불법 납치돼 경찰차에 태워졌다. 차 안에서 경찰에 의해 머리가 시트 밑에 처박힌 그녀는 거의 질식할 뻔했다.​

경찰서장인 주(朱)는 그녀를 철제 의자에 수갑으로 연결하고 머리를 걷어차면서 옷을 찢어 버리겠다고 위협했다. 그녀가 거세게 저항하자 그는 포기하고 자리를 떠났다.​

곧 다른 두 명의 경찰이 주 씨를 심문하기 위해 들어왔다. 그들은 그녀의 신발과 양말을 벗기고 맨발로 콘크리트 바닥에 서게 했다. 일단 그녀의 종아리를 의자 다리에 쇠사슬로 묶고 의자 양옆에 있는 그녀의 팔과 손은 모아서 수갑을 채웠다.​

한 경찰이 전기밥솥 전선 같은 것을 꼬아서 그녀의 발등을 향해 내리치며 소리쳤다. “나는 당신의 발톱이 검고 자주색으로 변하고 떨어져 나갈 때까지 채찍질할 거야” 주 씨는 참을 수 없는 고통으로 1초가 영원처럼 느껴져 기절할 지경이었다.​

경찰은 오랫동안 그녀의 다리와 몸을 채찍질했다. 그는 자신이 지칠 때까지 매질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탁자에 놓인 겨자기름을 가리키며 주 씨에게 말했다. “우리는 당신들(파룬궁 수련자)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알고 있지”​

그는 헝겊에 겨자기름을 붓더니 그것으로 주 씨의 코를 막고 2개의 비닐봉지로 그녀의 머리를 덮어씌웠다. 그녀는 숨이 막혔다. 거의 질식사할 것 같은 그녀를 본 경찰이 비닐봉지를 찢고 찬물 한 컵을 그녀의 코에 들이부어 겨자기름을 씻어내자 그녀는 다시 숨을 쉴 수 있었다.​

[고문 재현] 비닐봉지로 머리 덮어씌우기​

7년 형 선고​

2002년 5월 10일, 무단장시 제2구치소로 이송됐던 주 씨는 불법 납치가 승인된 6월에 제1구치소로 옮겨졌다.​

2002년 10월, 그녀는 양밍(陽明)구 법원에서 7년 형을 선고받았다.​

2003년 1월, 주 씨는 악명 높은 헤이룽장성 여성 감옥으로 이송됐다. 그곳에서 그녀는 매일 세뇌반에 참석하기 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나고 감옥 규칙을 암기하고 파룬궁을 비방하는 영상물을 보고 공산당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러야 했다. 따르지 않으면 저녁부터 새벽 2시까지 잠도 못 자고 서 있어야 했다.​

강제 노동과 거부된 가족 면회​

한 달 후, 주 씨는 제5감구로 배치됐다. 4명의 재소자가 그녀를 때리고 욕을 하며 24시간 감시했다. 그녀는 다른 파룬궁 수련자들과 대화도 금지되고 무엇을 하던 우선 물어보고 허락받아야 했다. 매일 밤, 그녀는 쪼그리고 앉아 점호했다.​

간수의 명령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들은 주 씨가 일상 용품을 사지 못하게 하고 가족과의 전화 통화와 면회마저 금지했다.​

가족들이 그녀를 보기 위해 먼 길을 달려왔을 때도 간수는 그녀가 가족을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며 돌려보내 상심한 가족들은 다시 그녀를 방문하지 않았다.​

주 씨는 감옥 안에 있는 의류 작업장에서 보수도 없이 새벽 5시부터 밤 10시까지 강제 노동을 했다. 만약 그녀와 다른 작업자들이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간수는 밤 12시가 넘어도 일을 시켰다.​

구타, 얼리기, 전기봉 고문​

2003년 10월 1일, 4명의 재소자는 주 씨를 화장실로 끌고 들어가 그녀를 바닥에 누르고 구타했다. 몇 사람은 그녀의 배를, 다른 이들은 그녀의 머리를 때렸다. 그녀의 얼굴은 붓고 멍들었다. 그녀는 숨을 쉴 때 오른쪽 갈비에 심한 통증을 느껴 1달간 침대에서 몸을 뒤척이지 못했다.​

2003년 11월 24일, 주 씨와 다른 수련자들은 무보수 강제 노동에 반기를 들었다가 재소자들에 의해 구타당했다. 이틀 후, 수련자들은 작업장에서 다시 항의 시위를 했다. 간수는 그녀를 5층부터 아래층까지 질질 끌고 내려가 사정없이 때렸다.​

오후, 간수 쑨리쑹(孫麗松)은 겉옷을 두 개나 입어도 떨릴 정도인 추운 날씨에 재소자들에게 주 씨의 겉옷을 벗기게 하고 그녀가 얇은 옷만 입은 채로 바깥에 서 있게 하라고 지시했다. 저녁이 되어 다시 안으로 들어온 주 씨를 작은 의자에 몇 시간 더 앉아있게 했다.​

2003년 11월 26일과 12월 2일 사이, 간수들은 수련자들을 대상으로 1주일간의 집단 고문을 진행했다. 매일 아침 5시, 그들은 수련자들을 모자, 목도리, 장갑도 착용하지 않은 상태로 밖(영하 4~22도)으로 끌고 나가 소매를 걷어 올려 팔까지 드러내게 했다. 간수와 재소자들은 대나무 회초리나 물병으로 수련자들을 때리고 수련자들은 줄을 서 순서대로 그들 앞으로 가서 맞아야 했다.​

간수들은 수련자들에게 오후 4시까지 바지의 양면에 손을 붙이고 서 있게 했다. 누구든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그들은 다리로 걷어찼다. 그러고 있는 동안은 누구도 먹거나 마시거나 화장실에 갈 수 없었다. 끝나고 감방으로 돌아오면 수련자들은 다리가 부어 무릎을 굽힐 수 없었다.​

짧은 휴식이 끝나고 수련자들은 다시 밤 10시까지 서 있어야 했고 마치면 복도에 쪼그리고 있거나 타일로 된 바닥에서 자기 전에 새벽 2시까지 앉아 있게 했다.​

2003년 11월 29일 아침, 경찰 양쯔펑(楊子峰)은 주 씨를 포함한 수련자들을 고무 막대기로 때렸다.​

2003년 11월 30일, 주 씨가 얼리기 고문을 거부하자 간수 우옌제(吳豔傑)는 그녀의 얼굴에 전기봉 충격을 가했다. 두 명의 재소자가 그녀의 멱살을 잡고 밖으로 끌어내는 바람에 그녀는 옷에 의해 목이 졸렸다.​

경찰 대대장 타오수핑(陶淑萍)은 주 씨에게 쪼그려 앉으라고 명령했다. 그녀가 거부하자 타오는 재소자를 시켜 그녀의 무릎 뒤를 발로 차게 했다. 그녀가 쓰러지자 재소자는 그녀를 일으켜 다시 발로 차고 또 차고 계속해서 찼다. 타오는 다시 재소자에게 주 씨의 손을 등 뒤로 묶고 테이프로 입을 막고 눈이 오는 바깥에 앉혔다. 타오는 때때로 밖으로 나와 그녀에게 발길질했다. 타오는 주 씨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 재소자를 부추겨 그녀의 머리카락을 자르게 했다. 머리카락은 뒷머리에서 삐뚤삐뚤하게 잘려 나갔고 짧아진 머리로 그녀의 귀와 머리가 매서운 추위에 사정없이 드러났다.​

머리를 자른 뒤, 재소자는 그녀의 손이 등 뒤로 묶여 있는 상태에서 손바닥, 손등, 손가락 주변을 대나무 막대기로 때렸다. 주 씨의 손가락은 심하게 변형되고 손톱도 모두 부러졌다. 손가락이 부어올라 그녀는 굽힐 수도 없었는데 그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주 씨가 여전히 눈 속에 앉아 있을 때, 간수 쑨리쑹은 그녀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아 그녀의 무릎을 밟았다. 주 씨는 균형을 잃어 거의 뒤로 넘어질 뻔했다. 쑨은 그녀가 넘어질 때까지 대나무 막대기로 그녀를 밀고 그녀의 발을 다리로 밟으며 이렇게 하면 따뜻할 거라고 말했다. 간수는 그녀를 그렇게 하루 동안 눈 속에 있게 했다. 저녁때, 감옥 건물로 돌아온 그녀는 새벽 2시까지 차가운 복도 바닥에 앉아 있어야 했다.​

일주일에 걸친 얼리기 고문이 끝나갈 때쯤, 주 씨와 다른 수련자들의 몸은 심각한 부상으로 뒤덮여 있었다.​

2003년 12월 5일, 간수 쑨(孫)은 다시 얼리기 고문을 하기 위해 재소자를 시켜 주 씨의 겉옷을 벗겼다. 재소자는 그녀의 옷을 벗기는 동안 때리고 욕했다. 그들 중 하나에게 왼쪽 가슴 밑을 발로 차인 그녀는 가슴이 부어 이후 1달 동안 정상적으로 숨쉬기 힘들었고 잘 때도 돌아누울 수 없었다.​

2009년 5월 9일, 주 씨는 석방됐다. 그녀는 7년간의 그렇게 악랄한 고문 속에서 자신이 살아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마지막 납치, 단식으로 항의하다 강제로 정신 약물 투입​

2017년 3월 21일, 주 씨와 그녀의 남편 왕위둥은 시부모를 만나기 위해 치치하얼(齊齊哈爾)시에 갔다. 부부는 경찰이 수련자인 류밍잉(劉明英)을 잡기 위해 류(劉)의 집에 간 것을 모르고 그를 방문했다가 경찰에게 불법 납치됐다.​

경찰은 주 씨에게 집을 수색해야 하니 그들을 집으로 데려가라고 했다. 경찰이 마스터키를 가지고 집으로 들어갔으나 그들은 그곳에서 파룬궁과 관련된 어떤 것도 찾지 못했다. 다음 날 저녁, 경찰은 주 씨 부부를 각기 다른 방에서 심문했다. 주 씨는 경찰이 남편을 때리고 욕하는 소리를 들었다. 한 경찰이 주 씨의 뺨과 이마를 때리고 배를 가격했다. 그녀가 미동도 하지 않자 그들은 그녀의 남편을 때리기 위해 다른 방으로 갔다.​

경찰은 사흘 동안 부부를 밤새 철제 의자에 앉혀 놓고 그들이 구치소로 이송되기 전까지 심문했다.​

2017년 3월 27일, 주 씨는 박해에 항의하는 단식을 시작했다. 간수는 그녀에게 수갑과 족쇄를 채웠다. 수갑과 족쇄는 서로 연결돼 있어 그녀는 앉을 수도 누울 수도 없었다. 그녀는 감방에 있는 재소자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들은 그녀에게 욕설을 퍼붓고 때렸다.​

재소자들은 주 씨를 24시간 감시하느라 잠을 잘 수 없게 되자, 보복으로 침구를 빼앗아 그녀를 맨바닥에서 자도록 했다. 그들 중 3명은 주 씨를 감시해야 하는 압박에 지쳐 그녀를 죽여 버리고 싶다는 말까지 했다.​

이후 간수는 재소자들을 시켜 주 씨의 음식에 정신 질환 약물을 넣게 했다. 그 약물로 인해 그녀는 얼굴이 붓고 혀의 감각을 잃었으며 심한 갈증을 느꼈다.​

주 씨가 다른 감방으로 이감된 후, 간수들은 그녀를 아무것도 깔려 있지 않은 침대에 앉히고 벽에 부딪히게 했다. 몸 전체가 다 아팠던 그녀는 자주 어지러워 화장실에서 2차례 쓰러졌다.​

오랜 단식으로 변비가 심해진 주 씨는 병원으로 후송됐다. 신체검사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임신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주 씨는 경악했다. 5개월 동안 아기가 뱃속에서 그 고문의 고통을 견뎠다는 것이 기적이었다. 이틀 후, 임신으로 인해 그녀는 석방됐다.​

집으로 돌아온 후, 그녀는 오랜 영양 부족으로 생긴 빈혈과 부종, 온몸의 통증으로 고통스러웠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정신적, 신체적, 재정적 위기에도 그녀는 남편을 구하기 위해 정부의 다른 기관들을 찾아다녔다.​

2017년 12월 8일, 태아 검진으로 아기가 탯줄을 목에 감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주 씨는 제왕절개로 아기를 출산했다. 그녀의 남편이 3년 형을 선고받기 6일 전이었고, 그가 파룬궁에 대한 신념으로 10년의 형기를 마치고 2011년 석방된 후 겨우 7년이 지났을 때였다.

아무런 수입도 없던 주 씨는 지속적인 경찰의 괴롭힘을 두려워하며 홀로 아기를 기르느라 힘겹게 살아야 했다. 2020년 3월, 남편이 석방돼 가족 모두가 함께 지냈던 날들이 그녀에게는 유일하게 좋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20년이 넘는 박해로 건강을 잃은 주 씨는 딸의 다섯 번째 생일을 5개월 앞둔 2022년 7월에 결국 사망했다.​

 

원문발표: 2023년 1월 18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례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3/1/18/455324.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3/1/18/455324.html
영문위치: https://en.minghui.org/html/articles/2023/1/20/20631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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