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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을 수련해 새 삶을 얻은 가족 3명 박해로 사망

[밍후이왕] (밍후이 통신원 장쑤 보도) 차이젠화(蔡建華) 가족 3명은 파룬궁(法輪功)을 수련했다는 이유로 중공의 박해로 사망했다. 차이젠화, 아내 전샹잉(鎮祥英), 아들 차이원밍(蔡文明) 등은 1996년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생명을 얻어 화목한 가정을 이루었다. 그러나 중공이 1999년 7월 파룬궁을 탄압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이 가정은 계속 박해당했다. 가족 모두 경찰에 납치되어 잔혹한 고문을 당했는데, 아들 차이원밍은 징역 7년 형으로 투옥된 뒤 2013년 결국 사망했다. 아내 전샹잉도 잔혹한 괴롭힘을 당하다가 2016년 4월에 사망했고, 77세 고령인 차이젠화도 2020년 징역 3년 형을 선고받고 2020년 5월 억울하게 사망했다.

파룬따파는 가족에게 새 생명을 주셨다

차이젠화 가족은 1943년 2월 27일부터 장쑤(江蘇)성 창저우(常州)시에 거주했다. 차이젠화는 파룬따파 를 수련하기 전 백내장, 요추 등 여러 가지 질병으로 건강이 좋지 않았고, 아들 차이원밍은 1994, 1995년에 세 차례나 B형 간염 간경변으로 사경을 헤매게 되었다. 치료를 위해 집을 팔아 8만여 위안(약 1572만 원)을 치료비로 썼지만 낫지 않았는데, 병원 측은 치료 방법이 없다면서 3개월 정도 식사를 할 수 있을 것이라며 강제로 퇴원시켰다. 그의 아내는 남편이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고 5세 아들을 버려둔 채 이혼 후 집을 나갔다.

1996년 3월, 차이원밍은 운 좋게 친구 소개로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함에 따라 비형 간염, 지독한 빈혈이 모두 사라졌다. 그의 경과를 본 주치의는 “기적이다.”라고 했다. 차이원밍은 정말 다 죽어가던 고목에 꽃이 핀듯했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그에게 두 번째 생명을 주신 것이다.

차이원밍이 대법 수련으로 죽음 직전에 살아난 것을 본 부모가 모두 대법을 수련하시 시작했다. 결국 차이젠화와의 백내장, 요통 등 온갖 질병도 깨끗이 사라졌다. 차이젠화 가족은 집에 파룬궁 연공장을 성립해 60여 명의 수련자가 참가했다. 그때 차이원밍은 마을 보도원이 되어 대법을 널리 알리다가 중공에 납치 투옥되어 잔혹한 고문을 당했고, 결국 불법적인 재판에서 징역 7년 형을 받고 억울하게 사망했다.

장쩌민 집단이 1999년 7월 20일부터 파룬따파 수련자 탄압

2000년 10월 27일, 차이원밍은 출근길에 창저우시 우진(武進)구 안자서(安家捨)진 파출소 소장 훙젠싱(洪建興) 등에게 불법적으로 납치됐다. 납치 과정에서 집단 폭력을 당했고, 파출소에 끌려가서도 혹독한 구타와 고문을 당했다. 당시 훙젠싱 파출소장은 “당신들과 같은 사람은 구속영장 등 절차 없이 아무 때나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2000년 10월 28일 밤중에 ‘6.10’ 책임자 옌젠파(嚴建發), 파출소 소장 훙젠싱, 다이스니(戴世尼), 류광핑(劉光平) 등 3명은 차이원밍의 두 손에 수갑 채우고, 천으로 눈을 가린 후 나일론 끈을 수갑에 걸어 문틀 위에 매달아 놓고 전기봉과 혁대로 전신을 구타했다.

酷刑演示:背吊铐
고문 재연: 매달아 전기 충격 가하기

악인들은 또 거꾸로 매단 뒤 세면대에 찬물을 채워 얼굴을 담그는 물고문을 하는 등 온갖 고문 구타를 하다가 그들이 지치면 차이원밍을 끌어 내렸고 옷을 다 벗긴 뒤 시멘트 바닥 꿇려 놓고 괴롭혔다.

고문과 집단 폭행은 2000년 10월 29일에도 계속되었으므로 파출소 주변 주민들도 차이원밍의 비명을 들었다. 결국 고문 구타로 심신이 심각하게 훼손되어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게 되었다.

경찰은 5박 4일간 고문을 가하며 대법자료, 대법경문, 안자 지역의 수련자 10명의 베이징 청원(10월) 등 모든 일을 차이원밍이 단독으로 추진한 것으로 증거를 조작했다. 사실 차이원밍은 그해 9월 중순 직장 업무차 장시로 출장 가서 10월 8일에 돌아왔다.

차이원밍은 2000년 10월 31일 송치되어 구치소에 10개월간 감금된 뒤, 2001년 8월 9일 우진(武進) 법원의 불법적인 재판에서 징역 7년 형이 선고되었는데, 그때까지 가족에게는 아무 연락도 하지 않았다. 공검법(공안, 검찰, 법원) 관계자들은 사건을 모두 불법적으로 처리한 것이다.

불법적인 재판 당일 오전에는 많은 비가 내렸다. 재판정에서 차이원밍은 얼굴에 웃음을 띠며 대법을 실증했다. “나는 1994년과 1995년 세 차례 비형 간염을 앓아 빈혈이 심했는데, 혈액암과 같은 가망 없는 상태였다. 병원비로 8만 위안을 썼지만, 병원 측은 치료 방법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대법 사부님께서 나를 구해주셨고,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셨다. 이 게 무슨 죄란 말인가? 당신들은 구타와 고문으로 나를 이렇게 만들어 놓았다. 또 당신들은 불법적으로 10여 차례 가택 수색으로 대법 자료 등을 강탈했는데 바로 이것이 불법이고 죄가 아닌가?” 판사가 물었다. “누가 당신을 때렸나?” “나에게는 증인이 있다.”고 말했다. 판사와 그 일당은 더는 아무 말도도 하지 않았다.

차이원밍은 “내가 병에 걸려 가망이 없자, 아내는 5세 아들을 남겨 둔 채 이혼 후 집을 나갔다. 집에는 고령인 부모만 있다. 당신들은 나에게 불법적으로 7년 형을 선고했는데, 아들의 학비와 생활비는 누가 부담하는가?”라고 말했다. 그는 쑤저우 감옥에 감금되어 또 교도관의 고문 학대를 당해 생명이 위급한 상태가 된 것이다.

2007년 10월, 만기 출소 후 집에 돌아왔다. 몸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어도 의연한 자세로 대법 자료를 만들어 진상을 알렸다. 그는 고문 후유증으로 늘 명치 끝이 아팠다. 통증이 심할 때는 침대에서 뒹굴었는데, 그런 고통은 며칠씩 지속했다.

2013년 7월 어느 날 전신의 통증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결국 2013년 10월 말 어린 아들과 고령의 부모만 남긴 채 47세의 나이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파룬따파(法輪大法)는 차이원밍에게 건강한 몸을 주었고 확고하게 반본귀진 할 수 있는 선량한 마음을 주었다. 그러나 중공은 구타와 고문으로 목숨을 잃게 했다.

전샹잉, 고문당해 고통 속에서 억울하게 사망

전샹잉(鎮祥英)은 대법이 아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준 것을 보고 그녀도 대법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진선인(真·善·忍)’의 법리는 그녀에게 광명과 반본귀진의 희망을 보게 했고, 확고하게 파룬따파(法輪大法)를 믿개 했다.

2001년 2월 23일, 창저우(常州)시 우진구 안자서(安家捨)진 파출 소장 훙젠싱(洪建興)은 파룬궁을 수련하는 6명을 납치해 세뇌반에 감금했다. 그중 2명은 압박을 견디지 못해 포기했지만, 전샹잉과 남편 차이젠화 등 4명은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파출소장 훙젠싱 등은 박해를 가중시켜 2001년 3월 1일 오후 그들 4명의 수련자를 장시간 괴롭혔다. 2001년 3월 3일 오전, 훙젠싱, 저우진룽(鄒金龍) 등은 쇠파이프로 구타했다.

2001년 3월 5일 저녁, 훙젠싱은 왕하오보(王浩波), 쉬창(徐強) 3인의 악인을 시켜 길이 150cm 지름 4센cm 나무 몽둥이로 사정없이 구타해 몽둥이 4개가 부러졌다. 악인은 집중적으로 왼쪽 발만 구타해 4명 모두 왼쪽 발이 부어올라 잘 걷지 못했다. 그 상태에서 2시간 세워놓기 고문을 가한 후 자정이 넘어서 잠자게 했다. 20여 일간 통증으로 잠을 이룰 수 없었고, 걷지도 못해 부축받아야 했다. 전샹잉은 구타로 허리를 펴지 못해 구부린 채 벽을 짚고 걸었는데, 사악한 경찰은 생명이 위급한 것으로 판단하고 2001년 4월 13일 풀어줬다. 그러나 전샹잉은 집에 돌아와서도 3개월 동안 침대에서 내려올 수 없었다.

그 후 전샹잉은 베이징에 가서 청원하고 대법 진상 자료를 붙였다는 이유로, 2년 6개월 노동교양처분을 받고 장쑤 쥐둥(句東) 여자노동교양에 감금되었는데, 아들 차이원밍이 고문으로 죽자, 전샹잉의 충격은 더욱 컸다. 그녀는 결국 충격과 고문 후유증으로 2016년 4월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 차이젠화도 계속 박해받다 사망

차이젠화는 대법 수련으로 큰 혜택을 받았으므로 대법의 공정함을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2000년 7월 18일 베이징에 가서 청원하다가 진수이교(金水橋)에서 불법적으로 납치된 뒤 주소지 파출소로 인계되었다.

안자서진 파출소장 훙젠싱, 다이스니, 류광핑 등 3명은 밤새도록 고문 구타를 가하며 신문했는데, 옷을 전부 벗긴 뒤 바닥에 꿇게 한 후 욕설과 구타를 가했다. 차이젠화는 “베이징에 찾아가서 파룬따파(法輪大法)는 ‘진선인(真·善·忍)’을 수련하여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돈도 받지 않고 알려주고 가르치는데 무슨 잘못이 있는가?”라고 항변했다.

中共酷刑示意图:殴打
중공 고문 설명도: 구타

2000년 7월 24일, 차이젠화는 식전부터 수갑에 채워 나이론 끈에 걸어 문틀 위에 매달린 뒤 발길질 등 혹독한 구타를 당했다. 오전 내내 고문당하다가 점심때가 되어 풀려나 소변을 보던 중 쓰러져 50분간 실신했다. 악인들이 찬물을 끼얹어 깨어나게 했으나 바지에 오줌을 싼 상태였다. 점심 식사로 죽 한 그릇을 주며 무슨 ‘보증서’를 써야 한다며 위협했지만 응하지 않았다. 그 후 고령에다 건강상 생명이 위험하다고 판단한 악인들은 더는 고문하지 않고 구치소에 감금했다.

2000년 10월 초 차이젠화는 대법을 실증하기 위해 다시 베이징에 갔다가 10월 8일 또 현지 파출소에 끌려왔다. 역시 훙젠싱, 다이스니가 고문 구타를 가하며 자백을 강요했다. 역시 옷을 전부 벗겨 무릎을 꿇렸고, 양손 양발에 수갑과 족쇠를 채운 뒤 대야에 물을 담아 물고문을 가했다. 오후에는 팬티만 입힌 뒤 시멘트 바닥에 꿇려 한밤중까지 추위에 떨게 했고, 한 여관방으로 끌고 가서 고문했다. 식사는 1일 두 끼만 제공됐고, 밤마다 시멘트 바닥에서 잠을 자게 했다. 그 후 2000년 10월 24일까지 구치소에 1개월간 감금됐다.

2000년 말인 설 전 다시 여관으로 끌려갔고, 2001년 초 ‘톈안먼 분신자살’ 조작사건 비디오 시청을 강요했다. 2001년 2월 23일 차이젠화와 아내 전샹잉 등 파룬궁수련자 6명은 세뇌반으로 끌려갔지만 차이젠화는 대법수련을 견지하며 그들의 지지에 따르지 않아, 3월 3일 오전 쇠파이프로 혹독한 구타를 당해 다리가 상해 고통으로 잠들지 못했고 걷지 못했다.

그 후 매년 명절 등 사당이 민감한 날이라고 인정하는 날만 되면 차이젠화는 ‘6.10’ 책임자 옌젠파(嚴建發), 파출소장 훙젠싱, 다이스니, 류광핑 악인에게 납치되어 세뇌반에 감금되었다. 이런 상황은 2003년 10월 말까지 이어졌다. 당시 아내 전샹잉은 2년 6개월 노동교양처분, 아들 차이원밍은 징역 7년 형으로 각각 감금당해 있던 시기다.

2018년, 차이젠화는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다가 창저우 시신교(西新橋) 파출소 경찰에 납치되어 하루 반 동안 감금됐고, 2개월 뒤 버스에서 진상을 알리다가 신고당해 다시 시신교 파출소에 납치되어 조사받은 뒤 건강상 이유로 1년간 ‘처분보류’ 형식으로 풀려났지만, 1년이 지나자, 다시 1년 연장했다.

2020년, 77세 차이젠화는 공검법(공안, 검찰, 법원)이 조작한 죄명으로 징역 3년 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감옥에 감금되기 전인 2020년 5월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원문발표: 2022년 10월 20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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