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 통신원 산둥 보도) 최근 산둥(山東)성 웨이팡(濰坊)시 웨이청(濰城)구 파룬궁 수련자 우청서우(吳成收)가 불법 재판으로 징역 11년과 벌금 10만 위안(약 2003 만 원)을 선고받고 투옥됐다.
정식 명칭이 파룬따파인 파룬궁은 1999년부터 중국공산당 정권에 부당하게 탄압받고 있는 심신 수련법이다.
파룬궁 수련자 우청서우는 지난해 4월 20일 현지 공안국 국보대대 경찰에게 납치돼 1년 넘게 불법 감금돼 있다가 중형을 선고받았다. 불법 판결을 받은 우청서우는 9월 22일 감옥으로 이송돼 계속 박해받고 있다.
우청서우(57세)는 1995년 겨울에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고, 파룬궁의 ‘진선인(真·善·忍)’의 원칙에 따라 수련하면서 심신에 이로움을 얻었다. 수련 전, 그는 4~5년 동안 질병에 시달렸는데 여러 병원에서 치료받아도 완치되지 않았다. 병 치료를 위해 그는 집에 있던 돈을 다 써버렸고 또 적잖은 돈을 빌렸다. 그런데 수련 1개월 후, 그의 몸의 질병은 전부 나아 활력을 되찾았다. 온 마을 사람 모두 우청서우가 파룬궁을 연마해 몸이 좋아지고, 더욱 선량하고 너그럽고 성실하게 변한 것을 알고 있다. 한번은 큰 홍수가 나자 그가 주동적으로 2천위안(약 40만 원)을 재해 지역에 기부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중공 사당이 광적으로 파룬궁을 탄압하는 중에서 그는 납치, 고문 학대, 불법 감금, 경제 갈취, 유랑생활, 불법적으로 중형을 선고받는 등 여러 가지 박해를 당했다.
수련을 견지해 납치, 고문, 경제권 박탈, 떠돌이 생활을 하다
1999년 7월 20일 중공이 파룬궁 박해를 시작한 그 날, 우청서우, 우루광(吳汝光), 위치푸(宇其富) 등 파룬궁 수련자들은 현지 공안에 납치돼 행방불명이었다. 지역 파룬궁 수련자들의 강력한 항의와 요구로 그들은 석방됐다. 하지만 공안들은 계속 우청서우, 우루광, 위치푸의 집에 잠복 감시팀을 조직했다. 집 앞뒤에 큰 등불을 설치하고 24시간 동안 번갈아 감시하며 외출을 허락하지 않았고 인신의 자유를 통제했다.
7월 22일, 파출소와 지역 공안 20여 명이 우청서우 집에 들이닥쳐 수련서를 내놓으라고 강요했지만, 그는 거부했다. 그러자 악질 공안 무리는 그를 구타해 땅바닥에 넘어뜨리고 집안을 3차례에 걸쳐 샅샅이 뒤져 수련서와 파룬궁 창시자 법상 등을 깡그리 강탈했다.
당시 동생의 집에 들렀던 우청서우의 형(수련하지 않음)도 심한 구타를 당했으며, 그가 타던 오토바이도 강탈당했다. 그날 저녁, 우청서우와 그의 아내 왕셴(王仙) 등 여러 명 파룬궁 수련자들은 불법 납치 감금당했다. 수련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우청서우는 공안 류유즈(劉友之)에게 심하게 구타당했다. 그 후 강제 노동을 당했고, 파룬궁을 모독하는 영상과 신문을 강제로 보게했다. 우청서우는 9박 9일 동안 감금 박해를 당하고서 풀려나 집으로 돌아왔다.
2000년 1월 19일, 류유즈(劉友之)를 포함한 지역 공안들은 우청서우, 왕셴, 쑨화쥔(孫華軍), 쑨밍더(孫明德), 우청시(吳成喜) 등 파룬궁 수련자를 납치해 야만적인 폭행과 금전 갈취를 했다.
공안은 강제로 수련자들의 옷, 신발, 양말을 벗겨 차디찬 눈밭에 세워두었다. 그런 다음 그들의 눈을 가리고 한 사람씩 심한 구타와 학대를 진행했다. 수련자들을 강제로 팔과 다리를 곧게 폈고 눈밭에 앉히고 작은 나무 몽둥이, 가죽 경찰봉, 꼬아서 만든 전깃줄 등으로 수련자의 머리, 발, 종아리, 발 복사뼈, 손등, 팔 등 부위를 심하게 구타했다. 게다가 발로 복사뼈를 짓밟으며 살갗을 뭉갰다. 수련자들은 연속 7박 7일 동안 박해를 당했다.
이어 지역 정법위(정치법률위원회) 서기 리광쥔(李廣軍)의 지시로 수련자들은 재물을 갈취당했는데, 많이는 3만 위안(약 600만 원) , 적게는 600 위안(약 12만 원)을 갈취당했다. 돈을 가져오지 못하는 수련자는 돈의 액수가 찰 때까지 심한 구타를 당했는데, 하루에 20여만 위안(약 4006만 원)의 돈을 갈취했다. 그중 쑨화쥔은 여러 차례에 걸쳐 3만 위안을 갈취당했고, 쑨밍더는 여러 차례에 2만 2천 위안을 갈취당했다. 우청시는 3차례에 걸쳐 1만 위안을 갈취당했고, 우청서우는 2만 위안을 갈취당했으며 또한 강제로 523위안의 신문을 사게 했다.
2000년 5월, 지역 악질 경찰 허우(侯)는 한 무리를 거느리고 우청서우의 집에 들이닥쳐 우청서우, 왕셴, 왕라이구이(王來貴)를 파출소로 납치했다. 사악한 경찰이 “아직도 계속 파룬궁을 연마하겠나?”라고 묻자, 세 사람은 모두 “연마한다!”라고 대답했다. 공안들은 세 사람은 심하게 구타하고 사법국으로 끌고갔다. 경찰은 가죽 경찰봉 2개가 부러질 때까지 심하게 구타했다. 경찰 차이지옌(蔡繼岩)은 “당신들을 구타해 죽여 휘발유를 끼얹고 불태워 죽인 다음, 당신들이 연공해 분신자살을 했다고 말하겠다.”라며 협박했다. 리마오량(李茂亮)은 “당신을 때려죽여 파묻어버리거나 물에 수장하겠다.”라고 발광했다. 류유즈는 “당신이 계속 수련하면 가산을 깡그리 몰수하겠다.”라며 호언장담했다.
인간성을 상실한 공안들의 학대에 직면한 우청서우 부부는 집을 떠나 외지를 떠돌아다니며 살았다.
2차례 납치 끝에 불법 강제 노동을 판결받다
2000년 말, 떠돌이 생활을 하던 우청서우는 웨이팡시 창러(昌樂)현에서 파룬궁의 진실한 정보가 담긴 자료를 배포하다 창러 구치소로 납치됐다. 경찰은 자료 출처를 말하라고 강요하면서 3박 3일 동안 심하게 구타했다.
2001년 여름, 우청서우는 다시 납치당해 창러현 공안국과 구치소에서 박해당했다. 그 후 푸산(符山)진[다류수진은 해체되어 푸산진과 쥔부커우(軍埠口)에 귀속되었음] 파출소로 이송됐다. 우청서우가 믿음을 견지하고 수련을 포기하지 않자 노동교양소로 이송돼 불법적으로 강제 노동 3년을 선고받았다. 심한 박해로 그의 몸은 이미 말이 아닐 정도로 나빠진 상태였기에 노동교양소는 수감을 거부했다. 푸산진 파출소는 우청서우를 끌고 돌아온 후, 다시 3박 3일 동안 학대했는데, 생명이 위급한 증상이 나타나서야 풀어줬다.
80세의 연로한 우청서우의 노모가 집으로 돌아온 우청서우를 보살폈다(아내는 유랑생활을 했음). 그가 집에 돌아온 3일 후, 악질 공안 왕다오이(王道義)가 아직 누워있는 그의 집에 들이닥쳐 어머니를 내쫓고 문을 닫은 다음 또다시 그를 심하게 구타했다. 우청서우는 핍박에 못 이겨 다시 한번 집을 떠났다.
아들도 납치되다
2010년 3월 27일, 웨이펑구의 사악한 경찰은 창러현의 사악한 경찰과 결탁해 창러현 잉추(營丘)진 구청(古城)촌에 뛰어들어 우청서우, 왕셴을 납치했고, 푸옌산 주택 단지 파출소에서 고문하며 자백을 강요했다. 3월 31일 아침 8시경, 풀려난 우청서우는 핍박에 못 이겨 다시 떠돌이 생활을 했다. 웨이청구 경찰은 우청서우와 왕셴에게 수련을 포기하도록 핍박하기 위해 칭다오(青島)대학으로 가서 그들의 아들 우빈제(吳斌傑, 재학생 ) 마저 납치했다.
억울하게 징역 11년을 선고받고 산둥성 감옥으로 이송돼 박해받다
2019년 10월 28일 저녁 7시경, 웨이팡시 공안국 웨이청분국 국보 대대장 리루춘(李魯春)은 베이관(北關)파출소 부소장을 포함한 한 무리를 이끌고 웨이정구 베이궁(北宮)가 화스(華實) 주택 단지에 거주하는 왕셴의 집에 들이닥쳐 괴롭히고, 줄곧 떠돌이 생활을 하던 우청서우를 납치해 10년 전처럼 다시 박해를 계속하려고 시도했다.
2021년 4월 20일, 우청서우는 가오신구 공안국 국보대대 경찰에 납치됐다. 경찰은 그가 지닌 열쇠를 빼앗아 그의 집을 침입했다. 사악한 경찰은 우청서우의 집에 있던 왕센을 납치하고 가택 수색을 진행해 대법 서적, 법상, 진상 소책자, 진상 화폐 1700여 위안을 강탈했다. 그리고 컴퓨터, 호신부 등 여러 가지 개인 물품도 불법 압수했다. 왕셴은 가오신구 공안국 국보대대에 납치돼 지하실 안에서 불법 심문을 받고 그날 밤 ‘처분 보류’ 형식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우청서우는 가오신구 공안국 국보대대의 악질 경찰에게 푸옌산 파출소로 다시 납치됐고, 납치 당일 저녁 창러 구치소로 이송됐다. 5월 13일, 다시 웨이팡 파출소로 이송됐다. 우청서우는 1년 넘게 불법 감금 박해를 당하다 비밀리에 불법 재판으로 11년의 중형에 벌금 1만 위안을 선고받았다. 2022년 9월 22일, 우청서우는 산둥성 감옥에 투옥됐다.
(관련 박해 기관과 박해자 정보는 원문을 참조하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2년 10월 6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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