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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촨성 완위안시 제2구치소서 박해로 사망한 장광칭에 대한 상황 보충

[밍후이왕](밍후이왕 통신원 쓰촨성 보도) 쓰촨성 완위안(萬源)시 파룬궁 수련자 장광칭(張光淸)은 2001년 4월 말에 파룬궁 진상을 알렸다는 이유로, 국보(국내안전보위국) 과장 어우청린(歐成林) 무리에게 납치돼 불법적으로 1년의 강제노동 처분을 받았고, 2002년 3월 3일에 갑자기 완위안시 제2구치소에서 사망했다. 소식에 따르면, 소장 쑨청화(孫成華)가 직접적인 범인이고 국보과 경찰 왕창(王强)이 배후 인물이다.

장광칭(남, 당시 62세)는 충칭시 사람으로, 쓰촨성 완위안시 ‘513’ 발전소의 퇴직 노동자이며, 발전소의 ‘101’ 직원 가속원(家屬院)에 거주했다. 장광칭은 예전에 각종 질병을 앓았는데 장기간 치료받아도 완치가 어려웠다. 1997년 8월, 그는 운 좋게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반년도 되지 않아 각종 질병이 전부 사라지고 매우 빨리 건강을 회복해 활력이 넘쳤으며, 고생을 참고 견디며 근무해 직장 동료들의 호평을 받았다.

2001년 4월 말, 장광칭은 사람들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리다가 진상을 명백히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고발당했다. 그리고 완위안시 공안국 국보 과장 어우청린, 지도원 쑨훙메이(孫紅梅), 국보 경찰 왕창, 황중(黃忠), 장원쉬(姜文旭) 등이 불법적으로 집에 침입해 가택수색과 납치를 당했고, 완위안시 제2구치소에 감금됐다. 1개월 후, 장광칭은 완위안시 공안국 국보에 의해 불법적으로 1년 강제노동 처분을 받았다.

2002년 3월 3일 저녁, 장광칭은 완위안시 제2구치소에서 박해로 사망했다.

완위안시 공안국 국보과는 장광칭이 사망한 지 사흘이 지나서야 유족에게 뒷일을 처리하도록 통지했다. 그의 아내는 남편이 갑작스레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뒤 슬픔이 극에 달해 눈물을 머금고 완위안시 공안국 국보 경찰에게 남편의 사망 원인을 밝히고 공정한 평가를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공안국과 국보과에서는 이를 거부하고 공갈 협박을 했다.

장광칭이 감옥에서 사망한 진상을 은폐하기 위해 공안국과 국보과에서는 엄밀하게 소식을 봉쇄하고 유족과 친척, 친구들이 장 씨의 시신을 보지 못하게 했다. 게다가 대량의 경찰을 파견해 경계했다. 3월 5일 아침, 결국 유족의 허락 없이 장광칭의 시신을 직접 화장터에 보내 화장했다. 공안국과 국보대대는 이후 “장광칭은 감옥에서 ‘갑자기 질병이 도져’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2002년 5월 초, 파룬궁 수련자가 완위안시 공안국 국보과로 가서 국보 과장 어우청린을 찾아 장광칭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똑똑히 조사해 그의 유족에게 공정한 설명을 해달라고 선의적으로 요구했다. 그 얘기를 들은 어우청린은 책상을 두드리고 크게 화를 내면서 “당신 왜 그러지? 당신도 장광칭을 따라가고 싶어?”라며 협박했다.

2002년 8월 12일, 완위안시 제2구치소에 불법 감금당해 있는 파룬궁 수련자 왕(王) 씨의 폭로에 의하면, 장광칭이 감옥에서 파룬궁 연마를 견지하자 2소 소장 쑨청화와 감옥경찰 덩유화이(鄧友槐)가 채찍으로 여러 차례 그를 구타했다. 박해당해 사망한 그 날 저녁 무렵, 왕 씨는 “장광칭은 내가 보내온 저녁밥까지 먹으며 건강한 모습이었는데, 어떻게 다음날 새벽에 갑자기 죽었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고개를 저으며 “나는 안에서 밥을 짓는 사람이기에 활동 공간이 비교적 넓습니다. 일부 진실한 상황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적게 말하는 것이 좋아요. 한 달만 있으면 형기가 만기 되는데, 장 씨가 사망한 진상을 제가 말했다는 걸 경찰이 알게 되면 구타하고 형기를 연장할 것입니다”라고 덧붙였다.

(역주: 관련 박해 기관과 박해자 정보는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2년 9월 15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망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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