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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간 감금됐던 산시성 한중시의 샤오옌핑, 또 무고한 5년 형 받아

[밍후이왕] (밍후이 통신원 산시성 보도) 파룬궁 수련자 샤오옌핑(肖豔萍)이 산시(陝西)성 한중(漢中)시 한타이(漢台)구 법원에 의해 불법적인 5년 형을 선고받은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샤오옌핑은 2018년 8월 22일에 한타이 공안분국 치리(七里)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돼 이미 4년 가까이 억울한 옥살이를 해왔으며, 현재 산시성 여자 감옥에서 강제노동 박해를 당하고 있지만, 형기를 알지 못했다.

잔형이 1년 1개월 남은 사실을 알게 된 가족들은 샤오옌핑이 되도록 빨리 건강하고 평안하게 집으로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고, 그녀 아들은 어머니와 한자리에 모이기를 더욱 고대하고 있다.

샤오옌핑은 원래 산시성 난정(南鄭)구 다허칸(大河坎)진 창쿵(長空) 계기공장(76호 편지함)의 노동자로, 파룬궁을 수련하기 전에 건강이 매우 나빠 약을 달고 살았다.

그녀는 선천적 뇌혈관 기형 증상이 있어 1988년 10월에 베이징 쉬안우(宣武) 병원 뇌외과에서 개두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수술 후 증후군으로 그녀는 일년내내 실명과 두통에 시달렸고, 과도한 출혈로 출혈빈혈과 우심실 비대 증상이 나타났는데 의사는 심근염이라고 했다. 심전도를 받을 때 심장 박동이 매우 미약했다. 그녀는 또 부인과 질병, 오른쪽 무릎 관절염, 기관지염, 비염 등을 앓았다.

하지만 1996년 10월에 파룬궁 수련을 시작한 후 그 각종 질병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라졌다. 그녀는 엄격하게 대법 ‘진선인(真·善·忍)’ 법리에 따라 자신을 요구해 갈등에 마주치면 안으로 찾았고, 각 방면에서 타인을 위해 배려했다. 직장에서도 개인의 득실을 따지지 않았고 근면하고 성실하게 일했다.

1999년 7월, 중국공산당(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후 샤오옌핑은 파룬궁을 수련한 이유로 여섯 차례나 중공 경찰에게 납치돼 여러 차례 감옥에 갇혔다. 그리고 그녀는 두 차례 불법 강제노동 처분을 당했는데 총 3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또 불법 징역 8년을 선고받았고 두 차례 불법 구류처분을 받았다. 이번에 무고하게 징역 5년을 선고받은 것을 합하면 그녀는 23년간 16년 6개월이나 감금된 것이다.

이번 박해로 샤오옌핑은 공직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집과 가족을 다 잃었다. 그녀 아버지, 남편, 어머니는 박해 중 차례로 사망했다. 산시 여자 감옥에서 그녀는 각종 체벌, 정신 학대, 드센 강제노동 및 심한 굴욕을 당했다.

다음은 샤오옌핑이 박해당한 사실을 요약한 것이다.

2002년 9월 4일 오후, 샤오옌핑은 직장에서 근무 중에 난정현 공안국 국보대대, 정법위(정치법률위원회), ‘610’ 요원에게 강제로 보위과 사무실로 끌려가 불법 심문을 받았는데, 그녀가 파룬궁 진상자료를 배포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 후 그녀는 불법적으로 2년 강제노동 처분을 받았다. 직장에서는 그녀를 공직에서 해고했다. 그녀의 남편이 약 2만 위안을 갈취당해서야 그녀는 8개월 앞당겨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2005년 정월 12일 오후, 샤오옌핑은 외출해 파룬궁 진상 표어를 붙이다가 다허칸 경찰에게 납치돼 난정현 ‘610’ 사무실에 의해 불법적으로 1년 6개월 강제노동 처분을 받았다. 그리고 2005년 8월에 시안 여자 노동수용소로 이송됐다.

2008년 5월 7일, 샤오옌핑은 자기 집에서 차린 ‘바이신우(百馨屋) 문구점’안에서 경찰에게 납치됐고 가택 수색을 당했다. 그녀는 다허칸 진투디(金土地) 산장에서 고문에 의한 강제 자백을 당했고 연속 꼬박 6일간 자지 못했다. 원촨(汶川) 대지진이 한중, 난정에 영향을 주었음에도 경찰은 5월 13일에 그녀를 구치소로 끌고 가 불법 감금했다. 2009년 3월 27일, 샤오옌핑은 불법적으로 징역 8년을 선고받았고, 2009년 6월 27일에 시안 산시 여자 감옥으로 납치됐다. 산시 여자 감옥에서 그녀는 구타, 욕설, 체벌, 화장실 사용 금지, 다른 사람과 말함을 불허, 매일 24시간 감시당하기, 밤에 일어나 보고하기, 매일 10여 시간 동안의 고강도 노동 등 길고 잔혹한 박해를 당했다. 감옥에는 해마다 모두 지쳐서 죽는 사람이 있었다.

2002년 여름, 그녀의 아들은 한중 중학교 중점 학교 시험에 합격했다. 하지만 막 입학 나흘 만에 어머니가 납치됐다. 아들은 사회, 학교, 생활의 극심한 압력을 감당하며 성적이 떨어졌고 결국 중퇴했다. 2007년, 아들은 어머니가 파룬궁을 수련한 것과 연루돼 군부대에 의해 집으로 돌려보내졌다. 아들은 이 심한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농약을 마시고 자살했는데 다행히 사람을 만나 목숨을 건졌다.

샤오옌핑의 아버지는 딸이 박해당한 충격으로 말기 당뇨병 증후군을 앓다가 2005년 겨울에 일찍 세상을 떠났다. 샤오옌핑이 불법 강제노동 처분을 받은 기간에 압력이 심했던 남편은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했다.

이번 박해는 샤오옌핑에게 집과 가족을 다 잃게 했다.

(샤오옌핑이 박해를 당한 더욱 많은 사실은 밍후이왕 문장 ‘무고한 11년 형을 선고받은 산시 샤오옌핑 다시 납치돼’, ‘11년 무고한 옥살이 당한 산시성 난정현의 샤오옌핑, 장쩌민 고소’를 참조하시길 바란다.

 

원문발표: 2022년 6월 29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례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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