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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린시 진민, 비밀리에 재판받고 무고한 6년 형 선고받아

[밍후이왕](밍후이왕 통신원 지린성 보도) 지린성 지린시 파룬궁수련생 진민(金敏)은 2020년 9월 11일에 융지(永吉)현 솽허(雙河)진에서 납치되고, 9월 14일에 지린시 구치소로 협박받아 잡혀간 후 불법적으로 1년 1개월간 구금 중이다. 최근에 알려진바, 지린시 촨잉(船營)구 법원에서는 가족에게 통지하지 않은 상황에서 비밀리에 재판을 진행해 불법적으로 진민에 대해 6년 형을 선고했다.

진민(金敏)

진민은 올해 53세이며 전 지린성 퉁화(通化) 시 강철회사 소결분 공장에서 근무했다. 1999년 7월, 중국공산당이 파룬따파(法輪大法) 박해를 발동한 후 진민은 여러 차례 납치, 불법 구금을 당했다. 2000년 2월부터 2007년 9월까지 진민은 세 차례 불법적인 노동 교양 처분을 받았다. 그리고 진선인(真·善·忍) 믿음을 견지한 이유로 또 형기를 연장하는 박해를 당해 헤이쭈이쯔(黑嘴子) 노동교양소에 구금됐는데 총 7년에 달했다.

중공이 파룬궁을 잔혹하게 박해한 20여 년 사이에 진민은 9차례 납치, 구금, 세뇌, 노동 교양 처분, 판결을 선고받았다. 그 기간에 고문 학대를 당해 심신이 손상됐으며 또한 불법적으로 근무권을 박탈당했다.

진민은 집에서 셋째이며 파룬궁 수련 전에 다른 사람을 도와주길 즐겼지만, 성격은 좋지 않았다. 가족이든지 아니면 이웃이든지 누가 닭을 잡거나 고기를 잡거나 나무를 베려는 일이 그녀에게 보이기만 그녀는 모두 상관했다. 그녀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누구라도 모두 그녀를 따라야 했고 누구라도 다 때렸다. 누가 그녀의 미움을 사면 조만간 보복당했는데 사납기로 악명이 높았다.

그녀는 위장병이 있어서 면류나 끈적끈적한 음식을 먹으면 속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누가 국수 등을 만드는 것을 보면 접시나 그릇을 던졌다.

파룬궁을 수련한 이후 진민은 진선인(真·善·忍) 기준에 따라 자신을 엄격히 요구해 좋은 사람이 되려 했는데 성격이 완전히 변하고 질병도 나아져 무엇이든지 모두 먹을 수 있게 됐다. 불같은 성질을 고치고 다른 사람을 너그럽게 받아줄 수 있었고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린이를 책임지고 노인에게 효도하며 남을 돕는 것을 기쁘게 생각했다. 친척, 친구, 이웃, 동료들은 그녀의 놀라운 변화를 보고 모두 파룬궁이 좋다는 것을 알았다. 파룬따파(法輪大法)가 진민을 좋은 여자로 변모시켰다.

이렇게 진선인(真·善·忍)을 믿어 마음을 닦고 선을 행하며 도덕이 고상해진 좋은 사람이 거듭 중공(중국공산당)에 의해 박해를 당했다.

불법 납치, 노동교양, 형기 연장 박해를 당하다

1999년 7월, 중공이 파룬따파 박해를 시작한 후 2000년 1월 15일 진민과 류푸취안(劉福全)은 베이징에 가서 대법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하다가 불법적으로 체포됐다. 류푸취안은 1개월, 진민은 1년간 불법 구금됐다.

2000년부터 2007년까지 불법 노동교양 처분을 받은 기간에, 진민은 수련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11개월 더 박해가 연장됐고 100일 이상 강제 음식물 주입 박해를 당했다. 두 차례는 연속 10일 이상 잠을 자지 못하게 하는 비인간적인 박해를 받았다. 그리고 전기봉에 의한 전기 충격, 쪼그려 앉기, 혹독한 구타, 사인상(死人床)에 묶는 등 무수한 고문을 당했다.

中共酷刑示意图:死人床
중공 고문 설명도: 사인 침대

한번은 악경이 그녀를 ‘대(大)’자 형으로 독방 철제 침대에 18일간 묶었는데 그 기간 철제 침대에 물을 뿌리고 전기봉으로 충격을 가했다. 18일 후 끈을 풀었을 때 그녀는 이미 걸을 수 없었다. 악경은 또 강제로 그녀를 8시간 동안 두 다리를 틀어 올리게 묶어놓고 화장실에도 못 가게, 식사도 못 하게 막았고, 이틀 동안 고문을 지속했다. 한 번은 노동 수용소 악경 장샤오후이가 진민의 얼굴을 심하게 때렸고, 악경은 반지를 낀 손으로 진민의 얼굴을 긁어서 찢어지고 부어올랐는데, 처참하여 볼 수 없었다.

한번은 노동교양소의 악경 장샤오후이(張曉輝)가 진민의 얼굴을 심하게 때렸는데 악경은 손에 반지를 끼고 있어 진민의 얼굴은 전부 베이고 부어올라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었다.

酷刑演示:捆绑
고문 재연: 끈으로 묶기

2001년, 진민은 지린성 헤이쭈이쯔 노동교양소 4대대에서 거의 1년간 고문을 받았지만, 여전히 자신의 믿음을 견지했다. 노동교양소에서는 여전히 가만두지 않고 그녀에게 손상을 입혔다. 추운 겨울, 진민은 복도로 끌려가 밤낮없이 열흘 동안 쉴 새 없이 세뇌당했다. 진민은 외투를 입고 복도 끝에 쪼그려 앉았는데 사악한 사람들이 두 시간마다 교체해 그녀를 세뇌하고 박해했다. 그녀는 대법을 굳건히 수련해 열흘 밤낮 동안 잠을 자지 못했으나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사악에 승리했다.

진민이 집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은 2002년 3월 5일, 창춘(長春)의 케이블 TV에서 파룬궁 진상 삽입방송을 하자, 지린성의 사악한 공산당 정부는 파룬궁수련생을 납치하기 시작했다. 이에 진민은 다시 납치돼 불법적으로 2년 노동 교양 처분을 받았다. 전 지린성 퉁화(通化) 강철회사에서 공장장 리춘녠(李春年, 이미 퇴직했음)이 이끌었고 분공장 책임자도 박해에 가담했다. 진민은 불법 노동 교양 처분을 받은 기간 월급을 받지 못했다.

다시 노동교양소에서 돌아온 진민은 다시 공장으로 복귀했는데 지린성 퉁화시 강철회사 소결분 공장주임 류(劉) 씨는 진민이 2005년에 이유 없이 해고당했다고 알려줬다. 진민은 회사의 노동청을 찾았고 노동청은 진민에게 해고를 알렸다.

2010년 6월부터 2013년 12월 사이에 진민은 거듭 여러 차례 납치, 구금, 구류를 당했다.

진민이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고 감옥에서 박해당하다

2016년, 진민과 그의 아버지는 이미 판결을 선고받은 두 자매를 구출하기 위해 지린시로 와서 집을 임대하고 아버지와 함께 지린시에서 살았다.

8월 19일 아침 7시 30분쯤, 누군가가 그녀의 집 문을 두드렸고 진민의 아버지가 문을 열어주고 보니 경찰이었다. 진민이 문 앞으로 다가오자 경찰은 신분증을 제시하고 진민을 밖으로 불러냈다. 진민의 아버지는 사정을 듣고 싶었지만 거부당했고 진민은 끌려갔다.

진민의 아버지는 여러 방면에서 문의해서야 자기 집에 찾아온 경찰이 퉁화시 타오위안(桃源) 파출소 경찰이고 진민을 직접 퉁화시 창류(長留) 구치소로 납치했음을 알게 됐다. 진민은 박해를 반대해 줄곧 단식을 진행했다. 한 달 후 그녀는 생명이 위태로워져 퉁화 3병원(전 철도 병원) 2층 응급실로 이송됐는데, 그의 옆에는 보모가 있었고 두 명의 경찰이 지켜보고 있었다. 얼다오장구(二道江區) 법원 측은 진민에 대한 재판을 병동에서 열었다. 그 후 그녀는 불법적으로 1년 형을 선고받았고 지린성 여자 감옥으로 납치돼 박해당했다.

진민 박해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밍후이왕 ‘지린성 퉁화시 진민, 박해로 생명이 위급’, ‘거듭된 박해, 지린 진민이 또 납치돼 구치소에 갇혀’ , ‘지린시 진민 납치된 지 5개월, 노 부친이 파출소 책임자를 고소’를 참조하시기 바란다.

(역주: 관련 박해 기관과 박해자의 정보는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1년 10월 17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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