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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하게 7년간 옥살이한 창사 변호사 멍카이, 또 징역 3년 6개월 선고받아

[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후난 보도) 창사(長沙)시 파룬궁 수련생 멍카이(孟凱) 변호사는 납치되어 누명을 쓰고 11개월 동안 불법 구금된 후, 2021년 9월 17일, 류양(瀏陽)시 법원에서 불법적인 재판을 받고 3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長沙律師孟凱'
창사 변호사 멍카이(孟凱)

억울한 옥살이 7년

멍카이는 우한(武漢) 화중(華中) 농업대학 법학과에서 공부했다. 1999년 7월 사악한 중공(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했을 때, 그는 변호사로 일하면서 대학원 시험을 치르고 있었다. 그는 파룬궁을 수련하는 데다, 창사에서 대법 자료 2000장을 지니고 웨양(岳陽)으로 갔다는 이유로 신고당했다.

2001년 2월 24일 저녁, 후난(湖南)성 웨양시 투차오(土橋) 파출소장 등은 대법 수련생 멍카이의 집에 침입하여 그에게, 일이 좀 있는데 파출소에 같이 갔다가 몇 분이면 돌아올 수 있다고 거짓말했다. 그러나 경찰은 그를 투차오 파출소로 속여 데려간 후, 어떠한 법적 절차도 거치지 않고 그가 지닌 현금과 만 위안(약 184만 원) 정도가 들어 있는 통장을 강탈했다. 시 위원회 서기, 정법위(정치법률위원회) 서기 겸 공안국장의 지시하에 거의 20명의 경찰이 돌아가며 그를 심문했으며, 꼬박 나흘 동안 잠을 자지 못하게 하며 괴롭혔다. 4일 후, 경찰은 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몰래 그를 화룽(華容) 간수소로 보냈다. 웨양러우(嶽陽樓區)구 정보과 관계자들은 어떠한 절차도 거치지 않고 멍카이의 집으로 가서 문을 비틀어 열고 방으로 들이닥쳐서는 불법 가택수색을 하여 컴퓨터와 휴대전화기, 삐삐, 대법 서적 등을 강탈했다.

화룽 간수소 경찰은 수감자를 교사해 멍카이를 때리고 고문하며 옷을 벗겼다. 당시는 추운 날씨였다. 그의 가족은 멍카이의 옷이 버려졌다는 것을 알고 그에게 옷을 보내려 했으나, 경찰은 가족이 면회하는 것도, 옷을 보내는 것도 허용하지 않았다. 멍카이는 간수소에서 감방 다섯 개를 옮겨 다니면서, 구타로 여러 번 기절하고 오른쪽 귀를 다쳤으며, 24시간 감시받았다. 화장실에 갈 때도 사람들이 그를 따라다녔다. 그는 42일 동안 고문과 구타를 당한 후 독방에 갇혔다.

2001년 8월 21일, 멍카이는 50~60명이 방청하는 가운데 불법적인 재판을 받았다. 재판이 끝난 후 4일 만에 그의 가족이 그를 찾아갔으나, 징역 7년을 선고받고 학대로 몰골이 형편없어진 그를 거의 알아보지 못했다.

멍카이는 이양(益陽) 위안장(沅江) 츠산(赤山) 감옥에서 각종 고문 학대를 당했다. 그는 3감구역에 배치돼 매일 15시간 이상의 노동 박해를 당했다. 2004년 늦가을, 츠산 감옥에서 진스(津市) 감옥으로 옮겨가 중형(무기징역, 사형 집행유예)을 선고받은 사람들이 수용된 곳에 수감되었는바, 종일 햇빛을 보지 못하는 등 생활 환경이 매우 열악했다. 경찰은 그가 매일 작은 의자에만 앉을 수 있고, 움직이거나 누구에게도 말을 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

또 불법적으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다

멍카이가 억울한 옥살이에서 벗어나 돌아온 후, 그의 전 가족은 직업 관계로 창사로 이사했다. 그도 창사에 와서 여러 가지 일을 했다. 2019년 10월, 한 회사에서 법무 관련 일을 했는데, 회사에서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한 많은 문제를 해결했다. 법무팀장은 그가 때 묻지 않은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동료들은 그가 정직하며 선량하다고 칭찬했다.

2020년 10월 28일 오전 5시, 멍카이는 회사의 경제 관련 분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지에 갔다. 도중에 외지 공안 경찰에게 불법 체포되어 수갑을 찬 채 창사 관할 구역 원위안(文源) 파출소로 이송되었다.

그날 오후 4시경, 멍카이의 70여 세 어머니는 해외에서 두 차례 개두 수술을 받고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로 아들 집에서 옷가지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녀는 검은색 사복 경찰 10여 명이 손에 수갑을 찬 멍카이를 양옆에서 잡고 집 안에 들이닥치는 것을 보았다. 집 안에 들어온 한 경찰은 그녀에게 거실 소파에 앉아 움직이지 말라고 했다. 또 한 경찰은 카메라를 멍카이의 어깨에 올려 동영상을 찍고 사진을 찍었으며, 다른 경찰들은 함부로 집을 샅샅이 뒤지며 컴퓨터와 대법 서적 등을 강탈했다.

경찰이 불법 가택수색을 하는 중에 멍카이의 어머니는 변호사인 아들이 무슨 범죄를 저질렀는지 물었으나, 경찰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수색영장을 보여달라고 했으나, 경찰은 응하지 않았다. 멍카이의 어머니는 일어서다가 식탁에 있는 서류를 보고는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려고 했으나, 랴오(廖)라는 성씨(姓氏)를 제대로 보기도 전에 빼앗겼다. 서류 아랫부분은 아무런 서명이 없는 공백이었다.

이때 그들 중 몸이 뚱뚱하고 키가 170cm가 안 돼 보이는 50대의 한 지휘관이 그의 어머니에게 그들은 위화(雨花)구 공안지대(公安支隊)에서 왔으며, 류양(瀏陽) 파출소의 사건을 대신 처리한다고 하며 멍카이는 류양 사람이 신고했다고 했다.

나중에 그 지휘관은 복도에서 다른 사복 경찰들에게 낮은 소리로 멍카이의 어머니도 웨양의 사람인데, 역시 끌고 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 사복 경찰 세 명이 그의 어머니를 둘러쌌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서 가방을 빼앗아 가방 속의 휴대전화기를 꺼내 주소록을 확인하고 해외에 있는 친척들에게 전화를 걸어 큰소리로 그들의 가족이 이런저런 죄를 지었다고 했다. 뒤이어 걷기도 힘들어하는 그녀를 엘리베이터에 밀어 넣고 1층으로 끌고 가서 파출소로 데려가겠다고 큰소리쳤다. 그러나 경찰은 책임져야 할까 봐 그녀를 버스에 오르지 못하게 했다.

멍카이의 가족은 상황을 알고 급히 위화구 공안 분구로 달려가 상담했다. 형사경찰 지대장은 멍카이에게 유죄를 인정하는지 물어보니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고 하며 그런 태도라면 3년에서 7년을 선고받을 것이라고 했다.

10월 29일, 가족은 원위안 파출소로 가서 체포영장을 받아 가라는 전화 통지를 받았다. 그날 오전 10시, 멍카이는 창사 제1 간수소에 불법 구금되었다.

약 5개월간의 불법 구금 기간에 멍카이의 가족은 차례로 변호사 두 명을 선임해 창사 제1 간수소로 면회하러 갔으나, 모두 공안 경찰에 의해 합법적인 권리를 박탈당했다. 2021년 3월, 가족이 간수소로 가서 그에게 돈을 주려 했을 때, ‘그런 사람은 없다.’고 표시되었다. 멍카이는 간수소에서 비밀리에 창사 감옥의 세뇌반으로 이송되었다. 이튿날 연로한 가족들은 사건처리 부서인 위화구 공안 분국에 가서 상담했으나, 모두 “모른다.”는 이유로 얼버무렸다. 연로한 가족은 쉴 새 없이 계속 창사 감옥으로 가서 문의했으나, 감옥 측은 지도자의 통보 없이는 알려줄 수 없다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가족이 돈과 옷을 보내는 문제를 문의하자, 다 있으니 아무것도 보낼 필요가 없다고 했으며, 세뇌반에서 한 달 반 동안 있으면 어느 감옥에 배정될지 알려줄 것이니 집에 가서 기다리면 된다고 했다.

4월 16일, 멍카이의 어머니는 문에 붙은 종이쪽지를 받았다. 지정된 우체국에 등기우편물을 받아 가라고 쓰여 있었다. 지정된 우체국으로 급히 달려가 우편물을 열어보니 창사역 우표가 찍힌 봉투였다. 보낸 사람은 위화구 공안 분국이라고 서명했고, 안에는 류양시 공안국에서 발급한 불법 체포 통지서였다. 그러나 통지서에 서명한 날짜는 2020년 12월 5일이었다.

9월 16일, 멍카이의 가족은 전화 통지를 받고, 이튿날 류양 법원으로 가서 재판에 참석했다. 가족들은 연로한 부모님을 슬프게 하지 않기 위해 미리 알리지 않았다. 이튿날 가족들은 예정대로 차를 몰고 멍카이의 영상 재판을 방청하러 갔다. 가족들은 화면으로, 오랫동안 보지 못한 멍카이를 보자 목이 멘 채 그의 이름을 불렀다. 화면에서 멍카이는 “파룬궁은 사교가 아니다.”등을 주장했고, 형법 제300조를 이용하여 유죄를 선고하는 것은 법을 잘못 적용한 것이므로 타당하지 않다고 하며 근거를 들어 이치는 맞는 자기변호를 했다. 그러나 판사는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이 끝난 후, 공검법(공안, 검찰, 법원) 관계자는 멍카이의 가족에게 “당신의 어머니가 인터넷에 접속했지만, 우리는 당신들을 건드리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들은 직업마저 잃었을 것입니다.”라고 위협했다. 이러한 공갈 협박과 위협은 처음이 아니었다. 전에는 그의 가족을 위협해 정상적으로 승진할 수 없게 했다. 멍카이의 가족도 20여 년간 각종 정신적, 육체적 피해를 받았다.

멍카이와 같은 시기에 납치 및 박해를 받은 창사 파룬궁 수련생이 22명 있었는데, 이 중 15명은 각각 창사시 제1 구치소, 제2 구치소(남성)와 제4 구치소(여성)에 불법 구금되었다. 그들을 모함한 서류는 4월 말에 류양 검찰원으로 넘어갔다. 공검법 관계자는 “그들은 모두 형식적인 절차만 거쳤을 뿐, 정법위가 재판 전에 형을 정했다.”고 밝혔다. 기존 조작된 ‘큰 사건’과 달리 이번에는 검찰원이 분리 공소를 제기하고 재판을 분리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5월 8일, 창사시 파룬궁 수련생 장링거(張靈革)는 이미 창사구 류양시 법원에서 불법적인 비밀재판을 받았다. 법원이 파견하여 주둔한 무장 경찰을 제외하고 당국은 70명에 가까운 공안 경찰을 출동시켰다. 공안 경찰이 이렇게 큰 규모로 동원되자 재판에 참석한 검찰관들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러한 관심을 피하려고 멍카이에 대해서는 ‘전염병’을 이유로 ‘속재(速裁) 절차’에 의한 영상 재판을 진행했다. 그러나 이 ‘속재 절차’는 피고인이 유죄를 인정하고 벌을 인정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범죄를 고발하는 데 사용되는 모든 증거 자료는 반드시 치밀하고도 포괄적으로 제시되고, 판별되고, 대질 되어야 한다. 이를테면, 증거와 기소의 연관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는 모든 증거 자료에 대해 대질해야 한다. 법원이 이런 재판 방식을 남용하는 것은 불법이다.

공검법 관계자의 행위는 헌법, 형법, 형사소송법, 공안기관의 형사사건 처리 규칙 및 절차, 경찰법, 기타 많은 법을 위반했다. 파룬궁 수련생 박해 진상을 숨기는 것도 짐작할 수 있다. 공검법 관계자는 남의 손에 들린 도구로 전락하여 법을 알면서도 어기고 짓밟았다. 올해 2월 27일 대법원 홈페이지 ‘최고 사건 처리 안내서’에 ‘공검법의 간부 및 경찰 전속 12개 죄명’이 있는데, 모함에 가담한 자도 모두 ‘희생양’이 되었다.

파룬궁 수련생 15명에 대한 박해에 관해서는 밍후이왕의 기사 ‘창사시 정법위가 공검법을 통제하여 파룬궁 수련생 15명을 다시 모함하다.’, ‘창사 파룬궁 수련생 20여 명에 대한 체포영장이 불법 발부되고, 경찰이 변호사를 피하다.’, ‘창사 공안 경찰이 가짜 증거를 꾸며 파룬궁 수련생 여러 명을 박해하다.’, ‘창사 장링거는 비밀리에 재판받고, 당국이 거의 70명의 경찰을 출동시키다.’ 등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관련 박해 기관과 박해자의 정보는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1년 9월 29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례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1/9/29/43199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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