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미국 워싱턴DC 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신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2013년 태국에 있었을 때 씬탕런 매체 항목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매우 기뻤습니다. 기자나 에디터로서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동시에 이름도 날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매일 두 편의 글을 올리며 자신에 대해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한동안 일을 하다가 주변 수련생에게 저의 필명을 말했더니 그 수련생이 씬탕런에서 제가 쓴 글을 검색해 보고 칭찬하면서 앞으로 존경하는 마음으로 저를 대해야겠다고 말했습니다. 겉으로는 아니라고 겸손해했지만, 속으로는 기분이 매우 좋았고 몰래 자주 기뻐했습니다.
한 달 후, 편집장은 제 글이 좀체 나아지지 않는다며 에디터로 적합하지 않으니 교정부터 하고 실력이 좋아지면 다시 글을 쓰자고 했습니다. 이때는 집착이 실력 향상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원망하는 마음과 불평하는 집착에 이끌려, 의견을 굽혀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돌아오려고 했습니다. 그 당시 비록 저는 매일 교정하고 원고를 올리고는 있었지만 수시로 다시 에디터로 돌아가는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협조인이 저를 찾아와 진지하고 책임감 있는 업무 태도를 먼저 칭찬한 다음, 지역 피드백 업무를 겸직하라고 했습니다. 이때 사부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글을 쓰고, 그는 편집하며, 그는 번역하고, 그는 매체에 늘 나오거나, 혹은 그의 일이 특수해서 그의 위덕이 큰 것이 절대로 아니다. 이 매체에 참여한 모든 대법제자는, 당신이 어떤 일을 하든지 마찬가지다.”[1]
하지만 저는 강한 집착에 이끌려 자신을 주체할 수 없었고, 점점 에디터에서 멀어지는 것을 느껴 씬탕런에서 계속 일할 인내심을 잃었습니다. 저는 그럴싸한 이유를 찾아 협조인에게 일을 그만두겠다고 말했습니다. 협조인은 저를 보내기 아쉬운 마음에 시간을 좀 가지고 천천히 생각해 본 다음에 다시 의논하자고 했습니다. 보름 후 협조인이 저를 다시 찾아와서 생각을 좀 해봤는지 물었고, 이해되면 작업을 재개하자고 말했습니다. 저는 완곡하게 사양하고 고집대로 떠났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인사관리를 하는 다른 항목의 책임자가 저에게 에디터를 제안했습니다. 이 제안은 제 마음에 쏙 들었고 생각한 대로 일이 성사되어 매우 기뻤습니다. 저는 실시간 뉴스로 시작해서 나중에 중국 시사 뉴스를 맡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제 기사가 머리기사에 자주 등장하고 조회 수가 크게 높아졌습니다. 저는 곧 머리기사에 올라가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제가 쓴 글들이 둥타이왕(動態網)에 자주 올라가면서 조회 수가 더욱 높아졌습니다. 저는 매주 SNS 순위를 보면서 성공 후의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2014년에 편집장의 추천으로 신전(神傳)문화 팀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중국 5천 년의 역사가 저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제 말과 행동의 많은 부분이 당(黨) 문화의 것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역사상 유명한 군주와 현명한 황후들이 후세 사람들에게 남긴 것은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고 중화민족의 전통은 우리 조상들 사이에 이어졌습니다. 인자와 지사(志士)들의 불굴의 기개, 속세를 초탈하는 고상함 품격과 곧은 절개…… 저는 제 수련을 되돌아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씬탕런에서의 경험은 제 마음의 가시가 되어 제 수련에 누락이 있다는 것을 수시로 상기시켜주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수련생, 그가 心性(씬씽)의 요구대로 하지 않고 동작만 연마(煉)하며, 心性(씬씽)을 수련하지 않는다면 그를 연공인(煉功人)이라 할 수 없다.”[2]
사부님의 이 한 단락 법은 저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저를 대조해보니 연공인도 아닌데 사부님 따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저는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심성을 수련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말과 행동에서 법에 대조하여 자신을 바로잡았습니다. 일사일념(一思一念)부터 시작해서 일함에 기점을 바로잡고 스쳐 지나가는 작은 하나의 생각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점차 저는 일부 관을 침착하게 넘을 수 있었고, 심지어 몇 년 동안 저를 괴롭혔던 난관들을 평화로운 마음 상태로 넘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더 한숨을 쉬며 남이 눈에 거슬리지 않았고, 다른 수련생의 장점을 묵묵히 감상하며 다른 사람과 기쁜 마음으로 소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질투심도 강하지 않게 되었고, 처음처럼 수련하는 느낌을 되찾았습니다.
2019년 6월, 저는 홍콩의 따지웬 매체 항목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제게 맡겨진 업무가 교정이라는 사실에 놀라고 기뻤습니다. 이는 사부님께서 제게 준 기회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중국어 정체자 교정에 적응하기 위해 저는 정체자 ‘전법륜(轉法輪)’을 구하고, 매일 웹서핑, 법공부, 그리고 읽고 열람할 때 정체자로 읽고 기본기에 공을 들였습니다. 교정 수준이 모르는 사이에 향상되었습니다. 특히 2020년 5월부터 직원 부족으로 저는 하루 10시간 이상 일하고, 주 7일을 일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과거에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는 사부님께서 저에게 그 손실을 만회할 기회를 주신 것을 깨달았습니다.
1년이 지나 저는 녹취 교정, 지면 교정, 온라인 문장 교정 등 다양한 교정 작업을 했습니다. 이제 작업 모드에 들어가기만 하면 수정이 필요한 글자들이 자동으로 강조 표시되는 경우가 많은데 누락될까 봐 빨리 수정해 달라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글을 바로잡는 동시에 저 자신도 바로잡았습니다.
어느 날 IPO 예측에 관한 문장을 교정할 때, 저는 규정대로 제목에 있는 숫자를 대문자로 바꾸다가 저자에게 이의제기를 받았습니다. 저자는 수정 후의 제목이 이전만큼 눈길을 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규정대로 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바꿀 생각이 없는 것을 보고 검수 편집자를 통해 바꾸겠다고 했습니다. 이는 저의 수련이 덜 된 구하는 마음을 건드렸고, ‘내가 수정한 제목을 당신이 다시 수정하면 일부러 내게 무안을 주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나는 규정대로 한 것이다’라는 염두가 뛰쳐나왔습니다. 이 염두가 나오자마자 저는 곧바로 ‘이건 내가 아니다. 나는 가지지 않겠다’라고 그것을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신이 볼 때 세간에서 한 수련인의 옳고 그름은 전혀 중요하지 않고, 사람 마음의 집착을 제거하는 것이 오히려 중요하며, 수련 중에서 당신이 어떻게 사람 마음의 집착을 제거하는가가 비로소 중요한 것이다. (박수) 아무리 큰 억울함에 직면해도 모두 아주 태연하게 대할 수 있고, 모두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 수 있으며, 모두 자신을 위해 구실을 찾지 않는다면, 많은 일에서 당신은 논쟁할 필요조차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수련하는 이 길에는 어떠한 우연한 일도 없기 때문이다.”[3]
저는 말을 못 하게 하는 마음을 배척하면서 옳은 방식을 견지해야 한다고 자신에게 일깨웠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증명하는 것이 아닌, 법과 중생을 위해 책임지는 기점에 서야 합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전반 수련과정은 바로 끊임없이 사람의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다.”[2]
교정하기 싫은, 명을 구하는 마음을 일부러 없애는 과정에서 저도 모르게 안일심(安逸心)이 생겨버렸습니다. 저는 매일 플랫폼에서 10시간씩 당직을 맡고 있지만, 실제 업무는 그리 바쁘지 않았습니다. 글을 정리하는 한가한 시간에는 법공부, 연공, 발정념을 하고, 또한 개인 생활을 질서 있게 정리했습니다. 저는 매우 기분이 좋고 매일 세 가지 일을 질서 있게 잘하고 있으니 사부님의 정법 노정을 잘 따라가고 있으며 사부님과 함께 집에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사건이 제 마음의 평화를 깨뜨렸습니다. 어느 날 편집장이 다른 매체에서 기사를 찾다가 기사 제목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삼십여 자의 제목이 무슨 말인지를 알 수 없고 중국 오천 년 문화가 이렇게 망가졌군요.” 저는 이 말이 유머러스하다고 생각해서 웃는 얼굴로 댓글과 함께 ‘좋아요’를 눌렀습니다. 이 글을 검수하는 사람이 대만 여자 수련생인데 그녀가 우리의 대화를 보고는 남의 불행을 기뻐하고 말이 신랄하다며 앞으로 검수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어리둥절해졌습니다. 단지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을 뿐인데, 누가 썼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남의 불행을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제 생각을 급하게 설명하려 했더니 상황이 더 나빠졌습니다. 저는 생각을 정리하고 곧바로 안으로 찾아보고 그녀에게 진심으로 사과했습니다.
검수하는 일에 사람이 부족한 것을 보고 저는 검수까지 맡을까 생각했습니다. 이 수련생 또한 제게 역량을 키우고 검수를 맡으면 어떻겠냐고 플랫폼에서 메시지를 보내며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일을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더 많은 책임과 희생을 뜻하며 이전의 생활 규칙을 깨뜨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과정에서 저는 이해득실을 반복해 고려하면서 개인의 이익을 따졌습니다. 이때 저의 안일심은 이미 매우 강해졌습니다.
검수의 당직 순서를 정하는 수련생이 저의 일정을 빡빡하게 잡아주었고 하루에 세 타임을 배정해 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는 원고 업로드, 교정, 그리고 검수하는 세 개 플랫폼에서 계속 번갈아 당직을 맡아야 했습니다. 몇 번이나 이렇게 긴 시간을 일하는 것이 힘들다고 말했지만, 사람이 더 들어오면 괜찮아질 테니 눈앞의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자고 설득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이 너무 길어서 저는 인내심을 잃고 원망하는 마음이 매우 강해졌습니다. 당직 순서를 정하는 수련생이 심신이 지치도록 제 수련과 제고를 방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2장 공법을 연마하고 있던 어느 날 원망하는 마음이 자꾸만 올라와 불평하고 화가 나서 야단이었습니다. 이때 사부님 목소리가 제 귀에 울렸습니다: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일하면서 상사가 무슨 일을 맡기든지 가린 적이 없다.”[2] 저는 놀랐습니다. 평소에 사부님께서 우리 옆에 계신다고는 자주 말하지만 이렇게 미세한 사상 활동까지 똑똑히 보실 줄은 몰랐습니다. 사부님이 저를 경고하신 것입니다! 저는 즉시 사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사부님, 제자가 잘못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이제 알겠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전법륜(轉法輪)’에서 말씀하신 이 구절의 법은 대법제자가 일을 대하는 마음 상태를 요구하신 것이라고 깨닫고 사부님의 요구를 따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 마음을 제거하려고 하니 쉬운 일이 아닌 것을 깨달았습니다. 당직을 맡을 사람이 없는 공백 시간을 채우기 위해 저의 업무 시간이 전부 쪼개졌습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점심 12시에 플랫폼에 올라가서 당직을 맡고 오후 1시에 내려가고, 또 다른 수련생이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당직을 맡으면 저는 다시 5시부터 당직을 맡아야 합니다. 때로는 세 번째 반이 홍콩에서의 오후 5시부터 8시까지이고 우리 지역의 새벽 연공 시간이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당직 시간을 선택할 수 있지만, 저는 아무도 하지 않는 시간만 할 수 있습니다. 저에 대한 불공평과 무시이며, 매우 체면이 깎인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때 저는 또 원망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어느 날 저는 또 세 타임을 배정받았는데 그중 하나는 우리 지역에서 새벽 4시였습니다. 완전히 제거되지 못한 원망하는 마음이 다시 올라왔습니다. 저는 그 수련생에게 “우리 새벽이 그쪽은 오후 시간입니다. 이렇게 좋은 황금시간대에 하지 않고 북미 사람들에게 하라고 합니까?”라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보내자마자 사부님의 말씀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저는 바로 메시지를 삭제하고 “네, 문제없습니다.”라는 새 메시지를 다시 보냈습니다. 이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큰 짐을 내려놓은 듯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분이 매우 좋았습니다.
검수하는 과정도 사람 마음을 제거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일부 기자들은 원고가 수정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원고를 수정하려면 자기에게 말해야 한다고 하고, 어떤 기사 제목은 너무 길어 제한된 글자 수를 넘었지만 매 한 글자가 모두 다듬고 고민해서 넣은 것이니 수정하면 안 된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아예 이것은 홍콩 관용구인데 당신이 중국 본토 사람이라 모르는 것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이 사람들은 대부분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들이어서 어떤 기사는 실제로 수정을 거치지 않으면 게재할 수 없는 글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 직면하니 저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지만, 이것이 수련상의 문제가 틀림없다는 것은 알았습니다. 표면의 맞고 그름은 단지 한 가지 원인일 뿐인데 본질적인 문제가 도대체 뭘까, 반드시 그것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당신들이 속인의 그 천백 년 이래 뼛속에 형성된 사람의 이치를 개변하지 않는다면, 당신들은 사람의 표면적인 이 한 층의 껍데기를 벗어버릴 수 없으며 원만할 수 없다.”[4]
저는 사부님의 말씀을 듣고 완고한 관념을 바꿔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내가 교정할 때 문제가 생기면 모두 교정 잘못이라 하고, 검수할 때 문제가 생기면 또다시 전부 검수 책임이라고 하는 것일까?’ 모두 귀에 거슬리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찾았습니다. 저는 나쁜 말을 듣기 싫고 좋은 말을 듣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지금부터 시작해서 누가 다시 남에게 말을 못 하게 한다면 그가 바로 정진하지 않는 것이며, 누가 다시 남에게 말을 못 하게 한다면 그는 바로 표현한 것이 수련인의 상태가 아닌데, 최소한 이 한 점에서 말이다. (박수) 누가 만일 이 하나의 고비를 더는 넘기려 하지 않는다면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그럼 너무 위험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수련인의 가장 근본적이고 또한 가장 마땅히 제거해야 할 것이며, 또한 반드시 제거해야 할 것으로, 당신이 제거하지 않는다면 원만을 향해 걸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5]
이 마음을 없애기 위해 저는 일에서 문제가 있으면, 제가 한 일이라고 말하거나 혹은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의 책임입니다.”라고 하며 나쁜 말을 듣기 싫어하는 마음을 남김없이 폭로했습니다.
차츰 나쁜 말을 듣기 싫어하는 마음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바뀌는 것을 느꼈습니다. 당직 순서를 정하는 수련생이 제 스케줄을 확인할 때마다 꼭 허스 이모티콘을 함께 보내는 것을 보고 저도 허스 이모티콘을 넣어 대답했습니다.
때로는 온종일 바빠서 딸의 전화를 받을 시간조차 없을 때가 있습니다. 수화기 너머 딸이 소리 지르며 “엄마는 전화해도 안 받고, 뭐 하세요?”라고 하는 말을 들으면서 딸에 대한 정(情)도 많이 내려놓은 것을 느꼈습니다. 예전에 딸 또한 시간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퇴근길에 운전하는 시간을 이용해서 저와 교류하곤 했습니다. 저도 이 시간을 매우 좋아하며 매일 이 시간만 되면 다른 일을 그만두고 딸의 전화를 기다렸습니다. 가족의 정을 나누며 기뻐하면서 많은 시간을 낭비했습니다. 이런 가족 간의 정을 이제 모르는 사이에 내려놓게 되었습니다. 제 수련길을 애틋하게 안배하신 사부님께 감사하고, 또한 당직 순서를 정하면서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저를 떠올린 수련생에게 감사합니다.
이 교류문장을 쓰던 날 아침, 저는 꿈을 꿨습니다. 사부님께서 설법하는 홀에서 나오신 것을 보았는데 꿈에서 저와 사부님은 한 발짝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가까운 거리에 있었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자상하신 얼굴을 보고 감동의 눈물을 흘렸는데 마음속이 끝없는 감사함으로 가득했습니다.
저를 창조하시고 생명을 주시며 정법 시기 대법제자가 될 기회를 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를 용해해 우주가 갱신하는 순간에 중생을 살릴 기회를 준 대법에 감사합니다. 우주가 급변하는 위대한 시기에 태어나, 옛 우주에서 벗어나 새 우주의 삶이 될 희망이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제 삶의 깊은 곳에서 일념을 보내왔습니다. 저는 반드시 끝까지 사부님을 따르고 사부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보기에는 당신들이 대법(大法)을 위해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질적으로 당신들은 자신의 전면적인 원만과 회귀(回歸)를 위해 하는 것이다. 만약 당신들이 이 한 기간 동안에 마땅히 해야 할 것을 잘하지 못하면 원만의 단계 또한 수련과정에 불과한 것이며 근본적으로 정법제자의 진정한 최후 원만으로 될 수 없다. 대법제자가 사악의 박해 중에서 잘하지 못하거나, 자신을 느슨히 한다면 아마 지금까지 이룬 공이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6]
수련의 여정이 얼마나 멀다 해도 절대로 느슨해지면 안 되고 정진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수련을 처음처럼 하는 제자,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제자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지설법9-2009년 대뉴욕국제법회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지설법10-맨해튼설법’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경고하는 말’
[5] 리훙쯔 사부님 저작: ‘로스앤젤레스시법회 설법’
[6]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정법시기 대법제자’
(2021년 국제 온라인 법회)
원문발표: 2021년 6월 2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1/6/21/427250.html
영문위치: https://en.minghui.org/html/articles/2021/6/23/19380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