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청년 대법제자
[밍후이왕] 얼마 전 저는 어머니와 함께 ‘2016년 뉴욕법회 설법’을 공부하였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늘 말했다시피 인류는 바로 한 부의 연극과 같다. 그러나 최후에 사람이 구도될 수 있는지 없는지, 정법 중에서 중생을 구할 수 있는지 없는지 하는 이것은 미지수이며, 이 극본 중에 없다. 인류의 문화, 사유, 행위 이 일체는 모두 최후의 그런 현념(懸念)을 위한 것이며, 도대체 최후에 얼마나 많은 생명을 남길 수 있는지 이것은 배치가 없다.”[1]
여기까지 배우고 문득 전에 이 구절을 본 적이 없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전에는 정법 전체 과정이 모두 잘 배치된 것이며, 언제 끝나는지, 결과가 어떤지도 잘 배치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모두 자연스럽게 마치 극본에 따라가는 것 같았고, 자신이 성심성의껏 하는 정도에 따라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한 단락 법에서 최후 결과는 먼저 배치해 놓은 것이 아니라 그것은 하나의 현념(懸念)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정법 결말이 어떻게 되는 것은 사부님께서 최종 무엇을 하시는가에 결정되며, 아울러 우리 대법제자가 조사정법에서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과정을 완성하는 중 어느 정도로 하는가에 달려있으며, 결말은 사부님께서 우리 정법시기 대법제자에게 마음껏 발휘하게 남겨주신 것입니다.
정법 결말을 말하면 많은 수련생은 마음속으로 모두 생각할 것입니다. “언제 끝나는가? 일찍 끝나면 좋겠다.” 어떤 이는 예언 등을 통해 끝나는 시간을 추정합니다. 사부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구도할 사람의 숫자가 차면 사악은 함께 끝장나리라”[2]
얼마나 많은 사람을 구해야 하는가?
“제자: 사부님께서는 예전에 최소한 대륙의 100분의 50 이상의 중생을 구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현재 형세는 어떠합니까? 만약 저희가 계속 정념으로 정진한다면, 이 목표를 초월할 희망이 있습니까? 100분의 60에서 70에 도달할 수 있습니까?
사부: 왜냐하면 매 한 층의 신이 세상의 일을 보고 그들이 모두 안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한 층의 안배이든지 막론하고 모두 지상의 사람 열에 하나를 남기도록 안배했다. 현재 당신들이 한 정황에서 보면, 아직 모자란다. 내가 얼마를 원하는 것이 아니고, 되도록 구해야 하고, 최저한 절반을 남기거나, 혹은 100분의 70, 80을 남기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가급적 하라고 했다. 바로 이 원인이다. 왜냐하면 나는 세상 사람들 다수가 모두 위에서 온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는 당초 그런 신들이 배치할 때의 정황과도 달라졌다. 그들이 오늘날의 인류가 이러한 인류이고 모두 고층에서 온 것임을 알았었더라면, 애당초 누구도 감히 세상 사람을 열에 하나를 남긴다고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악은 이미 이런 정도로 배치했고, 이런 일을 누구도 거둬들일 수 없었다. 그러므로 사악이 조성한 이런 저항을 마주해 진상을 알리는 일을 느슨히 해서는 안 된다.”[3]
지금 우리는 3억 8천여만 명을 구했고, 중국인 수의 절반은 7억이 넘습니다. 20여 년을 보면 3억 8천여만 명밖에 구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수련생은 중국인의 절반을 구하는 것은 까마득하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우리 한번 계산해 보겠습니다. 만약 4천만 명 대법제자가 걸어 나와 매 사람이 평균 10명을 구하면 바로 4억 명입니다. 사실 생각만큼 그렇게 어렵고 멀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의 정체를 이뤄 걸어 나와 사람을 구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관건입니다. 다른 사람을 관망하며 다른 사람이 해결하기를 기다리지 말고, 착실하게 자신이 구해야 할 그 부분의 중생을 구해야 합니다. 의심하고 원망하지 말아야 하며, 손꼽아 기다리지 말고, 오히려 실제 행동에서 허둥지둥하지 않고 여유 있게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정법이 언제 끝나는 것은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많은 중생들이 구도를 기다리고 있는데, 진상을 알리지 않으면 되겠는가?! 나마저 당신들을 도와서 하고 있다! 속인을 구하는 것은 본래 당신들의 일이다. 나는 당신들을 구하고 당신들은 속인을 구하는 것으로, 지금 나마저도 당신들을 도와서 하고 있는데, 당신이 하지 않으면 당신은 대법제자인가? 최후에 장부를 총결산할 때 당신은 어떻게 결산할 것인가? 울어도 이미 늦었다.”[4]
충분히 딱 맞진 않지만 예를 들어보자면, 출근하는 것과 같이 하루에 이미 정해진 업무량을 완성해야 하고, 대략 약속된 퇴근 시간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이 산만하게 천천히 일한다면, 자연히 제시간에 전체 업무량을 완성할 수 없게 되는데, 퇴근 시간이 되면 어떻게 퇴근할 수 있겠습니까? 이때 상사에게 언제 퇴근하는지 반문할 수 있을까요? 이런 행동은 좀 우습지 않을까요? 집에 가려고 생각한다면 행동으로 되도록 빨리 자신이 해야 할 그 일을 완성해야 합니다.
이상은 개인의 깨달음이고 적절치 않은 곳은 수련생 여러분들이 자비로 시정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2016년 뉴욕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3-겁’
[3] 리훙쯔 사부님 경문: ‘각지설법10-밍후이왕(明慧網) 10주년 법회 설법’
[4] 리훙쯔 사부님 경문: ‘2019년 뉴욕법회 설법’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현재 인식을 대표하므로 수련생들이 서로 교류하여 ‘비학비수(比學比修)하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1년 8월 1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8/11/42929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