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타이완 대법제자
[밍후이왕] 평소 밍후이왕 수련생의 심득교류를 읽을 때 많은 감동을 받으며 수련 제고에 큰 도움이 된다. 오늘 나는 최근 법을 외우고 심성을 제고한 체득을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수련생과 교류하려 한다.
내가 다니는 법공부팀에서 법을 외우는 팀을 결성했다. 매주 법을 외우는 진도가 있다. 남편(수련생)은 나와 함께 같은 시기에 법을 얻었다. 지금 그는 매체에서 신문 배달을 한다. 밤 12시 20분에 외출해 신문을 배달하면 약 3시 30분이 된다. 나는 비록 신문 배달원이 아니지만 나와 남편은 교류를 통해 함께 신문을 배달하기로 했다. 나는 이 기회를 이용해 늦잠 자는 습관을 고치고 시간을 이용해 법을 외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올해 2월 설부터 법을 외우기 시작했다.
법을 외우는 과정에서 어떻게 협조해 외우고 한 번에 몇 마디 외우며, 틀리게 외우면 어떻게 바로 잡는지, 말하는 어투, 표현도 마음을 닦는 과정이다. 남편은 운전하고 나는 조수석에서 법을 읽는 것을 책임졌다. 두 사람은 함께 법을 외우고 상대방의 틀린 글자나 빠트린 글자를 점검해 주었다. 처음에 남편은 한마디의 법을 몇 번이나 틀리게 외웠다. 그는 좀 귀찮아했다. 나는 당시 선하지 않게 ‘왜 이렇게 둔해’라는 생각을 했다. 다행히 빨리 알아차렸다. 나는 눈으로 법을 보고 외우고 그는 내가 말하는 것을 듣고 외운다. 나는 어투가 선해야 하고 평온해야 해야 한다는 것을 의식했다. 그 후 법 외우는 것이 순조로웠다.
하지만 ‘너도 좋고 나도 좋다’면 제고할 수 없다. 시험은 하나하나 나타났다. 한번은 어떻게 된 건지 남편은 빨리 외웠고 나는 뒤에 두 마디는 외웠는데 앞의 두 마디를 잊었다. 때로 작은 단락 법을 한 시간 넘게 외워도 외우지 못할 때가 있었다. 시간을 지체하지 않기 위해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당신은 나를 기다리지 마세요. 혼자 익숙하게 외우면 돼요. 나는 시간을 내어 계속 익숙하게 외울게요.” 이렇게 하자 모순이 나타났다. 남편은 기뻐하지 않으며 “그러면 외우지 말아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되면 내가 그를 지휘해 법을 외운 것이고 나는 오히려 외우지 않은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내가 그를 생각해 주는 것 같고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한 것 같았다. 하지만 안으로 찾자 내가 법을 외운 최초 마음은 수련을 위한 것이 아니고 강한 ‘정’ 때문이었다. 법을 얻기 전에 남편은 몸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다. 나는 남편과 함께 연공했다. 속으로 부부가 같은 믿음이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나는 남편이 법을 외우고 심성을 제고하기 바랐다. 그러면 그는 나에게 더욱 잘 대해 줄 것으로 생각했다. 이것은 얼마나 이기적인 마음인가? 나는 이것을 즉시 닦아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때 나도 왜 갑자기 법을 외우지 못하는가를 찾아봤다. 자신이 ‘독선적’인 집착심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스스로 수련이 괜찮다고 생각했다. 평소 법도 베끼기에 법을 외우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거기에 참을성이 부족해 작은 장애에 부딪히면 포기하려 했다. 현실 생활에 반영된 것은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은 것’의 문제였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일하기 좋아함도 정이요, 일하기 싫어함 역시 정이며, 누가 좋고 누가 나쁘게 보이며, 무엇을 하기 좋아하고 무엇을 하기 싫어하는 일체가 다 정이라, 속인은 바로 정을 위해 산다.”[1]
나는 갑자기 깨달았다. 반드시 노력해 자신을 바로 잡아야 하고 사람의 생각을 제거해야 한다. 수련인이 법을 외우는 목적은 법을 마음속에 기억하고 스스로 법으로 자신의 사상과 행위를 지도하기 위한 것이다. 관념을 바꾼 후 다시 법을 외우자 뒤를 기억하고 앞을 잊어버리는 현상은 사라졌다.
이번 시험이 지난 후 이어 또 다른 시험이 왔다. 남편은 무슨 원인인지 걸핏하면 화를 내고 기뻐하지 않고 말하는 것도 거칠었다. 나는 사부님의 말씀을 생각했다. “참음(忍)은 心性(씬씽)을 제고하는 관건이다. 화가 나 원망하고, 억울해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참는 것은 속인이 해를 입을까 염려하는 참음이다. 화를 내거나 원망함이 전혀 생기지 않으며 억울함을 느끼지 않는 것이야말로 수련자의 참음이다.”[2] 이번에 법의 요구에 따라 자신을 잘 닦고 이 관을 잘 넘겨야 한다.
하지만 이 일은 이전처럼 그렇게 빨리 지나가지 않았다. 나는 분명히 마음속에 원망이 없고 상대방을 탓하지 않았지만, 며칠 동안 모순에 처해 있었고 감히 말도 걸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내가 무엇을 말하든 모두 틀린 것이었다.
그 후 며칠 조용했고 지난 후 여전했다. 나는 풀이 죽었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제고해야 하는가? 사실 교착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나의 마성을 제거하고 나의 업력을 전화시키는 것이다. 부부가 된 것은 업력의 인연 관계다. 아마 내가 그에게 빚진 것이든지 아니면 그가 나에게 빚진 것이다. 이것은 업력의 전화다. 오늘 법을 얻어 수련하면 반드시 전부 갚아야 한다. 왜냐하면, 내세가 없기 때문이다. 수련은 금생에 원만하는 것이 아닌가? 이때 나는 진실한 선이 나왔다. 속으로 사부님께 말했다. ‘그가 제게 빚진 것은 제자는 갖지 않을 겁니다. 제자가 그에게 빚진 것은 법에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이런 말을 거듭 세 번 했다. 순간 마음을 누르고 있던 무거운 짐이 사라졌다.
한 수련생이 운영하는 공장에서 임시로 화물을 배달할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서 한동안 우리 부부는 그 공장에 가서 도와주었다. 아침 8시부터 저녁 3시까지다. 오고 가는 거리가 2시간이었다. 돌아온 후 또 온라인 진상 알리는 팀에서 팀을 짜야 했다. 또 시간을 내어 법공부도 해야 하고 집안일도 해야 했다. 그러므로 쉽게 연공을 놓쳤다. 나는 통상 정오에 밥을 먹고 30분간 동공 두 가지를 한다.
그날 정오에 나는 3, 4장 공법을 했다. 3장 공법을 할 때 두 번 충꽌(沖灌)은 아주 집중했지만 세 번째 충꽌은 사상이 딴 데 갔다. 마지막에 아랫배에서 네 번 돌릴 때 갑자기 음악이 멈췄다.
나는 깜짝 놀랐다. 방금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집중하지 않고 연공했다. 사부님께서 나에게 일깨워주신 것이다. 나는 갑자기 허스하고 사부님 법상앞에서 속으로 말씀드렸다. ‘사부님 죄송합니다. 제자는 앞으로 연공할 때 집중하겠습니다.’ 이때 한 생각이 떠올랐다. ‘당신이 딴 생각하면 나는 어떻게 너에게 공을 자라게 할 수 있는가?’ 이것은 사부님께서 자비롭게 나를 점화해 주신 것이라고 똑똑히 알고 있다.
내가 제4장 공법을 할 때 음악이 시작되자 나는 에너지에 둘러싸였다. 두 번째 할 때 나선식 에너지가 발에서부터 시작해 위로 돌고 돌아 머리 정수리에 이른 후 위로 솟아올랐다.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공을 자라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제자도 진정으로 수련의 엄숙성을 알게 됐습니다.”
그날 밤, 법을 배울 때 나는 ‘전법륜’에서 매 글자 배후에 모두 연꽃이라는 걸 느꼈는데 매우 수승하며 신기했고 미묘했다. ‘사부님의 점오와 격려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제한된 시간 내에 노력해 각종 집착심을 제거해 버리고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개인의 수련 체득이고 법에 있지 않은 점은 수련생이 자비로 지적해 주시기를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무엇이 참음인가’
원문발표: 2021년 6월 2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6/25/42732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