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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치하얼시 엔지니어 리순장 박해로 사망

[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헤이룽장 보도) 치치하얼(齊齊哈爾)시의 엔지니어 리순장(李順江)은 2017년에 납치돼 3년의 억울한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며, 펑툰(馮屯)감옥과 타이라이(泰來)감옥 안에서 박해로 흉막 삼출액, 폐수종이 나타났다. 출소한 후 줄곧 호전되지 않아, 숨을 쉬기도 어려운 데다 파출소에 의해 끊임없는 교란을 당했다. 결국, 2021년 5월 20일에 억울하게 사망했으며, 겨우 50여 세였다. 그리고 또 중공(중국공산당) 박해로 정신 질병에 걸린 아내와 마비돼 자리에 누운 장모님만이 남겨졌다.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리순장의 부모와 누나, 여동생도 그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없었고, 가족은 목 놓아 울었다. 노인이 젊은이를 보내는 것은 일종의 어떤 아픈 마음이었겠는가?

리순장은 이공대학을 졸업한 우수한 엔지니어다.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한 후, 사상 경지가 승화되어 근무를 자신의 사업으로 여기며 사심 없이 헌신했으며, 인후하고 정직했다. 리순장은 민중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리는 것을 견지한 이유로 납치되어 두 차례 불법 징역형(9년, 3년)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구치소, 감옥에서 매달아 걸기, 철제 의자 고문, 혹독한 구타, 쇠 채찍으로 얼굴 후려치기, 버팀목, 두 손을 뒤로 비틀어 돌려 수갑 채우기, 비좁은 방에 가두기, 억지로 버티기 등으로 심한 손상을 주는 고문 학대를 당했다.

리순장이 이 몇 년 동안 당한 일부 박해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1999년 7월, 중공 장쩌민(江澤民) 집단이 광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한 후, 파룬궁 수련자들은 더는 정상적인 생활과 근로, 수행 환경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이 없었다. 리순장과 다른 몇 명의 파룬궁 수련생은 핍박에 못 이겨 외지에서 정처 없이 유랑생활을 하며 살았다. 중공 언론이 파룬궁에 모함하고 요언을 날조한 것을 규명하고, 민중에게 파룬궁이 박해받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그들은 인민에게 진상을 똑똑히 알리는 것을 견지했다.

납치돼 고문 학대를 당하다

2001년 2월 20일 밤 10시가 넘어서 치치하얼시 칭윈(青雲)가 파출소의 한 무리 경찰이 갑자기 문을 부수고 들이닥쳐, 리순장의 집안의 2천여 위안(약 34만 원)을 빼앗아 그들이 차지했고, 리순장을 발로 차고 때리고 밧줄로 묶었으며, 또 천으로 눈을 가리고 족쇄를 채워 톈난(鐵南)파출소로 압송했다.

酷刑演示:半蹲反铐背挂(就是站不起来也蹲不下)
고문 재연: 쪼그려 앉히고 두 손을 등 뒤로 돌려 수갑을 채워 걸다(즉 일어서지 못하고 쭈그려 앉아 내려가 앉을 수도 없음)

리순장은 복도 끝 라디에이터에 양손을 뒤로 돌려 수갑이 채워진 채 쪼그리고 앉혀 앉을 수도, 설 수도 없게 하여 몸이 기댈 곳이 없었다. 이튿날 낮에 또 작은 방안에 갇혀 두 손이 등 뒤로 채워져 라디에이터에 채워졌다. 저녁에 그를 고문실 철제 의자에 앉혔는데, 철제 의자 등에는 두 개의 구멍이 나 있었다. 두 손을 몸 뒤, 의자 등의 구멍으로 내어서 수갑을 채웠는데, 경찰이 필사적으로 조이게 수갑을 채워 피가 통하지 않아 두 손이 찐빵처럼 부어올랐다.

셋째 날, 그들은 또 리순장의 눈을 가리고 매우 무겁고 커다란 투구를 씌워 경찰차에 밀쳐 태워 인적이 없는 버려진 삼곡 창고 내로 압송됐다. 그곳에는 단층집이 일렬로 있었는데, 역시 파룬궁 수련생을 비밀리에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하는 장소였다. 실내에는 이층 침대가 있었는데, 그를 아래 침대에 수갑을 채워 쪼그리고 앉혀 앉지 못하고 서 있지도 못하게 했다.

넷째 날, 전 룽사(龍沙)분국 정보과 과장 장춘추(張春秋)가 혼자서 조종했는데, 톄난(鐵南)파출소 소장 류야오푸(劉耀福)가 현지에 주재하며 지휘하고, 톄난 파출소의 부소장 양라오바(楊老八)와 경찰 왕리(王立)가 그를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찼으며, 투구를 내리쳐 돌연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윙윙거리는 것을 느꼈다. 저녁에 그의 두 팔을 들보에 매달고 나무 각목으로 두 발 아래로 내리쳤으며, 200여 대를 내리쳤다. 리순장의 두 손과 발이 붓고 멍이 들어 청자색을 띠고 변형됐으며, 발가락 열 개에 피가 맺혀 성한 곳이 없었다.

中共酷刑示意图:吊背铐
중공 고문 설명도: 등 뒤로 수갑 채워 매달기

리순장은 그들에게 말했다. “이러지 마세요. 이런 식으로 파룬궁을 박해하는 것은 당신들 자신에게 좋지 않아요.” 중공 경찰들이 끝내 “차라리 지옥에 가는 게 났겠어! 범죄, 매춘, 도박을 나라에서 잡지 못하게 하면 우리는 잡지 못하고, 파룬궁은 좋은 사람이지만, 국가가 잡으라고 하면 우리는 잡아야 하는 거다.”라고 말했다.

경찰들이 이익을 내세워 회유하기도 하고 위협도 했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 장춘추는 끊임없이 욕설을 퍼부었고, 큰소리치며 “내가 당신들을 죽이는 것은 마치 병아리를 죽이는 것과 같아. 때려죽인 후 휘발유를 붓고 불을 붙여 외부에 당신들이 파룬궁을 수련해 분신자살했다고 말하겠다.”라며 대법을 모독했다.

그들이 들보에서 리순장을 내려놓고 안쪽에서 끌고 오는 과정에서 톄난 파출소의 부소장이 음험하게 말했다. “당신은 지금 가도 돼. 당신이 몇 걸음 걸어가면 나는 곧 뒤쪽에서 총을 쏘아 당신을 죽인 다음, 당신이 도망갔다고 말하겠어.”

리순장은 또 족쇄에 채워지고 두 손을 뒤로 돌려 수갑을 채워 침대에 채워졌다. 그의 얼굴은 부어올라 변형되었고, 양쪽 발 발가락이 견딜 수 없이 아팠으며, 머리에는 무거운 오토바이 헬멧을 써서 걷기가 매우 어려웠다. 나중에 또 톄난(鐵南) 경찰서로 끌려가 양손이 또 등 뒤로 돌려져 철제 의자 뒤에 있는 구멍에 꼬박 하루 동안 채워졌는데, 그들은 또 찬물을 끼얹었다. 혹독한 고문으로 5일 밤낮을 학대했다.

5일 후, 이른바 진술을 받아 내지 못하자 강온 양책을 함께 써서, 호적으로 그의 신임을 속여 뺏은 후 유도 신문하여 자백하게 했다. 그의 장모도 파룬궁을 수련한다고 사칭하여, 그에게 언제 파룬궁을 연마했고 어떠한 감수가 있는지를 이야기하게 했다. 그런 다음 대강대강 문자를 구성하여 이른바 심문 자료로 삼았다.

2001년 2월 25일 오후 8시경, 리순장과 또 다른 파룬궁 수련생이 치(齊)시 1호 구치소로 이송됐다. 리순장의 손은 찐빵처럼 부어오르고, 수갑은 살에 패여 들어가 황색 기름이 스며들었고, 몸 전체가 시퍼렇게 멍들고 부어올라 변형되었으며, 걸음걸이가 비틀거려 감옥 의사는 수감을 거부했다. 경찰은 괜찮다고 하면서 상급에 지시를 요청했고, 시 공안국 부국장은 특별히 비준하여 구치소에 전화를 걸어 강제로 수용하도록 했다. 구치소에서 그에게 서명을 요구했지만 리순장은 서명을 거부했다. 감옥 의사인 마두 영감은 그를 연거푸 구타하고 욕설을 가했다.

구치소에서 리순장의 양팔과 발은 반년 동안 무감각하고 빨갛게 부어올라 팔을 들어 올릴 수 없었으며, 두 발은 5년 동안이나 무감각했다. 한 번은 경찰관 류징치가 리순장에게 반달 이상 강제로 수갑을 채웠고, 양 손목의 살갗이 터져 밖으로 피와 고름이 나와 지금까지 손목에 흉터가 남아있다. 한 번은 장모가 감금된 여성 감방을 지날 때, 장모와 인사를 했다가 경찰 장융(張勇)에게 걷어 채이고 구타를 당했다. 그리고 불법적인 선고를 받고 사진 찍는 것을 요구했을 때, 사진 찍기를 거부했다가 또 경찰 팡정웨이(房正偉)에게 한바탕 폭력적인 구타를 당했다.

9년 불법 징역형 선고로 억울한 옥살이를 당하다

리순장은 치치하얼 구치소에서 1년 10개월 동안 감금당한 후, 9년의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2002년 12월 16일에 헤이룽장 타이라이 감옥으로 납치당했다.

처음 타이라이 감옥 집중훈련대에 들어가서 신체검사에서 혈액 검사를 할 때, 감옥 의사는 혈액 지질을 보자마자 리순장은 심한 빈혈로 그가 걸을 때 현기증이 나고 먹은 대로 다 토해낸다고 말했다. 리순장은 죄수복 입기를 거부했고, 교도관 리중샤오는 그에게 “입지 않으면 입게 할 방법을 찾겠다.”라고 말했다. 그의 지시하에 수감자 우하이룽(吳海龍-간난(甘南)현 핑양(平陽)진 사람)이 폭력에 앞장섰다. 그들은 집단으로 뛰어들어 대나무 가지와 흙벽돌, 9mm 굵은 철선으로 만든 채찍을 사용하여 정면으로 한바탕 후려쳤고, 주먹질과 발길질을 하여 그의 얼굴, 머리는 일시에 피부가 찢어지고 살이 터져 피가 줄줄 흘렀으며, 두 눈은 흐르는 피에 젖어 흐려졌다. 학대로 피투성이가 되어 생명이 위독했다……

2003년 1월 10일, 리순장은 제6대대로 보내져 치시 경찰의 고문과 타이라이 감옥의 비인간적 박해를 당했다. 심신이 과도하게 지쳐 심한 빈혈로 고통받고, 머리는 어지러워 걸을 수 없었다.

中共酷刑示意图:殴打
중공 고문 설명도: 구타

2003년 2월, 리순장은 어느 날 침대에 앉아 있었는데, 악독한 죄수가 그가 연공을 하고 있다고 보고하여 제2대대 경찰에 의해 교도관실로 끌려갔다. 리순장은 파룬궁에 대한 진실을 말했다가 9대대 정찰 간사 왕장빙(王長冰, 현임 14감구 지도원)이 몇 명의 경찰과 죄수 두목 다이구이빈(戴貴斌, 치시 사람)과 결탁하여 한바탕 광적인 구타를 했다. 이때부터 리순장 신체 상태가 더욱 허약해져 정신이 흐리멍덩하고 환각이 생겨 걸을 때 벽을 짚고 걸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수시로 기절했다. 당시 6대대 대대장은 류슝(劉雄, 63 감옥으로 전근되어 개조하는 감옥장을 맡았고, 그 후 차를 몰다가 차 사고로 사망했음)이라고 불렀다.

후에 리순장은 또 9대대 제1중대로 끌려갔다. 2003 년 늦가을에 리순장이 연공을 한 이유로, 지도원 마훙빈의 지시를 받은 죄수가 그를 사무실로 불러서 빗자루를 들고 한바탕 정면으로 맹렬하게 구타했다. 그리고 또 죄수 리중샤오(李忠孝), 한짜이후이(韓再輝), 왕쯔쥔(王子軍) 등을 불러서 리순장을 작업실 밖에 있는 한 커다란 철제 선반에 위에 매달아 놓고 주먹으로 치고 발로 차고 악담을 퍼부었다. 저녁에 일을 끝낼 때 직접 독방에 가둬 넣고 두 다리에 막대기를 끼우고 양손은 수갑을 채워 7일이나 두었다.

리순장은 단식으로 감옥의 죄악 행위에 항의했다가, 9대 옥정(獄政) 간사인 왕바이원王佰文) 등에 의해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을 당했다. 주입한 것은 개에게 먹이는 껍질을 벗기지 않은 옥수수에 물을 부은 것이었고, 또 늘 호스를 기관(氣管)에 꽂았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개조 대장 안성(安盛)은 제멋대로 리순장의 편지를 압수했다. 책을 보고, 글을 쓰는 것을 못하게 했고, 전화하고 말하는 것도 못하게 했으며, 감옥 안 상점에서 물건 구매를 허락하지 않으며 태도가 상당히 난폭했다.

2007년 1월부터 4월까지 타이라이 감옥에서는 또 새로운 강도 높은 박해를 시작했다. 사법부에서는 파룬궁 수련생에게 강제로 100% 전향(수련 포기)을 강요하는 문서를 발행했으며, 그렇지 않으면 관련 경찰의 월급, 장려금을 공제하며 직접 승진에 영향을 미쳤다. 모든 파룬궁 수련생들은 회의에 참석하도록 강요당했으며, 치시 ‘610’[중공이 전문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하는 불법 기관, 공검법(공안, 검찰, 법원) 위에 군림했음] 두목이 타이라이 감옥으로 가서 주재하며 지휘했는데, 사오(邪悟)한 자 천빈(陳濱)이 말도 안 되는 이른바 연설을 했다.

1월 26일, 9대대 2중대 지도원 다이젠펑(戴劍鋒)은 리순장을 찾아 대화를 나누며 “너는 반드시 전향해야해. 전향하지 않으면 화장할 것이다!”라고 협박했다. 그는 여러 바오자(包夾, 파룬궁 수련생을 전문으로 관리하는 죄수)에게 리순장을 단속하게 했다. 그를 한 독방에 20여 일 동안 벌로 감금하여 그가 누구와 말하고, 접촉함을 허락하지 않았고, 면회와 전화 및 우편물을 받는 권리를 박탈했으며, 모든 식품과 음식을 압수했다.

3월 10일부터 대대장 왕융창(王永強) 과 부지도원 왕젠민(王建民)은 배후에서 조종하여 리순장을 밤낮으로 잠을 못 자게 했고, 또 타일 바닥 위에 앉혀 체벌을 가해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찼다. 효과가 보이지 않자 곧 문과 창문을 열어 창문과 문을 강렬하게 대류 시켰다. 북방의 이른 봄은 차가운 바람이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그 죄수들은 솜옷을 입고 이불을 덮고도 춥다고 외쳤다. 하지만 그들은 그의 솜옷을 벗겨 홑옷, 홑바지만 남긴 채 몸 위에 찬물을 끼얹어 추위에 떨게 했으며, 또 주먹질과 발길질을 했다. 며칠 동안 화장실에 가지 못하게 하고, 물을 마시지 못하게 하며 소금물만 마실 수 있게 하여 그는 소변을 가리지 못했다. 게다가 강제로 리순장의 옷을 벗기고 알몸인 채로 급수실에서 수도꼭지에 수도관을 연결하여 몸을 겨누어 세차게 찬물을 끼얹었다. 그리고 그에게 맨발로 작은 걸상에 쭈그리고 앉게 하는 등 학대를 했다. 죄수 두목 류하이룽[푸위(富裕)진 사람]은 “9대대 전체 경찰이 회의를 열어 명령을 검토했다. 어떤 조처를 해서라도 강하게 전향을 진행한다. 전향하지 않으면 때려죽이고, 때려 죽으면 자살로 간주하며, 다시 화장한다.”라고 말했다.

박해당하여 사망하다

9년에 걸쳐 심신에 심한 손상을 주는 생사의 재난을 경험한 리순장은 2010년에 감옥에서 나왔고, 일자리를 잃고 생활 터전이 없었다. 엔지니어인 그는 겨우 막노동을 하며 근근이 생계를 유지할 뿐이었다.

2017년 3월 21일, 리순장은 또 치치하얼시 젠화 분국 경찰에 의해 납치당했다. 그날 치치하얼시에서 납치당한 파룬궁 수련생은 또 가오푸핑(高福平), 장푸하이(張福海), 톈융(田勇), 왕아이화(王愛華), 자오이(趙義), 장리췬(張立群), 장스민(張氏民), 쑹위란(宋玉蘭), 류밍잉(劉明英), 주슈민(朱秀敏), 왕위둥(王宇東), 왕옌(王豔), 장옌화(張豔華), 류후이제(劉慧傑) 등 10여 명이 있었다.

같은 시 파출소에서 리순장은 악독한 경찰 위강(於剛), 창솨이(常帥)에게 다음과 같은 고문 학대를 당했다. 1. 매달고, 수갑을 등 뒤로 채워 철제 의자에 두 다리를 잡고 늘리기 2. 등 뒤로 수갑을 채우고 철제 의자 다리 밑으로 벽돌을 받치기 3. 비닐봉지 머리에 씌우기 4. 고무 신발로 얼굴 후려치기 5. 소변으로 이 닦기 6. 작은 칼로 발을 찌른 후 술과 소금을 뿌리기 7. 천에 겨자기름을 쏟아 코, 입을 틀어막는 고문을 하여 얼굴과 몸에는 상처투성이였다. 이틀 후, 구치소로 보내졌으나 구치소에서 거부했다. 위강 등은 또 리순장을 병원으로 끌고 가서 가짜 증명서를 발급해 강제로 리순장을 구치소로 들여보냈다.

4월 7일, 변호사는 구치소에서 리순장을 보았을 때 눈앞의 광경에 넋을 잃었다. 리순장이 연결된 수갑 족쇄에 채워져 구부리고 간신히 비틀거리며 면회실로 옮겨가는 것이었다. 변호사는 즉시 형구를 풀어 달라고 요구하며, 이것은 위법이라고 엄정하게 알려주었다.

中共酷刑刑具:手铐脚镣
중공 고문 형구: 수갑 족쇄

검찰원 직원이 리순장을 심문할 때, 그는 파출소 직원이 그에 대해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한 일을 반영했다. 일이 발생한 후 위강은 또 구치소로 가서 심문한다는 명목으로 리순장에게 “당신이 다시 고문당한 일을 말하겠다고 고집하면 다시 파출소로 끌고 가겠어. 당신이 견뎌낼 수 있는지 두고 보겠어”라고 위협하며 말했다. 결국에 리순장은 핍박으로 서명하고, 부딪혀서 상처가 난 것으로 승인했다.

이번에 파룬궁 수련생 아홉 명이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며, 그중 리순장은 3년의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리순장, 톈융, 장푸하이 등 일곱 명 파룬궁 수련생은 2018년 11월 29일에 펑툰(馮屯)감옥으로 납치돼 계속 불법 감금 박해를 당했다.

리순장은 감옥의 노역 노동에 저항하여 10감구 지도원 한커친(翰可欣)에 의해 박해를 당했다. 대자로 걸어 화장실에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학대를 당해 가슴에 물이 고이는 증상이 나타나 입원했다. 가족이 돈을 보내주어도 쓰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中共酷刑示意图:上大挂
중공 고문 설명도: 상대괘

9월 11일, 리순장의 가족은 치시 타이라이 감옥에서 면회할 때, 리순장이 경찰에게 부축하여 나오는 것을 보았으며, 몸이 매우 수척하고 말하는 데 힘이 없었다. 경찰은 방금 감옥 병원에서 가슴에 고인 물과 폐에 고인 물을 뽑고 나왔다고 말했다.

감옥에 불법 감금당한 기간에 장기 박해로 인하여, 원래 80kg이던 몸은 겨우 40kg(키는 178㎝임)이 넘었고, 전신에 기운이 없어 걸을 수 없었으며, 밥을 먹을 수 없었고 숨을 쉴 수 없었다. 감구의 사악은 각종 비인간적인 수단을 이용해 그에게 잔혹한 박해를 진행해 ‘4서’ 등을 쓰도록 강요했고, 온종일 그의 발을 채워 놓아 발목 살갗이 다 헐어 벗겨졌다. 낮에 일하러 나가면 두 손을 작업실 문 위에 채워 놓았다. 또한, 비인간적으로 화장실에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저녁에는 바닥에 눕게 하여 손을 침대 다리에 채웠고, 죄수가 지키면서 잠을 자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2020년 3월, 리순장은 출소한 후, 몸이 이미 매우 수척해져 친구가 그를 보았는데도 알아보지 못했다. 리순장의 몸은 계속 좋지 않았고, 항상 기침했다.

리순장의 아내 천리(陳麗)는 파룬궁을 수련한 이유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원래 건강하던 사람이 하얼빈(哈爾濱) 여자감옥에서 박해를 받고 돌아와 정신 이상이 되었다. 리순장의 장모도 대법을 수련한 이유로 4년 넘는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며, 돌아온 후 줄곧 침대에서 마비되어 먹고 자고 싸는 일을 모두 침대에서 했다. 그의 장모는 키가 크고 뚱뚱했다. 한 번은 침대에서 떨어졌는데, 몸이 허약한 리순장이 몇 차례나 잡아당기려고 노력했으나 잡아당기지 못했다. 온 힘을 다해서야 비로소 그녀를 침대에 부축하여 올릴 수 있었다. 아내는 정신적으로 비정상적이어서 물을 틀어 놓으면 한나절이나 물을 흘려보냈으며, 그렇지 않으면 불을 붙였다. 리순장은 낮에는 아내와 장모를 돌보았는데, 저녁에도 아내는 그를 쉬지 못하게 했다. 이로 인해 그는 원래 좋지 않던 몸이 더욱 악화되었다.

리순장의 집은 톄펑구에 있었고, 관할구 룽화로 파출소에서는 리순장에게 그들의 관할구 내에서 거주함을 허락하지 않으며 여러 차례 그를 찾아가 이사를 하도록 요구하여 그들 틈바구니에서 살기가 매우 어려웠다.

2021년 3월, 4월 기간, 파출소에서는 또 리순장에게 가서 교란했는데, 한 번은 1시간 넘게 문을 두드렸다. 여러 종류의 압력 하에 박해당했던 리순장은 결국 사망했다.

리순장이 당한 박해에 관해 밍후이왕 문장 ‘9년의 억울한 고문당한, 치치하얼 엔지니어가 또 납치당해’, ‘치치하얼시 톄펑구 법원에서 불법적으로 아홉 명 파룬궁 수련생에 대해 재판을 진행’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22년이다. 리순장은 12년을 억울하게 옥살이로 보냈으며, 인생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기에 자유를 박탈당했다. 중공의 천하에서 이것은 단지 무수한 사례 중의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리순장은 예전의 소원은 바로 다음과 같다: 해내외의 정의롭고 선량한 인사가 중국의 파룬궁 수련생이 당한 박해에 관심을 두고, 공검법 위에 군림한 ‘문화대혁명’팀에 상당한 불법 기구 ‘610’의 계속적인 범죄를 저지하도록 호소하며, 자유, 인권, 평화의 빛이 5천 년 문명을 소유한 적이 있는 중화 대지를 비추기를 바랐다.

 

원문발표: 2021년 5월 29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망사례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5/29/42633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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