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대륙의 자료점을 말하면 사실 때 맞게 생겨난 것인데 사악의 박해 이전에는 자료점이란 설이 없었다. 대륙 이런 박해 환경에서 대법제자들이 정체적으로 정법 노정에 따라가게 하고 더욱 대법을 잘 실증하고 중생을 잘 구도하기 위해 비로소 자료점이 나타났는데 진짜로 어느 날 필요 없으면 우리는 즉시 손을 놓아야 한다. 우리는 형식 자체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형식의 존재는 우리의 수련과 사람 구하는 것을 도와주기 위한 것이지 반대로 우리의 집착을 증가시키거나 수련 길에서의 누락이 되면 안 된다.
외부 환경의 변화와 정법의 추진 및 우리 대법제자 정체의 수련상태 승화로 원래의 큰 자료점은 이후의 작은 자료점으로, 지금은 되도록 자신이 독립적으로 운영할 것을 건의하는데 자료점과 기술수련생에 대한 의지를 감소하기 위함이다. 모두 법이 우리에 대한 요구를 체현했고 부동한 시기에 부동한 단계, 부동한 정황에서 법이 우리에게 부동한 요구가 있음을 체현한다.
박해 초기에 많은 수련생은 난과 관이 아주 컸고 집안 환경이 긴장했으며 일부는 심지어 자료를 받고 자료를 보는 것도 모두 문제가 되었다. 거기에 모두 자료점의 의미에 대해 충분한 인식이 없었기에 많은 사람이 자료점을 설립한 조건을 구비하지 못했다. 그 시기에 한 지역에 몇 안 되는 자료점이 아주 큰 책임을 짊어졌고 자료를 만드는 사람이 아주 적었다. 자료를 사용하는 사람은 많았는데 이는 자료점이 갈수록 커졌던 하나의 중요한 원인이었다.
환경의 변화로 인해 또 수련생들의 심성이 제고되면서, 거기에 큰 자료점의 문제점이 점차 부각되면서 많은 사람이 자료점을 건립할 수 있는 조건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형식이 바뀌었고 큰 자료점은 점차 사라지고 지금은 가정 자료점이 곳곳에서 설립되고 있다. 가정 자료점 설립 초기에는 많은 사람이 이전에 이런 유형의 것을 접촉하지 못했기에 모두 두서를 잡지 못했는데 기술수련생들이 즉시 사심없이 도움을 주고 지지해주었다. 모두 시간과 돈을 절약하고 굽은 길을 걷는 것을 감소했고 또한 구도중생을 지체하지 않았는데 진짜로 공로가 컸다. 그러나 모든 일에서 도가 지나치면 안 된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자료를 만드는 수련생들이 장기간 기계 설비를 사용하고 거기에 기술수련생들이 수리를 가르쳐주면서 기본적으로 모두 일정한 기능과 경험을 장악했고 또한 천지행논단의 지지도 있고 아울러 속인 경로도 적당하게 이용하여 스스로 독립적으로 하는 것에 사실 큰 난이도가 없어졌다. 기본 조건을 갖추었고 일체 모두 이 일보까지 걸어왔다.
물론 기술수련생에 의지하지 않음이 단번에 단절한다는 것은 아니다. 진정으로 자신이 해결할 수 없고 또한 다른 방법이 없을 때 또 기술수련생을 청해야 한다. 그러나 심태는 다른 것이다. 의지하는 마음이 없다고 하여 억지로 버티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또한 일을 지체하게 된다. 기술수련생도 집착을 없앤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또한 다른 한 가지 집착이 생기는 것이고 필경 대법제자는 하나의 정체이고 서로 협조함이 존재한다. 그러나 과정 중에 더 많이 가르치고 더 많이 배워야 한다. 아마도 얼마 안 가서 ‘자료점’과 ‘기술수련생’이란 이런 설도 없어질 것이다.
20년이 지나서 사악의 박해는 이미 말로의 후기로 들어섰다. 대법제자의 수련과 법실증은 경험과 교훈을 동반자 삼아 점차적으로 성숙으로 나아가고 있다. 우리가 지금 예전의 운영방식을 보면 모두 누락이 있었다. 나는 여러 방면 요소가 촉성된 것이라고 여기는데 그 단계 역시 그렇게 하는 것이 적합했을 것이고, 아울러 그 당시에 확실히 아주 큰 작용을 일으켰다. 각 방면 요소가 모두 변화가 발생한 것이고, 우리의 인식도 제고되어 올라와 비로소 다음 일보의 변화가 생긴 것이다. 모두 한 방면에서 고립된 것이 아닌데 제고 역시 하나의 과정이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제고와 변화의 과정이 짧을수록 더욱 좋은 것이다. 그 때문에 간단하게 우리가 과거에 잘하지 못했다고 말할 수 없다.
의지하는 마음을 말하면, 사부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다만 인류사회가 앞으로 발전함에 따라, 사람은 갈수록 우리 이 물질공간의 유형적인 것에 착안하고, 갈수록 우리 현대화한 도구에 의존할 뿐이어서, 우리 사람의 본능은 갈수록 퇴화되고, 최후에는 이런 본능이 완전히 소실되었다.”[1] 우리 매 개인은 모두 본능과 잠재력이 있는데 하물며 우리가 바르게 가면 사부님께서는 시시각각 가지해 주시는데 무엇이 두렵단 말인가? 바로 그러한 낡은 관념을 타파해야 하고 이전에 고수했던 사유방식을 개변하고 이것은 안 된다, 저것은 안 된다 라고 여기며 과분하게 외부 요소에 의지하면서 독립할 수 없었는데, 이렇게 오랜 세월 아주 많이는 속인이 안 된다고 여기는 일들을 우리는 모두 해내지 않았는가? 우리가 걸은 길은 아주 많은 시기에는 바로 개창이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과거에 수련할 때에 많은 고인(高人)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다. 그는 말했다. ‘참기 어려운 것도 참을 수 있고, 행하기 어려운 것도 행할 수 있다(難忍能忍, 難行能行).’ 사실 바로 이러한데 여러분이 돌아가서 한번 시험해 보는 것도 무방하다. 진정한 겁난(劫難) 중에서 또는 관(關)을 넘는 중에서 당신은 시험해 보라. 참기 어려운 것을 당신은 참아 보고, 보기에 안 되고 행하기 어렵다고 하는 것을 그러면 당신이 한번 시험해 보라. 도대체 행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만약 당신이 정말로 해낼 수 있다면, 당신은 정말로 고난 속에 광명이 있음(柳暗花明又一村)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1]
진정으로 우리가 이 항목을 하려면 우리는 더 많이 마음을 써야 하고 이는 우리 수련의 길이고 대충할 수 없다. 이 길은 오로지 바르게 걸어야 만이 좋은 작용을 일으킬 수 있고 비로소 문제가 나타나지 않거나 문제가 감소된다. 이 과정이 우리를 단련하는 과정이고 또한 우리를 성취하는 과정이다.
여러 해 나는 일부 자료점의 수련생들을 접촉했다. ‘자료를 만들지 않는 수련생은 자료점 수련생에 의지하고 자료점 수련생은 기술수련생에 의지하는’ 것 외에 자료를 만드는 일부 수련생들에게 아직도 다른 부정확한 현상이 존재함을 발견했다.
1. 머리를 쓰지 않고 마음을 쓰지 않는다. 일부 수련생들은 컴퓨터를 이용하여 인터넷에 접속하고 또한 자료를 인쇄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른 수련생에 의지하여 기초를 다지고 수리해야 했다. 컴퓨터 시스템은 완성품으로 설치하여 남이 어떤 것을 설치해주면 계속 그것이었고 컴퓨터를 끄고 켜고 온라인에 접속하여 다운받고 글을 보는 것만 할 줄 안다. 다른 것은 자신이 전혀 심도있게 접하지 않고 조심스럽고 어디도 감히 건드리지 못하고 심지어 위치마저 이동하지 않는다. 마치 남의 컴퓨터를 쓰는 것 같이 늘 ‘고장날까 봐 두렵다’를 구실로 삼는데 일부는 컴퓨터를 10년 넘게 사용하지만, 전원 코드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프린터는 남을 통해 완성품을 사고 고장나면 남들이 수리해주는데 프린터를 여러 해 사용하면서 간단한 수리도 스스로 하지 못하고 심지어 드라이버도 설치할 줄 모르고 어떠한 문제가 생겨도 모두 사람을 찾았다. 모든 것은 완성된 것만 얻으려고 했는데 정말로 사람을 찾기 힘들면 버리고 새것으로 교체했다. 손에 있는 설명서도 보지 않고 아무튼 자신이 스스로 머리를 쓰고 스스로 만져보려고 하지 않는다. 한 기술수련생이 말한 것이 생각나는데, 자료를 만드는 한 수련생이 기계에 조금만 고장이 생겨도 사람을 찾아야 하고 당신이 가서 고쳐주지 않으면 그녀는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고 했다. 사람을 구하는 것이 지체되지 않게 하려고 기술수련생은 아주 먼 곳에서 한번 또 한번 달려가야 했고 아주 방법이 없어했다.
2. 함부로 한다. 우리 자료점 인쇄량은 늘 외부의 인쇄가게보다 더 크다. 아주 많은 사람이 기계의 감당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한번 일하면 연속 몇 시간을 일하는데 과도하게 소모했고 과도하게 마모되고 기계가 과열되고 프린터가 과열되고 잉크가 모자라는 등등 현상이 발생했다. 기계 자체가 충분한 조정시간을 갖지 못하여 결과 아주 큰 고장이 났고 그 후로는 아예 멈췄다. 한 수련생이 말하는데, 전에 기계 한 대를 쉬지 않고 끊임없이 온종일 돌렸더니 결국 고장났다고 한다. 비록 우리가 초상적이지만 기계는 단지 플라스틱이고 신체(神體)가 아니다. 그것이 비록 영성이 더 있더라도 신선이 아니고 그것은 한계가 있는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근로자’로 봐야지 ‘운동원’으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 안정적으로 가동되면 되고 그것의 한계에 도전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영체라고 말하면 자비의 각도에서도 마땅히 그것을 봐주고 선하게 대하고 그것의 운행 규율을 존중해주어야 한다. 정확하게 사용하고 수호해야 그것은 다치지 않고 그것은 최대의 작용을 발휘할 수 있다.
3. 낡은 것을 고수한다. 일부 수련생들은 기계 한 대를 십여 년간 사용하여 부품 마모가 매우 엄중한데 쩍 하면 문제가 생긴다. 오늘은 여기가 고장나고 내일은 저기가 고장나고 색상 효과도 좋지 않지만, 여전히 새것으로 바꾸지 않는다. 또한, 좋은 기계 한 대를 준비하지 않고 남들이 준다고 해도 받지 않고 더욱이 사지도 않는다. 사실 그도 돈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그다음 한번 또 한번 기술수련생을 찾아서 수리하는데 좋은 것이 있어도 사용하지 않고 고장난 것을 사용하는데 더 고장이 나서 아예 사용하지 못해서 다시 바꾸고자 한다. 인쇄 효과가 좋지 않아도 상관하지 않는데 늘 무슨 “기계도 생명이고 모두 법을 위해 온 것이다”라고 하면서 버리기 아까워하고 바꾸기도 아까워한다. 사실 모두 사람의 정이다. 어느 기계가 생명이 아닌가? 어느 기계가 법을 위해 오지 않았는가? 신진대사, 새것과 낡은 것이 교체되는 것 또한 한 개의 규율이고 자신의 감정만 고려한다. 수련인은 마땅히 남을 위해 생각해야 함을 생각하지 않는다. 기계가 마음속에서 차지하는 분량이 너무 큰데, 기계를 사용하는 근본 목적은 무엇인가? 어느 것이 중요하고 어느 것이 중요하지 않는가!
4. 낭비한다. 일부 수련생은 무엇을 하겠다고 말하면서 한 무더기 기계, 설비 공구를 가져온다. 도대체 사용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상관하지 않고 계산도 하지 않는다. 어느 날 마음이 불안정하고 환경이 안전하지 않거나 혹은 많아서 방해되고 자리를 차지한다고 여기면 다시 수련생을 찾아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거나 남에게 준다. 결과, 남에게 번거로움과 부담을 조성하거나 혹은 대법 자원의 낭비를 조성했다. 아울러 이런 수련생들의 일부는 경제조건이 좋아서 스스로 구매하는 이가 있고 일부는 늘 다른 수련생들의 돈을 사용한다. 또 일부 수련생들은 기계 인쇄 효과가 조금만 좋지 않거나 낡았다고 여기거나 혹은 자신이 잘 수리하지 않아서 고장이 생기면 여전히 복구 가능하여 사용할 수 있지만, 오히려 구실을 찾아서 버린다. 그리고 수련생들에게 돈을 요구하여 새로운 것을 구매한다. 마음속으로 어차피 돈이 있고 어차피 자신의 돈을 쓰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이렇게 제멋대로 낭비한다.
5. 엄숙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는다. 밍후이왕에서 발표한 진상자료는 갈수록 정규적이고 갈수록 아름답고 진짜로 원본에 따라 인쇄하면 아주 괜찮다. 그러나 지금까지 일부 지역에서는 책자가 여전히 흑백이고, 책자 표지가 보통용지이다. 일부는 비록 동판지이지만 테두리 없는 것을 사용하지 않았고 일부는 색상이 엄중하게 모자라거나 혹은 색상이 바르지 않고 일부는 잉크 흔적이 많고 일부는 안의 내용에도 모두 엄중하게 색상이 모자라서 아주 보기 싫다. 한 개 두 개뿐만 아니라 한번 인쇄하면 바로 한 무더기인데 장기간 이렇게 행하고 있다.
연말의 진상달력은 본래 아주 정교하고 아름답게 설계되었다. 시간과 수량을 다그치려고 많은 수련생이 모두 넓은 페이지로 인쇄했지만, 사진이 많아서 기계가 선을 길게 인쇄하거나 색이 끊어져 사진 효과는 크게 감소되었다. 그러나 일부 수련생들은 이렇게 되어도 사용했고 대량의 불합격 달력을 인쇄했는데 달력을 배포하는 수련생들을 아주 난처하게 만들었다. 배포하자니 질이 너무나 차하고, 배포하지 않자니 남들이 이미 인쇄해냈다.
일부 수련생들은 자료를 인쇄할 때 검사하지 않고 일부는 검사하더라도 대충했다. 한두 개가 차한 것은 상관하지 않고 문제가 생겨도 찾지 않고 해결하지 않는다. 전에 수련생이 가져온 진상화폐를 보았는데 문자를 인쇄한 위치가 비뚠 것이 여러 장 있었다. 처음 이야기하자 알았지만, 다음에 또 이러했다. 진상화폐 내용을 스스로 편집한다고 해서 절대로 안 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일부는 어순이 통하지 않았고 진상을 알리는 주선을 이탈했으며 문자 위치가 바르지 않았지만, 여전히 스스로는 느낌이 좋았고 대량으로 제작했다. 밍후이왕의 판본과 내용 발표가 더 많아도 보지도 않고 스스로 제멋대로 만든다. 돈의 판면에는 모두 구역질나는 오물이 있어도 또 빈 곳을 찾아서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3퇴하여 평안을 보존하세요”를 적었다. 진상알림도 마땅히 선택적으로 사용하여 대법의 존엄을 체현해야 한다!
이런 수련생들도 보기에는 아주 수고스럽다. 오히려 시종 ‘행함’의 층면에 머물러 있으나 ‘잘 하자’의 자태가 없다. 더욱이 ‘반드시 잘 하겠다’는 의지가 없다. 생각해보라, 우리가 진상자료를 해냈을 때 다른 공간에는 중생을 구도하는 바른 신(正神)이 올라간다. 신성한 에너지와 빛발을 뿜는데, 이렇게 엄숙한 일을 오히려 속인 일처럼 대하다니, 자아와 제멋대로, 대충하는 것이 마땅한 것인가?
6. 안일하다. 자료점의 수련생들이 할 수 있다고 보지 말라. 그러나 잘 하려면 쉽지 않고 마음을 많이 써야 하고 머리를 더 써야 하고 더 헌신해야 하는데 많은 수련생이 마침 이러하지 못하다. 나 자신을 놓고 말하면 나는 요구가 높은 것을 알고 무엇이 높은 표준임을 안다. 나는 마땅히 어떤 정도에 도달해야 하는지를 알지만 마침 안일함으로 더 진취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헌신하려고 하지 않았다. 나로 하여금 더 잘함에 도달하지 못하게 했고 더욱 높은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게 했다. 우선 자신의 수련상태가 보장되어야 한다. 매일 법공부, 연공은 일정한 시간이 있어야 하고 질을 보장해야 한다. 발정념은 반드시 필요한 것인데 나는 이치대로 하지 못했다. 일이 많아지면 법공부할 새도 없고 피곤하면 연공도 하지 못했다. 환경이 긴장되면 상태가 좋지 못했다. 돌격하는 식으로 연속 발정념했고 별일 없으면 게을러져서 발정념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었다.
기술을 배움에 있어 사실 나는 일정한 잠재력과 조건이 있음을 나 자신도 알고 있다. 그러나 게으름을 피우고 두려워하고, 지체하고, 정체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컴퓨터 시스템에 대해 나는 배운 적도 있고 해본 적도 있다. 그러나 약간 맛보기였고 심도있게 연구하지 않아서 완전하게 장악하지 못했다. 사용해야 하면 저돌적으로 한번 배우고 사용할 필요가 없으면 머리 뒷전에 버리고 반 정도 아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많은 수련생도 그러하다. 컴퓨터, 프린터를 손에 얻으면 사용할 줄만 알고 오히려 그것들의 성능과 수리 상식을 더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어떤 시기에 문제가 나타나면 다시 보자는 식인데 증상이 없으면 계속 머리를 안 쓰고 사용만 한다. 또 일부 자료점의 수련생들은 밍후이왕에 접속하지 않고 남들의 전달에 의지한다. 수련생들이 와서 수리해줄 때도 더 많이 보지 않고 더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으로 하여금 이 방면의 전문 능력을 다소 승화시키지 않는다. 주동적으로 자습하는 의식이 모자라고 현 상황에 안주하고 가장 낮은 표준에 만족하는 심태이다.
이상은 단지 예를 든 현상들이고 물론 배후에는 모두 사람마음이 지배하고 있는데 우리는 자세히 찾아야 한다. 일을 하는 것은 수련이 아니고 오히려 수련에 이용할 수 있다. 비록 속인이지만 정상적인 인류사회의 어떠한 한 개 업종과 계층에서도 진정으로 성공하고 진정으로 성과를 이룬 이들은 모두 양호한 소질을 지니고 있다. 심리 소양, 전문성 소양, 도덕 소양을 포함하는데 우리는 더욱 이러해야 하지 않겠는가!
사부님께서 최신 설법에서 말씀하셨다. “사실 어찌 대법제자의 수련뿐이겠는가. 나는 여러분에게 또 하나의 천기를 들려주겠다. 사실 전체사회가 모두 수련이다. 이것을 나는 이전에 당신들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왜 션윈의 한 회 공연으로 아주 많은 생명이 사람의 신체에서 나와 원만할 수 있는가? 사실 사람은 사회 중에서 바로 수련하고 있는 것으로, 당시 창세 초기에 바로 이렇게 배치했다. 사람은 이곳에서 고생을 겪을 것이고 부동한 각양각색의 마난(魔難)을 당하게 되는데, 그중에서 당신이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부딪힌 이 일체를 대하는지, 정면(正面)으로 가는지 아니면 부면(負面)으로 가는지 하는 것이다. 부면으로 가면 당신은 바로 타락(堕落)하는 것이고, 정면으로 가고 정면으로 인식하며, 동시에 신(神)의 도움을 구하거나, 혹은 마음속에서 자신의 바른 믿음을 견정히 하면, 그것이 바로 수련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럼 대법제자로서 더욱 마땅히 당신들의 일을 잘해야 하는데,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일체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2]
우리가 밍후이왕, 씬탕런, 따지웬 등 매체를 볼 때 우리는 이런 매체의 진보와 발전을 보았고 매체를 하는 수련생들의 성숙과 성공을 보았다. 우리 대륙 자료점에서 제작한 자료는 그러한 매체가 해낸 코너와 프로그램과 같이 대법제자의 정체 제고와 구도중생에 거대한 작용을 발휘하는데 단지 형식이 다를 뿐이다. 생각해보라, 우리는 더욱 완벽하고 더욱 성숙되게 더 큰 성공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물론 객관적으로 말하면 매 개인의 정황이 다르고 모두 똑같은 수준에 도달할 수 없다. 모두 일정한 정도에 도달하면 어떠한 항목을 하든지 어떠한 환경에 있든지 모두 마음을 얼마나 쓰고 노력을 얼마나 했는지의 문제가 있다. 진정으로 우리가 전력을 다했다면, 비록 기술상에서 고수가 되지 못하거나 수량에서도 가장 많은 양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항목에서 오히려 자신이 해낼 수 있는 가장 좋은 정도로 해내면 수련에서도 자신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사명에 부끄럽지 않고 중생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데 이것은 이미 가장 큰 성공을 이룬 것이 아닌가?
개인의 소견인데, 부족한 부분은 자비롭게 시정해주기 바란다.
주:
[1] 리훙쯔 (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경문: ‘따지웬 씬탕런 매체 법회 설법’
원문발표: 2021년 6월 3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6/30/42755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