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미국 뉴욕 대법제자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1996년에 법을 얻었고 2008년에 미국에 와 공부했습니다. 대학 재학 중, 현지 수련생의 소개로 매체에 참여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거의 십 년이 지났습니다. 아래는 언론 매체에서 일하면서 일부 수련에서 제고한 일부 경험을 교류하려고 생각합니다.
대학 시절 3, 4학년 때 저는 미국 많은 도시에서의 션윈 공연 보도에 참여했습니다. 나중에는 일부 뉴스 보도 작업에도 참여했습니다. 기억에 남는 한 가지는 중공 당국의 파룬궁 박해 중지를 호소하는 행사에서 중국 학자 한 명을 취재할 때 취재하는 대화 과정에서 그를 위해 삼퇴를 도왔습니다. 그때 언론에서 일하면 중생을 구할 기회가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남부의 한 소도시로 가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이 기간 계속 주말에는 시간을 내어 매체의 보도를 도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숨 가쁜 학업 공부와 법을 실증하고 사람을 구도하는 일에서의 균형점을 찾기가 그리 쉽지 않음을 빨리 발견했습니다. 그때, 평소에는 수업 때문에 밤을 새우고 주말에는 다른 도시로 날아가 보도에 참여하며 밤을 새우기 일쑤였습니다. 게다가 그 소도시에는 수련생이 없어 시간이 지날수록 좋은 수련환경이 없음을 느꼈습니다. 이때 수련생이 제게 매체에 전업으로 들어가라고 권했고 저는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2014년 저는 학교를 떠나 워싱턴DC에 있는 에포크타임스에서 전업 기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기자 일은 주로 밖에 나가 각종 행사에 참여하고 취재하며 사진 촬영하고 기사를 작성했습니다. 학교 다닐 때 기사작성과 사진 촬영은 저의 취미였습니다. 기자는 싱크 탱크 특강, 각종 전시회 등에 매일 참석해 식견을 넓히고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하며 사회 각 계층 사람들을 만나고 대법을 실증하는 활동도 직접 보도할 수 있었습니다. 기사작성 때문에 늘 밤을 새웠지만 저는 힘들다는 느낌보다 하는 일이 모두 특별한 의미가 있고 또 재미있었기에 매체에서 가장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에포크타임스에 들어가다
나중에 우연히 만난 인연으로 저는 2017년 뉴욕 본사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새로운 수련 여정이 시작됐다고 느껴졌습니다. 자신의 예전의 장기와 흥미를 느끼던 일에서 벗어나야 했습니다. 뉴욕 본사 업무의 필요로 저는 몇 차례 부서를 이동했지만, 매번 각종 원인으로 교체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이전 팀이 재편됐거나 어느 부서가 사람의 더 부족한가에 따라 재배치 되는 등이었습니다. 처음엔 마음이 움직이기도 했지만, 수련인이 뭘 하든 뭘 하지 않든 모두 사부님의 배치이며 수련의 길이라 생각했기에 저는 그것을 모두 하나의 수련하여 제고할 기회로 삼았습니다.
2018년 말 제가 속한 팀은 또 재편되었습니다. 우연히 일치하는 기회에 지금의 팀장에 의해 막 설립된 에포크타임스 구독 부서에 배치되었습니다. 부서가 막 설립되었기에 사람도 돈도 없었습니다. 사무실에 근무하는 사람은 전체 부서를 통틀어 10명도 안 되었습니다. 맨 앞의 보급부터 후기 고객 유치까지 모두 스스로 해야 했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을 지켜봤고 저도 프로젝트와 함께 성장해 늘 심성을 제고할 기회가 많음을 인식했습니다. 특히 최근 몇 개월 동안 저는 수련에서 비교적 큰 돌파가 있었습니다.
팀장은 처음부터 제게 업무 중점을 고객서비스 부문의 협조에 두라고 지시했습니다. 약 2년 전 고객서비스 부서에는 몇 명밖에 없었는데 그때 정기구독자 피드백에 대한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았습니다. 많은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고 답할지를 모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니면 어려운 문제 하나를 해결하고 나면 또 몇 가지 까다로운 문제가 나타났습니다. 한동안 업무가 늘었는데도 일손이 별로 늘지 않아 늘 밤늦게까지 연장근무를 했고 늦은 밤까지 강행군하는 게 일상화되었습니다. 머릿속은 온통 고객들의 각종 문제와 불평이었습니다. 스트레스 때문에 일하면서 눈물도 흘렸으며 막막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정념이 비교적 강했습니다. 제가 더 많은 대가를 치르면 그런 구독자들이 구원을 받기 위한 거라 여겼고 그렇게 생각만 해도 피곤하지 않았습니다. 까다로운 문제에 봉착했을 때 마음속으로 묵묵히 사부님께 간청했으며 결국은 모두 잘 처리되었습니다.
이후 구독량이 갈수록 많아지고 회사 제품의 업데이트와 업그레이드로 우리가 처리할 문제가 더 많아지고 복잡해졌습니다. 이 기간에 원격으로 일하는 많은 수련생도 팀에 합류했습니다. 수련생들이 모두 서로 다른 지역과 다른 시간대에 있으니 협조하는 난도가 더 커졌습니다. 그때는 고객센터 전화가 새벽부터 밤까지 걸려와 부담감이 아주 컸습니다. 수련생들은 늘 시간이 없어 발정념을 하지 못했고 법공부와 연공도 보장할 수 없었습니다. 한동안 다른 공간의 교란이 매우 큰 것을 느꼈고 팀의 일부 수련생은 가정과 신체상의 마난에 부딪쳤습니다.
수련생들이 모두 같은 시간대에 있는 게 아니다 보니 단체 법공부와 교류를 조직하려 했으나 시간대를 맞추기가 어려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팀의 전체 수련 상태를 반드시 강화해야 함을 의식했습니다. 수련생들에게 병업 상태가 나타난 것은 다른 공간의 사악한 교란 요소가 있음을, 때마침 다른 수련생이 일깨워주었습니다. 저는 매주 월요일 밤 30분간 함께 발정념하기를 팀원들에게 요청했습니다. 두 번째로 단체 발정념하고 난 후, 한 수련생은 발정념할 때 사부님께서 오셔서 흐뭇하게 제자들을 바라보고 계셨다고 기뻐서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저는 격려를 받아 매주 팀 내 교류와 발정념을 견지해나가야 함을 인식했습니다. 그리하여 매주 단체 발정념과 교류의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물론 참가하는 인원수는 차이가 있었으나 그중에서 많은 이로움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사무실에서 매주 두 차례의 단체 법공부 1시간과 2장 공법 포륜(抱輪) 1시간을 조직하였는데 수련생들도 아주 좋다고 여겼습니다.
에포크타임스가 신속하게 발전함에 따라 정기구독자 수도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고객서비스센터 팀도 점점 확대해 갈수록 많은 수련생이 유입되었고 서서히 스스로 전담 관리팀이 결성되었습니다. 몇 사람으로 시작되어 10여 명, 몇십 명, 나아가 백여 명에 육박했습니다. 고객서비스 관리팀은 전화를 받거나 메일을 돌리는 것처럼 쉬워 보이지만 사이사이에 많은 부분과 섬세함이 있었습니다. 그중 어떤 일환이라도 전체의 고객서비스 품질문제와 연계되기에 고객서비스를 잘하는 것은 꼼꼼하고 방대한 공정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협조하는 가운데서 사(私)에서 걸어 나오다
팀이 확대되고 새로운 동료들이 합류하게 되면서, 특히 팀 내에서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과 언어·나이·개성·같지 않은 의사소통과 행동 습관 때문에 협조의 난도가 점차 높아지고 심성과 용량에 대한 요구가 갈수록 높아짐을 느꼈습니다.
수련생들과 일하고 호흡을 맞추는 과정에서 저는 자신의 숨겨진 집착이 모두 여지없이 드러나는 걸 느꼈습니다. 예전에는 제가 다른 사람을 맞춰야 할 때 제가 잘 맞춰준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조율하는 역할을 맡으니 제가 이렇게 강압적이고 심각한 당(黨) 문화·질투·과시·쟁투·원망·남을 강요하고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함부로 말을 못 하게 하는 마음 등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한때 수련생들과 심성 마찰이 잦았는데 마음속으로 잘못됨을 알았지만, 모순이 생기면 심성을 지키지 못했고 늘 자신이 억울하다고 느꼈습니다. 이미 제가 이렇게 고생하고 힘든데 왜 다른 사람들은 저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걸까요? 심지어 수련생에게 겉으로는 사과하고 속으로는 제가 이렇게까지 겸손하게 사과했으니 상대방도 안으로 찾아 제게 사과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품고 수련생과의 모순과 간격을 진정하게 화해할 수 있을까 하는 건 가히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수련생이 제가 과격하다고 생각하는 언어로 제 잘못과 당 문화를 직접 지적했을 때 저는 곧 폭발할 것 같았고 심리적으로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했으며 오히려 수련생에 대해 아주 큰 원한만 생겼습니다.
그때 저는 관을 넘지 못했고 수련하여 제고되어 올라오지 못했으며 주위 팀원과 팀장과도 간격이 생겼습니다. 고객서비스 업무 자체의 압력과 날마다 들은 것은 전부 부정적인 피드백이다 보니 저는 의기소침한 상태에 빠져 수련자로서 해야 하는 세 가지 일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의기소침한 상태는 수련에서 한 가지 마음의 매듭을 건드렸습니다. 그간의 수련에서 제게는 하나의 아주 강한 사상 업력이 있었습니다. 그것들은 필사적으로 제게 자신의 수련에 대한 자신감을 잃게 하고 사부님의 구도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느끼게 했으며 심지어 자신의 생명 내원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게 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부모님과 함께 수련했기에 줄곧 사부님께서 제게 가장 좋은 수련환경을 배치해주셨고 정진하는 가족 수련생들이 줄곧 저를 돕도록 배치했다고 느꼈습니다. 꿈속과 수련 과정에서 사부님께선 줄곧 여러 가지 점화와 도움을 주셨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자신의 수련을 잘하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제가 수련한 게 너무 차하고 사부님의 자비로우신 구도를 저버렸으며 대법과 수련의 기연을 소중히 여기지 못했고, 수련하는 길에서 끊임없이 실수를 저질렀다고 스스로 느꼈습니다.
수련 상태가 좋을 때는 저는 이런 염두를 억제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사실 자신의 수련에 대한 자신감도 신사신법(信師信法)에서 비롯됨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부님이 계시고 이렇게 큰 법이 있기에 스승님께선 반드시 저를 제도하여 성취시킬 수 있다고 응당 믿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너무 잘못했거나 장기간 관을 넘지 못할 때는 그 사상업이 밖으로 튀어나왔는데 그럴 때 저는 칠흑 같은 물밑에서 허우적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기간에는 매일 아침 출근할 때마다 아주 큰 용기가 필요했고 출근할 때마다 하나의 고민이었으며 이성적으로는 제가 관을 넘는 것이므로 견지해야 했지만, 정신적으로는 한계에 다다른 느낌이었습니다. 나중에 정신적으로 매우 고통스럽고 업무상 스트레스와 구독자의 각종 불만과 불평에 직면할 때, 저는 심장이 하나로 뒤엉킨 것 같았고 일종의 호흡 곤란 증상을 느꼈습니다.
이런 고통 속에서 저는 그래도 한 가닥의 이성을 유지했습니다. 어쨌든 매일 출근하는 걸 견지하자고 스스로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수련인의 환경이 제게 도움을 주고 이 단체의 환경을 잃으면 제 수련 상태가 더 나빠질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일하는 환경에 오면 몸을 짓누르던 그런 물질이 줄어드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구세력의 이런 겹겹이 틀어막는 방법을 돌파하려고 결심했고 내심 깊은 곳에서 저는 이런 좋지 않은 것들이 모두 진정한 자신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늘 사부님의 이 한 단락의 법을 생각했습니다. “사실 대법과 대법제자의 정념에 부합되지 않는 일체 것들은 모두 구세력이 참여하여 조성한 것으로, 자신의 바르지 않은 일체 요소를 포함하는데, 이것이 바로 왜 내가 발정념을 대법제자의 세 가지 큰 일 중의 하나로 했는가 하는 이유이다.”[1] 저는 구세력이 제 의지와 수련의 신심을 무너뜨리려 한다는 것을 알았고 구세력의 뜻대로 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왜 수련 상태가 갑자기 여지없이 나빠졌는지 돌이켜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일이 너무 바빴고 수련의 가장 근본적인 법공부, 발정념을 느슨하게 했음을 인식했습니다. 이것이 사실 가장 근본적인 문제였습니다. 마침내 수년간 수련했기에 저는 마음을 조용히 하여 법공부하고 발정념을 많이 하면 넘지 못할 관과 난이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될 수 있으면 아침 단체 법공부에 참가하도록 자신에게 요구했고 평소에도 스스로 법공부와 발정념을 강화했습니다.
최근 2년간 밍후이왕에는 수련생들이 ‘전법륜’을 외운 경험과 심득을 많이 발표된 것을 보았습니다. 저도 격려를 받아 다시 법을 외우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어려움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고 일이 너무 바빠 정상적인 법공부도 보장하지 못하는데 라고 생각했지만, 그냥 평소의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외울 수 있는 만큼 외우고 한 단락을 외울 수 있는 것도 큰 소득으로 생각했습니다. 평소 지하철을 탈 때, 길을 걸을 때, 기다릴 때 늘 ‘전법륜’을 외웠습니다. 물론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며 외웠지만 늘 이전에 보지 못했던 법리를 느낄 수 있었고 수련과 제고에 아주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자신도 모르게 ‘전법륜’을 거의 다 외우게 되었습니다.
이 한 단락 수련 과정에서 법을 외운 것은 지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법을 외우는 과정에서 사부님께선 수많은 마음의 매듭을 풀어주신 것을 느꼈습니다. 예를 들면 자신의 아주 강한 질투심이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이 집착심은 저와 수련생 사이에 간격을 조성하고 진정한 수련인의 선량함과 자비로 주위 사람과 일을 대할 수 없게 했습니다. 비록 인식했지만, 이 질투심을 버리기가 아주 어려웠습니다. 때로는 일부 버린 것 같았으나 이 마음은 늘 없는 곳이 없는 것 같아 몹시 괴로웠습니다. ‘왜 이 마음이 이렇게 강할까? 어떻게 하면 버릴 수 있을까? 왜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일이 있을 때 나는 마음에 우러나 기뻐하지 않고 심리적으로 평형을 이루지 못할까?’
어느 날 저는 길을 걸으면서 법을 외웠습니다. ‘전법륜-제7강 질투심’을 외우다가 갑자기 사부님의 이 한 단락 법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두 가지 부동(不同)한 관념은 부동한 효과를 낳을 것이다. 그것은 사람의 질투심을 생기게 할 수 있는데,”[2] 이 부분을 외울 때 저는 ‘관념’이라는 두 글자에 눈을 고정했습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바로 관념이 사람에게 질투심이 생기게 한 것이었습니다.
일부 잘못된 관념이 장애를 조성하고 있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 질투심을 따라 그 배후의 관념을 깊게 파보았습니다. 이 질투심은 바로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뛰어난 걸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깊은 내막은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려서부터 당 문화의 주입 속에서 형성된 일종 약육강식, 투쟁하여 승리하려는 심리였습니다. 당 문화의 주입 속에서 강자만 생존하고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으며 약자는 모두 가엾고 사회에서 생존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이 질투심을 제거하려면 우선 이 잘못된 관념부터 바로잡아야 함을 인식했습니다. 왜 다른 사람보다 강해야만 하나요? 사람의 일생은 정해진 것이고 사부님의 배치는 모두 가장 좋은 것입니다. 제가 응당 해야 할 일을 잘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확 트인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후로 질투심은 버리기가 아주 쉬웠습니다. 나오기만 하면 저는 자신이 아님을 똑똑히 구분하고 사상 속에서 그것을 제거해 버렸습니다.
이후 저는 자신의 수련에서의 많은 문제를 알게 되었습니다. 모두 일부 잘못된 관념을 고수(固守)하면서 스스로 인식하지 못해서 조성된 것이었습니다. 저는 근본적으로 이런 관념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끊임없이 법공부하고 안으로 향해 찾으면서 자신의 수련에서 하나의 아주 근본적인 문제를 인식했습니다. 바로 자신의 수련 동기와 기점이 위사(爲私)의 기초에서 세워졌던 것이었습니다. 이 한 점을 인식하고 나서 저는 자신의 전반 수련의 근본이 모두 충격받았음을 느꼈습니다. 물론 이렇게 오랫동안 법공부하면서 사부님께선 법 속에서 우리에게 위타(爲他)의 생명으로 되고 일을 할 때 다른 사람을 생각하라고 요구하셨습니다.
그 며칠간 저는 자신의 수련이 어디에 걸린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끊임없이 위사와 위타의 문제를 생각했습니다. 법리에서 진정으로 알고 제고해야만 저는 이 관을 넘을 수 있었기에 사부님께 마음속으로 점화시켜주시길 묵묵히 청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이 문제에 뒤엉키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는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부님의 요구이므로 나는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하면 되는 것이다. 우주 속의 하나의 미세한 생명으로, 우주 특성 ‘진선인(真·善·忍)’이 만든 생명으로, 나는 대법에 동화하고 우주 특성에 동화하겠다.”
제가 ‘무조건 대법에 동화하겠다’라는 이 일념이 나올 때 제 생명의 본질과 전반 수련 상태는 해일이 인 것처럼 근본적인 변화가 나타난 것을 저는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저는 마침내 이후의 길은 어떻게 가야 하고 어떻게 사(私)에서 걸어 나와 진정하게 남을 위하고 진정으로 우주 대법에 동화하는 하나의 생명으로 될 것인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사부님께선 말씀하셨습니다. “끊임없이 수련하고, 책을 보며, 연공하는 과정을 거쳐 점차 진정하게 법 중에서 법을 인식하는 데 도달할 수 있다. 당신은 자신에게 높은 요구가 있다면 되도록 그러한 좋지 못한 사상과 당신이 집착하는 것을 억제해야 하며 당신은 되도록 그것을 담담히 내려놓고 배제해야 한다. 당신이 도달할 수 있는 표준 그 한 부분에 당신이 1초라도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을 고정(定)해 준다. 바로 이처럼 끊임없이, 끊임없이 표면을 향해 돌파하고 있다. 최후에 전부 다 돌파되었다면 최후 한 층이 부서질 때 당신은 당신의 애초의 그 사상·생각이 완전히 아님을 발견할 것이며, 당신의 사유방식도 본래와 같지 않음을 발견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당신이고, 진정한 본성이다. 그러나 당신이 지금 내려놓지 못하고 생각하는 이 일체의 일체는 모두 후천적으로 형성된 관념으로 당신을 뒤엉키게 하고 있다.”[3]
사부님께서 이 단락의 설법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런 내적인 개변이 발생한 후 제 전반 사유방식과 사고 방법 그리고 다른 사람과 주위 환경을 대하는 방법은 모두 이전과 천지개벽 같은 변화가 발생했습니다. 이런 사고방식의 변화는 제게 많은 사람의 관념을 모두 근본적으로 바꾸도록 했습니다.
이전에는 수련이 몹시 어렵고 고생스럽다고 늘 느꼈고 종결에 집착하는 생각이 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고통스럽고 힘든 나날은 언젠가는 끝나는 거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자신의 수련이 제 위치에 도달하지 못할 것 같아 걱정했고 수련 시간이 연장된 후 어느 날에 자신이 심성을 지키지 못하거나 견지하지 못해 떨어지지 않을까 몹시 두려웠습니다.
현재 층차에서 인식한 것은 수련은 대법에 동화해야 하며 무조건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련은 그처럼 어렵거나 고통스러운 게 아니고 그렇게 복잡하지도 않은 것입니다. 이전에 관을 넘을 때 이런 생각 때문에 마난 속에 빠져 아주 고통스럽게 느껴졌고 심지어는 자신의 수련이 다른 사람보다 어렵고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감당한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모두 이 사심이 작용한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희로애락과 칠정육욕, 자신의 느낌과 자신의 자아를 첫 자리에 놓으면서 사부님의 요구에 동화하지 못했고 대법에 동화하지 못했으며 수련과 중생을 첫 자리에 놓지 못했습니다.
사부님께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흔히 어떠한 일에 부딪히면 모두 밖을 본다. 당신은 왜 나를 이렇게 대하는가? 마음속에 일종의 공평치 못한 느낌이 들어 자신을 생각하지 않는데, 이것이 모든 생명의 가장 크고 치명적인 장애이다.”[4]
현재 대법에 동화하고 다른 사람을 자아의 위에 놓았을 때 저는 왜 이런 일이 제게 발생하는지, 왜 다른 사람은 이렇게 저를 대하는지에 대해 시간을 할애해 생각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안으로 찾으면서 자신의 잘못과 부족한 점을 보아내고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하는 것에 모든 정력을 무조건 사용했습니다. 제가 제고해야 할 요소가 없다면 제 앞에 그런 일은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전에 사부님의 설법에서 수련 중에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모두 좋은 일이라는 법리를 들었지만, 본질에서 관념을 바꾸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관과 마난을 넘는 것을 관과 마난을 넘는 거로 생각하지 않고 모든 발생한 일을 진일보로 대법에 동화하는 계기로 생각하며 어떤 일이 발생하든 사부님은 모두 그 일을 통해 자신의 수련에서 어떤 부족 점이 있고 어떻게 제고해야 하는가를 알려주며 마음에서 우러나 이런 것은 모두 좋은 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수련생들의 여러 가지 표현을 볼 때 저는 수련생들의 부족한 점을 보지 않았습니다. 모든 수련생의 수련 길은 모두 사부님께서 체계적으로 배치하셨고 수련생의 일부 표현이 제 마음을 건드렸을 때 이것은 제게 표현하여 보여주는 것으로 역으로 제 부족한 점을 돌아볼 수 있게 하는 것임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전처럼 그런 관념과 생각을 가지고 수련생들을 보지 않게 되었고 수련생들의 부족한 점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으며 지금은 수련생들의 장점과 저보다 수련이 잘된 부분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전에 수련생인 어머니가 제게 제대로 수련하지 못하고 법리가 분명하지 못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이렇게 오래 수련했고 수많은 풍파와 큰 고비와 난관을 헤쳐 나왔는데 어떻게 수련할 줄 모르겠냐고 생각했습니다. 근본적인 위사의 관념을 개변한 후에야 저는 비로소 이전에 제대로 알지 못했고 수련을 제대로 하지 못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협조 일을 맡은 수련생으로서 저는 다른 사람에게 협력하고 다른 사람을 성취시켜 그들이 장점을 나타내고 자기 능력의 최대치를 발휘하도록 해야 함을 인식했습니다. 수련생들에 대해 좋지 않은 생각이 나올 때마다 이것은 구세력이 간격을 조성하려는 것임을 인식하고 구세력이 뜻을 이루지 못하게 대대적으로 발정념하여 우리 팀이 정체를 형성하지 못하도록 교란하는 사악한 요소를 제거했습니다.
고객서비스 팀은 몇 사람에서 백여 명으로 늘었고 하루에 백여 건의 고객서비스를 만족하던 데서 수천 명 고객의 요구를 처리할 수 있게 증가했습니다. 모든 것이 수동으로 작동되다가 지금은 자동화로 많은 문제를 해결하여 효율성도 대폭 증가했습니다. 이 가운데는 팀 내 모든 수련생의 무수한 노력과 심혈이 깃들어 있었고 이런 팀에서 일할 수 있었던 건 제게는 아주 큰 행운이었습니다. 또 팀 수련생들이 제게 준 도움과 격려 및 포용에도 고마웠습니다. 팀장 수련생은 팀 내의 젊은 수련생들의 수련에 아주 큰 관심을 기울이고 우수한 법공부와 수련환경을 만들어주었습니다. 아울러 매번 짜증 없이 인내심 있게 교류하여 제 마음의 매듭을 풀어주신 수련생 어머니에게도 고마움을 전하려 합니다.
맺음말
다섯 살부터 수련을 시작하여 벌써 20여 년이 지났다. 견정한 신사신법 속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기적은 아주 많았습니다. 넘어지고 일어나면서 걸어온 수련의 길을 돌이켜보면서 사부님에 대한 감사는 언어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수련을 통해 저는 수련인은 마땅히 자아를 내려놓고 무조건 대법에 동화하며 마음에서 우러나 다른 사람과 중생들을 위해 생각할 때 마음속에는 광명과 자비, 상서로움과 자유로움이 충만하며 이것은 속인의 어떤 향락과 행복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임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부님의 ‘홍음3-조사(助師)’를 수련생들과 공유하려 합니다.
군웅들 홍류(洪流) 중에 집결했는데
계층과 하는 일이 제각기 다르네
대법제자는 정체(整體)이거니
사부의 정법을 도와 사악한 바람을 막아내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푸왠선(副元神) 관련 문장이 일으킨 파동에 관해‘
[2] 리훙쯔 사부님 저서: ‘전법륜’
[3] 리훙쯔 사부님 저서: ‘미국서부법회 설법’
[4] 리훙쯔 사부님 저서: ‘싱가포르법회 설법’
(2021년 국제 온라인 법회)
원문발표: 2021년 6월 19일
문장분류: 해외법회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6/19/42717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