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얼마 전에 나는 어머니 집에서 여동생이 매일 초과근무를 통해 급여가 또 몇천 위안 올랐다는 소식을 들었다. 원래 여동생의 월급은 이미 5천 위안이었고 우리의 이 작은 도시에서는 높은 급여에 속하는 편이었다. 이렇게 되니 여동생은 매달 1만 위안(한화 약 175만 원)에 가까운 수입을 벌었다.
이 ‘좋은 소식’을 듣고 나서 나는 왠지 마음이 은근히 아프고 편치 않았다. 나는 바로 그것, ‘질투심’을 붙잡았다! 나는 또 자신에게 괴로움을 느꼈다. 이렇게 오랜 세월 수련했는데 아직 이렇게 더러운 질투심이 있었고 뜻밖에 자신의 친동생을 질투하기까지 했다.
집에 돌아와서도 내 마음은 아직 진정되지 못했다. 나는 질투심이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기왕 그것이 나와서 날 괴롭게 하는데 그럼 나는 그것을 수련해 제거해 버려야겠다고 생각했고 발정념으로 그것을 해체해 버리려 했다. 그건 내 본성이 아니며 신은 절대 그런 마음을 갖고 있지 않을 것이다. 나는 속으로 ‘사부님, 저는 정말 잘 수련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순간 사부님의 법이 내 뇌리에 들어왔다. “연공인은 확실하고 확실하게 말한다. ‘속인은 속인이 추구하는 것이 있지만, 우리는 추구하지 않고, 속인에게 있는 것을 우리는 귀하게 여기지 않으며, 우리에게 있는 것은 속인이 가지려 해도 가질 수 없다.’ ”[1]
우리 가족 세 명은 지금 매달 수입이 2천 위안(한화 약 35만 원)을 밑돌고 있다. 나는 나 자신에게 묻기를 ‘넌 지금 출근을 못 하고 있고(직장 체계의 변화 때문에) 아울러 곧 정년퇴직할 거야. 만약 지금 직장이 있어 매달 몇만 위안을 준다면 넌 일하러 갈 거야?’ 답변은 ‘일하러 가지 않는다’였다. 나는 또 자신에게 물었다. ‘돈이 네가 꼭 추구하는 거야?’ 답변은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였다. 내 시간과 힘은 수련과 중생 구도에 사용해야 한다. 돈은 속인의 것이고 속인이 추구하는 것이다. 나는 또 자신에게 물었다. ‘기왕 네가 더는 속인의 것을 추구하지 않는데 왜 여동생의 고소득을 질투해?’
이때 나는 자신이 유난히 각성해진 것을 단번에 느꼈는데 여동생에 대한 질투심이 사라졌다. 동시에 여동생에게 자비의 마음이 생겼다. 표면적으로 여동생의 생활 조건은 우월하고 사람이 똘똘했지만, 1999년에 여동생이 대법 책을 몇 장 읽었을 무렵 박해가 시작돼 대법과 스쳐 지나갔는데 매우 안타까웠다. 가족 수련생들이 여러 차례 박해를 받아 여동생에 대한 상처도 매우 커서 아직도 여동생은 내심으로 진상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매일 속세의 가상에 미혹되어 사람이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 이유를 모르는데 여동생은 정말 고생스럽다! 지금 여동생은 비록 또 월급이 올랐지만 매일 10시간 가까이 일하고 노동 강도가 세며 매우 힘들다! 하지만 속인들이 추구하는 것은 흔히 이것밖에 없다.
대법제자로서 우리는 중생에게 자비로워야 한다. 그러니 여동생에게는 내가 더 관심을 두고 대법제자의 선(善)과 대법이 펼쳐주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왕 깨달은 김에 해내야 하므로 나는 이날 동생에게 맛있는 밥을 지어서 갖다 줬고 여동생이 식사를 든든하게 해 초과근무로 인한 피로를 조금이나마 덜 수 있기를 희망했다. 내가 내심으로부터 여동생에게 잘해주자 여동생은 크게 감동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점화에 감사드리며 이번 질투심을 제거한 경험을 통해 수련의 이 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느낌이 든다.
이상은 개인이 최근에 수련하면서 격은 약간의 체험이니 부족한 점은 함께 지적해주시길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서: 전법륜
원문발표: 2021년 6월 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1/6/1/42405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