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헤이룽장 대법제자
[밍후이왕] 딸이 대학을 졸업한 뒤 외지의 한 회사에 취직했다. 나는 가끔 딸을 보러 가는데 갈 때마다 한두 달씩 머물다가 서둘러 집으로 돌아온다. 딸은 항상 나를 극력 만류하거나 심지어 가끔은 눈물을 흘리면서 내가 떠나지 못하게 하지만 나는 그래도 집으로 돌아왔다. 왜냐하면 나는 이곳의 수련환경을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딸이 둘째 아이를 임신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다시 딸네 집에 왔다. 하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줄곧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 우리 집 그곳의 수련생은 사람을 구하는 프로젝트를 막 전개했고 항상 나를 찾아 컴퓨터 시스템을 도와달라는 수련생도 있었는데 그들의 컴퓨터는 관리가 필요한 등등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딸 집에 와서 보니 상황이 엉망인 것을 발견했다. 딸의 출산이 불과 두 달밖에 남지 않아 딸은 심신이 지쳐 정신이 거의 붕괴될 위기에 처했으며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울고불고했다. 딸과 시어머니의 고부 관계도 아주 좋지 않았고 심지어 딸의 시어머니는 사위에게 이혼을 부추기기도 했다. 다행히 두 사람 사이의 관계는 그래도 괜찮아서 두 사람은 마음을 굳게 먹고 이혼하지 않았다. 겉으로는 딸의 시부모가 뒷바라지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암암리에 이간질하고 시비를 걸어 온 집안이 소란스럽고 불안했다. 딸은 나에게 하소연하면서 내가 수련하기 때문에 가정이 여러 차례 박해를 받은 것이라며 원망했고, 이로 인해 아버지까지 박해받아 세상을 떠났다며 억울함과 나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런 갑작스러운 일에 직면해 나는 단번에 멍해졌다. 그 며칠 내 수련 상태는 단번에 슬럼프에 빠지면서 보기 드문 어려움을 느꼈다. 대법을 수련한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나는 이것이 수련되지 않은 집착이 초래했으며 많은 장애를 돌파해야 한다는 것을 깊이 알았다. 이것이 내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더욱이 수련환경을 잃어 내 마음은 더 이상 담담할 수 없어서 연이어 며칠째 법공부와 연공을 정상적으로 할 수 없었고 신체마저 비정상적인 상태가 나타났다.
나는 조용히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하며 안으로 찾으려 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말하는데, 실제로 속인사회에서, 오늘날에 발생된 일체 일들이 모두 대법제자들의 마음에 의해서 촉성(促成)된 것이다. 비록 구세력이 존재해도, 당신들에게 그 마음이 없다면, 그것들은 방법이 없다.”[1]라고 하셨다. 나는 사부님께서 제자를 지켜주고 계시며 나의 심성제고를 점화해주시고 계신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나는 반드시 정념을 확고히 하고 정신을 차리고 분발해서 되도록 빨리 정상으로 회복하고 매일 세 가지 일을 잘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빠르게 마음을 조정하고 안으로 열심히 찾아보니 신체가 금방 정상으로 돌아왔다. 나는 세 가지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이곳은 내 집이 아니고 나는 아이를 돌봐야 하며, 밥을 짓고 장을 봐야 하는 등 외에도 많은 집안일이 있어 나에게서 많은 시간과 노력을 점했다. 나는 수면 시간을 줄여서 세 가지 일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어떻든 나는 절대로 나 자신을 느슨히 해서는 안 되며 나는 정진하고 착실히 수련해 난관을 돌파하기로 결심했다. 내 마음은 대법이 무소불능(無所不能)한 것을 확신하고 법을 외우기로 했다.
나는 그 당시 실제상황에 따라 ‘홍음5’부터 외우기 시작했다. 나는 법을 외울 온전한 시간이 없었기에 길을 걸을 때, 차를 탈 때, 장을 보고 집으로 오는 길에 법을 외울 수밖에 없었다. 법공부 전용 핸드폰을 휴대해서 길을 걸을 때나 차를 탈 때도 법을 외울 수 있었다. 나중에 딸은 가정부를 고용했는데 나는 시간 여유가 많이 생겼다.
내가 막 ‘홍음5’를 외우기 시작할 때, 나는 갑자기 생각이 났는데 이번이 내가 ‘홍음5’를 뜻밖에도 처음 배우는 것이었다. 내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밍후이왕에서 마침 ‘홍음5’가 발표됐을 때 나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며칠이 지나면 바쁘지 않으니, 그 후에 마음을 조용히 하고 잘 배우자라고 생각했었다. 나도 모르게 잊어버렸는데 일하는 데 집착하고 자신을 과시하려는 데 집착하는 마음에 의해 교란받은 것이었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나는 깊은 가책을 느꼈고 사부님의 자비와 감당에 죄송했다.
처음 ‘홍음5’를 한 번 다 외운 후 나는 많은 나쁜 물질들이 제거됐음을 느꼈다. 법공부, 연공 상태가 예전보다 많이 좋아지고 심성도 빠르게 향상됐는데 게다가 그 과정에서 어떤 마음을 수련해서 없앴는지조차 찾을 겨를도 없이 지나간 느낌이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홍음5’ 곳곳에 현대의 변이된 관념, 무신론, 진화론을 언급하시는 것을 보았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 몸에 여전히 존재하는 해독을 사부님께서 제거해주시는 것이었다. 사부님의 설법은 제자의 수련 제고를 지도하시기 위한 것이다. 다만 자신의 오성이 너무 뒤떨어져 현재에 이르러서야 법을 외우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빠르게 수련에서 돌파하고 있다고 느꼈을 때, 딸은 의외로 사람들이 부러울 정도로 극진한 대우를 받는 원래의 회사를 그만두고 스스로 창업하려 했다. 나는 수련의 신기함을 느꼈는데, 왜 그랬을까? 딸의 원래 직장의 일은 온종일 인터넷에 파묻혀 있어야 했는데 그녀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나는 딸의 이직에 대해 매우 찬성했다. 아울러 딸에게도 큰 돌파와 도전이었다. 딸은 예전의 직장 환경과 현실 생활 사이에 큰 차이가 있어서 일정 기간 조정해야만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이것이 ‘홍음5’를 암기해 자신의 대량의 당(黨)문화와 현대적 변이 관념을 깨끗이 제거하는 동시에 공간장을 정화시켰기에 가족도 따라서 이득을 보았고 그래서 딸도 그 더러운 염색 항아리를 떠난 것을 깊이 알고 있다.
법을 외움으로써 나는 더욱 청성하고 이지적으로 변했는데 나는 자신을 과시하고 자신을 실증하려는 집착심에 이끌려 일하는 마음이 팽창됐던 이전의 나 자신을 똑똑히 보았다. 나는 바쁘지 않은 때를 기다려 다시 ‘홍음5’를 배운다는 생각을 감히 했는데 일하는 것을 첫 자리에 놓았던 것이다.
딸 집에서 나는 수기로 진상편지를 써서 수련생을 박해하는 전국 각지의 공안, 검찰, 법원에 보내는 것을 견지했다. 나는 보통 아침 시간을 택해서 진상편지를 쓰는데 매일 한 통씩 써서 일주일에 한 번씩 우편으로 편지를 부쳤다. 때로는 현지 수련생들과 협력해 진상을 알리고 박해를 폭로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도 했다.
딸의 집에 있는 기간 동안 나는 딸에게 대법 진상을 알려주고 ‘정중성명(鄭重聲明)’을 써서 자기가 이전에 대법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을 한 것에 대해 대법 사부님께 사과드리게 했는데 딸은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얼마 되지 않아 딸은 그 ‘정중성명’이 밍후이왕에 발표됐다는 것을 알고는 환하게 웃었다. 이후 딸이 회사를 설립하는 과정도 순조로웠고 개업을 하자마자 수입도 좋았으며 집안 경제상황도 많이 향상됐다.
‘홍음5’를 한 번 외운 후 되돌아 다시 ‘논어’를 암기하고 ‘전법륜’을 통독하는데, 일반적으로 아이를 잠재울 때 두 손으로 아이를 안아야 하기에 다른 일을 할 수 없어 나는 속으로 ‘논어’를 외웠다. 때로는 걸을 때나 차를 탈 때도 외웠으며 당시 내 상태가 어떻든 논어를 외우기만 하면 바로 기분이 아주 좋아지는 것을 느꼈다.
딸의 시부모는 내가 왔기에 할 수 없이 그들 집으로 돌아갔다. 이것은 그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일이었고 뒤에서 “가정부와 외할머니를 오게 해서 우리를 내쫓았다!”며 아들을 책망했다. 사실 나는 여러 차례 집으로 가겠다고 제안했지만 딸과 사위는 내가 가면 사돈 두 사람이 건너와서 살 텐데, 그렇게 되면 살림을 꾸릴 수 없어 어쩌면 이혼으로 갈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딸과 사위는 전혀 이혼 의사가 없었다. 사돈이 그의 아들에게 이혼을 강요하는 이유는 딸이 사기를 쳐 결혼했다는 것이었다. 내 딸은 화가 나 눈물을 흘리면서 나에게 “내가 그렇게 잘해드렸는데도 시부모님은 이렇게 나를 대해주니 정말 마음이 아파요”라고 말했다.
나도 딸의 말을 듣고 매우 분개했는데, 그러나 생각을 바꿔서 나는 수련자이며 속인의 기준으로 일의 좋고 나쁨을 가늠해서는 안 된다고 다시 생각했다. 딸에게 “화내지 말고 시부모님이 돈을 요구하면 돈을 드리고, 집을 요구하면 우리는 집을 주면 된다”고 나는 말했다. 딸도 내 말을 듣고 마음이 편해졌고 딸은 자신의 뜻을 시부모에게 알려드렸다. 그러자 시부모는 딸에게 사과하고 내게도 사과하며 더 이상 돈을 달라는 일을 언급하지 않았다.
이 소동은 이렇게 지나갔다.
나는 안으로 계속 찾았다. 어느 날 문득 내 마음속에 창문이 열린 것 같았다. 이 창문 너머로 나는 예전에 버리기 힘들었던 많은 집착심의 배후에 강대한 자아와 연결된 것을 똑똑히 보았다. 나는 단번에 보았는데, 원래 내가 느꼈던 각종 억울함은 결코 진정한 나 자신이 아니라 그 이기적인 자아가 억울함을 느꼈던 것이었다. 알고 보니 줄곧 그것이 언제나 나를 좌우지하고 나의 일하는 마음, 과시심, 그리고 자신을 실증하려는 마음을 이끌어 한 걸음 한 걸음씩 확대했는데 역시 그 강대한 자아가 내 대뇌를 통제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내가 느꼈던 각종 평형을 이루지 못하는 것, 온갖 고통과 불평불만은 그 강대한 자아의 부림에 의해 느낀 것이었다.
그 후로 나는 이전의 많은 집착해 내려놓지 못하는 것들이 갈수록 옅어지는 것을 느꼈는데 자신이 마치 다른 사람으로 바뀐 것 같았다. 불공정한 대우를 받을 때마다 평온한 마음으로 이치로 말할 수 있었고, 심지어 때로는 태연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점차 딸 집의 전반적인 상황이 양성순환에 들어가면서 더 이상 딸도 시부모가 이전에 한 일에 대해서 따지지 않고 공손하게 대해드렸으며 시부모도 크게 달라졌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서: 각지 설법2-2002년 미국 필라델피아 법회 설법
원문발표: 2021년 5월 2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5/21/42175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