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필라델피아 파룬궁 수련생
[밍후이왕] 2021년 4월 17일, 미국 필라델피아지역 파룬궁(法輪功)수련생들은 미국 독립역사공원(Independence National Historical Park)에 있는 ‘자유의 종’ 광장에서 단체 행사를 하고 1999년 4월 25일 베이징에서 있었던 만 명의 파룬궁 수련생들의 평화 상방(上訪) 및 평화 청원 25주년을 기념했다.
파룬궁 수련생들은 이날 단체 연공, 연설, 가곡, 진상보드, 진상자료 배포 등 다양한 형식으로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에게 파룬따파를 소개하고, 중국공산당이 파룬궁을 잔혹하게 박해하는 진상을 알렸다. 많은 서양인들이 반박해 캠페인에 동참하면서 중공의 폭행을 질타했다.
한편, 25년 전 ‘4.25’ 중난하이 평화 청원에 참가한 적 있는 수 명의 파룬궁 수련생들이 집회현장에서 자신들이 그해에 겪었던 일들과 느낀 점을 이야기하였다.
“‘4.25’는 파룬궁 수련생들의 고상한 풍모와 용기를 전 세계에 보여준 사건”
1999년 4월 당시 칭화대학교 4학년생이었던 황쿠이(黃奎) 씨는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그해 4월 24일 저녁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을 때 한 학우를 만났는데, 그로부터 톈진에서 경찰들이 출동해 사람들을 때리고 파룬궁 수련생들을 체포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고 했다. “그때 저는 매우 놀랐습니다. 그리하여 다음날 국무원 신방판공실(信訪辦)에 민원을 제기하러 가기로 했지요. 이유는 사람은 톈진에서 체포했으나 이 사건은 오직 중앙에서만 해결할 수 있다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가기 전에 그래도 좀 걱정이 됐습니다. 왜냐하면, 중공의 폭정과 ‘6.4 톈안먼 민주화운동에 대한 대학살 과정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당국이 탄압을 하지 않을까, 심지어 총을 쏘지 않을까 등의 걱정으로 마음속에서 여전히 주저하고 있었죠.” 황쿠이 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그러나 책임감에 비롯되어, 그리고 우리 모두는 하나의 대법을 함께 수련하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서 대법을 위해 바른말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고 저는 확고히 길을 나섰습니다.”
황씨는 그날 청원현장의 평온하고 조용하며 온화했던 장면들이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25일 아침, 우리는 공공버스를 타고 중난하이 서쪽에 있는 푸유제(府右街)로 갔습니다. 그곳에는 이미 많은 수련생들이 조용히 서 있었고 장면은 매우 평화로웠습니다. 그날 하루 내내 모두 평화로웠고 폭력이 없었으며 심지어 어떠한 구호나 현수막도 없었습니다. 저녁 9시가 너머 톈진 수련생들이 석방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는 평화적으로 그곳을 떠났습니다. 떠나기 전 땅에 떨어진 종잇조각과 담배꽁초 등 쓰레기들을 모두 주워 갔습니다.”
황씨는 이어 “4.25 청원은 단번에 파룬궁을 세계의 무대로 등장하게 했다”면서 “이는 중공이 집권한 후 가장 큰 한차례 민중들의 평화적인 청원이었고 또 평화적으로 끝난 사건이었습니다. 파룬궁 수련생들의 고상한 풍모와 용기를 체현하였고 세계인들에게 중공의 폭정 하에 민중들이 어떻게 평화적인 방식으로 정부와 소통을 진행했는지의 한 예를 보여주며 하나의 방향성 같은 것을 수립해 주었다고 봅니다”라고 말했다.
“불가사의한 기적이었다”
왕란란(王蘭蘭) 씨는 1998년 3월 칭화대학 재학 당시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다. “그때 수련생들은 교정에서 함께 법공부하고 연공을 하였는데 참 아름다웠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왕씨는 그때를 회상하며, 4월 24일 저녁 학교 안 작은 숲속에서 연공하고 있었는데 다음날 국무원 신방판공실에 청원하러 가는 수련생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도 가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이튿날 아침 일찍, 저는 칭화대학의 한 친구와 함께 공공버스를 타고 신방판공실로 향했습니다. 9시 경 현장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수련생들이 그곳에 도착해 있었고 현장은 매우 평화롭고 아름다웠죠. 처음으로 이렇게 많은 수련생들이 함께 있는 장면을 보았어요. 모두들 조용히 그곳에 서서 결과를 기다렸습니다.”
전반 청원과정은 평화적이고 이성적이었다. 이는 왕씨를 크게 감동시켰다. 그녀는 “만 명이 넘는 파룬궁 수련생들의 4.25 평화청원은 매우 평화적으로 시작되었고 또 아주 평화적으로 끝났습니다. 이는 중공 통치 하에 있는 중국에서는 그야말로 불가사의한 기적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아울러 중국과 세계인들에게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었고 전 세계에 파룬궁을 알린 계기가 되었습니다”라고 감회를 전했다.
“정의와 선량, 바른 믿음과 용기를 모두 체현한 사건”
중의사인 궁친화(龔沁華) 씨는 그 당시 베이징에 거주하고 있었다. 4월 25일 당일 그의 온 가족은 청원하러 갔다.
“그날의 경험은 그 당시에는 별로 특별한 느낌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마치 늘 있었던 하루와 같았으니까요. 매우 담담했죠.” “당시에는 그날이 이토록 깊은 역사적 의의가 있고 세계를 향해 일종의 풍모를 전시하게 되리라고는 의식하지 못했습니다”라고 궁씨는 소감을 밝혔다.
“매년 4.25를 기념할 때마다 저의 인식에는 모두 변화가 생겼습니다. 지금 다시 그날을 돌이켜보면 사실 너무 위대했습니다. 만 명이 넘는 파룬궁 수련생들이 함께 모여 파룬궁을 위해 공정한 말 한마디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 수련을 하지 않는 세상 사람들에게 파룬따파는 무엇임을 알려주는 것이고 이들은 단지 자신을 위한 것뿐이 아님을 알리게 된 것이지요. 수련인들은 보통 자신이 만난 불공정한 대우에 대해서는 크게 변명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누가 나를 좋다고 하든 나쁘다고 하든 모두 나의 수련에 영향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따라서 그것에 대해 내가 설명할 수도 있고 설명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렇게 많은 파룬궁 수련생들이 나섰을 때에는 그들이 단지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선량한 사람들에게 ‘진선인(真·善·忍)’은 좋은 것이며 박해와 금지를 당해서는 안 되는 것임을 알려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말하면, 이는 이분들이 한차례 법을 수호하는 과정이었고 또한 정의와 선량, 바른 믿음과 용기를 집중 체현한 사건이기도 하지요.”
“저는 잘못이 없어요.”
데이터 엔지니어인 커이(珂禕) 씨는 그해 베이징에 가서 청원했을 때 겨우 9살인 초등학교 3학년생이었다.
“4.25는 저에게 특별한 기념일입니다.” 커씨는 그때를 회상하며 말했다. “우리는 베이징에서 좀 멀리 떨어져 있었으므로 저와 어머니 그리고 가족이 베이징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26일 아침이 되었습니다. 경찰에게 한 골목길로 불려갔는데 저는 무서워 울기 시작했지요. 제 기억에 남는 한 장면은 한 수련생이 제가 우는 것을 보더니 저의 손을 잡으며 ‘우리는 잘못이 없단다. 얘야 울지 말거라!’라고 했던 장면이에요. 그사이 많은 해가 지나 저는 이미 성인이 되었고 박해도 22년간 지속되어 왔지만 저는 줄곧 이 한마디를 기억하고 있으며 줄곧 저에게 영향을 주고 있었습니다. ‘저는 잘못이 없어요.’ 이 말이지요. ‘진선인’은 저에게 인생의 길을 바르게 걷도록 늘 이끌어 준 만큼 저 역시 여러분들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알려주고 싶습니다.”
이밖에, 토요일 ‘자유의 종’ 광장 집회에 참석한 여러 명의 서양 파룬궁 수련생들도 ‘4.25’ 청원에 대한 그들의 인식을 이야기하였다.
테리 모스(Terri Morse) 씨는 비행교관이다. 1999년 ‘4.25’ 사건 발생 3개월 전에 수련을 시작했다. 그녀는 “1999년 4월, 만 명이 넘는 파룬궁 수련생들이 평화적으로 청원을 하였지요. 정부에게 합법적이고 자유로운 연공환경을 보장할 것을 요구하면서 말입니다. 22년이 지난 오늘 그들은 여전히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시종일관하게 파룬따파의 수련이념인 ‘진선인’을 준수하고 있는데 이는 영원히 박탈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깊이 감동받았고 수련하면서 대법(大法)의 심오함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모두 와서 알아보았으면 합니다. 누구나 오직 이 진상을 알게 되면 그는 곧 정의감이 솟아오를 것입니다. 저는 박해가 곧 종식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선량함은 영원히 우위를 점하기 때문이지요”라고 말하였다.
인도계 컴퓨터 엔지니어 산토스는 “4.25 청원은 수련의 자유를 박탈당한 파룬궁 수련생들의 용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이 세계의 기본가치이기도 합니다. 파룬궁 수련생들은 ‘진선인’을 수련하고 있습니다. (중공) 정부가 파룬궁을 금지하였을 때, 파룬궁 수련생들은 줄곧 평화적으로 저지하였고 아울러 정부에 진상을 알렸습니다. 이는 파룬궁 수련생들이 진상을 알리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용기 및 두려움 모르는 정신을 체현한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당일 집회 사회자이며 컴퓨터 엔지니어인 알렉스는 “우리는 여기 ‘자유의 종’ 앞에 서 있습니다. 이곳은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자유 탄생지입니다. 저의 좌측에 있는 비석에는 미국의 수정헌법 제1조의 자유와 언론자유 및 뉴스의 자유가 새겨져 있습니다. 어떠한 정부나 기구든지 모두 이것을 금지하거나 법을 어기고 단속할 수 없습니다”라고 발언했다.
“저는 이것이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미국에서 자유를 누리고 있기에 여기에서 자유의 목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국의 파룬궁 수련생들은 오히려 수련을 금지당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표명하고자 함은, 세계 각지의 사람들은 모두 마땅히 이러한 자유를 가져야 하며 이는 미국뿐이 아니라 중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공은 마땅히 신이 인간에게 하사한 신앙과 가치관을 존중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자유를 소중히 여기길 희망합니다. 오늘 우리가 여기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바로 이 ‘자유의 종’으로부터 퍼져나가 줄곧 중국까지 다다를 것입니다”
파룬궁을 지지하는 시민과 관광객들
파룬궁 수련생들의 이날 행사는 세계 각지에서 이곳을 방문한 수많은 관광객들의 관심을 끌었고 많은 이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전 세계적으로 성원을 받으며 진행되고 있는 파룬궁 박해 반대와 중공 해체를 바라는 청원서에 서명을 남겼다.
더스틴 셀러즈는 오하이오주에 거주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다. 그는 처음으로 파룬궁에 관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평소 요가를 배우는데, 오늘 평화적인 파룬궁 연공장면을 보고 아주 좋아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파룬궁에 대한 중공의 박해에 대해 그는 “어떤 형식의 박해든 모두 잘못된 것이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박해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은 하나의 치욕이다. 더욱 한심한 것은 (중공은) 사람들이 진실한 자유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루트를 차단했다는 것이다. 이는 너무 끔찍한 일이다. 사람들은 마땅히 자유롭게 수련하고 자유롭게 신앙을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있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나단은 뉴욕의 가정교사다. 그는 중공이 많은 소수민족 단체를 박해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면서, “파룬궁이 중공의 박해를 받는다는 소식을 듣고 저는 매우 괴로웠습니다. 이 박해를 폭로하는 것은 박해를 중단시키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합니다. 파룬궁에 대한 중공의 박해, 특히 파룬궁 수련생들에 대한 중공의 생체장기적출의 만행에 대해 국제기구는 마땅히 나서서 조사를 진행해야 하며 저지시켜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제미 예이츠 여사는 버지니아주에서 온 우체국 직원이다. 그녀는 “중국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들은 정말 충격적입니다. 사람들이 체포되고 강제로 생체 장기적출을 당하며 아울러 그 장기가 구매를 원하는 사람에게 매매된다는 자체가 너무나 끔찍한 일입니다. 이런 일이 그곳에서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은 기타 어떠한 곳에서도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라고 말했다.
제미의 딸인 16살 다아시 역시 “(박해가) 너무나 끔찍합니다. 저는 중공이 사람들의 신앙을 이유로 박해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오직 수련을 하는 것뿐인데, 이로 인해 (중공에게) 살해당한다는 것이 너무나 믿겨지지가 않습니다. 정말로 너무나 미친 행위에요”라고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원문발표: 2021년 4월 21일
문장분류: 해외소식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4/21/423633.html
영문위치: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21/4/23/19198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