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홍콩 파룬따파 수련생
[밍후이왕]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세요!
내가 베이징에서 근무할 때 동료가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했다. 그는 나를 초대해 사부님의 9일 강의 동영상을 보여줬다. 첫날 강의를 듣고 나는 파룬따파를 수련하기로 결심했다.
사부님과 함께 한 소중한 시간들
사부님께서는 홍콩에서 1995년, 1996년, 그리고 1997년에 강의를 하셨다. 첫 번째 설법은 1995년 5월 13일 란타우섬에서 열렸다. 사부님께서는 1996년에 홍콩에 두 번 오셨다. 첫 번째는 20여 명 소그룹에게 설법하셨고, 두 번째는 7월 15일에 70여 명이 학교에 모였다. 나는 운 좋게 그곳에서 사부님의 설법을 들었다.
나는 복도 쪽에 앉았다. 사부님께서 내 옆을 지나실 때 나는 선 채로 허스(合十)하면서 인사했다. 사부님은 “좋아요”라고 세 번 대답하셨다. 나는 아주 기뻤다.
강의가 끝난 후 모두들 사부님과 단체 사진을 찍고 싶어 했다. 사부님 옆에 섰을 때 나는 사부님의 키가 아주 크다고 생각했다. 나는 발끝으로 섰지만 사부님 어깨에도 미치지 못했다. 사부님께서는 조금 움직이라고 하셨고 나는 사부님 곁으로 이동했다.
사부님께서는 모두와 악수를 하셨다. 사부님이 떠나실 때 나는 운이 좋게도 사부님과 같은 엘리베이터를 탔고 사부님께서는 나와 또 악수하셨다.
나는 수련을 시작한 이후 명예와 승진을 가볍게 여겼다. 사부님께서는 수련기지 건설에 관해서 말씀하셨고 나는 참여하고 싶었다. 사부님께서 막 떠나려 하실 때 나는 손에 ‘전법륜’을 든 채 사부님께 기지에 관해서 여쭤볼 기회를 찾고 있었다. 사부님께서 차에 오르려고 할 때 나는 여쭤보았다. “언제 기지를 지으십니까? 어디에 지으실 건가요?” 사부님께서는 내 질문에 직접적으로 대답하지 않으신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사부님께서는 홍콩의 환경이 복잡해서 수련에서 빨리 제고할 수 있으므로 홍콩에서 수련하라고 말씀하셨다.(사부님의 정확한 말씀은 아님) 그래서 나는 캐나다 밴쿠버로 이사하려던 생각을 포기하고 홍콩에서 수련했다.
사부님과의 회합을 기억할 때마다 나는 대단히 영광스럽다. 그 추억들은 아주 소중하다.
선전(深圳) 공안과 여덟 시간 동안 대치하다
1999년 7월 20일, 중국공산당(중공)은 무자비하게 파룬따파를 박해하기 시작했다. 당시에 나는 업무 때문에 홍콩과 선전 사이를 오갔다. 우리 집은 선전시 산비탈에 있었고 나는 날마다 언덕에서 연공했다. 박해가 시작된 후 나는 계속해서 연공음악을 틀었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어느 날 내가 선전에서 홍콩으로 돌아왔을 때 한 수련생이 전화해서 산둥에서 박해를 받아 사망한 자오진화(趙金華)에 대해서 물었다. 내가 말했다. “우리 수련생들은 좋은 사람들입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더욱 좋은 사람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정치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박해를 정치적인 것으로 바꾼 것은 중공입니다.”
일주일 후 선전에 돌아왔을 때 사복 차림의 공안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홍콩에서 내 이름을 밝혔기 때문에 홍콩에 있는 중공 특무는 내 신분을 알아냈고 선전 공안은 나를 찾았다.
나는 차를 타고 집 마당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오전 10시에 주민등록을 확인하고 있다고 하면서 사복 경찰관이 내 사진을 꺼내 내가 본인임을 확인했다. 한 시간 후 네 명의 경찰관이 와서 나에게 사허 경찰서로 가자고 했다.
나는 문을 열지 않았다. 나는 내가 왜 경찰서로 가야 하는지 물었다. 그들은 그것은 내 의무이고 나는 물어볼 권리가 없다고 말했다. 그들은 문을 열지 않으면 체포하겠다고 협박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선전 난터우 경찰서의 상사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 문을 열지 않는 이유를 물었다. 내가 대답했다. “나는 홍콩 시민입니다. 홍콩 경찰서에 확인해 보세요. 내가 무슨 법을 위반했습니까? 내가 법을 위반했다면 홍콩 경찰이 나를 체포해야 합니다. 당신은 내가 무슨 법을 어겼는지 말하지 못하는데 왜 문을 열어야 합니까? 나는 정직한 시민이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왜 나를 체포하려고 합니까? 가서 범인이나 잡으세요.”
나는 문을 열지 않았고 경찰과 대치 상태에 빠졌다.
나는 동료들에게 파룬따파가 얼마나 멋진지 말했고 그들 중 일부는 수련생이 됐다. 그들은 내가 집에 갇혀 있다는 것을 알고 홍콩에 있는 내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비서에게 선전에서 전화를 받으면 나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미리 알려줬다. 나는 말했다. “그런 일이 생기면 매체에 전화하세요.” 그는 매체에 연락했다. 그 문제는 보도됐고 나는 홍콩 신문 헤드라인에 나왔다.
기자 한 명이 나중에 나에게 말했다. “나는 당신이 경찰에게 한 말을 모두 들었습니다.”(나는 그가 어떻게 내가 경찰관과 한 말을 들었는지 모른다.) 그가 말했다. “당신 말이 맞았습니다. 당신은 평범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파룬따파 수련생들은 모두 훌륭한 사람들입니다. 당신이 문을 열지 않은 것은 옳았습니다.”
사부님의 보호로 나는 다음날 홍콩으로 안전하게 돌아왔다. 그 이후로 나는 홍콩 수련생들과 함께 진상을 알리고 박해를 폭로해왔다.
평화적으로 박해를 반대하다
중공 관영매체는 대법을 비방하고 전 세계를 세뇌시키는 기사를 발표했다. 대법은 비방을 당했고 홍콩 파룬따파 수련생들은 매우 고통스러웠다. 1999년 말, 연속 몇 개월 동안 우리는 신화통신사(중공 관영매체) 맞은편에서 24시간 동안 가부좌를 했다. 나는 낮에는 일했고 보통 밤 12시부터 다음날 오전 5시까지 가부좌를 했다. 나는 주말과 휴일 낮에도 그곳에 갔다.
우리는 매일 방송사 입구를 향해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파룬따파는 정법이다’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전법륜’을 읽었다. 기자들은 우리를 인터뷰했다. 천목을 통해 나는 사부님 법신께서 매일 우리와 함께 계신 것을 보았다.
보통 우리는 먼저 논어를 세 번 연속해서 외웠다. 나는 사부님의 법신께서 기자들에게 움직이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았다. 기자들은 우리가 논어를 암송한 후에 인터뷰했다. 매 수련생은 기자들에게 대법 진상을 알리고 대법을 수련한 개인의 경험을 말했다. 그들의 이야기는 훌륭했다.
어느 날 우리 열 명이 앉아서 ‘전법륜’을 읽는데 신문사 유리문이 갑자기 부서졌다. 우리는 중공의 거짓말이 결국 유리문처럼 부서지는 신호라고 느꼈다.
1995년에 수련을 시작하고 눈 깜빡할 사이 25년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다른 수련생들과 부지런하고 확고하게 수련하면서 사부님의 정법을 도왔다. 우리는 비록 많은 비바람을 맞았지만 우리의 신념은 강해졌다. 사부님과 함께 정법을 도울 수 있는 것은 정말로 영광이다.
(홍콩 진상거점 교류회 원고)
원문발표: 2021년 4월 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4/2/422878.html
영문위치: https://en.minghui.org/html/articles/2021/4/5/19173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