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최근 갈수록 내 수련의 근본적 집착은 자아에 대한 집착이며, 자아에 대한 집착이 정법을 수련하는 중에 고심(高深)한 내포를 깨닫고 나의 본성이 대법으로 회귀하는 데 근본적인 장애가 되었다. 동시에, 오늘날 사람을 구하는 표면적 환경과 구도에 근본적인 장애 요소가 되었음을 갈수록 인식했다. 나는 대법제자 자체에 존재하는 ‘사(私)와 나’라는 요소가 오늘날 사부님의 정법을 방해하는 주요 장애물이 되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약 4개월 전 자신의 수련이 부족한 탓에 구세력이 틈을 탔다. 왼쪽 어깨를 삐끗해 왼쪽 관절이 아팠는데 나중에는 왼팔 근육이 뭉치고 통증이 수반되더니 힘줄까지 아프게 되었다. 특히 ‘파룬좡파(法輪樁法)’를 연마할 때 왼쪽 어깨와 왼팔이 더 심하게 아파서 연신 떨렸고 머리 위에 마치 산이 하나 있는 것처럼 나를 내리눌렀다. 연공할 때마다 아파서 땀에 흠뻑 젖었다. 나는 줄곧 이렇게 견지해왔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이 좋은 일이고, 소업(消業)이며, 모두 나의 제고를 위해 나타난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4개월 동안 통증은 점차 줄었지만, 매번 연공이 끝나면 여전히 온몸이 땀투성이였다. 나는 이런 상태가 왜 이렇게 오래 지속했는지 되돌아보았다. 비록 자신에게서 찾아보고 있었고 일부 사람 마음을 찾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히 인식하지 못했다.
이틀 전 ‘파룬좡파’를 연마할 때 통증이 또 시작되었다. 애써 견디는데 시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졌다. 이때 문득 깨달았다. “이 고통을 참으며 연공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지? 이 고통을 참고 견디며 연공하고 있는 내가 바로 그 ‘나’였다. 왜냐하면, 그 ‘나’가 소업하고 제고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본성은 이런 생명이 아니다. 나의 본질적인 생명은 사부님의 대법에 따라 이미 다시 만들어졌기에 그는 대법의 한 입자로서 완전히 쩐싼런(真·善·忍)으로 이루어진 생명이다.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원용하고 대법을 원용하며 사부님의 중생 구도를 돕고 있는 생명이지, 그에게는 아예 ‘제고할 거야! 소업할 거야!’ 하는 이런 사유가 없다. 이런 사유는 과거의 구(舊) 우주가 생명을 구성한 근본적인 옛 요인에서 비롯된다. 즉 나에게 집착하는 것으로, 내 진아(眞我)의 본질이 아니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 내 머리 위의 큰 산 같은 것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통증도 없어졌다. 마치 해탈된 것처럼 온몸이 홀가분했다. 내가 연공하는 것이 사부님의 정법을 돕고 천체 중의 무량한 중생을 구하는 데 있음을 절실하고도 똑똑히 실감한 순간이었다.
이번 경험을 통해 나는 ‘사와 나’ 이 요소가 오늘날 대법제자의 정법(正法) 수련에 부정적인 작용을 일으킨다는 걸 똑똑히 보았다. 정법 수련에 대해 더 깊은 깨달음이 생겼다.
사부님께서는 일찍이 말씀하셨다. “나는 또 당신들에게 알려주겠다. 사실 당신들 이전의 본성(本性)은 위아위사(爲我爲私)의 기초 위에 세워진 것이다. 당신들이 앞으로 일함에 먼저 남을 생각해야 하고 무사무아(無私無我), 선타후아(先他後我)의 정각(正覺)으로 수련 성취해야 한다. 그러므로 당신들이 앞으로 어떠한 일을 하든지, 어떤 말을 하든지, 역시 남을 위하고 후세 사람을 위하는 데 이르기까지 고려해야 한다! 대법(大法)의 영세불변(永世不變)을 위해 고려해야 한다!”[1]
‘나’라는 것이 인류사회에 체현된 것은 바로 일을 하거나 말을 할 때 ‘나’를 중심으로 하고 출발점이 되는 것이고, ‘사(私)’의 표현은 일하거나 말을 할 때 모두 사심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면, ‘우리 가족, 우리 지역, 우리나라’ 등등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대법제자의 진아(眞我)는 사부님을 따라 내려오는 과정에서 부동한 층차의 ‘사아(私我)’에 한 층씩 파묻혔는데 줄곧 삼계에 이르기까지 파묻혀 삼계 내에 층층의 ‘자아(自我)’를 형성하고 이 ‘자아(自我)’가 삼계 내의 정(情)의 작용으로 인간 세상에서 다양한 사람의 관념을 형성한다.
박해가 발생하면서 정법 수련 단계로 접어들었고 사부님께서는 제자가 정법 노정을 따라올 수 있도록 끊임없이 제자들에게 설법하시고 항로를 인도해주시며 정법 수련의 내포를 개시하셨다. 정법 수련은 바로 우리가 세 가지 일을 하는 데 있어 기점을 모두 중생 구도와 대법을 실증하는 데 두어야지 ‘내’가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는 걸 드디어 깨달았다. 수련에서 어떤 마난(魔難)을 마주하더라도 오로지 정말로 ‘나와 사’를 버릴 수 있고 진정으로 중생이 구도받을 수 있게끔 생각한다면 환경은 즉시 바른 방향으로 돌아가고 상응되는 마난도 모두 사라질 것이다. 법의 힘이 거기에 있기에 ‘나’가 이래저래 마난을 ‘돌파(突破)’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박해 초기에 나는 북경으로 법을 수호하러 갔다가 사악에 의해 구치소로 납치당했다. 단식으로 박해를 반대했다는 이유로 나는 사악에 보복당해 장시간 문짝에 묶여있었다. 그때 전신이 아픈데 허리는 마치 부러진 것처럼 통증이 심했다. 나는 견디기 시작했고 억지로 고통을 참았다. 이때, 같은 방안의 수감자들이 모두 묵묵히 앉아서 나를 쳐다보는 걸 보고, 갑자기 이 사람들이 매우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들은 지혜를 잃어버려 범한 죄를 갚고 있어도 모르고 있는데 만약 나의 고통이 이런 생명을 위해 그들의 죄업을 감당해서 그들이 하루빨리 인생의 참뜻을 깨닫게 할 수 있다면 기꺼이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 모든 고통이 사라지고, 신체가 미묘하게 떠오르듯 편안해졌으며 그 즉시 교도관이 감방으로 와서 나를 풀어주었고, 당일 밤에 구치소에서 나왔다.
10여 년 전 사악이 나를 거의 24시간 감시했던 것이 기억난다. 당시 내가 다른 수련생들에게 가려고 했는데 이 생각을 움직이자마자 즉시 두려운 물질이 드러나면서 내 온몸을 뒤덮었다. 다리가 저절로 떨렸다. 나는 이런 정황을 보자 웃으며, 손가락으로 떨리는 다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너는 내가 수련생들과 하나의 정체로 형성되는 걸 가로막을 수 없다. 이것은 우리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이기에 너를 멸(滅)할 수밖에 없구나.” 말소리가 떨어지자마자 그 두려운 물질이 순식간에 얼음물같이 차갑게 변해 내 발가락 사이로 흘러나간 걸 느꼈는데, 그때 내 대뇌는 ‘두려운’ 개념조차 없이 텅 비었다.
나는 당시 마난이 왜 지나갔는지, 그 두려움을 왜 그렇게 빨리 제거할 수 있었는지, 이제야 인식했다. 내가 그 한 층의 ‘사와 나’를 내려놓았기에 그 한 층 법의 요구에 부합되어 법이 직접 이 모든 것을 동화(同化)시킨 것이다. 나는 단지 닦고(修), 불순한 것을 내려놓았을 뿐이고, 일체는 모두 사부님의 정법(正法)이 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다.
물론 정법의 진도가 더욱 미시적으로 끊임없이 진행되면서 법에 대해 우리의 표준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다시 말해 이전에 자신이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던 ‘사와 나’의 표준은 지금 보면 여전히 ‘사와 나’이고 단지 이 한 층의 ‘사와 나’가 더욱 미시적일 뿐이다. 우리의 정법 수련은 끊임없이 층층의 ‘사와 나’를 수련해 제거해버리는 것인데 줄곧 우리의 근본적인 본성인 대법의 한 입자에 이르기까지이며 대법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대법제자의 인식이 아직 제고되어 올라오지 않았기에 사부님께서는 줄곧 거대한 감당으로 대법제자들이 제고해 올라오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현재 우리의 수련과 사람을 구하는 중에서 나타난 일체 장애는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모두 대법제자 자체에 존재하는 ‘사와 나’의 요소가 촉성한 것이다. 이 속에는 미국 대선에서 나타난 정황도 포함된다.
많은 수련생과 대법제자는 어째서 장기간 지체되고 제고가 느릴까? 오늘날 사람을 구하는 표면 환경은 왜 이럴까? 내가 본 원인은 대법제자가 대법 수련의 내포를 깨닫지 못하고, 이 ‘사와 나’에 저애 받아서 자기 본성을 찾지 못했는데 사실은 소도(小道) 수련의 길을 걸은 것이다.
바로 우리가 대법 수련을 진정하게 깨닫지 못했고 수련을 언급하기만 하면 바로 마난(魔難)을 생각하는데 이것은 구(舊) 우주 생명의 인식으로 들어간 것이다. 이런 대법을 벗어난 인식이 구 우주의 고층 생명에 이용되었기에 오늘날 세인들은 이처럼 도덕이 떨어졌으며 오늘의 환경이 이렇게 좋지 않게 변했는데 우리 대법제자의 수련 제고가 느린 것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오늘날까지 아직 구도되지 못한 세인들은 가련한 생명이며 그런 변이된 고층 생명이 대법제자의 ‘수련’을 위한다며 세인들을 이런 모양으로 만들었다. 우리는 세인을 원망할 수 없으며 마땅히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아야 하고 어서 빨리 씬씽(心性)을 높여야 한다!
나는 이제 대법제자의 본성이 대법의 입자이고 사부님께서 요구하시는 걸 원용하는 생명임을 알았으며 그런 생명은 ‘나는 견정해야 하고 이 고험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러한 사유가 전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만약 오늘날 대법제자가 철저하게 ‘사와 나’를 내려놓을 수 있고, 무사무아(無私無我)로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걸 원용할 수 있다면 오늘날 미국과 세계에서 수련 환경과 사람을 구하는 환경이 근본적으로 개변되고 진정 중생을 구하는 환경으로 되어 대량의 세인이 구도될 것인데 이것이야말로 사부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다!
개인이 현 단계에서 인식한 것이며, 법에 부합되지 않고 원용되지 않은 곳은 수련생들께서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고 원용해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정진요지(精進要旨)-불성무루(佛性無漏)’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관점만을 대표할 뿐, 옳고 그름은 글쓴이 개인의 책임이므로 독자 스스로 헤아리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1년 3월 2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3/24/42242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