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윈난 대법제자
6. 80대 과학기술자가 법을 실증한 이야기
밍밍(明明, 필명)은 퇴직 전 국가의 보조를 받는 과학기술자였다. 그는 쓰촨 어메이(峨嵋)현 출신으로 할머니와 어머니는 평생 부처님을 공경하는 분이셨다. 조상들은 마음씨가 선하고 근면했으며 사람을 너그럽게 대하고 선행을 베풀었다. 조상의 영향으로 그는 어려서부터 신불(神佛)의 존재와 선악유보(善惡有報)를 믿었으며 평생 명리에 담담했다.
밍밍은 1997년 3월 파룬따파(法轮大法)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그는 한결같이 사존의 가르침을 따르며 법을 배우고 마음을 닦았다. 10년 넘게 매일 중단하지 않고 ‘전법륜(轉法輪)’을 한 강의에서 두 강의를 통독했으며, 한동안이 지나면 반복해서 다시 봤다. 사존의 설법 녹음과 비디오 또는 CD를 보며 사존의 경문과 각 지역 설법도 공부했다.
1999년 ‘7·20’ 중공의 파룬궁(法轮功) 박해 이후에도 대법을 확고히 수련하겠다는 그의 믿음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그는 말하기를 “대법을 굳게 수련하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며 나는 생명으로 조사정법하고 진상을 알리겠다. 중생을 구하는 것은 대법제자의 신성한 역사적 사명이기에 제자로서 태만할 수 없다”라고 했다. 아래는 그가 법학습팀에서 수련체득을 교류한 내용이다.
(1) 혼자 베이징에 청원하러 가다
2000년 5월, 정부에 파룬궁 진상을 분명하게 말하기 위해 나는 파룬궁의 결백과 사부님의 결백을 청원자료로 써서 베이징에 가려고 준비했다. 그러나 차표를 예매하려고 할 때 주민센터 사무실에서 알게 됐다. 그들이 나의 청원을 제지하려고 했으나 따르지 않았고 나는 혼자서 베이징에 갔다. 국무원 민원국에 당당하게 청원을 제출하고 안전하게 돌아왔다.
베이징에서 돌아오니 파출소 경찰이 나를 보려고 왔다. 그들에게 말하기를 “나는 중국 국민이고 전에는 국가 공무원이었습니다. 나는 국가 기관과 공무원에게 (진실을) 반영해 알게 하고, 비평하고, 건의하고, 감독하고, 고발하고, 제소할 권리를 포함해서 헌법이 국민에게 부여한 일체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파룬궁 수련생의 트집을 잡아 무엇인가를 쓰려고 하는데 그것은 명백히 헌법에 반하는 위법·문란한 행위 아닙니까? 억울한 죄를 만들어내는 것 아닙니까? 이후 파룬궁의 누명이 벗겨지면 당신들은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문화대혁명의 역사적 교훈을 아직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까?”라고 했다. 이후 경찰은 거듭 말하기를 상부에서 하라고 해서 자기들도 방법이 없다고 했다. 이렇게 하는 중에 나는 사부님께서 “제자가 정념이 족하면 사부는 회천력(回天力)이 있노라”[1]고 말씀하신 뜻을 진정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가 바르게 걷기만 한다면 일체는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책임지고 결정하실 수 있다.
(2) 사악에게 협조하지 않다
2000년 나는 법학습 교류회에 참가했는데 참석한 40여 명의 파룬궁 수련생 모두 파출소로 납치됐다. 한 경찰이 내가 가지고 있던 ‘전법륜(轉法輪)’을 빼앗으려 하자 나는 주지 않았다. 계속 그에게 파룬궁 진상을 말하며 동시에 그들의 이런 행위는 신앙의 권리를 침해하는 위법행위임을 지적했다. 마지막에 경찰은 나를 놓아주었다.
(3) 대법제자는 무엇이나 할 수 있다
2012년 나는 75세가 됐다. 당시 우리 지역은 진상을 알리는 역량이 커져서 진상 자료도 많이 필요했다. 자료 만드는 수련생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나는 작은 자료점을 열기로 마음먹고 가정 자료점을 세웠다. 컴퓨터를 몰랐는데 처음 컴퓨터를 배울 때는 마우스를 쥔 손이 자주 말을 듣지 않았고 좌우 키도 구별하지 못했다. 자신이 나이가 많아 손발이 민첩하지 못하다고 여기며 자신이 우둔하다고 생각했다. 수련생이 이것을 말하면 저것은 벌써 잊어버렸다. 나는 생각하기를 나는 대법제자인데 무엇이나 할 수 있고 어떤 곤란도 나를 쓰러뜨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매 조작 절차를 착실히 필기했고 어떤 부분은 그림으로 그렸다. 그런 다음 필기한 대로 다시 하나하나 조작했는데 어떤 절차는 무수히 반복해야 기억할 수 있었다.
사부님의 가지로 나는 아주 빠르게 컴퓨터 조작을 배웠고 인터넷에 접속하고 내려받기도 배웠다. 진상 자료를 빠르고 또 좋게 만들려고 나는 해외에 있는 딸에게 좋은 레이저프린터 한 대를 사달라고 했다. 딸은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고 친구는 파룬궁을 수련하는 아버지가 쓴다는 말을 듣고 흔쾌히 도와주었을 뿐 아니라 또 파룬궁에 공헌을 좀 하겠다며 이 인쇄기를 선물한 것으로 간주하라고 했다. 그 뒤로 딸이 레이저프린터 한 대를 갖고 왔으며 게다가 세관 검사도 받지 않았는데 정말 사존의 보호였다.
(4) 원촨(汶川) 지진 때 사존의 보호로 재난을 피하다
2008년 초 계획된 동창회 모임은 두장옌(都江堰)에서 5월 12일 열기로 예정됐었다. 나는 어떤 불길한 예감이 들어 일부러 두장옌에 가서 동창회를 기획하는 친구에게 5월은 징조가 불길하니 동창회를 앞당기거나 늦추자고 건의하며 4월이 좋겠다고 했다. 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5월 12일 원촨 대지진이 있던 날 새벽 나는 청두(成都)에서 차를 타고 두장옌으로 향했다. 도중에 계속 발정념을 하며 동창회 배후 공간장에서 중생이 구도되는 것을 방해하는 구세력의 요소와 일체의 흑수, 난귀, 공산사령을 깨끗이 청리하며 사부님께 가지를 청했다
우리는 그날 오전 두장옌 시 정부 숙박시설에 투숙했다. 점심 후 14시 28분에 지진이 발생했다. 한 시간 동안 건물 전체가 흔들리고, 탁자와 의자, 찻잔 여러 개가 뒤집혀 이리저리 나뒹굴었으며 천장과 벽의 시멘트 덩어리가 바닥에 떨어져 희뿌연 먼지로 가득했다. 나와 같은 방에 있던 동창은 놀라 침대 밑으로 들어갔다. 나는 조금도 놀라지 않고 바닥에 앉아 가부좌하고 객실 바닥에서 발정념 했다.
동창회에 참가한 42명 중 부부 한 쌍이 변고를 당한 외에 나머지 40명은 무사했다. (지진 당시 그 부부는 건물 아래층으로 뛰어갔으나 숙박시설 등록실이 무너져내려 묻히게 됐다). 숙박시설은 건물 한쪽(등록실)이 무너진 것 말고는 전체 본관은 대체로 괜찮았다. 하지만 맞은편 건물은 완전히 폐허가 됐다. 대법 사부님이 우리 모두를 구해 주신 것이다. 몇 사람은 진상을 알았고 삼퇴한 동창 모두 대법 사부님이 그들을 구해 주셨다는 것을 알았으며 사부님께 말할 수 없이 감격해 했다.
밍밍 수련생은 “우리가 정법시기 대법제자가 된 것은 사부님의 자비이며 또 우리의 기연이고 복이다. 나는 법을 잘 배우고 자신을 잘 닦으며, 진상을 알리고 많은 사람을 구하며 대법 일을 많이 해 사전의 서약을 실현하겠다”라고 항상 말한다.
7. 팔순 아버지가 생사관을 넘은 경험
우리 전 가족은 2000년 8월 대법을 얻었고 부모님은 벌써 90이 넘으셨다. 수련하는 동안 많은 시련을 겪으면서 대법의 신기함을 절실히 느꼈다. 가장 인상 깊은 일은 아버지가 생사관을 넘은 일이다.
2008년 12월 초 어느 날, 아버지가 이불을 가지고 나와 햇볕에 말리셨다. 말리고 나서 우연히 이불 중간에 핏자국이 있는 것을 보셨는데, 혈흔이 점점 확대됐다. 이때 갑자기 코에 뜨거운 느낌이 있었고 피가 흘러나왔다. 아버지는 얼른 세면대로 가서 찬물을 목 뒤에 좀 끼얹었다. (속인의 지혈 방법) 피가 멎지도 않았고 오히려 물줄기처럼 흘렀으며 계단 여기저기가 핏자국이었다. 아버지는 당황하셨고 피를 1000mL 흘리게 되면 생명이 위험하다는 누군가의 말을 생각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병원에 가봐야 하지 않을까요?”하고 말했으나 어머니는 “연공인이 무슨 병원엘 가요?”라고 하셨다. 아버지도 생각해 보니 병원은 속인을 치료하는 곳이고 자신은 연공인인데 어찌 속인을 찾는단 말인가! 라고 생각하셨다.
아버지가 코피를 계속 흘리자 어머니는 부득이 남에게 부탁해 나에게 전화하셨다. 나는 서둘러 집에 돌아와서 아버지께 아무 생각도 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리고 함께 앉아서 사악의 박해 일체를 청리하는 발정념을 했다. 발정념 10여 분 후 코피가 점점 멎었다. 아버지께 “병업관을 넘는 중이라도 법공부와 연공을 빠뜨려서는 안 됩니다”라고 말씀드렸다. 부모님은 밤에 연공하겠다고 하셨다(어머니는 발을 접질려 넘어져 허리를 다쳤고 한동안 일어나지 못하셨다. 아버지는 병업 상태가 나타나 기침과 발열로 일어나지 못하셨는데 두 분은 이미 일주일 넘게 연공하지 못하셨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아내가 사부님의 ‘정진요지’를 찾아 부모님 방에 가서 함께 몇 편을 공부했다. 공부가 끝나고 아버지는 사상적으로 매우 감동했다고 말씀하셨다(이전에 아버지는 항상 장사 일을 걱정하셨기 때문).
새벽 4시경 아버지는 또 코피를 흘리셨고 양쪽 콧구멍을 종이뭉치로 막자 입으로 피가 흘러나왔으며 침대에도 피가 많이 묻었다. 나는 아버지께 “두려워 마시고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세요. 흘러나온 것들은 다 좋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가 사부님을 굳게 믿고, 대법을 굳게 믿기만 하면 넘기지 못할 고비는 없습니다. 문제가 있는 것은 곧 집착이 있다는 것인데 이때 자신이 어느 곳을 잘하지 못했는지, 내려놓지 못한 집착이 어디에 있는지 우리는 더욱 자신을 찾아봐야 합니다.”라고 말씀드린 다음 모두 함께 발정념 했다. 한참이 지나자 다시 피가 점점 멎었다.
아버지가 잠이 들어서야 우리는 쉬러 갔다. 아내가 어떤 사람이 “서둘러라, 네 아버지 돌아가신다.”라고 외치는 소리를 흐릿하게 들었다. 사실은 사악이 아내를 놀라게 하고 두렵게 하려는 것이었다. 아내는 즉시 ‘우리는 수련인이다. 불가능한 일이다’라고 생각했다. 사실 사악은 계속 우리를 무섭게 했는데 어머니를 넘어져 다치게 했고, 아버지 일이 있기 전에도 네 살배기 아들이 그의 사촌 누나에게 “할아버지는 안 된다”하고 말했는데 그것은 그가 천목으로 아버지 코에서 피가 흐르는 나중에 있을 광경을 봤다. 또 누나는 아버지 코피가 멎은 후에도 “네 아버지는 돌아가신다.”라고 하는 소리를 귓전으로 들었다고 했다. 우리는 이런 것 모두가 정(情)의 관을 넘는 것이고 생사의 관을 넘는 것이며 이런 일을 빌미로 우리를 시험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사부님의 가호로 우리는 지나올 수 있었는데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3일째 되는 날도 아버지는 코피를 계속 흘리셨고 많은 종이로도 닦아낼 수 없었다. 나는 부득이 아버지를 비스듬히 기대게 하고 비닐봉지에 종이를 깔고 코피가 직접 비닐봉지로 흐르게 했다. 이때 나는 우리가 하는 이런 모든 것이 다 소용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나도 감정을 좀 억누를 수 없어 타지에 사는 누나에게 전화했다. (누나가 우리 일가족에게 법을 얻게 안내함). 누나는 우리에게 “이것은 가상일 뿐이다. 사부님께서 ‘한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만 가지 움직임을 제약할 수 있다’[2]라고 말씀하신 법을 꼭 기억해야 한다. 법에 부합하지 않는 일사 일념과 좋지 않은 염두는 즉시 깨끗이 제거해버려야 한다. 발정념을 많이 하고 부모님 배후 공간에서 그분들의 수련을 교란하는 사악한 요소를 깨끗이 제거해버려라. 우리도 함께 협력할 것이다”, “지금 아버지를 가장 잘 도울 수 있는 사람은 아버지 자신이다. 세간의 일체를 내려놓을 수 있는지 없는지, 생사를 내려놓을 수 있는지 없는지에 달렸다. 만약 내려놓을 수 있다면 사부님께서 도와주실 것이고 이 관을 넘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어떤 생각도 다 내려놓고 사부님을 믿고 되도록 정시 발정념을 많이 하고 다른 시간대에는 법학습을 많이 하시길 바란다. 정법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우리는 여전히 중생을 구도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사람도 먼저 갈 수 없으며 세 가지 일을 하는 데 계속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가져야 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누나는 또 “사실 우리 모두 정의 관과 생사관을 넘고 있다. 물론 구세력을 어떻게 부정하느냐의 문제가 있는데 그러므로 이것은 부모님의 일인 것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와 관련이 있다. 우리 모두 내려놓을 수 있을 때 그 관은 지나가게 될 것이다. 많이 말하지 않겠다. 우리는 사부님의 관할에 속하기에 오직 사부님의 말씀만 따르면 된다. 어떠한 사람이나 어떠한 세력이 말한 것이든 모두 소용없다. 관건은 우리 자신이 어떻게 바르게 걷고 잘하는가 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누나의 격려로 모두 신심이 확고해졌는데 특히 아버지는 두려움을 없애버리셨고 사부님께 “꼭 법을 잘 배우겠으며 세 가지 일을 잘하겠습니다”하고 소원을 빌었다.
아버지는 코피를 계속 흘리셨지만 나는 줄곧 부모님을 모시고 함께 법공부하고 발정념 했으며 아내도 일하는 틈틈이 발정념 했다. 저녁 식사 때도 코피가 계속 흘렀는데 아버지가 드시는 국수 그릇에 핏방울이 떨어졌지만, 아버지는 이때는 이미 두려움을 완전히 버리셨다. 그 이후로도 코피가 흘렀으나 아버지 스스로 발정념하며 더는 우리에게 하라고 하지 않으셨다.
저녁 9시가 지나자 코피를 그렇게 많이 흘리셨던 아버지는 거의 일어날 수 없었다. 내가 부축해 화장실에 다녀왔으며 피로하고 허약해진 아버지는 금방 잠이 드셨다. 잠시 지나자 아버지가 갑자기 “연공할 시간 됐냐?”하고 물으셨다. 어머니가 “당신 그래도 연공하려고요?”라고 하자 아버지는 “괜찮아요. 난 연공해야겠어요!”라고 하셨다. 그런 다음 다시 잠이 들었으며 이후로는 코피를 흘리는 일이 없었다.
4일째 되는 날 아버지가 일어나시자 아내가 아버지에게 “가게 나가 물건 파는 거 인제 그만 하세요. 우리는 돈이 많이 모자란 것도 아닌데 시간을 법공부하고 연공하며 세 가지 일을 하는 데 이용하세요.”하고 말했다. 아버지는 “좋다”라고 하셨다. (전에 아버지는 많은 시간과 정력을 구멍가게에 쏟았다). 아내는 아버지가 ‘좋다’고 말씀하신 후 부었던 얼굴이 잠깐새 좋아지고 안색도 점점 좋아지는 것을 발견했다. 그동안 먼 곳에 계시는 누나도 아버지가 관을 넘을 수 있도록 우리와 함께 도우며 협력했다. 그때의 상황에 맞춰 사부님의 경문과 설법을 보내주며 우리와 부모님이 함께 법을 공부하고 제고하게 해주었다.
지금 부모님은 완전히 회복됐고 안색도 불그레하며 정신도 맑다. 아는 사람은 모두 아주 신기하게 생각한다. 부모님은 현재 매일 함께 법공부하는 외에도 아침 일찍 일어나 두 분이 함께 법공부하시는데 어머니가 글을 모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틈만 나면 사부님의 설법을 들으신다. 어머니께서 나에게 ‘전법륜(轉法輪)’ 한 권을 달라고 하시며 어머니도 책을 보시며 법공부를 하겠다고 하셨다. 사부님의 자비하신 가호 아래 우리 가족은 아버지와 함께 큰 고비를 넘겼다. 이 일을 겪고 나자 모두의 심성이 제고를 얻게 됐고 세 가지 일을 하는 데 노력하게 됐다.
사부님의 무량하신 자비와 구도에 감사드린다! 위대하시고 자비하신 사부님께서 아버지를 구해 주심은 그분께 제2의 생명을 주신 것이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 ‘홍음2 – 사도은’
[2] 리훙쯔 사부님 경문: ‘정진요지2 – 마지막 집착을 제거하자’
(계속)
원문발표: 2021년 2월 2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2/24/42088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