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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을 알릴 때 더 많이 이해해 주고 타인을 위해야 한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한 대학 동창이 있었는데 1999년 박해가 시작된 후 수련을 그만뒀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줄곧 대법이 좋다는 것을 믿고 있었다. 재작년 나와 연락이 닿았고 다시 수련의 길로 돌아왔다. 동창의 딸은 올해에 대학을 졸업하게 된다. 작년 가을에 동창은 나에게 딸이 우울증에 걸렸다고 했다. 그는 대법이 딸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딸에게 법공부를 권했다. 딸은 법공부를 하면서 상황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겨울방학 기간, 병세가 반복되어 동창생은 딸과 함께 여러 번 우리 집에 와서 교류했다. 매번 돌아간 후 아이의 상태는 모두 조금씩 좋아졌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면 여전히 반복됐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저께 동창은 혼자 우리 집에 와서 아이가 전혀 책을 보지 않으며 약을 먹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나는 의아해서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동창이 말했다. “아이와 함께 고등학교 때 선생님을 보러 갔어요. 이 선생님도 대법제자인데 교류 중에 창춘(長春) 케이블TV 진상 삽입방송에 참여한 대법제자들이 비참하게 박해받은 상황을 설명했고, 참여한 수련생 중 현재 한 사람만이 살아남았다고 이야기했어요. 아이는 돌아온 후 밤새 잠을 못 이루었으며 무서워 책도 감히 못 보더니 병이 더 심해졌어요.”

비록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인연의 업장(業障)이 있다. 하지만 우리 수련생들도 알고 있어야 할 것은, 대법제자들은 진상을 알려야 하지만 진상을 알리는 것은 자신이 말하고 싶은 정보를 말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진상을 알리는 출발점과 목적은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이며 사람들이 똑똑히 알게 해야만 비로소 제대로 알린 것이다.

사람에게 대법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고 정념을 불러일으켜야 하며 사당(邪黨)의 사악을 똑똑히 인식하게 해야 한다. 창춘 대법제자들의 진상 삽입방송은 당연히 의로운 일이며 대선(大善)의 거동으로서 진상을 알릴 때도 이 일을 자주 언급한다. 그러나 창춘 대법제자들이 삽입방송을 하게 된 원인을 명확히 설명하지 않고 박해의 처참함만 전한다면 그들에 대한 감탄이나 선(善)을 향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을 놀라게 하고 겁에 질리게 한다. 다시 말해 만약 삽입방송의 의의를 명확히 설명하지 않아 거짓말을 타파하고 세인을 구하기 위한 것임을 이해하게 하지 못한다면 듣는 사람의 정념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

동창 딸의 우울증은 아직 완전히 낫지 않았고 그녀의 심리적인 감당력은 정상인 이하다. 나는 그 수련생이 어떻게 말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아이가 겁에 질린 것은 분명하며 너무나 안타깝다.

약 7년 전의 일이 생각났는데 한 노년 수련생이 있었다. 수련 전에 그는 어느 고등학교 조직부장이었고 수련 후 온몸의 병이 다 나았다. 그녀의 신분과 수련 경력으로 인해 수련생들 사이에서 지명도가 높았고 많은 사람이 그를 알고 있었다. 박해가 시작된 후 노년 수련생은 줄곧 아주 정진했다. 그런데 이후에 요독증에 걸려 매주 세 번씩 투석해야 했고, 2~3년 지속됐다. 많은 수련생이 가서 그를 도와 발정념을 하고 교류했지만 호전이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나는 그의 일을 알게 됐고 매주 한 번씩 그의 집에 가서 함께 법공부를 했다. ‘전법륜(轉法輪)’을 배운 외에 우리는 또 ‘9평(九評)’을 읽기 시작했다. 두세 번 읽고 나니 노년 수련생은 눈에 띄게 좋아졌고 투석 횟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두 발자국만 걸으면 멈춰서 쉬어야 했지만 그 기간에 혼자서 걸어서 소형 법회에도 참가했다. 모두 매우 기뻐했고 노년 수련생도 크게 자신감을 느꼈다.

당시 우리는 모두 희망이 바로 눈앞에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내가 다시 법공부 하러 그의 집에 갔을 때 그의 집에서는 그를 간호해 줄 친척을 데려왔다. 이 친척도 수련생이었는데 나에게 노년 수련생이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고 알려줬다.

나중에 알게 됐는데 노년 수련생은 예전에 마싼자(馬三家) 노동교양소에 불법 수감됐을 때 알게 된 한 수련생이 있었다. 그 기간에 이 수련생은 노년 수련생 집에 묵으면서 교류했는데, 노년 수련생에게 자신의 경험으로 목숨을 걸고 난관을 돌파하도록 설득했다. 그리하여 노년 수련생은 투석을 중단했고 이틀 만에 상태가 급속히 악화됐다. 병원에 며칠 입원했지만 비용이 너무 많아 감당할 수 없어 가족들은 포기했고 노년 수련생은 곧 세상을 떠났다.

그 당시 나는 이 일로 다른 수련생들과 갈등이 생겼고 오랫동안 의기소침한 상태에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사부님께 너무 부끄럽다. 만약 그때 자신의 감정을 내려놓고 사부님의 간난신고를 생각할 수 있었다면 마땅히 더 잘했을 것이다.

어떠한 일의 출현이든지 모두 한 가지 원인으로 조성된 것이 아니다. 세간의 일은 번잡하고 복잡하다. 선의로 수련생을 돕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지만 법을 배운지 여러 해가 됐으니 우리 대법제자는 진작 알고 있어야 한다. 자신의 본의가 선의라고 해서 1. 다른 사람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 2. 자신의 관념을 다른 사람이 반드시 따라야 하는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3. 다른 수련생에 대해 함부로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타인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나를 위한 것인가?

난을 잘 넘거나 잘 못 넘기나 여부로 수련생의 수련에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 수련생이 한 가지 일을 잘했다고 해서 이 사람이 수련을 얼마나 잘했다고 결론 내릴 수 없으며, 한 가지 일을 한 것이 우리 자신의 관념이나 인식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수련생의 수련에 문제가 있다고 결론 내릴 수 없다. 요컨대, 일에 부딪히면 법으로 자신을 많이 비추고 자신을 보며 자신을 닦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남을 연구하고 남에게 신경 쓰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있으면 자신이 무슨 집착이 있는지에 마음을 써야 한다. 그래야 외부에 일으키는 갈등과 손실을 크게 줄일 수 있다.

개인의 현 단계에서의 인식이므로 만약 법에 있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길 바란다.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관점만을 대표할 뿐, 옳고 그름은 글쓴이 개인의 책임이므로 독자 스스로 헤아리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1년 3월 1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3/16/42194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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