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1999년 7월 중국공산당(이하 중공)이 파룬궁 박해를 시작한 후,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시 파룬궁(法輪功)수련생 야오옌핑(姚燕萍)은 수차례 불법 수감되고 우한시 제1여자구치소, 어터우완(額頭灣) 세뇌반에서 박해당했다.
야오옌핑은 1996년부터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기 시작했고 진선인(真·善·忍)을 준칙으로 하는 선량한 사람으로 변모했다. 이전에는 성격이 매우 나쁘고 직장에서도 명리(名利)를 다투던 야오옌핑은 수련하면서 건강해졌을 뿐만 아니라 이익만 챙기려던 마음을 버리고 좋은 사람이 되는 도리를 깨달았다. 파룬궁 수련을 통해 야오옌핑은 심신에 많은 이득이 있었고 가정도 화목해졌다.
2001년 3월 23일 오전 10시 야오옌핑은 직장[후베이성 소재 해상운송업체 둬러우커우강부(舵落口港埠)]에 출근 후 이자둔(易家墩)파출소 경찰과 직장 내 보위과 관계자에게 이자둔 파출소로 납치됐다. 그들은 야오옌핑을 파출소 사무실 내 철제 선반에 대자로 수갑을 채웠다. 그리고 야오옌핑의 키를 빼앗아 불법 가택 수색하고 대법 서적과 대법 행사 관련 사진을 약탈했다.
파출소 경찰이 야오옌핑에게 ‘자백’을 강요하자 야오옌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경찰 이 모가 야오옌핑의 얼굴을 주먹으로 구타해 입과 치아에서 피가 흘렀다. 이튿날 오후 4시경 야오옌핑은 파출소 당직실을 나왔다. 이후 야오옌핑은 인터넷에 불법적으로 수배됐다.
2001년 4월 30일 야오옌핑은 산하이관(山海關)에서 강변을 따라가며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는 표어를 붓으로 쓰던 중 쓰웨이(四維) 파출소로 납치됐다. 이튿날 장안(江岸)구 ‘610’(파룬궁 박해 전문 불법 기구) 관계자가 야오옌핑을 장안구 검찰청 내 ‘세뇌반’으로 옮겨 그곳에서 5일간 박해했다.
이들은 2001년 5월 7일 야오옌핑을 우한시 제1여자구치소에 불법 수감했다. 구치소에 들어가자 강제로 옷을 모두 벗기고 주먹과 발로 구타하고 얼굴을 때린 후 310호 감방에 가뒀다. 야오옌핑은 줄곧 성명을 말하지 않았다. 감옥경찰 류롄전(劉連珍)은 재소자들을 선동해 야오옌핑을 때려서 이름을 말하게 하도록 했다. 나중에는 재소자가 소지한 현금을 모두 거둬가면서 그들에게 야오옌핑을 구타하라고 압박했다.
저녁에 야오옌핑이 연공하자 감옥경찰은 그녀를 감방 철문 위에 등 뒤로 수갑을 채워 매달았다. 야오옌핑은 매달린 채 기절했는데 7일간 매달았다. 야오옌핑은 구치소 규정을 외우지 않아 매일 서 있을 것을 강요당했고 저녁에는 취침 불허됐으며, 손을 뒤로 젖혀 수갑이 채워졌다. 또한 무더위에 샤워 및 옷을 갈아입지 못하게 하는 동시에 1달 넘게 뒤로 수갑을 채운 채 있게 했다.
2001년 7월에는 감옥에서 강제노동을 매일 10여 시간 시켰다. 매일 아침 6시면 일어나 인쇄된 종이를 일일이 접어야 했는데 저녁까지 해도 끝나지 않으면 취침하지 못하게 했다. 야오옌핑은 매주 검찰청 관계자에게 기한 초과 후 계속 불법 수감된 정황을 호소했으나 회답받지 못했다.
2001년 11월 야오옌핑은 7일간 단식했다. 감옥경찰 류친(劉琴)은 타지역 관계자를 선동해 야오옌핑을 현재 있는 감방에서 다른 쪽의 빈 감방까지 끌고 가게 했다. 타지역 소속 10명은 야오옌핑을 나무판자에 내리누르고 대나무 자로 입을 강제로 열어 음식물을 주입해, 야오옌핑의 치아가 전부 흔들리고 줄곧 선혈이 흘러 음식물이 들어가지 않았다. 이후 구치소에서 장안구 ‘610’ 관계자를 불러왔고, 관계자는 야오옌핑에게 “당신이 이름을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조사해서 노동교양소(이하 노교소)로 보낼 것이다.”고 말했다.
2002년 1월 23일 장안구 ‘610’ 관계자는 야오옌핑을 허완(何灣)노교소로 보내 불법 노동교양 1년 반을 받게 했다. 허완노교소는 신체검사 결과 야오옌핑이 고혈압과 심장병 증상이 있자 받지 않아 야오옌핑은 다시 구치소에 수감됐다.
2002년 1월 29일 장안구 ‘610’ 관계자는 야오옌핑을 쓰웨이파출소로 보내고 가족에게 전화해 집으로 데려가라고 했다. 당시 야오옌핑은 이미 10개월간 불법 구금당했다. 후베이성 해상운송업체 둬러우커우강부는 불법으로 야오옌핑을 제명했다.
2002년 9월 26일 야오옌핑은 양차후(楊坭湖)대로를 걷던 중 우한 공안1처 경찰에게 납치돼 칭다오(靑島)로 8번지까지 갔다가 익일 옌장터(延江特) 1호로 납치됐다.
2002년 9월 28일 불법적으로 우한시 제1여자구치소에 감금됐다. 당시 야오옌핑은 매일 공안1처 경찰에게 불법 심문을 총 20여 차례 받았다. 경찰은 야오옌핑에게 진상 자료의 출처, 자료점, 관계자 정황을 말하라고 핍박했으나 야오옌핑은 협조하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2003년 3월, 불법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우한시 허완노교소에 수감됐다. 허완노교소에서 검사 당시 고혈압과 심장병 증상이 나타나자 노교소는 수감을 거절했고 야오옌핑은 ‘보석 치료’로 귀가했다.
2005년 6월 9일, 어터우완 세뇌반에 납치됐다. 야오옌핑 단식으로 불법 수감에 항의했으나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을 당했다. 매일 바오자(包夾, 파룬궁 수련생을 감시하는 죄수)가 지키면서 매일 야오옌핑에게 대법을 비방하는 사악한 내용을 보고 체득과 ‘삼서’를 쓸 것을 강요했다. 야오옌핑은 정신적 피해가 극에 달했다.
2005년 8월 세뇌반은 불법 수감한 사람들을 석방했으나, 야오옌핑 1개월을 더 감금했다. 이후 야오옌핑이 그들에게 집에 처리할 일이 있다며 반나절 휴가를 신청해서야 세뇌반을 벗어날 수 있었다.
2007년 10월 22일, 둥시후(東西湖) 우자산(吳家山) 소재 모친의 자택에서 챠오커우(礄口)구 ‘610’에 의해 어터우완 세뇌반에 납치됐다. 이들은 야오옌핑 집을 불법 가택 수색하고 야오옌핑 아들의 컴퓨터를 약탈했다. 야오옌핑은 세뇌반에 1개월여 불법 수감 후 풀려나 귀가했다.
원문발표: 2021년 3월 3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3/3/42157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