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이틀 전 몇몇 수련생과 함께 박해당한 수련생을 구출하는 다음 일보에 대해 교류했다. 한 수련생의 사건은 이미 검찰원에 보내졌고 다른 수련생의 상황은 아직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고 들었다. 수련생이 자신의 견해를 말할 때 나의 머릿속에는 갑자기 세 글자 ‘황금기(黃金期)’라는 글자가 나타났다. 나는 ‘이것은 사부님의 점오가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수련의 각도에 서서 나는 두 가지 방면으로 자신의 인식을 말하려 한다.
정체 제고의 ‘황금기’
현지 악이 행한 소위 ‘제로화 행동’ 이후 대규모로 납치당하고 가택수색을 당했다. 짧은 기간에 행정구류, 집에 찾아와 소란(어떤 이는 여러 번 소란을 당했다) 당한 몇몇 단계를 겪었는데, 비록 그 과정은 점차 약해졌지만 여전히 정체에 큰 손실을 조성했기에 절대로 홀시해서는 안 된다. 당연히 사람 마음에 대한 큰 검증이 여기서 시작된다. 대부분 수련생은 일하는 마음을 찾았다. 하루하루 일을 하느라 바빠 마음 닦는 것을 홀시했다. 어떤 이는 의지하는 마음이 있었다. 수련생이 끌고 가는 데 의지해 지금은 자신의 견해가 없었는데, 의지하는 마음을 제거해야 하지 않겠는가. 마땅히 자신을 잘 수련해야 했다.
동시에 이 과정에서 어떤 법공부 장소는 해체되고, 어떤 수련생은 단체 법공부 환경을 잃어버려 단독수련을 하게 되었다. 자제력이 좋은 이는 짧은 기간은 괜찮았지만 자제력이 부족한 이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법공부 장소를 회복하는 것이었다. 누가 주동적으로 앞장서서 모두를 다시 모으는 것이 급선무이다. 그것은 사부님께서 남기신 수련의 형식이고, 대법제자가 정법노정을 따라잡는 보장이며, 수련생들이 유무상통(有無相通)하고 교류해 제고하고, 서로 거울로 삼아 비학비수(比学比修)하는 안으로 찾는 환경이다.
예를 들면 어떤 항목은 박해당한 수련생이 맡은 것이다. 그러면 지금 이 항목을 계속 하려면 누가 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한 수련생이 이 일을 말하면서, “만약 할 사람이 없으면 내가 하겠다”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태도는 매우 과감하고 확고했다. 또 한 예를 들면 향진의 수련생은 지금 자료가 끊기거나 혹은 자료가 있어도 보내지 못하며, 어떤 이는 자료를 배포하려고 하지만 자료가 없는데, 새로운 연락 경로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어떤 이는 자료를 잠시 만들려 하지 않는데, 당신이 항목을 하지 않으면 사람을 구하는 방식을 고쳤는가? 예를 들면 나가서 진상을 알리고 자료를 배포하고 수련생과 협조해 항목을 해도 모두 된다.
현재 우리 지역의 압력은 여전히 매우 크지만 이것은 잠시이다. 압력이 얼마나 높으면, 시련이 그만큼 크고, 위덕도 그만큼 크다. 우리는 법에서 좋은 일이든지 나쁜 일이든지 모두 좋은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누가 이 ‘용광로’를 빌려 이번 시련을 안으로 찾고 자신을 수련할 기회로 삼고, 대단히 좋은 일로 대하면 이번 시련에서 제고할 것이다. 맞받아 나가고 수련해 올라오고 걸어 나가서 사람을 많이 구한다. 수련생마다 거슬러 올라가 정체가 노력해 선두를 따라잡고 나쁜 일을 좋은 일로 변하게 하면 하나의 참신한 ‘황금기’를 맞이할 수 있다.
구출의 ‘황금기’
지금 사건이 이미 검찰원에 도착한 것은 박해가 새로운 단계에 이르렀고, 박해당한 수련생과 구출에 참여한 수련생도 새로운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을 설명한다. 현지 수련생은 계속 정체를 형성해 박해를 해체하고 구출 노정을 따라잡고 이 ‘황금기’를 장악해야 한다. 발정념의 힘과 강도를 강화하고, 형식에 따라 하지 말고 건성 건성하지 말아야 한다. 정말 발정념 매초에 산생된 에너지를 방출해 악을 해체해야 한다. 그 기간 현지에서 1시간 발정념을 한 과정에서 어떤 이는 줄곧 견지했고, 어떤 이는 이 일을 잊어버렸다. 만약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협력해 검찰원과 현지 공안이 결탁한 음모 및 그들 배후 악의 요소를 제거해 악이 목적에 도달하지 못하고 사건을 반려하면, 나쁜 일이 좋은 일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이것에는 정체의 지혜와 여러 수련생의 끈질긴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수련생의 사건이 검찰원에 넘겨진 소식을 수련생 가족(수련생)과 교류할 때 가족의 말 중에서 신심(信心)에 문제가 나타나 동요했다. 공안 단계에서 한 노력이 효과가 크지 않고 심지어 누차 국내 안정 보위국(이하 국보)에 찾아간 것이 반작용을 일으킨 것이 아닌가라는 느낌이 있었다. 어떤 사람은 돈을 쓴 것이 가치가 없고, 또 어떤 사람은 마지막에는 그렇지 않은가 라는 인식(판결 받고 교도소에 가는 것을 가리킴)이 있었다. 수련인의 각도에서 보면 그것은 모두 사람의 염두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과정이 중요하지 결과에 집착하지 말라고 하셨다. 이 기간에 검찰원에 선(善)을 권하는 편지를 써야하지 않겠는가? 심도 있게 진상을 알리고 박해를 폭로해야 하지 않겠는가? 어느 단계에 오면 그 방면의 사람과 접촉해야 한다. 우리의 진상은 마땅히 그곳까지 하면 된다.
생각해보니 최초 공안 단계에서 수련생 가족은 무엇이나 다 모르고 할 줄 몰라 속수무책이었고 주장이 없었다. 여러 차례 교류를 통해 그녀는 마침내 첫 일보를 내딛고 가족을 설득해 속인 변호사를 청했다. 사부님의 도움으로 정의로운 변호사를 청했고 처음으로 수련생과 만나 수련생의 그때 상태를 알고 마음이 안정되었다. 그 후 또 여러 번 국보에 가서 사람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사악과 직면해 계속 진상을 알리고 많은 것을 돌파했고 심성도 따라 제고했다. 그러나 이것은 종점이 아니다.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功)은 사부에게 달렸다.”[1] 심성이 제고되자 사부님은 우리를 도와주셨고 길을 마련해 주셔서 제자를 성취하게 해주셨다. 우리가 걸어 그곳에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때문에 공안 이 단계에서 한 노력과 대가는 헛되지 않았고 이 단계를 지나가는 고험이 있기에 당신을 맞이하는 것은 다음의 관문이다. 수련은 한 관, 한 관을 지나는 것이다. “고비마다 반드시 넘어야 하는데”[2]가 아닌가?
간혹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수련생을 구출하는 것에 즉시 어떤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기를 너무 마음에 두는 것이 아닌가. 매일 새로운 소식이 있어야 하고 무엇을 하면 이어서 어떻게 되지 않는 것을 한스러워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생각했던 대로다. 이런 급히 성사되기를 바라는 심태는 좋지 않으며 역시 장애다. 구출을 놓고 말해보자. 어떤 이는 이 일에서 심성을 제고하고, 어떤 이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어떤 이는 아마 심성이 떨어졌을 것이다. 부동한 심성, 부동한 결과는 바로 이러하다. 그러면 새로운 단계에 이르면 박해당한 수련생도 똑같이 그가 수련할 것이 있다. 무엇을 걱정하는가? 구출에 참여한 수련생도 보조를 맞춰야 한다. 기가 죽고(신심 문제), 동요하고(신사신법) 소극적이고(수련 문제) 기다리는 것은(앉아서 생각하는 것에 의존) 모두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맺음말
왜 우리는 무슨 일에 부딪히면 가장 먼저 나쁜 점을 생각한 다음, ‘이 사람들은 어떻게 어떻게 나쁘고, 며칠 밖에 날뛰지 못한다’고 말하는가. 혹은 이것은 구세력의 박해며 구세력은 너무 나쁘며 어떻고 어떻다고 말한다. 이것은 일종 부정적인 사유의 표현이 아닌가? 일이 생기면 즉시 이것은 좋은 일이고 이것은 나의 제고를 도와준다고 생각해야 한다. 이것은 내가 마땅히 심성제고를 해야겠다, 이것은 진상을 많이 알려 사람을 구하는 기회다, 이것은 발정념을 강화하라는 요구다…… 즉시 자신의 관념을 법으로 바로 잡아야 진정으로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을 걸을 수 있다.
약간의 인식이며 부족한 곳은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2]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 ‘홍음-마음 고생’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관점만을 대표할 뿐, 옳고 그름은 글쓴이 개인의 책임이므로 독자 스스로 헤아리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1년 3월 1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3/14/42198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