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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서(寶書) 한 페이지를 읽자 종양이 사라져, 10년을 하루같이 삼퇴를 권하다

글/ 일본 대법제자 구술

[밍후이왕] 나는 올해 70세로, 2004년 봄에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을 시작해 지금까지 17년을 걸어왔다. 나는 대법을 수련하고부터 날마다 법광(法光)에 푹 빠져 비할 바 없는 행복을 느꼈다. 사부님의 한결같은 자비로운 보호에 감사드리며, 오늘 수련 체험을 조금 이야기하고자 한다.

1. 법을 얻다

1999년 ‘7·20’ 이전에는 우리 아들이 대법을 수련하고 있었다. ‘7·20’ 당시에 일본에 있었던 아들은 매주 집으로 전화했다. 아들이 가장 많이 이야기한 것은 대법이 어떻게 좋다는 것과 중공의 박해를 어떻게 당하고 있는지, 그리고 거짓말을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매일 중공 텔레비전의 세뇌 선전을 듣다 보니 대법 진상에 조금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거꾸로 아들에게 국가가 수련을 금하니 하지 말라는 등의 이야기를 했다.

2004년 봄, 딸이 미국으로 가기 전에 우리에게 건강검진을 받게 했는데, 검사 결과 내 몸에서 종양이 발견되어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들이 알고는 또다시 파룬궁을 시험 삼아 연마해 보라고 하면서 즉시 ‘전법륜(轉法輪)’ 파일을 보내주었다. 인쇄해놓고 보니 빽빽한 글자를 읽을 수가 없었다. 나는 어려서 학교에 몇 년밖에 다니지 않아 글을 거의 읽지 못했고, 쓸 줄은 더욱더 몰랐다. 내 생에 책을 읽고 글을 쓸 것이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막막한 가운데 이 책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 자 한 자씩 물어가며 배워 한 자 한 자씩 알게 되었고, 천천히 한 구절씩 배우자 한 구절 한 구절은 한 단락이 되었다. 나는 ‘전법륜(轉法輪)’의 첫 페이지를 한 달이나 걸려서야 읽을 수 있었다.

한 달 후, 내가 첫 페이지 읽는 것을 마치고 병원에 가서 다시 검사를 받아보니 주치의는 체내의 종양이 없어졌다고 했다.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겨우 ‘전법륜(轉法輪)’ 한 페이지를 읽었을 뿐인데, 몸에 있던 종양이 사라지다니? 의사도 아주 신기하게 생각했지만, 눈앞의 검사 결과가 말해주듯 종양은 분명히 사라졌다.

나는 비록 글을 잘 몰랐고, 사부님의 법을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줄곧 마음을 써서 배우며 매 한 글자에 몰입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내가 마음을 쓰는 것을 보셨고, 그래서 내 병업을 제거해 주셨기에 이쪽의 신체가 나았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일 년 내내 신경쇠약, 위궤양, 부인병 등 여러 질병을 앓았고, 불면증에 시달려 힘든 일을 할 수 없었다. 지인의 소개로 신령과 부처에게 매달리고 의사를 찾아다녔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다. 그러나 ‘전법륜(轉法輪)’을 읽는 과정에서 그런 질병이 모두 저절로 사라져 신체가 전례 없이 홀가분해졌으며, 정말 몸이 병이 없고 가벼운 상태를 체험하게 되었다. 나는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에 감사드렸다!

법 공부 과정에서 내가 ‘전법륜(轉法輪)’에 있는 ‘원만(圓滿)’이라는 글자를 읽는데, 갑자기 그 뜻이 이해되었다. 원만은 바로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파룬따파(法輪大法)는 바로 내가 생생세세 기다리던 것이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해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2. 수련

2005년 초에 처음으로 아들을 만나러 일본에 왔다가 다섯 가지 공법을 배웠다. 그러나 처음에는 결가부좌를 전혀 할 수 없었고, 반가부좌를 해도 두 무릎을 높이 들어야 했다. 매번 쌀 포대로 누르고 끈으로 묶어야 조금 내릴 수 있었다. 비록 자세는 그랬지만, 매일 연공을 견지했다. 천천히 조금씩 반가부좌가 안정되었고, 이후에는 결가부좌도 잠깐씩 할 수 있었다. 나는 날마다 다섯 가지 공법의 연공을 견지했고, 사부님의 가지(加持)하에 대략 2년 후에야 한 시간 동안 결가부좌를 할 수 있었다. 2018년에 한 시간짜리 제2장 공법 음악이 발표된 후, 나는 매일 제2장 공법 한 시간 연공을 견지했다.

나는 늦게 법을 얻었고, 법을 배우는 것도 느렸기에 시간을 다잡아 법 공부와 연공을 많이 해야 했다.

대법은 정말 신기했고, 배우겠다는 생각만 있으면 못 할 것이 없었다. 나는 글을 거의 모르는 상태에서 법 공부를 견지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전법륜(轉法輪)’을 통독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또 각 지역 설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각 지역 설법에는 모르는 글자가 아주 많았다. 나는 묻고 적어가며 천천히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매일 새벽에 한 강의를 공부하고, 저녁에 시간이 나면 각 지역 설법을 공부한다. 사부님께서 새로운 경문을 발표하실 때마다 모르는 글자가 있었지만, 나는 두렵지 않았고, 아주 빨리 배울 수 있었다.

진상 거점에서 진상을 알리고 삼퇴(三退)를 권할 때는 중생의 가명, 아명을 적어야 했다. 그 과정도 내게는 몹시 신기했고, 내가 적으려고 생각만 하면 적을 수 있었다. 글씨는 비뚤비뚤해 엉망이었고, 가끔은 틀리게 적었는데, 집으로 돌아와 아들에게 주면 어떤 것은 무슨 글자인지 몰라 아들이 내게 물었다. 내가 쓰려고 한 글자를 알려주면 아들이 고쳐 적었다. 그렇게 해서 내가 쓸 수 있는 글자가 갈수록 많아졌다. 비록 많이 배운 수련생에 비하면 한참 부족했지만, 중생을 도와 가명과 아명 정도는 근근이 쓸 수 있었다. 그것은 대법의 위력이 내 몸에서 신기하게 펼쳐진 것이었다!

다른 수련생과 교류하는 중에 수많은 사람이 사부님의 ‘논어’를 외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도 몹시 외우고 싶었지만, 어떻게 외우는지를 몰라 몹시 초조해졌다. 아들은 내게 먼저 두 글자씩 외우라고 했다. 두 글자를 외우고 나서 다음 두 글자를 외우고, 한 구절을 외우고 나서 다음 한 구절을 외우면 하루 만에 외울 수 있다고 알려 주었다. 나도 그 방법이 괜찮겠다고 생각했고, 뜻밖에도 얼마 되지 않아 ‘논어’를 정말 외우게 되었다. 진상 거점으로 가는 길에서 나는 ‘논어’를 한 번, 또 한 번 외웠는데, 끊임없이 법 속으로 녹아드는 것이 정말 너무나 미묘했다.

법을 얻기 전에는 바느질할 때마다 돋보기를 껴야 했다. 법을 얻은 후에 책을 볼 때도 꼈고, 끼지 않으면 또렷이 볼 수가 없었다. 3년 전, 어느 날 진상 거점에서 만난 노년 수련생 한 사람은 나이가 나보다 많았는데, 그는 안경을 쓰지 않아도 되고, 작은 책자로 된 ‘전법륜(轉法輪)’을 읽는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큰 깨우침을 얻었다. 나는 이것이 사부님의 점화이며, 나도 안경이 필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안경을 버렸고, 그때 이후 다시는 안경을 쓰지 않았으며, 책으로 법 공부할 때 안경이 필요 없었다. 파룬따파(法輪大法)는 너무나 비범했다.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功)은 사부에게 달렸다.”[1] 내가 이런 생각과 이런 소망만 가지고 있으면 사부님께서 아주 빨리 나를 도와주셨다.

3. 악인의 신고로 경찰에 재산을 몰수당하다

일본에서 가족을 만나는 동안 나는 더욱더 많은 대법 진상을 알게 되었다. 2006년 가을에 비자 만료로 귀국 후, 한 공장에 취직했다. 동료가 모두 잘 아는 사람이었으므로 나는 틈만 나면 파룬따파(法輪大法)의 아름다움과 수련 후 내 심신에 일어난 거대한 변화를 말해주었다. 퇴근 후에 식사를 마치면 집집이 찾아다니며 인사를 나누고 대법 진상을 말해주었다. 그들은 모두 내 말을 몹시 듣고 싶어 했고, 어떤 사람은 박해만 중지되면 모두 나를 따라 대법을 배우겠다고 했다. 나는 그렇게 우리 마을에서 진상 알리기를 마치고 인근 마을로 갔으며, 갈수록 멀리 찾아갔다. 나는 모든 기회를 이용해 대법의 아름다움과 박해 진상을 알렸다. 이렇게 좋은 공법을 더욱더 많은 사람이 와서 수련하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처음으로 신고당하다

한번은 집에서 30리 떨어진 농산물시장에서 물건을 사면서 노점상에게 진상을 알렸는데, 그가 신고했다. 결국 현(縣) 경찰이 우리 집으로 조사하러 왔다. 우리 마을은 비교적 외진 곳에 있어서 경찰이 왔다는 말을 듣고는 많은 마을 사람이 무슨 일인지 구경하러 왔다. 나는 이렇게 나이가 많은데도 처음으로 경찰과 대면하니 긴장되고 겁이 났다. 내게 파룬궁을 수련하는지 물었을 때, 단번에 두려움이 올라와 감히 내가 대법제자라는 것을 인정하지 못했고, 이렇게만 이야기했다. “나는 일본에 가 있는 동안 파룬궁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좋은 사람이 되는지를 가르치고,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이 건강하다는 말을 들었어요. 세계 수많은 국가의 사람이 연마하는데, 우리 중국에서만 연공하지 못하게 한다고 들었어요.” 경찰은 내가 연공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는 바로 돌아갔다.

나중에 나는 몹시 후회되었다. 사악과 대면하여 감히 대법 수련을 인정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비록 대법이 세계에 널리 전해진 진상을 말했지만, 대법 수련을 정면에서 인정하지 못한 데 대한 치욕과 후회를 떨쳐내기가 어려웠다. 만약 다시 그런 기회가 온다면 반드시 정정당당하게 내가 대법제자라는 것을 세인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그 이후 다시 나가서 진상을 알릴 때는 몹시 조심스러워졌고, 신변 안전에 주의하기 시작했으며, 상대방이 받아들이는 능력에 따라 어느 정도까지 말해야 하는지를 판단하게 되었다. 선량하고 인연 있는 사람을 만나야만 진상을 많이 알렸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아래 나는 확신을 지니고 계속해서 최선을 다해 진상을 알렸다. 나는 어떤 자료도 없이 어디를 가든 말로 진상을 알렸다.

두 번째로 신고당하다

나는 2007년 말에 다시 일본으로 와서 손녀를 돌봤다. 연초에 집으로 전화하니 내가 떠난 바로 다음 날 경찰이 와서 재산을 몰수해 갔다고 했다. 경찰은 대문을 부수고 들어와 내가 대법을 수련한다는 증거를 찾으려고 집안을 샅샅이 뒤지면서 가구를 모두 때려 부수고 물건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들은 ‘전법륜(轉法輪)’ 한 권과 사부님의 법상을 몰수해 갔다.

내 친척 한 사람은 ○신문사 기자인데, 경찰이 전화 감청을 통해 그가 우리와 가깝게 지낸다는 것을 알고는, 내가 있는 일본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아내기 위해 신문사 사장을 통해 그를 협박하고 회유했다. 그들은 해외까지 손을 뻗쳐 나를 계속 박해하려 했다. 친척은 경찰에 협조하지 않으려 했고, 결국 사직을 강요당했다. 친척은 나와 통화하면서 그들이 너무나 나쁘다며 절대 집으로 돌아오지 말라고 재차 당부했다. 그때 이후로 나는 다시 귀국하지 않았다. 현재 90여 세인 어머니가 병상에 누워 항상 내 이름을 부르며 보고 싶다고 하시지만, 나는 자식의 도리를 하고 싶지만 돌아갈 수가 없다.

4.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다

한 중국 수련생의 교류 원고를 봤는데, 그는 처음에 말을 하지 못해 하루에 한 명을 삼퇴 시키겠다는 마음만 냈는데도 됐다고 했다. 이후 날마다 탈퇴시킨 사람이 천천히 갈수록 많아졌다고 했다. 나는 내가 언변이 더 부족하고, 보통화(중국 공통어)도 못 하니 대법제자 중에 가장 우둔한 사람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는 이틀에 한 명을 목표로 나가서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나도 나가서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겠다고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사부님께서는 아주 빨리 다른 수련생을 배치하시어 함께 도쿄의 이케부쿠로에서 진상을 알릴 수 있게 해 주셨다.

막 시작했을 때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가장 치명적인 것은 내 사투리를 많은 사람이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30여 세로 보이는 상하이(上海) 사람 한 명은 늘 이케부쿠로에 왔는데, 상하이 말과 우리 고향 말이 비슷해 그는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나는 그가 올 때마다 몇 마디를 했지만,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몰랐다. 하루는 그 젊은이가 스스로 자신을 탈퇴시켜 달라고 했다. 사부님께서 나를 격려해 주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내가 처음으로 탈당 권하기에 성공한 것이었고, 그 이후부터 나는 삼퇴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사부님께서는 매일 인연 있는 사람이 와서 진상을 듣고, 매일 와서 삼퇴하는 사람이 있도록 배치해 주셨다.

그렇게 날마다 견지해 나가는 동안 진상을 알고 삼퇴하는 사람이 갈수록 많아져 적을 때는 하루에 10여 명이었고, 많을 때는 하루에 50~60명이었다. 나는 중생들이 구원받는 것이 기뻤고, 그들의 평안과 행복을 진심으로 축복했다.

2010년경에는 특히 긴자(銀座)에 많은 여행객이 오는데, 손이 모자란다는 말이 들렸고, 협조하는 수련생이 나를 긴자에 가서 진상을 알리도록 배치해 주었다. 긴자 8조메(八丁目)에는 고가다리가 있어 비를 피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는 비가 와도 진상을 알릴 수 있어서 좋았고, 결정적으로 비가 오는 날에도 수많은 중국 여행객이 왔다. 나는 이곳에서만 10년을 보냈는데, 10년 동안 비가 오든, 바람이 불든, 날마다 나가서 진상 알리기를 견지했다. 나는 사람 구하기가 너무 급해 집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이곳에서 수많은 감동적인 일을 만났지만, 몇 가지 사례만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한다.

한번은 관료적인 말투를 쓰는 군인 한 명이 왔는데, 그는 자신이 고급 장교라고 했다. 내가 말했다. “당신의 계급이 아무리 높고, 돈이 아무리 많아도 평안을 보전해야죠? 중공이 온갖 나쁜 짓을 다하고, 파룬궁을 박해해서 하늘이 중공을 멸하게 됐어요. 오직 삼퇴 해야만 평안을 보전할 수 있어요. 저는 당신이 평안하고 행복하기를 바라요.” 그는 천천히 안색을 바꾸다가 결국 삼퇴에 동의했다.

또 한번은 중국 경찰 네 명이 왔기에 그들에게 다가가 말했다. “경찰 여러분은 국민의 경찰이고, 우리 국민을 보호하는 사람이지만, 하늘이 중공을 멸하게 됐어요. 저는 여러분이 평안하기를 바라는데, 삼퇴 해야만 평안을 보전할 수 있어요” 결국 그들 네 명이 모두 삼퇴했다.

한번은 50여 세로 보이는 사람이 와서는 나를 보자마자 말했다. “당신은 하늘에서 온 사람이네요.” 그는 자신의 천목이 열려 많은 것을 볼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대법제자가 모두 하늘에서 왔으니 환희심을 가지지 말자고 생각했다. 보인 것은 그저 보인 것뿐이다. 똑같이 그에게 삼퇴를 권하자 그는 흔쾌히 삼퇴했다.

중국 여행객이 긴자에 오면 많은 사람이 대형 버스에서 우르르 내리는데, 나는 귀중한 중국인이 그렇게 많이 보여도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진상판을 들고 사람들 속에서 걸으며 보여주었다. 다른 수련생이 만든 광고판에는 진상 그림과 글이 있어서 선량한 사람이 볼 수 있었고, 보려고만 하면 구원받을 기회가 있었다.

어떤 여행객은 긴자를 한 바퀴 둘러보고 돌아와 길가에 앉아 휴식했다. 내가 곧장 그들에게 다가가 진상판을 보여주면 많은 사람이 진상판을 가리키며 “파룬궁, 파룬궁”이라고 했고, 의견이 분분했다. 인연 있는 사람을 만나면 그들은 진상을 알려고 했으며, 듣고 나서는 삼퇴했다.

진상 거점에서 진상을 알리는 것이 조금은 행각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행각은 무척 고생스러운 것으로서, 사회 중에서 다니며 동냥을 해야 하는데, 각종 사람과 마주치게 된다. 그를 비웃고, 그에게 욕설을 퍼붓고, 그를 우롱하는데, 어떤 일에든 모두 부딪힐 수 있다.”[1]

한번은 20여 세로 보이는 젊은이가 왔는데, 내가 진상 자료를 주니 들고 가서는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나는 화를 내지 않고 평온하게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젊은이, 그렇게 하면 젊은이한테 좋지 않아요. 파룬궁 자료는 사람을 구하는 거예요.” 말을 마치고 더는 도리를 따지지 않았다. 한참 후에 그가 돌아와서는 스스로 자료 한 부를 가져갔다. 나는 재빨리 다가가 말했다. “잘 읽어 보고 빨리 삼퇴해서 평안을 보전하세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고, 삼퇴에 동의했다.

2020년 2월 이후, 중공 폐렴이 폭발해 긴자는 텅 빈 곳이 되었고, 중국 여행객도 없었다.

협력하는 수련생의 조정을 거친 후, 나는 2020년 4월부터 다른 몇몇 수련생과 함께 입국관리청 앞에서 진상을 알렸다. 매일 접촉하는 중국인이 적어졌고, 삼퇴하는 사람도 크게 줄어 어떤 때는 하루에 몇 명, 가장 많아도 30여 명이었다. 그러나 장쩌민 고발 서명에 참여하는 사람은 오히려 증가했다.

진상 거점에서 돌아온 후, 나는 고향 사람들을 어떻게 구도하면 좋을지를 생각했다. 저녁에 시간이 나면 고향 친구에게 전화했는데, 가끔 누가 친구 집에 왔다고 하면 재빨리 삼퇴를 권했다. 둘째 남동생은 공장을 열었는데, 매일 많은 사람이 찾아왔다. 나는 늘 동생에게 전화하여 인연 있는 사람을 만나면 곧 삼퇴 시킬 수 있었다. 한번은 한꺼번에 다섯 명을 삼퇴 시켰다. 나는 또 진상을 아는 중생이 진상 자료를 그들의 가족에게 가져가게 했고, 일이 잘 풀리고 행복하고 평안하길 축복해 주었다. 전화로 진상 듣기를 불안해하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손녀에게 진상판의 내용을 종이에 적게 하고, 나중에 영상으로 그들에게 보여주면서 아홉 자 진언을 기억하라고 당부했다.

5. 병업관을 넘다

대법을 수련한 뒤로 병업관을 여러 차례 겪었다.

2018년 어느 날, 긴자에서 진상을 알리는데, 갑자기 눈앞이 캄캄하고 어지러워서 서 있기도 어려웠다. 나는 재빨리 앉으며 발정념으로 교란을 배척했고, 나아진 후에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몹시 힘들게 집으로 돌아온 후, 아들에게 오늘 내가 밥을 짓지 못하겠고, 서 있기가 힘들어 잠을 자겠다고 했다. 아들은 내게 빨리 뭘 좀 먹고 휴식하라고 했다. 내가 먼저 발정념으로 구세력의 모든 교란을 부정하자 증상이 많이 가벼워졌다. 아직 아무도 밥을 짓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간신히 일어나 밥을 지으려 했다. 아들은 씻고 자라고 하며 밥을 짓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나는 몸을 씻고 싶었지만, 욕실에 갈 힘도 없었다! 나는 구세력의 배치를 인정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벽을 짚으며 사부님 법상 앞에 가서 무릎을 꿇고 말했다.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말을 마치고 일어서는데, 단번에 아주 많이 좋아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욕실로 가서 목욕하고 나니 모든 것이 정상이었다. 마음속으로 대법제자는 곧 사부님의 뜻대로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차례 고열이 났을 때는 제2장 공법의 포륜(抱輪)을 견지하지 못할까 봐 걱정되었다. 사부님께 가지를 청하자 아주 빨리 좋아졌다.

내가 생생세세 지은 업이 너무나 커서 사부님께서는 이미 나를 도우시며 많고 많은 것을 없애주셨지만, 각 단계에서 내가 더 층차를 제고하고 업력을 제거하도록 무수한 부분으로 나누어 배치해 주셨다.

나는 대법을 수련하기 전에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는 일들을 만났는데, 여기에서 한 가지만 말하고자 한다.

1988년에 나는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오른발이 자동차에 깔려 복사뼈에 분쇄성 골절이 일어났고, 뼈가 작은 조각이 되었다. 나는 구급차에 실려 병원에 가서 깁스했다. 집도한 의사는 가망이 없다며, 이쪽 발이 불구가 될 것이라 했다. 앞으로 걸을 수 없다니! 운수 사나운 현실에 탄식이 절로 나왔다. 한 달 후에 깁스를 풀었는데, 의사가 보고는 뼈가 대단히 잘 붙었다고 했다. 으깨져 조각났던 뼈가 뜻밖에 모두 잘 붙어 불구가 되지 않았고, 흉터만 남았다. 의사들은 모두 아주 불가사의하다고 생각했다.

몇 년이 지난 지금에야 나는 사부님께서 일찍부터 나를 보호해 주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현재는 진상 거점에 갈 때마다 가장 무거운 자료를 들지만, 원망도 없고 후회도 없으며, 이것이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 사부님께서 내게 주신 것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수련하는 가운데 아직 잘하지 못하는 부분이 몹시 많다. 특히 안을 향해 찾아 심성을 수련하는 문제에서 한참 모자란다고 생각한다. 나는 앞으로 심성 수련 방면의 제고에 힘쓰고, 모순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제고할 것이다. 왜냐하면, 모순이 나타난 것은 우연이 아니기 때문이며, 모순 속에서 생각을 바로잡을 수 있다면 아주 잘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모순 속에서 모순을 해결하려 한다면 곧바로 속인 중에 떨어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홍음 4’에 있는 시 한 수를 통해 여러분과 함께 용기를 얻으며 교류를 마치고자 한다.

지견(志堅)

고난 속에 태어나
삶을 위해 허덕이며 버티어 왔구나
어느 날 아침 대법(大法)을 얻었으니
되돌아가는 발걸음 멈추지 말거라

이상은 나의 수련 체험이므로, 틀린 곳이 있다면 수련생들의 자비로운 지적을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원문발표: 2021년 3월 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big5.minghui.org/mh/articles/2021/3/9/42154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