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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다

글/ 캐나다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자신이 정체(整體)에 협력하고 협조인의 배치에 따라 원망과 후회 없이 자신이 할 일을 하고 사부님 말씀에 따라 한다고 여겨 스스로 매우 만족했다. 그러나 어느 한 번 부딪힌 일에서 나는 내가 여긴 무사무아(無我無私)의 수련 상태에 도달하지 못했음을 알게 됐다.

한 번은 원래 수련생과 영문 에포크타임스를 배포하러 가겠다고 약속했는데 협조인이 전화해 나에게 지금 션윈 홍보에 협조하는 중요한 일이 있다고 알려줬다. 우리에게 함께 단체 법공부하고 발정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부님께서는 션윈의 사람 구하는 힘이 가장 크다고 말씀하셨다. 그럼 나는 먼저 신문을 배포하러 가지 말고 단체 법공부와 발정념에 참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신문 배포는 힘들고 나 역시 이런 신문 배포 방법에 이견이 있었으며 이것은 사부님의 배치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좋은가? 법공부하고 발정념하는 것이 마침 내 취향에 맞고 이건 주요 협조인이 제기한 것이기에 내가 신문을 배포하러 가지 않는 데에 정당한 이유가 생긴 것이다.

그 후 한 수련생이 나에게 이미 대답한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진선인(真∙善∙忍)’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자신을 찾았다. 내 마음에 개인의 애호가 숨겨져 있는 이외에 또 이익심도 있었다. 매번 신문 배포를 하러 갈 때 운전하는 수련생의 연료비를 차를 타고 간 몇몇 수련생이 함께 분담했기에 내가 신문 배포를 하러 가지 않으면 이 연료비를 절약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협조인이 나에게 션윈 홍보를 위해 발정념을 하러 가라고 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이기심을 감추고 신문을 배포하러 가겠다고 대답한 일을 취소해버렸다. 그러고도 나는 “션윈 홍보가 더 중요합니다”라고 말했다.

신문 배포 방법에 대해 수련생 간에 다른 생각이 있어 나는 션윈을 위해 발정념한다는 구실로 신문 배포할 때 모순을 피하고 싶었기에 그 후 오랫동안 신문 배포에 참가하지 않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자신이 하는 것이 옳았다고 여겼고 별문제도 생기지 않았다.

어느 날 한 수련생이 나에게 법을 외우지 않겠냐고 물었다. 나는 자신의 기억력이 나쁘고 배운 것도 없어 말했다. “사부님께서 통독하라고 하셨습니다. 통독해도 마찬가지로 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동안 지난 후 이 수련생이 또 나에게 법을 외우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마침 협조인 수련생도 함께 법 외울 사람을 찾고 있다면서 나에게 함께 법을 외우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이때 나는 사부님께서 나에게 법을 외우라고 하신 것이라고 생각하고 매일 아침에 발정념을 하고 1시간 30분 동안 법을 외우기 시작했다.

법을 외우는 과정에서 같은 단락을 반복해 읽는 과정에서 나는 평소 통독할 때 보지 못한 법리를 보아 법을 외우기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고 마음으로부터 법 외우기를 더욱 중시했다. 현재 매일 법에 새로운 깨달음과 인식을 갖게 됐다. 수련생을 배치해 나에게 법을 외우게 하신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법 외우기를 통해 나는 이전에 한 스스로 옳다고 여긴 일이 지금 보면 위사위아(爲私爲我)이고 진정으로 자아를 내려놓고 정체에 더 잘 협력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했다.

우리 지역의 협조인이 나에게 신문 배포에 대해 여러 번 말했지만 나는 중시하지 않았고 참여하지 않았다. 최근 우리 지역 불학회 책임자가 나에게 신문 배포하는 곳에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는 제고할 때가 됐다고 이해하고 대답했다. 나는 제고하려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정작 대가를 치를 때 속으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과 자아를 내려놓지 못하는 집착이 있었다. 예를 들면 신문을 포장할 때 일부 방법이 부당하다고 여겼다. 수련생은 매주 목요일에 8~9명의 수련생이 함께 신문을 포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곳을 오가는 데 3~4시간이 소요되는데 다 하고 돌아와도 나의 법공부와 플랫폼에서 전화 거는 데 영향을 미치지 않기에 가겠다고 대답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제고할 일이 생겼다. 어느 날 신문을 포장하는 몇 사람이 일이 있어 오지 못한데다 온 몇 사람도 다른 일을 하게 됐다. 마지막에 4명의 수련생이 이전에 9명이 하던 일을 해야 했다. 그날 우리는 시간을 더 들여 당일 일을 끝냈다. 나는 마음이 불편했다. 이러면 내가 원래 배치한 시간에 영향을 주고 다른 일에도 영향이 미치기 때문이다.

나는 신문 포장이 내 시간 안배에 부합되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갑자기 배치가 흐트러지자 좋아하지 않은 것이다. 나는 당시 신문 포장을 책임진 수련생에게 말했다. “이 몇 사람만이 신문을 포장하면 저의 시간 배치가 흐트러져 다른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이면 다음부터 저도 오지 않겠습니다.” 당시 나는 자신이 위사위아(爲私爲我)라고 여기지 않았다. 이번 법공부에서 “소화상은 늘 고달프고 힘들어 업을 갚는 것이 빠르며 개오함도 빨라”[1]를 읽고 갑자기 이해했다. ‘이 단락 법은 사부님께서 나에게 고생을 많이 겪고 업을 많이 없애라고 점오하신 것이구나.’ 나는 즉시 생각을 바꾸었다. 다음 주에 신문 포장을 하러 몇 사람이 가든 나는 꼭 포장하러 가겠다고 생각했다.

그날 나는 평소보다도 더 빨리 갔다. 나는 그렇게 많은 사람이 오지 않으면 내가 좀 빨리 가면 시간을 앞당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모든 일은 내가 상상한 것과 달랐다. 그날 간 사람은 매우 많아 수련생들은 일을 아주 빨리 끝내 저번에 지체한 시간을 보충했다.

이 일에서 나는 자신의 마음을 바꾸면 일이 호전되는 것을 알았다. 이 일을 통해 나는 어떤 모순이든 먼저 자신의 마음을 바꿔야 모순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체험했다. 사부님께서는 항상 우리에게 수련인은 안으로 찾으라고 알려주셨다. 나는 이전에 정말 안으로 잘 찾지 않았는데 이제 이 방면에서 제고됐다.

내가 이 이치를 깨달은 후 한 번은 밖에 나가 홍법(洪法-대법을 널리 알림)을 할 때 한 협조인을 만났다. “우리 그곳에 신문 거점을 지키던 수련생이 발을 삐어 지금 일손이 부족합니다. 아주머니가 3시간 추가해 그 신문 거점을 지켜주실 수 있나요?” 당시 나는 속으로 그다지 원하지 않았다. 나는 ‘에포크타임스’ 신문 협조인과 불학회 사이에 일부 모순이 있다는 편견이 있었기에 협조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이 협조인이 말한 후 나는 내가 더 제고해야 하고 반드시 가서 협조하고 고생해야 하며 자아를 내려놔야 한다는 것을 알고 동의했다. 다음 나는 홍법 거점 협조인에게 “나는 여전히 이곳에 와서 홍법해야 합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아주머니는 돌아와 홍법해야 합니다. 때가 되면 잠시 더 일찍 가시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생각했다. ‘오전 10시에 집에서 나오는데 내가 좀 일찍 나와 정오에 신문을 지키러 가면 오후 5시에야 집에 돌아오는데 점심밥을 나 스스로 갖고 가야 하나? 아니면 밖에서 사 먹어야 하나?’ 나중에 나는 자신을 제고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협조인에게 번거로움을 끼치지 않으려고 밥 먹는 일을 언급하지 않고 혼자서 극복했다.

집에 돌아온 후 나는 심성이 좀 제고된 것을 느꼈고 가부좌할 때 몸이 매우 편안함을 느꼈다. 나는 마땅히 이렇게 협조해야 하고 이렇게 해야 수련인이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거기에 앉아 법공부만 한다고 제고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다. 사부님께서는 우리에게 세 가지 일을 모두 잘하라고 하셨다. 내가 속으로 자신이 제고됐다고 기뻐할 때 다른 한 수련생의 전화를 받았다. “지금 신문 배포거점에서 금요일에 사람이 필요한데 현재 또 새로운 신문 배포거점을 개발하려 합니다. 아주머니가 그곳에 가서 지키고 있어요.”

나는 가서 한 후 이 일을 맞게 했다는 것을 알았다. 정말 사부님께서 나를 제고하라고 하신 것이다. 내가 간 후 몇몇 수련생이 이미 신문을 내리고 있었다. 원래 그가 그 시간대에 당직을 설 때였지만 내가 간 후 그는 매우 기뻐했다. “저는 할 일이 많습니다. 또 에포크타임스 일도 감당해야 하는데 일이 많아 도저히 여기를 지킬 수 없었는데 아주머니가 와서 정말 잘됐네요. 그럼 전 가겠습니다.” 나는 “좋습니다. 얼른 가세요”라고 말했다.

그날 나는 정말 내가 사람을 구하러 온 것임을 체험했다. 보는 사람마다 모두 매우 친절하게 느껴졌고 지나는 사람에게도 나는 적극적으로 인사하고 안부를 물었더니 신문을 받아 가는 사람이 90%에 달했다. 당시 2시간도 되지 않아 신문 다섯 묶음을 배포했다. 협조인이 온 후 신문을 매우 빨리 배포한 것을 보고 말했다. “사부님께서 아주머니를 격려해주신 겁니다. 아주머니가 이 일을 한 것이 옳은 겁니다.” 나도 매우 기뻤다. 떠날 때 두 묶음밖에 남지 않았다.

이 일에서 나는 위사위아의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 진정한 수련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부님께서는 ‘대만법회에 보냄’에서 우리에게 거듭 알려주셨다. “대법제자의 수련목적은 원만이다.”[2] 이후의 수련에서 우리가 공동정진하고 제고해 더 많은 사람을 구해 자신의 원만에 도달하기를 바란다! 적절하지 않은 점은 자비롭게 바로잡아주기 바란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관점만을 대표할 뿐, 옳고 그름은 글쓴이 개인의 책임이므로 독자 스스로 헤아리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경문: ‘대만법회에 보냄’

 

원문발표: 2021년 2월 2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2/25/42133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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