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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한 태도로 연공을 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법공부를 할 때, 공손한 마음이 있어야 하며, 오직 진정으로 겸손한 마음을 유지하고서 자신을 낮추어야 법의 내포를 볼 수 있다는 점은 다들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연공할 때도 마찬가지로 이와 같아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는 사람은 적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마음을 써서 법공부 하지만 연공할 때는 그다지 중시하지 않는다.

우리는 속인에서 시작해 신체를 끊임없이 정화하는데, 다섯 가지 공법은 수련의 보조 수단이지만 마찬가지로 위력이 비할 바 없으며 법 자체와 일맥상통하기에 법의 일부분이라 할 수 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당신이 얼마만큼 높이 수련하려고 한다면 그 법, 그는 그만큼 큰 것으로서 이 법은 너무나도 박대(博大)하다.”[1] 이는 법의 함의가 무궁할 뿐만 아니라, 우리를 위로 수련하도록 지도할 수 있다는 뜻으로서, 마찬가지로 얼마만큼 높이 수련하든 공법 안에 포함된 기제(機制)와 치지(氣機)는 모두 우리에게 더 높은 층차로 돌진할 수 있다는 것을 가리키는데, 공법도 창세주의 지혜의 체현이기 때문이다. 연공에서 정진하지 않으면 우리의 번티(本體)가 전화됨이 느릴 것이고, 수련해낸 공력도 떨어지고 공능의 위력은 약해져 세 가지 일의 효과 역시 영향받을 것이다.

연공하는 겸손함은 매일 꾸준히 하고, 정확한 동작으로 엄격하게 구령에 따라 하며,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느슨하게(緩), 천천히(慢), 둥글게(圓) 하라는 요구를 준수하며, 마음속으로 매우 아끼는 것으로 표현될 수 있다. 우리는 역사상에서 여러 차례 수련했지만 수련한 공법이 모두 작았다. 속인 중에서 물건 하나를 얻으려고 갖은 고생을 다하고 마지막에 얻었다고 상상해 보자. 우리는 어떻게 대할 것인가? 생생세세 무수한 고생을 겪어서야 이 다섯 가지 공법을 얻었는데, 우리가 공경하고 귀하게 여기지 않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일부 수련생은 불법 감금 기간에 목숨으로 연공하는 환경을 개창했다. 그들은 공법의 진귀함을 알고 있는데, 우리가 진귀하게 여기지 않을 이유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서: ‘미국법회 설법-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관점만을 대표할 뿐, 옳고 그름은 글쓴이 개인의 책임이므로 독자 스스로 헤아리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1년 3월 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1/3/7/42168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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