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청년 대법제자
[밍후이왕] 저는 14살에 법을 얻어 현재 23년이 되었습니다. 쓰기도 하고 달기도 하며 시리기도 했지만, 생명이 법을 얻어 회귀하는 기쁨이 더 많았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무지했던 저는 가족이 이끌어준 덕에 대법 수련으로 걸어들어와 20여 년을 사존의 자비로우신 보호로 오늘까지 걸어왔습니다. 이제 사부님께 제자의 수련체득을 보고드리려 합니다.
1. 사존께서 난관을 지나도록 격려해주시다
박해가 일어나기 전 2년은 제 인생에서 가장 즐겁고 행복했던 시절입니다. 박해가 시작되면서 먹구름이 뒤덮였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고 어머니는 불법 노동교양을 당했는데 남동생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었지만, 우리 집에는 저뿐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신앙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불법적으로 공직에서 해임됐고 우리 집은 아무런 수입원이 없었습니다. 지출만 있고 버는 것이 없었지만 제가 부모님을 뵈러 가고 남동생이 학교에 다니는데 돈을 내지 못한 적은 없었습니다. 중요할 때면 돈을 갚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것은 사존의 고심(苦心)한 안배이며 부모님이 예전에 다른 사람을 도와서 얻은 선한 결과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 집은 예전에 법공부 장소였습니다. 부모님이 계시지 않을 때도 사람들이 와서 법공부를 했습니다. 우리 집 대문은 언제나 수련생들을 위해 활짝 열려있었습니다. 이웃에는 갓 수련을 시작한 수련생이 있었는데 글을 잘 읽지 못하는 분이었습니다. 처음에 우리 집에 와서 법공부할 때는 그녀가 늦게 읽는 것이 싫어 오지 말았으면 했습니다. 나중에는 자아를 내려놓고 자기의 득실에 집착하지 않고 한 글자 한 구절씩 알려주었습니다. 두 시간 동안 두 페이지 남짓 읽었습니다. 밤에 잠을 자는데, 꿈에 우리 집 마당에서 동공(動功)을 연마하고 있었고 동쪽 편이 갑자기 크게 밝아오면서 선녀가 나타나 꽃을 뿌리고 선악(仙樂)이 일제히 울렸습니다. 깨어난 후, 저는 사부님께서 저에게 잘했다고 격려해주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한동안은 수련상태가 아주 좋아서 매일 12시 전에는 법공부와 연공을 하고 수개해야 하는 글자를 수정했습니다. 꿈에 사부님께서 “얘야, 잘 수련하렴. 남쪽에서 큰일이 일어나려 하는구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아시아에서 쓰나미가 발생했습니다.
부모님이 갇혀있던 그해에만 사부님께서 저를 이렇게 격려해주셨습니다. 이후에는 그런 적이 없었습니다. 사부님의 격려는 시시각각 제가 잘하고 낙오되지 않게 동기를 부여해주셨습니다.
2. 납치된 수련생 가족과 20여 일간 협력해서 갇힌 수련생을 구출하다
평소 잘 알던 수련생 아주머니가 납치됐습니다. 저는 소식을 듣고 바로 아주머니의 가족을 찾아가 의논했습니다. 파출소에서는 5일간 가두겠다고 했고 가족들은 집에 돌아가 소식을 기다렸습니다. 5일 뒤 수련생은 비밀리에 시에 있는 세뇌반에 이송됐습니다.
저는 밍후이왕에 들어가 세뇌반 주소를 찾고 수련생과 교류 후 신속히 24시간 릴레이로 발정념을 했습니다. 다시 수련생 가족을 찾아 그 조카들과 논의해서 곧바로 세뇌반에 가기로 했습니다. 우리 셋은 차로 운전해 가면서 세뇌반이 어디 있는지 몇 번이나 찾느라 저녁 6시가 넘어버렸습니다.
차에서 가족들의 바른 에너지에 저는 격려를 받았습니다. 수련생의 조카는 “이번에 고모(납치된 수련생)가 서명하시지 못하게 해야 해요. 우리도 서명하면 안 되고요. 법을 얻은 생명으로서 오점을 남겨서는 안 되죠. 서명하지 말고 어서 풀어달라고 해요.”라고 말했습니다.
세뇌반에 도착하자 신기하게 전자감응 장치가 있는 방범문 두 곳을 지나갔습니다. 이때 밖에서 한 남자가 들어왔는데 흉악한 표정으로 말도 곱지 않았습니다. 위층에서 여자 한 명이 또 내려왔고, 우리 셋은 그녀를 가운데 두고 둘러앉았습니다. 남매는 그녀의 양쪽에 한 명씩 앉아서 그녀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는 계속 발정념을 했습니다. 마지막에 수련생을 데리고 내려와서 만나게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전달하러 간 사람이 수련생을 아래층으로 데려왔습니다. 뜻밖의 놀라움과 기쁨을 뒤로하고 우리는 짧게 대화를 나누며 서로 격려했습니다.
집에 와서, 우리는 당시에 어리석었고 그 자리에서 수련생을 빼내 왔어야 했다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우리는 아직 일을 마무리 짓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우리는 해당 지역 민원실에 가서 파출소에서 나이 든 부녀자를 붙잡아가서는 5일 뒤에 풀어준다 해놓고 결국 다른 곳으로 빼돌렸다고 말했습니다. 민원실을 ‘떠들썩’하게 했더니, 담당자는 “우리는 그 일을 상관하지 않을 테니 정법위에 있는 ○○ 씨를 찾아가 보시죠.”라고 말했다. 뜻밖에 우리가 모르고 있는 박해 주요 가담자였습니다. 우리가 즉시 그를 찾아가 이유를 말하고 사람을 풀어달라고 했더니 그는 발뺌했습니다.
돌아와서 저는 그의 전화번호를 찾아 가족에게 건네주며 그녀에게 사흘이 멀다 하고 전화하고 문자를 보내라고 했습니다. 또 모든 민원기관에 자료를 보냈습니다. 성장(省長)의 핫라인에다가도 전화해 사태의 여파가 커지게 하고 압력을 가했습니다.
20여 일 후 수련생 가족 세 사람은 논의 끝에 집에서 앉아서 기다릴 수만은 없다며 세뇌반에 가서 수련생을 데려와야겠다고 했습니다. 남매 셋은 차를 몰고 세뇌반에 가서 ‘한바탕 떠들썩’하게 하고 서명이라고는 한 글자도 하지 않고 수련생을 집에 데려왔습니다.
그 과정에 두려운 마음을 타파하고 걸어 나왔습니다. 저는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발정념만 하면서 따라다녔습니다. 정체(整體)를 이루고 릴레이 발정념의 위력으로 이뤄낸 결과가 현지 수련생들의 정념을 크게 고무시켜주었습니다.
3. 신필(神筆)로 사령(邪靈)을 소멸하고 중생을 구하다
한번은 수련생들과 교류하다가 ‘신필(神筆)’이라는 단어를 봤는데, 저는 저에게도 신필 한 자루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신필이 수년간 먼지 속에 묻혀 있다가 마침내 쓰임새가 생겼습니다.
어느 날 우리 지역에 갑자기 대대적인 납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조율하거나 항목을 하거나 기술 쪽을 맡은 수련생이 모두 납치돼서 한동안 먹구름이 드리웠습니다. 이렇게 10여 일이 지났는데도 보도 한 편 나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더는 앉아있을 수 없었고 서둘러 박해를 폭로하고자 했습니다.
이때, 두려운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속으로 ‘나는 별로 배운 게 없어 아는 것도 없는데 해낼 수 있을까? 다들 숨기 시작했는데 내가 나서다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두려운 마음과 정념이 몇 번 갈등을 빚다가 정념이 올라왔습니다. ‘잘 배우지는 못했지만, 사부님께서 부여해주신 신필이 있잖아! 모르는 것은 배우면 되고 아무도 하지 않으니까 비로소 내가 쓰일 수 있잖아. 누군가 할 때는 내가 필요 없었지. 인식했으면 해야지 아직도 하지 않고 있으면 대법제자가 될 자격이 있겠어?’ 그때부터 저는 신필로 법을 실증하는 길을 걸었습니다.
저는 자료를 수집해 원고를 정리하고 밍후이왕에 보냈습니다. 내려받고 편집하고, 전단과 스티커, 소책자도 다뤘습니다. 발표된 것도 있고 발표되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하나씩 배워가며 조금씩 해나갔습니다. 시작할 때는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 수 없어서 밍후이왕에 있는 글쓰기 관련 교류문장을 모두 내려받아 한 번씩 보면서 한 가지를 배울 때마다 그것을 활용해봤습니다. 박해를 폭로하는 글은 사악을 두려워 떨게 해야 하면서도 중생을 자비롭게 대하는 태도여야 하고, 어떠한 개인감정을 띤 색채나 관념도 없어야 했습니다. 투고한 후 밍후이왕 담당 수련생이 고치는 것을 도와주었고, 저는 반복해서 보면서 문제점을 찾고 격차를 좁혀갔습니다. 전국 각지의 박해 관련 문장을 내려받아 공부하면서 유사 사건에서 그 글의 작자가 어떻게 핵심을 포착하고 요점을 찾아 독자를 이끌어 읽게 하는지 파악했습니다. 점차 성숙해지면서, 박해받은 수련생 가족이 정의로운 변호사를 선임하면 따라다니면서 보도했고, 날이 갈수록 글쓰기가 성숙한 단계로 접어들었습니다. 현지 민중에게 그 지역의 사악을 폭로하고 악인의 악한 언행을 보여주어 구출하는 데 힘을 실어주고, 공안·검찰·법원(공검법)의 중생을 구했습니다.
여기서 현지 국보대대장의 사례를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이 대대장은 태도가 매우 오만했고 수단이 악독해서 현지에서 여러 수련생을 죽이고 불구로 만들고 상해를 입혔습니다. 그는 “내가 바로 ○○(박해로 사망한 수련생)를 때려죽인 사람이다.”라고 기고만장하게 떠들었습니다.
저는 수련생과 교류하면서 생각을 바꿨습니다. ‘그가 대법제자를 박해한 일만 써서는 안 된다. 그들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압력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밥그릇을 잃는 것은 두려워한다. 현재 정황을 보면 그가 사회에서 법을 어기고 규율을 어지럽힌 사실을 폭로해 그를 신고하고 고발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수련생들은 인맥을 통하거나 방법을 찾아서 그가 법을 어기고 불명예스러운 일을 한 사실 몇 건을 찾아냈습니다. 다시 투고한 뒤 저는 차를 타고 그의 고향에 가서 고향 집이 있는 향진(鄉鎮)에 내용을 배포하고 붙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모든 유관 부문에 익명으로 대거 신고하고 우편으로 서신을 보내 그의 위법 범죄 행위를 고발했습니다.
오래지 않아 그는 전출 및 강등됐습니다. 이후 지금까지 그의 악행이 더는 밍후이왕에 올라온 사례를 보지 못했습니다.
글을 쓰다 보면 때로는 수련생이 박해받는 참혹한 상황에 참을 수 없이 눈물이 납니다. 악인의 악행을 보고 원한이 생기기도 합니다. 박해 사실을 대량으로 보다 보면 스스로 두려운 마음이 생겨 더 해나가지 못할 것 같기도 하고, 저도 박해받는 일원이 되어 그런 시달림을 겪게 될까 봐 두렵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필의 부름은 다시 눈물을 닦고 자비심이 생겨나 두려움을 버리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하며, 사부님의 은혜를 저버리지 않고 사부님을 따라 사명에 부끄럽지 않게 합니다.
4. 맺음말
수천 마디 말로도 사부님의 은혜를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성숙으로 가는 걸음걸음마다 대법에 의해 씻기고 사존의 가르침을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박해가 일어나면서 예전의 많은 어린 수련생들이 길을 잃었지만 사존께서는 우리를 포기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매일 하루가 기회이지만 지나간 하루하루는 다시 오지 않습니다. 잃어버리는 것은 영원히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사존께서는 법을 위해 온 생명인 우리가 성숙하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함께 정진해 손잡고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0년 2월 1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2/16/41955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