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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춘 케이블TV 진상 삽입방송’ 기념일 맞아 생존자 역사적 과정 회상

[밍후이왕] 19년 전 2002년 3월 5일, 중국공산당 독재정권의 통제하에 있는 중국 창춘에서 전 세계를 놀라게 한 파룬궁 수련생들의 케이블TV 진상삽입방송 사건이 발생했다. 이번 삽입방송을 통해 창춘 파룬궁 수련생들은 1999년 7월 20일부터 중공이 파룬궁에 대한 불법 탄압을 개시한 이후, 일체 진실의 목소리가 차단당한 중국에서 중공 매체의 파룬궁에 대한 비방과 거짓선전에 속아 파룬궁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현지 중국인들에게 파룬궁의 진실한 이야기와 박해받는 진상을 알렸다. 당시 서방 언론들은 이 사건을 “파룬궁 수련생들의 가장 담대하고 두려움 모르는 행동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그 당시 창춘에 거주했던 파룬궁 수련생 김학철 씨는 2002년 삽입방송에 참여한 수련생 중 유일하게 살아서 중국을 탈출한 생존자이다. 일찍 중공에 의해 비밀리에 불법적인 10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그는 구금 기간에 ‘호랑이 의자’ 등 혹독한 고문에 시달리다가 출옥 후 어렵사리 해외로 탈출했다.

年“305”来临之际,金学哲先生向法轮功创始人李洪志师父表达感恩。'
올해 창춘 진상 삽입방송 ‘3·05’ 기념일을 맞아 김학철 씨가 파룬궁 창시인 리훙쯔(李洪志) 사부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있다.

김학철 씨는 2021년 ‘3·05’ 19주년을 맞아 그해 자신이 겪었던 일들과 삽입방송에 함께 참여했던 용사들에 대한 추억을 다시 한번 들려줬다. 또한, 이 기회를 빌려 파룬궁 창시인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드렸다. 사부님께서 제자를 반본귀진(返本歸真)하는 수련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가르쳐주심에 감사드렸고, 사부님께서 ‘진선인(真·善·忍)’의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전 세계에 전해주심에 감사드렸으며, 또한 사부님께서 독재정권의 폭정과 박해에 맞서서 용감하게 진리를 굳건히 지키는 수천 명의 대법제자를 육성해 주심에 감사드렸다.

김 씨는 “파룬따파는 저에게 선과 악을 똑똑히 분별할 수 있게 했고, 제가 마침내 반본귀진을 위한 인생의 진정한 의의를 찾도록 했습니다. 사부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마음은 전 인류의 모든 언어를 다 사용해서라도 표현할 방법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아래 내용은 김학철 씨의 자술에 근거해 정리된 것이다.

파룬따파는 혼탁한 세상의 한 줄기 맑은 물처럼 오염된 나의 영혼을 씻어 주었다.

1996년 5.1 휴가 기간에 나는 지방에 있는 부모님 집에 돌아가 휴가를 보냈다. 어머니는 그때 이미 파룬궁을 수련하고 계셨는데 나에게 읽어보라며 ‘전법륜’ 책을 건네주셨다. 나는 이틀이라는 시간을 이용해 다 읽었다. 아니, 이 세상에 어찌 이렇게 좋은 책이 있다는 말인가? 그 후 나는 창춘 지질궁(地質宮) 문화광장 옆의 한 노변 책 가게에서 ‘전법륜’을 구매했는데 시간이 날 때마다 꺼내서 읽곤 했다.

당시 나는 창춘의 한 중외 합자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생산과의 담당과장으로서 공직사회에서 암투를 벌이며 직책을 이용하여 개인적 이득만 챙기는 불량한 사회 관습에 물들어 있었다. 회사 수익이 높았기에 돈도 많이 벌어서 물질적으로 풍족했지만, 정신적으로는 공허하여 젊은 나이에 자주 술을 많이 마시고 하루에도 몇 갑씩 담배를 피우며 온갖 정신적 자극을 주는 방법을 찾아 마작과 도박을 일삼는 악습이 생겼다.

그러나 리훙쯔 선생님의 ‘전법륜’을 얻은 후부터 책을 읽어감에 따라 나의 세계관, 가치관, 인생관은 서서히 바로 잡혀갔고 차츰 대법이 요구하는 진선인의 표준에 따라 행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렇게 많던 악습들도 하나하나 없어졌다.

파룬따파는 혼탁한 세상의 한 줄기 맑은 물처럼 오염된 나의 영혼을 씻어 주었다.

나는 매일 ‘전법륜’을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시간만 나면 책을 보았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아직 진정으로 실수(實修)하지 못하였던 관계로 불가피한 술자리가 생겼고 또 술과 담배로 응대하는 일을 피할 수 없었다. 나는 매번 술자리 때마다 친구들에게 “술 담배는 이번이 마지막이다. 내일부터 나는 파룬궁 수련을 시작할 거야”라고 말했지만, 다음 술자리에서는 또 다른 사람이 권하는 술 유혹을 이기지 못했다.

그러다가 1997년 7월 4일, 퇴근 후 나는 남동생과 함께 밖에 나가 캘리포니아 소고기 국수를 배불리 먹었는데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복통 현상이 나타났다. 근처의 작은 진료소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니 의사 선생님은 아마 맹장염인 것 같다고 하시면서 맹장이 터지면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으니 지체하지 말고 큰 병원에 가서 검사받아야 한다고 했다. 갑작스러운 일에 나는 깜짝 놀라며 ‘난 죽으면 안 되는데. 난 아직 수련해야 하는데’라고 생각했다. 하여 나는 바로 지린대학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다. 이곳 의사 선생님도 맹장염이 의심된다고 하면서도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없었고, 한편으로 나는 아파서 죽을 지경이었다. 의사 선생님이 우선 입원해 관찰하자고 하셔서 나는 병상에 누운 채 통증으로 뒤척였고, 남동생이 옆에서 간호하였는데 당시 내 얼굴색은 누런빛이었다고 했다.

나는 동생에게 ‘전법륜’을 보고 싶다며 숙소에 가서 책을 가져오라고 했다. 다음날 병상에서 나는 온종일 책을 보았다. 밤 12시경 갑자기 통증이 사라졌고 배를 만져보니 그저 약간 부은 느낌이었다.

셋째 날 아침, 나는 지린대학 병원 부근의 지질궁 문화광장에 있는 파룬궁 연공장에 가서 연공 했다. (그전에 어머니로부터 연공 동작을 이미 배웠다) 연공이 끝나고 병원에 돌아온 후 나는 곧바로 퇴원 절차를 밟았다. 이때부터 술과 담배를 끊고 진정으로 수련의 길을 걷게 되었다.

수련의 이 한 길에서 진정 실수해야만 파룬따파의 박대 정심한 법리와 사부님의 무량한 지혜를 체험하고 깨달을 수 있다. 그때는 매일 퇴근 후 책을 보며 법공부를 했는데 무슨 일에 부딪히면 우선 대법의 요구에 따라 자신을 대조했다. 이렇게 일상생활과 직장 업무를 보는 과정에서 모순을 만나면 자신의 부족한 점을 먼저 찾아 자신이 어디에서 잘못했는지 생각해보면서 그다음 다시 바로 잡아 나갔다.

춘하추동, 추위가 오고 더위가 가며 사계절이 바뀌는 동안 나는 매일 새벽 일찍 일어나 연공장에 나가 연공을 견지했다. 나는 대법의 법리에 따라 자신을 제고했으며 심성이 승화되고 품성이 향상됨에 따라 신체도 빠르게 병이 없는 가뿐한 상태에 도달했다. 수련은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한없이 큰 사부님의 은혜를 흠뻑 받으며 나는 이때부터 마침내 반본귀진(返本歸真)을 목적으로 한 인생의 진정한 의의를 찾게 되었다.

나는 어렸을 때 석가모니불이 아직 이 세상에 살아 계실 당시 그의 제자들은 그가 친히 전한 법을 들을 기회가 있어 참 행복했겠다고 생각했었다. 파룬따파를 수련한 이후 나는 또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오늘날 대법이 널리 전파되는 이 시대에 더군다나 현재 나는 진실하고도 확실하게 사부님께서 관리하고 계신다. 사부님께서 친히 제도하시는 제자로서 파룬따파를 수련할 수 있게 되어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한번 스승은 평생 아버지와 같이 존경하고 모셔야 한다”는 말이 있다. 수련한지 이렇게 오래되었건만 매일 사부님의 자비를 깊이 느끼며 큰일에서든 작은 일에서든 모두 대법의 은택을 체험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사부님의 무한한 은혜에 대한 감사의 마음은 인류의 모든 언어를 다 사용하더라도 표현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어릿광대의 질투로 전면적인 박해 개시, ‘톈안문 분신자살 조작극’을 날조해 파룬궁에 대한 국민의 적대심 부추겨

1999년 5월, 먹구름이 온통 전 중국을 뒤덮었다. 개인의 극단적인 이기심과 질투심에서 비롯된 장쩌민이 파룬궁에 대한 피비린내 나는 탄압을 시작한 것이다. 박해는 미친 듯이 강화되었다. 당시 중공 당국의 통제하에 있는 TV, 방송, 신문 등 모든 매체가 하늘을 뒤덮을 듯한 기세로 파룬궁 창시인 리훙쯔 선생과 파룬궁 수련생들에 대한 거짓 날조와 비방 선전을 퍼부었으며 수많은 세상 사람들을 속였다.

중공은 파룬궁에 대한 박해에 있어 진일보 중국인들의 원한을 선동하기 위해 2001년 음력 정월 초하루 저녁 중공 중앙텔레비전(CCTV)을 통해 황금시간대에 이른바 ‘톈안먼 분신자살 조작’ 사건을 방영했다. 이 사건으로 당시까지만 해도 보편적으로 파룬궁을 동정하던 중국인들의 민심이 파룬궁을 적대시하는 분위기로 급격히 바뀌었다.

반년 후인 2001년 8월 14일, 유엔 산하 국제교육발전기구(IED)는 유엔회의 석상에서 ‘톈안먼 분신자살 조작’ 사건은 중공 당국이 파룬궁 박해를 위해 조작한 것이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해 ‘국가 테러 행위’라며 중공 당국을 강력히 비난했다. 성명은 “올해 1월 23일 톈안먼 광장에서 발생한 분신자살 조작 사건은 중공이 파룬궁을 모함하려 조작한 것이다. 우리가 얻은 비디오 분석 결과에 의하면 전반 사건은 정부가 직접 획책한 것이다”라며 사건 자체가 중공 당국에 의해 날조된 연극임을 분명히 했다. 확실한 증거 앞에서 당시 회의에 참석한 중국 대표단은 아무런 변명도 내놓을 수 없었다.

그러나 한편 중국 내에서 CCTV는 이른바 ‘분신자살 조작 사건’ 영상을 반복으로 방영함으로써 조작극에서 나오는 장면이 거의 모든 중국인의 두뇌에 각인되도록 했다. 그리하여 많은 중국인은 진상을 모른 채 여전히 ‘분신자살 조작극’의 영향을 받아 파룬궁과 수련자들을 적대시하고 있었다.

1999년 7월 20일 중공의 파룬궁 탄압이 시작된 후, 나는 수천 명의 파룬궁 수련생들과 마찬가지로 집을 나서서 현지 신방사무실(信訪辦)과 베이징의 관련 신방 부문을 찾아가 민원을 제기하여 ‘파룬따파는 국가와 사회에 대해 백 가지 좋은 점이 있어도 한 가지 해로운 점도 없다’라며 정부에 파룬궁 박해를 멈출 것을 호소했다. 그러나 진실한 말을 전하려 했던 이 수천 명의 파룬궁 수련생들은 오히려 중공의 불법 감금과 불법 판결을 받아야 했다. 파룬궁 수련생들에 대해 “경제적으로 파탄시키고 명예를 실추시키며 육체를 소멸하라”라는 박해 원흉 장쩌민의 반 인류 정책하에 수련생들은 혹형 고문을 당했고, 심지어 생체장기적출이라는 이 인류역사상 전대미문의 사악한 박해를 당했다.

파룬궁 수련생들이 어디에도 진실을 말할 수 없는 부득이한 상황에서 우리 창춘 파룬궁 수련생들은 신호를 삽입하는 방법으로 케이블 TV 채널을 통해 진상을 전파하기로 했다. 이는 세인들에게 중공이 날조하고 뒤집어씌운 파룬궁에 대한 거짓선전에서 벗어나 ‘진선인(真·善·忍)’ 파룬따파를 적대시하지 말 것과,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파룬궁 수련생들에 대한 박해에 참여하지 말도록 함으로써 지금 그들 자신이 지은 죄로 인해 장래 하늘이 내리는 엄벌과 인간 법정에서의 징벌을 면할 수 있게끔 하기 위함이었다.

수련생들은 방송 삽입은 언론매체들이 그들이 마땅히 해야 할 역할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데 도움을 줄뿐더러 시민들에게 공공시설을 되돌려주는 훌륭한 행동으로, 시민들에게 진상을 알 수 있는 권리를 되돌려주는 것이고 인간 세상의 정의와 법률의 존엄을 진정으로 수호하는 것이라고 인식했다.

당시 삽입방송을 시작하기 전, 나와 동료 수련생들은 모두 충분한 준비를 하였다. 이번 일로 아마 자유와 행복, 가족과 친인, 사업과 미래를 잃을 수도 있고 심지어 감옥에 가고 목숨을 잃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때 나는 세상 사람들이 중공의 거짓에 속아서는 안 되며, 사부님과 파룬궁에 대해 잘못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그러기에 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삽입방송에 참여하였다.

삽입방송에 참여한 수련생들 가장 잔혹한 박해 받아, 이들은 생명의 대가로 고귀한 중국인들에게 진상을 전파했다.

2002년 3월 5일 저녁 8시경, 창춘 파룬궁 수련생들은 케이블TV 삽입방송을 통해 ‘파룬따파가 전 세계에 널리 전해지다’, ‘분신자살인가 아니면 사기극인가?’ 등의 파룬궁 진상 관련 영상을 성공적으로 방영했다. 방영시간은 40분~50분에 달했고, 방송 자체가 32개 채널을 이용하는 30만 가정의 백만 명 시청자들을 커버했다. 창춘 시민들은 처음으로 자기 집에서 나오는 TV를 통해 파룬따파가 전 세계에 널리 전파된 정황과 분신자살 조작극의 진상을 알게 되었다. 이번 방영을 통해 많은 시민이 파룬궁이 모함받고 박해당한 진상을 알 수 있었다.

'参与长春真相插播被中共迫害致死的法轮功学员,从左至右依次为:刘成军、梁振兴、侯明凯、雷明、刘海波。'
창춘 진상 삽입방송에 참여한 후 중공의 고문 박해로 사망한 파룬궁 수련생들. 왼쪽부터 수련생 류청쥔(劉成軍), 량전싱(梁振興), 허우밍카이(侯明凱), 레이밍(雷明), 류하이보(劉海波).

진상 삽입방송이 나간 다음 날인 3월 6일, 창춘시는 가마가 들끓는 것과 같았다. 큰 거리, 작은 골목, 쇼핑몰, 백화점 무릇 사람이 있는 곳이기만 하면 모두 이 일을 논의하고 있었다. 모두 대법이 전 세계에 널리 전해진 상황을 논했고 원래 ‘톈안먼 분신자살 조작 사건’은 가짜이고 사람을 속인 것이라는 것에 관해 이야기했다. 이처럼 장마두(江魔頭) 집단이 파룬궁을 모함하기 위해 날조한 요사한 말들은 사람들 마음속에서 크게 부풀어 오르는 풍선과도 같았는데, 요사한 말이 많아질수록 풍선이 더 커졌다가 진상 삽입방송이 예리하기 그지없는 신침(神針)처럼 살짝 닿자 사람들 마음속에 가득 찬 요언 풍선이 폭발한 것이다. 남은 것은 반짝반짝 빛나는 진상뿐이었다!

그러나 삽입방송에 참여한 수련생들은 중공의 참혹하기 그지없는 학살을 당했다. 창춘 삽입방송 사건이 발생 후 장쩌민은 암암리에 ‘무조건 죽여라(殺無赦)’라는 비밀명령을 내렸다. 삽입방송이 있고 난 뒤 1시간도 되지 않아 현지 군대까지 움직여 파룬궁 수련생들에 대한 대대적인 체포에 들어갔다. 체포된 창춘 수련생들은 아주 빠른 시간에 5천 명에 이르렀고, 이후 적어도 8명이 구타로 사망했다. 또 15명이 불법적인 판결 때문에 4년에서 20년의 형을 선고받았는데 중공은 이들을 여러 큰 감옥과 강제 수용소에 보내 비밀리에 박해를 진행했다. 이후 많은 수련생이 고문에 시달려 사망하거나 정신이상이 되었다.

이들 중 삽입방송 작업에 참여한 수련생 허우밍카이는 체포 후 단 이틀 만에 고문과 박해로 사망했다.

파룬궁 수련생 류하이보는 경찰에 의해 온몸에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은 채 무릎 꿇은 자세로 ‘호랑이 의자’에 수갑이 채워져 박해당했다. 또한, 두 명의 경찰이 고압 전기 방망이를 류하이보의 항문 속에 삽입해 전기충격을 가했다. 옆에는 또 부러진 나무토막 몇 개가 널브러져 있었다. 류하이보는 극도로 심한 고통에 시달리다가 잠시 후 바로 숨이 멎었다.

삽입방송의 주요 참가자 중 한 명인 류청쥔은 경찰이 쏜 총에 다리를 맞아 불구가 된 상태에서 ‘호랑이 의자’에 앉아 52시간 동안 고문을 받으며 자백을 강요당한 후 지린 감옥에 보내졌다. 이어 감옥 내에서 또 ‘사지를 끌어당겨 찢기(抻刑)’ 고문을 당하는 등 1년 9개월 동안 잔혹한 고문 학대의 시달림을 받다가 2003년 12월 26일 끝끝내 인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당시 그의 시신은 7시간 만에 경찰에 의해 강제로 화장됐다. 이 밖에 수련생 장젠화(張建華), 추이웨이둥(崔偉東), 허위안후이(何元慧) 등이 지린 감옥의 혹형 고문으로 사망했다.

酷刑演示:抻床
혹형 예시: 침대에 손과 팔다리를 대(大)자형으로 묶어 온 사지를 끌어당겨 찢기 고문-천촹(抻床)

삽입방송에 참여한 수련생 레이밍은 납치 후 창춘시 공안국, 지린 감옥 등에서 잔혹한 고문과 박해를 당했다. ‘호랑이 의자’ 고문, 손목을 등 뒤로 하여 수갑 채우기, 심한 구타, 전기 방망이로 충격 가하기, 비닐봉투를 머리에 씌우기, 철통을 머리에 씌워 격타하기, 전기 방망이를 항문에 삽입해 전기충격 가하기, 온 사지를 끌어당겨 찢기, 고환을 힘껏 움켜잡기 등등의 극도로 무자비한 고문 박해를 당했다. 이로 인해 레이밍의 폐에는 기흉이 생겼고, 약 10분의 2에 해당하는 폐만 남았다. 레이밍은 생명이 위독한 지경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른바 ‘보석치료’를 받게 됐으나 이후 억울함을 품은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中共黑狱酷刑演示:铁桶套头击打
중공 감옥 내 혹형 고문 예시: 철통을 머리 위에 뒤집어씌워 격타하기

중공은 파룬궁 수련생에 대한 박해에서 역사상 거의 모든 잔혹한 혹형 고문 수단을 다 동원했다. 전기 고문, 물고문, 얼게 하는 형벌, 수갑 채우기, 사지를 찢어 당기기, 극심한 구타, 성 학대, 약물 박해, 강제 낙태 등등 그야말로 사용한 박해의 수단이 사악하기로 일일이 진술할 수 없을 정도다.

내가 옥중에서 삽입방송 참가자인 수련생 량전싱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은 2006년이다. 그는 몇 명의 바오자(包夾-감옥 내에서 교도관의 지시로 파룬궁 수련생 곁에 붙어 수련생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일반 범죄자) 범인들에 포위당해 있었다. 사악한 무리는 량전싱을 이른바 전향시키기 위해 늘 그에게 고문을 가하며 학대했는데, 그 당시 내막을 잘 아는 사람의 회상에 따르면, 량전싱은 언제나 걸어서 끌려나갔다가 누운 채로 실려 돌아왔다고 한다. 또한, 수차례 창춘시 교외에 있는 징웨탄(净月潭) 비밀 고문실에 끌려갔는데 매번 감옥에 돌아올 때마다 온몸이 온통 상처투성이였다고 했다. 량전싱의 한쪽 유두는 고문으로 불에 지져 타버렸고 구타로 인해 갈비뼈가 부러졌으며, 생식기 또한 전기충격으로 시커멓게 타버렸다. 그는 사망할 때까지 갖은 박해를 당했지만, 사악의 무리가 가한 그 어떠한 혹형도 량전싱을 모두 굴복시키지 못했다.

전 지린성 당안국(檔案局) ‘란타이내외(蘭台內外)’ 잡지사 부 편집원이었던 수련생 장중위(張忠餘)는 납치당한 후 사악한 경찰 장항(張航) 등에 의해 전기 고문을 당했다. 장항 등은 손에 전기 방망이 두 개를 들고 중점적으로 장위중의 생식기에 충격을 가했는데 매번 한 손은 위에서 전기충격을 가하고, 다른 한 손은 철의자 아래에서 위로 향해 장의 음부에 전기충격을 가했다. 장중위는 고문으로 온몸이 땀에 흠뻑 젖었으며 여러 번 기절하면서 죽을 지경이었다.

中共酷刑示意图:长期绑床并电击
중공의 혹형 고문 예시: 장기간 침대에 사지를 묶어 전기충격을 가하기.

수련생 장즈쿠이(張志魁)는 창춘시 공안 1처의 사악한 경찰에 의해 온몸에 찬물을 끼얹힌 후 전기충격기로 전신과 생식기에 전기충격을 가하는 고문을 당했는데 그 당시 참혹한 모습은 끔찍하여 차마 눈을 뜨고 볼 수 없었다.

이처럼 중공이 설치한 층층의 장벽을 타파하고 세상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기 위해, 고귀한 중국인들을 위해, ‘진선인’에 대한 믿음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진상 삽입에 참여한 용사들은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했다.

‘3·05’, 중국인 중 일부가 사실의 진상을 알게 된 이 날은 또한 파룬따파 제자들이 세인들을 일깨우고 양지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생명을 바친 날이기도 하다. 미래의 인류는 영원히 이날을 기억할 것이다!

불법(佛法) 위엄의 일면 체현, 하늘의 법망은 느슨한 것 같지만 악인은 반드시 징벌을 받게 되는 법.

한 차례 삽입방송으로는 아직 중공의 거짓선전이 사람들에게 미친 해독을 완전히 다 씻어버릴 수는 없지만, 하늘의 법망은 관대한 것 같으나 선악에는 반드시 응보가 따르는 법이다. 대법을 수련하며 나는 우주 대법 위엄의 일면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밍후이왕 보도로는, 전 중공 공안부 부부장 류징(劉京), 전 중공 광전총국(廣電總局) 부국장 리둥성(李東生), 전 중공 신화사 사장 톈총밍(田聰明), 전 중공 CCTV ‘저녁 7시 뉴스(新聞聯播)’ 앵커 뤄징(羅京), 전 중공 CCTV ‘동방시공(东方时空)’ 프로그램 담당자 천멍(陈虻) 등 다섯 명은 모두 액운을 만났다. 이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이라면 모두 20년 전 중공이 획책한 ‘톈안먼 분신자살’ 조작극에 가담하였고 이 사건을 통해 거짓으로 민중의 적개심을 부추겼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류징은 후두암에 걸려 생사불명으로 알려졌다. 그는 직접 ‘톈안먼 분신자살’ 조작극의 획책과 시행 및 적개심을 부추기는 선전 보도에 가담했다.

한편, 리둥성은 15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 역시 ‘톈안먼 분신자살’ 조작극의 획책자 중 한 명으로 해당 조작극이 전 세계에서 전파하게 하는 전반 비밀 과정에 직접 가담 또는 영상 제작에 대한 감독자 역할을 했다.

뤄징은 림프암으로 죽었다. 죽기 전 입과 혀가 다 곪아 터졌다고 한다. 앵커였던 뤄징은 생전에 ‘톈안먼 분신자살’ 조작 방송을 반복하여 보도했다.

천멍은 47세 나이에 위암으로 죽었다. 그는 CCTV ‘톈안먼 분신자살’ 조작극의 제작자이다.

그때 장면을 재현한 영화 ‘영원한 50분’, 비장한 역사와 영웅들의 장거

캐나다 토론토의 신경계(新境界, NewRealm) 영화제작사에서 창춘 케이블TV 진상 삽입방송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 ‘영원한 50분’을 찍기로 하여 나에게 촬영에 참여하길 바란다며 제작팀으로부터 요청이 들어왔다. 아울러 나에게 영화 속에서 그 시절의 나 자신을 연기할 수 있다면 역사를 더욱 잘 재현할 수 있다고 했다.

'金学哲先生(右三)参加电影《永恒的五十分钟》的拍摄。图为拍摄时留影。'
김학철 씨가 영화 ‘영원한 50분’ 촬영에 참여했다. 촬영 당시 그가 기타 연기자들과 남긴 사진이다.

영화촬영은 23일간의 일정으로 진행되었는데 나는 미술 소품 팀에 배정되었다. 나는 가능한 한 그때의 삽입 장면을 회상하여, 소품을 사실감 있게 제작할 수 있도록 하였다. 모두의 노력으로 드디어 유선 신호 앰프, 주간선 케이블, 전봇대, 구식 VCD기 등 역사 현장 재현에 필요한 소품들이 하나하나 만들어졌다. 그 당시 삽입 장면이 사실적으로 복원된 것을 보고 나는 눈 한 번 깜빡이는 것도 아까울 정도로 이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촬영에 몰입하면서 나는 마치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몇 번이고 뜨거운 눈물이 눈에 그렁그렁 고이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아, 또다시 그해의 ‘동료들’과 함께 하고 있구나”, 슬프고 기쁜 심정이 교차하였다. ‘영원한 50분’ 이 영화는 예전 그 나날의 쉽지 않았던 일들을 전 세계에 알려주고 있으며, 아울러 전 세계인들에게 파룬따파 제자들의 영웅적인 장거를 널리 알리고 있다.

그 후 영화가 개봉되었다. 나는 무엇보다 세상을 떠난 선구자들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창춘 ‘3·05’ 진상 삽입방송의 성공은 당신들의 생명의 대가와 참여자 및 창춘 파룬궁 수련생들의 거대한 대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영화 속에서 우리는 영웅들의 역사적인 배역을 연기하는 행운을 얻었지만, 저의 참여는 당신들에 대한 저 자신의 추모와 경의입니다. 당신들의 이름은 청사에 길이 남을 것이고, 장래의 사람들은 당신들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위대한 사존께서 독재정권의 폭정과 박해에 맞서 감히 진리를 굳건히 지키는 수천수만 명의 대법제자를 육성하셨다

2007년 아태인권기금회는 중공의 뉴스 봉쇄를 돌파하고 많은 사람에게 파룬궁 진상을 보여준 창춘 ‘3·05’ 삽입방송팀의 대표로 창춘 파룬궁 수련생 류청쥔에게 올해의 ‘진실 옹호자 상’을 수여했다. 아태인권기금회는 “류청쥔은 20세기 중화민족의 인권 수호자로서 그의 영웅 사적은 후세에 길이 남을 것”이라고 밝혔다.

'法轮功学员张而平(右)代表刘成军接受丹心汗青奖。亚太人权基金会认为,刘成军不仅对百万观众介绍了事实真相,而且为民间维权运动树立了榜样。'
파룬궁 수련생 대표 장얼핑(張而平, 오른쪽)이 류청쥔을 대신해 ‘진실 옹호자 상’을 받았다. 아태인권기금회는 류 씨가 100만 시청자에게 진실을 알렸을 뿐 아니라 민간 인권수호 운동에 모범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김학철 씨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1999년 ‘7·20’ 중공의 파룬궁 박해로부터 이미 22년이란 세월이 지났습니다. 이는 첩첩의 마난(魔難)과 함께한 22년이었습니다. 비록 수련의 길은 험난했지만, 다시 곰곰이 돌이켜보면 관마다 모두 사부님의 자비로운 가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가 파룬궁을 수련하고 실천에 옮긴 과정은 끊임없이 파룬따파를 실증하는 과정이었고 사부님께서 알려주신 진리를 끊임없이 증명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수련의 길이 얼마나 험하고 힘들어도, 저 자신이 관속에서 넘어지고 부딪치며 힘들게 걸어갈지라도, 또한 사악한 중공의 박해가 얼마나 참혹할지라도 모두 파룬따파에 대한 저의 굳건한 믿음이 동요될 수 없었던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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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춘 ‘3·05’ 삽입방송의 거대한 작용은 여기에 참여했던 선구자들이 생명의 대가로, 그리고 참여자들과 창춘 파룬궁 수련생들의 거대한 대가로 바꿔온 것이다. 이러한 파룬궁 수련생들의 장거가 있었기에 광범위한 창춘 시민들은 비로소 파룬궁 진상을 알게 된 것이다.

이 수천수만의 참말을 하는 파룬따파 수련자들은 과감히 중공의 거짓말을 폭로했고, 감히 독재정권의 박해에 맞서 싸웠으며, 용감히 진리를 견지하였다. 그들은 위대한 불법이 이룩한 성도들이다.

자술을 마치며 마지막에 김학철 씨는 수년 전 한 수련생이 지은 시를 빌려 리훙쯔 사부님의 은혜에 감사의 뜻을 표했다.

한 명의 사부, 한 부의 법, 1억 명의 대법제자(一師一法一億徒)
일생일세에 한 권의 책이라네(一生一世一部書)
하나의 관, 하나의 난, 한 층의 하늘(一關一難一層天)
신념 하나로 귀로에 오르네(一信一念一歸途)

 

원문발표: 2021년 3월 5일
문장분류: 해외소식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3/5/421722.html
영문위치: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21/3/12/19136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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