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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의 동력은 무엇인가

글/ 해외 대법제자

[밍후이왕] 중공 바이러스가 중국에서 폭발한 후 전 세계로 확산하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미 대선 기간을 포함해 일부 수련생이 교류에서 미래에 대한 예측을 언급했는데, 이런 문장은 쉽게 여러 사람의 주목을 받게 된다. 이런 문장을 보고 시간의 긴박감과 다그쳐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나는 또 느슨한 생각이 들었고 이런 문제를 생각하게 됐다. ‘수련인이 정진하는 동력은 무엇인가?’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수련을 아주 잘한 대법제자라면 대법이 무엇인지 이성적으로 인식할 수 있으며 그럼 반드시 힘을 내어 할 것인바, 반드시 이 방면에서 태만하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말한다면 정진하지 않는 사람도 여전히 법 공부를 하고 있고 또 법이 매우 좋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법에 있지 않으며 정념도 부족하기에 인식이 자연히 높지 않은데, 곧 진정으로 법의 진귀함을 이해할 수 없으므로 힘을 내지 못하고 있다.”[1]

이것은 수련의 의지력이 확고하지 못한 수련생이 제기한 문제에 대한 사부님의 해답이다. 이 설법이 발표된 지 이미 몇 년이 지났다. 나는 줄곧 문제를 제기한 수련생과 같은 고민이 있었고 사부님의 해답에 아는 둥 마는 둥 했다. 나는 분명히 법이 좋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왜 법의 소중함을 이해하지 못하는가? 왜 정념이 부족한가?

몇 년 전 한 수련생과 어떻게 법공부를 해야 하는가에 대해 교류하고 나서 나의 법공부 질은 개선됐다. 간단히 말하면 법공부는 형식에 그치지 않고 시간과 수량을 보지 않으며 단지 질만 본다. 통독을 하든 법을 베끼든 ‘전법륜’을 배우든 혹은 신경문을 배우든 마음에 닿아야 한다. 한 시간에 한 소제목만 배워도, 혹은 30분만 배워도 반드시 마음에 닿아야 하고 수확이 있어야 비로소 법을 배운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겉치레에 불과하며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다.

그 후부터 나는 법공부를 마음에 닿게 하는 신성함을 느꼈고 자신의 변화도 느꼈다. 작년 연말, 나는 관을 넘을 때 눈물을 닦으며 수련생 남편에게 말했다. “지금 내 꼴이 말이 아니지만 내 마음속에 법에 동화된 그 부분은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아요.” 나는 정말로 마음속에 반석 같은 실물이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의 후천적인 관념, 표면적인 감정은 그것을 건드리지 못한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정진의 동력은 마땅히 진정으로 법의 소중함을 이해하는 것이고 끝나는 시간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자신에게 물어본다. 지금 내가 매일 시간을 분배하는 것에 따라 만약 오늘 정법이 끝나게 된다면 나는 더욱 정진하지 못해 후회하지 않을 것인가? 만약 정법이 아직 50년이 더 있다면 지금 하는 일은 안목이 좁고 극단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정법이 끝나는 시간의 예측과 추측에 근거하여 나의 시간을 배치한다면 상대적인 교란이 있을 수 있다. 동기가 순수하지 않아 그 뿌리는 떠 있게 마련이다. 마음속으로 우주 대법을 소중히 여겨서 나온 동력만이 비로소 금강불파(金剛不破)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주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수련 중에서 당신들은 자신이 진정으로 착실하고도 착실하게 제고함으로써 내재적으로 거대한 본질적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힘에 의거하고 외재적인 강대한 요소의 도움을 빌린다면, 이는 영원히 당신 사람의 본질을 불성(佛性)으로 전변시킬 수 없다. 만약 당신들이 사람마다 모두 내심에서 법을 인식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비로소 위력이 끝없는 법의 체현 ― 인간 세상에서 강대한 불법(佛法)의 재현(再現)이다!”[2]

나는 우리의 생명이 진정으로 대법에 동화할 때, 동화한 그 부분 역시 물질이라고 이해한다. 우리 육신도, 사람 속에서 상대적으로 대응하는 물질도 역시 사람 속에서 체현된다. 외향적인 표현, 예를 들면 대법 지도로 수련해낸 언행, 특히 난관과 시험을 만날 때 그것은 진정으로 법에 동화돼야 비로소 마음속에서 우러나 태연하게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있고, 꾸며내서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지금 층차에서 이 한 단락 법을 이해한 것이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로스앤젤레스시 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경문: ‘정진요지-경고하는 말’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관점만을 대표할 뿐, 옳고 그름은 글쓴이 개인의 책임이므로 독자 스스로 헤아리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1년 3월 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1/3/3/42157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