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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맹(心盲), 심명(心明)

글/ 해외 대법제자

[밍후이왕] 눈이 밝은 사람은 맹인의 느낌과 상태를 정말 아는가? 예를 들면, 맹인의 마음은 눈이 밝은 사람보다 고요한가? 아니면 반대인가? 맹인이 ‘본’ 인생은 어떤 모양인가? 내가 추측건대, 공식적인 답안은 없다. 맹인도 한 명의 개체 생명으로서, 모든 사람의 정황은 다 다르기 때문에 통일적인 결론을 내릴 수 없다.

사실 마음도 마찬가지로서 명(明)이 있고 맹(盲)이 있어 명일 때가 있으면 맹일 때도 있다. 대법이 널리 전파된 1992년부터 지금까지 29년이 지났다. 우리는 법리에 대해 얼마나 이해했는가? 우리의 관념은 얼마나 제거했는가? 사람 마음과 욕망은 얼마나 제거했는가? 우리는 무의식중에 법에 몇 번이나 정의를 내린 적이 있는가? 부딪힌 일이나 만나는 사람에 대해 얼마나 정의를 내렸는가? 사부님께서 “자비는 천지에 봄이 오게 하고”라고 말씀하셨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매 구절대로 해내기란 쉽지 않고, 매번 해내기는 더 어렵다. 해냈을 때 마음은 밝은 것이고, 명백한 일면이 주도하는 것이며, 해내지 못했을 때는 마음이 맹하여 사람의 관념, 업력, 집착이 우위를 점한다.

며칠 전 어린 수련생이 천목으로 본 일부 일을 써낸 문장을 예언이라고 부르는데, 예언 보기를 좋아하는 수련생이 많아 이번에 많은 사람이 또 마음을 움직였다. 그중에 일부 수련생은 이 때문에 자신의 집착을 인식했고, 자신에게 충격을 주는 이 문장을 수련의 좋은 기회로 삼아 결과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내려놓고 제고했다. 어떤 수련생은 대법으로 가늠해 평온한 심태를 유지했고, 어떤 수련생은 다른 관점을 보았을 때, 감정이 격동돼 후레쉬처럼 다른 사람을 비추고 다른 사람을 고치려 했다.

모순을 본 나는 자신에게서 찾고 자신을 수련하겠다는 생각을 품고서 사부님의 관련 설법들을 찾아냈다.

‘북미 제1기 법회 설법’ “다른 사람과 충돌이 발생하면 당신은 안을 향해 찾아야 하고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아야 하며 밖에서 찾지 말아야 한다. 그럼 당신의 心性(씬씽)은 실제상 곧 제고되는 것이다.”[2]

‘오스트레일리아법회 설법’ “자비로 모든 사람을 대해야 하며 어떤 문제에 부딪히면 모두 자신한테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설령 다른 사람이 우리를 욕하고, 우리를 때렸을지라도 우리는 모두 자신한테서 찾아야 하는데 자신의 어느 면이 잘못돼서 조성된 것이 아닌지를 찾아야 한다. 이런 모순의 근본 원인을 찾는 것이 사(私)를 버리고, 자신의 집착을 제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당신 개인수련 중에서 대하는 모든 사람을 용서하는 데까지 마음을 크게 먹어야 하는바 당신의 적을 용서하는 것을 포함해서다. 왜냐하면, 당신이 말하는 적은 인간이 구분한 적이며, 사람이 이익을 위해서 구분한 것이지 신의 행위가 아니다.”[3]

‘유럽법회 설법’ “그들 둘은 서로 모순이 생기게 되는데 목적은 그들 각자의 마음을 제거하려는 것이다.”[4] “모순이 생길 경우 각자 나름대로 안을 향해 자신의 원인을 찾아야 하는데, 이 일이 당신 탓이든 당신 탓이 아니든 관계없이 말이다. 내가 한 말을 기억하라. 이 일이 당신 탓이든 당신 탓이 아니든 당신이 모두 자신을 찾는다면 당신은 문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4]

‘2004년 시카고법회 설법’ “어떠한 모순이 나타나고, 어떠한 일이 나타났을 때,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주었다. 모순이 발생한 두 사람이 자신의 원인을 찾아야 하는 외에, 제삼자마저도 자신을 생각해 봐야 한다고. 왜 당신에게 보게 했는가? 하물며 더욱이 우리는 직접 모순 속에 있는 한 사람임에랴. 왜 자신을 수련하지 않는가?”[5]

사부님의 설법에 대조하여 일부 수련생의 상태를 자신을 일깨우는 것으로 삼았을 때, 오늘날 수련생들에게서 본 것과 같은 일이 예전에도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마음속에 일부 기준이 있었는데(당시의 개인 인식과 이해로서 꼭 틀린 것은 아니지만 분명 국한성이 있는데, 당신의 수련 상태와 관련이 있다), 자신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은 사람이나 일에 부딪히면 관용이나 선의가 적어질 가능성이 있었다. 원인은 무엇인가? 때로는 정(情)이 있어 정의 작용 하에 사람의 감당 능력이 매우 한계에 달했으며, 때로는 내가 보기에 틀린다고 생각되는 사람과 일에 대해서는 선(善)을 말할 겨를도 없었다. 이는 모두 사람이 정에 통제된 상태이고, 과학의 작용도 있는 것인데, 과학은 기계적이고 평면적인 것으로서 1 더하기 1은 오직 2다. 하지만 대법은 원용하고 지혜가 막힘이 없는 것이다. 더 주요한 것은 어떤 일이든, 사부님의 정법 대사(大事)와 같은 일은 다른 사람의 단편적인 말만 듣고 일정한 반응을 볼 수는 있지만 정작 진정으로 알 수는 없다. 당신이 정말 구체적으로 일부 일을 알았을 때는 이미 변했거나 아니면 듣는 이에 대한 고험의 결과에 따라 결정이 되거나 아니면 매우 작은 일부분인데,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지는 절대 보증할 수 없다. 아니면 더 많은 수련 중의 사람이 근본적으로 상상할 수 없을 가능성도 있다.

오늘 이런 정황을 본 나는 이 일에 대해 정(情)의 반응이 있거나 이전의 인식을 표준으로 삼는 사상이 반영된 것은 아닌지 등등 나 자신을 잘 살펴보았다. 결과는 매번 그렇듯, 모순이 눈앞에 있을 때 안으로 찾기만 하면 자신이 제고하고 새롭게 인식하며 깨우쳐야 할 점을 찾을 수 있었다. 인내심과 선의를 가지고, 이상한 것을 보더라도 침착하게 대처하며, 마음이 움직이면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아보고 문제가 있으면 법에서 닦았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누구에게든 어느 때든 딱 들어맞는다. 수련은 양파를 까는 것처럼 나선식으로 상승하며 끝이 없고 휴일도 없다.

이상은 수련 중의 사소한 일부분이고 평범한 내용이지만, 수련생의 격려를 받고 써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것을 써내어 수련생이 바란 것처럼 되면 더 좋겠지만 무슨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는 것도 정상이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우주에는 상생상극(相生相剋)의 이치가 있어 작용을 일으키고 있기에 누가 일념(一念)만 움직여도 부동한, 정반(正反) 두 방면의 요소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당신이 선념(善念)을 움직이면 악이 생겨나고, 당신이 악념(惡念)을 움직여도 역시 작용을 일으킬 것이다. 그러므로 많은 수련인들이 ‘일념(一念)에서 선악이 생긴다.’라고 하는데, 누가 이 말의 진정한 이치가 무엇인지 알았겠는가?”[6]

삼가 이를 통해 자신을 스스로 깨우치는 것도 좋겠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 ‘홍음2-法正乾坤(법정건곤)’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북미 제1기 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오스트레일리아법회 설법’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유럽법회 설법’
[5]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4-2004년 시카고법회 설법’
[6]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2-2003년 캐나다밴쿠버법회 설법’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관점만을 대표할 뿐, 옳고 그름은 글쓴이 개인의 책임이므로 독자 스스로 헤아리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1년 3월 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이성인식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3/2/42152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