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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적인 집착을 다시 찾아내다

글/ 해외 수련생

[밍후이왕] 며칠 전 표면적인 일에 변화가 생겼는데, 이것은 저의 가장 근본적인 집착을 건드렸습니다. 저는 몹시 불쾌했고, 이 단단한 물질은 계속 나쁜 생각을 발산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물질, 이 생명을 어떻게 제거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법을 외워도 들어오지 않았고, 끊임없이 “옳은 것은 그이고 잘못된 건 나이니”[1] 이 한 마디를 외웠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뚫고 지나가 투과하지 못했습니다.

어쩔 수가 없어 밍후이 라디오방송의 밀레르빠 부처님의 수련 이야기를 찾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들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법을 얻은 초기 몇 개월이 되었을 때, 두 번 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책만 있었지 일부 글자는 잘 알지 못했고, 일부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고생하며 수련하는 과정을 알게 되었고, 부처수련을 제가 지향하도록 격려했습니다. 20여 년이 흐른 지금 다시 들으니 그때의 수련을 이해했고, 오늘 정법을 펼친 문화를 이해했으며, 창세주께서 창궁을 구하시기 위해 생생세세 우주에서 내려오시는 가없이 홍대한 은혜를 이해했습니다!

결국 밀레르빠 부처님은 크게 악독한 한 사람을 도화(度化)하기 위해 그가 준 독약을 삼켜서 그 사람을 위해 그 거대한 죄업을 감당하여 그 악인이 진심으로 참회하게 했습니다……

그 과정은 저 자신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오늘 나는 대법이 만들어주신 하나의 생명으로, 어째서 이런 자비를 수련해내지 못할까, 법 속에 모든 것이 다 있는데, 나는 어느 곳이 부족한 걸까?’

그래서 저는 이 집착을 따라 찾아보았습니다.

이때 저는 수련생이 사부님의 법을 읽는 것을 들었고, 이 문장의 말이 갑자기 마음을 두드렸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의 마음을 닦고, 당신의 마음 닦음에 공력을 들여, 당신 자신의 약점과 결점을 찾아 그것을 뿌리째 뽑아내라는 것이다.”[2]

그래서 저의 가장 약한 부분이 무엇인지 찾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지 않고, 사람과 잘 어울리지 못하며, 혼자 다니길 좋아하는데 왜 그럴까?

왜냐하면 다른 사람이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할 수 없고, 공부를 못 했으며, 삶을 모르고, 그들의 일을 이해하지 못하며, 사람들 속에서 저는 감히 입도 뻥긋하지 못하는데, 말을 하면 그들이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비웃는 눈빛,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필사적으로 공부했습니다.

길을 걸어오는 여정에 많은 걸 배웠지만 모든 것을 도중에 그만두었습니다. 제가 포기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외부적인 환경이 결국 저를 포기하게 한 것이며, 이런 강한 집착을 하고 오늘날까지 왔습니다. 정법 항목에서도 매우 강한 집착을 만족할 수 있기에 야근을 할 수 있고, 고생을 할 수 있으며, 배우라고 하면 다 좋았고, 갈등이 아무리 첨예해도 강한 집착을 만족할 수 있기에 저는 넘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저에게 더는 컴퓨터 물건들을 건드리지 말라고 했고, 물을 긷고 편지를 나르는 잡일만 하라고 하니 분노, 질투, 원망이 전부 치밀어 올랐습니다. 물을 긷고 잡다한 일을 하는 게 달갑지 않았습니다.

사람과 신의 이치는 정반대라는 걸 분명하게 알고 있지만, 전환하기란 그렇게 어려웠습니다! 이삼 일간 괴로우면서 넘지 못했습니다.

이 근본적인 집착으로 만족을 얻지 못하여 무엇을 하든 달가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근본적인 집착이 드러나 저는 그것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여전히 사람의 명예를 구하려 하고, 인간 세상에 남아 사람이 되려고 하는가?’ 저는 또 물을 긷고 편지를 나르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기에 기술이 없으면 생활이 보장될 수 없다고 걱정했습니다. 대법을 믿지 않고, 사부님께서 가장 좋은 걸 안배해주셨음을 믿지 않으며, 사부님께서 저의 모든 걸 안배하셨음을 믿지 않았습니다. 근원은 역시 신사신법(信師信法)의 문제였습니다.

이런 것을 깨닫고 법을 외우기 시작했으며, ‘전법륜(轉法輪)-제9강 의념’ 이 단락을 외운 지 벌써 두 달 정도 되었지만 계속 외우지 못해 여기서 걸려 이 근본적인 집착에 가로막혀 버리게 된 겁니다.

저는 이틀의 시간을 들여, 무엇을 버려야 하는 법리를 깨달았기에 마침내 돌파했습니다. 뭔가 단단한 뼈 같기도 하고, 황무지를 경작하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고층차의 한 낡은 생명이 대법에 동화되었는데, 그 느낌은 말로 형용할 수 없으며, 저는 제 세계의 중생들이 모두 따라서 환호하는 걸 느꼈습니다.

사람이라는 이 면에서도 전에 느껴본 적 없는 홀가분함을 느꼈고, 저는 매우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마음에서 우러나와 외쳤습니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

사람의 이런 측면에서 제가 물을 길으러 가면 중생이 스스로 와서 차를 밀어주었고, 그는 제가 그를 구할 수 있음을 느꼈으며, 구원받으러 온 거라는 걸 저는 압니다. 전단과 연꽃을 주자 그는 계속해서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물을 긷고 돌아왔을 때 경비원이 달려와 문을 열어 주었는데, 이전에는 경비원이 의자에 앉아 일어나지도 않았으므로 그때 저는 어떤 직위를 가지고 있거나 무엇을 하든지 수련의 길을 올바르게 걸으면 누구나 존중해준다는 걸 느꼈습니다. 예전에는 갈등을 두려워하여 직장에서 말하기가 조심스러웠고, 이렇게 저렇게 수련하고 이렇게 저렇게 찾으며, 정말로 지쳐서 ‘정법 수련은 이렇게 힘든 건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제 집착을 마주하는 걸 두려워하여 그 집착이 힘든 겁니다.

지금 저는 모든 세포가 밖으로 공능을 내보내고 있고, 갈등은 아무것도 아닌 업력이 초래한 것으로, 제거하면 된다고 느꼈으며, “대도는 극히 간단하고 극히 쉽다.”[3]는 한 층차의 법리를 깨달았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더욱 높은 층에서는 무슨 소업이요, 무슨 고생이요, 무슨 수련이요 하는 이러한 개념이 없으며 바로 선택이다! 우주의 고층차는 바로 이런 하나의 이치이며, 보아서 누가 되면 바로 그를 선택하는 것으로 이것이 바로 이치이다.”[4] 저는 선택의 일부 내포를 깨달았습니다.

이 체험을 돌이켜 보니 정말 감개무량하며, 제 길은 모두 대법으로 인해 많은 신이 모두 부러워하고, 중생들의 희망이기에 제가 무엇을 더 바랍니까?

사부님께서 저에게 정법 노정을 바짝 따라오게 하시려고 저를 굉장히 빠르게 밀어주셔서, 수련 상태도 마치 개인 수련에서 정법 수련으로 바로 넘어가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날 퇴근하여 저는 마난을 겪고 있는 수련생을 보러 가려고 생각했습니다. 이전에는 퇴근하면 두 시간 포륜(抱輪)을 하고 연공을 많이 하면서 피로를 해소했습니다. 오늘은 연공하지 않고 마난을 겪고 있는 수련생과 함께 법공부를 하고 싶었습니다. 다른 수련생 두 명을 불러 함께 법공부를 하고 발정념을 할 때, 수련생들과 정체를 이루어 유아독존의 기세와 산을 허물 수 있을 것 같은 정념을 느꼈습니다. 오랫동안 이와 같은 효과는 없었습니다. 대선 그 기간 저는 거의 모두 정념을 발하지 못하며 빈틈없이 봉인되어, 앉아 있어도 고요하지 못하고 허튼 생각들이 떠올라 제거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수련생에 관심을 두려고 할 때, 주변의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개인 수련에서 벗어나 정법 수련에 녹아들었기에, 저를 향상하고 수련하려는 것이 아닌 위대한 불법(佛法) 신통의 법력과 정법에서 씻기고 정화되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그러나 진정한 제고는 버리는 것이지, 얻는 것이 아니다.”[3]를 깨달았습니다.

이상은 저의 최근 약간의 체득입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 ‘홍음3-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싱가포르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대원만법-1. 공법특징’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2003년 정월대보름설법’
[5]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지역설법2-2002년 미국필라델피아법회 설법’

 

원문발표: 2021년 2월 1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2/17/42086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