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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법은 보통이 아닙니다!”

글/ 후베이(湖北) 대법제자

[밍후이왕] 1995년 상반기, 내가 친정에 갔을 때 많은 사람이 단체 연공을 하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그중에는 셋째 오빠와 올케언니도 있었다. 나는 신기해서 “당신들은 무엇을 연마합니까?”라고 물었더니 한 사람이 “우리가 연마하는 것은 파룬궁(法輪功)인데 불가공(佛家功)입니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불가공이란 말에 관심이 생겼고 연마하고 싶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건강이 좋지 않아 늘 사람이 사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으며 신불(神佛)이 나를 구도해주기를 바랐다.

셋째 오빠는 나에게 “이 공법은 보통이 아니다! 관음보살의 연화좌는 한 층인데 사부님의 법상은 여러 층이야! 일반적으로 득도한 사람은 매우 늙었지만, 우리 사부님은 얼마나 젊니!”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겠다는 마음이 더 확고해졌다. 내가 수련하자 몸은 건강해졌고 마음도 밝아졌다. 파룬따파는 정말 좋았다!

시내에 사는 둘째 오빠와 둘째 올케도 사부님의 허난 정저우(河南鄭州)에서 개최한 학습반에 참가해서 사부님의 설법을 직접 들었다면서 학습반에서 있었던 신기한 일들을 나에게 들려주었다. 나는 “왜 일찍 말하지 않았어? 나도 데려가야지!”라고 말했다. 정저우는 우리 여기에서 그리 멀지 않았기에 학습반에 참가하지 못한 것은 나에게 하나의 큰 유감으로 남았다.

수련 후, 나는 갈수록 순정해졌고 마음은 늘 즐거웠다. 나는 이렇게 좋은 공법은 마땅히 더 많은 사람에게 혜택을 보게끔 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보도원과 함께 곳곳으로 다니면서 홍법(洪法)했다. 수련생들은 서로 협조를 잘해 먼 곳이든 가까운 곳이든, 찾는 사람이 있기만 하면 엄한 혹서에도 녹음기 등을 챙겨 들고 찾아갔다. 당시 대부분 지역은 흙길이었다. 우리는 몇 번이나 큰비를 맞아 몸이 흠뻑 젖었는데 어떤 지역은 연속 9일이나 가야 했다.

40리 넘게 떨어져 있는 곳에 연공장이 있었는데 나는 연속 나흘 동안 갔다. 하루는 큰 눈이 내렸는데 차가 바로 앞에 와야 전조등이 보일 정도여서 우리는 거북이걸음으로 갔다. 연공을 가르치는 것에서도 심성을 고험했는데 어떤 사람은 하나의 동작을 여러 번 가르쳐주어도 기억하지 못했다. 나는 인내심을 갖고 상대방이 배울 때까지 가르쳤다. 나는 속으로 ‘이까짓 고생이 다 무엇인가, 사부님께선 우리를 구도하시는데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셨는가!’라고 생각했다.

1. 배가 아파서 죽을 지경이고 야위어서 피골이 상접할 때

2007년 9월 나는 갑자기 배가 죽을 것처럼 아파 허리도 펴지 못했다. 남편이 병원에 가보라고 독촉해서 검사받았지만, 남편은 결과를 나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누군가 내가 엄중한 간암에 걸렸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가장 먼저 사부님의 법이 떠올랐다. “사상 속에 있는 모든 좋지 못한 것들, 신체 주위에 있는 업력장(業力場)과 신체를 건강하지 못하게 하는 요소를 전부 다 청리(淸理)해 내보내는 것이다.”[1]

나는 ‘나는 수련인으로서 신체는 사부님께서 이미 정화해 주셨다. 이것은 가상이다’고 생각했다. 나는 누락 있는 부분을 찾는 동시에 발정념하여 사악의 박해를 제거했다. 그 후에 나는 매일 이 단락의 법을 읽었다. 그 후 여러 가지 시련이 뒤따랐고, 나는 모호함이 없어야 한다는 걸 알고 마음을 완전히 비우고 항상 순정한 마음으로 모든 것에 임했다.

나의 몸은 하루하루 허약해졌고 말라서 피골이 상접해졌으며 고통도 갈수록 심해졌다. 그러나 매일 이를 악물고 법공부, 연공, 발정념을 견지했다. 아침에 다섯 가지 공법을 연마하고 저녁에는 수련생 집에 가서 또 동공을 연마했다. 나를 보러 오는 사람이 아주 많았다. 누군가 “너희 엄마와 두 오빠는 모두 50세 전후의 나이에 간암으로 죽었는데 이것은 유전이야”라고 말했지만 나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가족의 유전과 나는 무슨 관계가 있는가?’ 사부님께서 나를 관할하신다. 나는 그들에게 “저는 병이 없어요”라고 평온하게 말했다.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통증이 극에 달했다. 나는 사부님께 향을 올리면서 “사부님! 제자는 아둔하여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전에 잘하지 못한 부분을 사부님께서 용서해주세요. 제자는 오늘 이후로 잘하고 자신의 일사일념(一思一念)을 바로 잡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날 저녁 나는 더러운 것을 여러 번 토했고 냄새가 아주 심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좋지 못한 것들을 청리해주셨음을 알았다.

다음 날, 나는 힘이 빠져 일어나지 못했다. 남편은 오물들을 버리러 나갔다가 많은 사람의 시선을 끌어 많은 사람이 보러 왔다. 나는 “다 나았어요, 죽을 명이면 벌써 죽었어요”라고 말하면서 그들에게 보러 오지 말라고 권고했다.

나는 시내에 있는 둘째 오빠네 집에서 며칠 묵기로 했다. 연공인의 장이 좋기도 하고 함께 법공부, 연공, 발정념, 토론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남편이 큰형님과 둘째 아들을 우한에서 불러올 줄은 생각지 못했다. 아들은 우한의 큰 병원에 가서 정확하게 진단을 받아보고 증세에 맞게 약을 쓰자고 했다. 나는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지 말라고 했다. 아들은 병이 재발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냐고 물었다. 나는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연공했는데 내가 병에 걸린 것을 본 적이 있어? 지금은 관을 넘는 거야”라고 말했다. 내가 혈육 간의 정에 움직이지 않자 그들은 가버렸다.

시내에서 돌아온 후, 몇몇 이웃이 “당신이 시내에 가 있던 동안에 당신 남편은 오토바이에 다른 여자들을 태우고 놀러 다녔어요.” “이 부근에만 넷이나 있어요”라고 했지만, 나의 마음은 마치 남의 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이상하게도 평온했다. 이번의 생사관을 겪으면서 사람 몸 하나를 얻기가 얼마나 쉽지 않고 사부님의 구도를 받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를 깊이 느끼게 되었다. 기타의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셋째 오빠가 나를 보러 왔다. 나, 남편, 셋째 오빠는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남편은 셋째 오빠에게 “나는 밖에서 바쁘고 아내는 집에서 밥을 해야 하고 일도 해야 해요, 공짜 밥을 먹을 수 없어요”라고 말했다(당시 나는 매우 허약했다). 남편이 셋째 오빠에게 두 번째로 한 말은 “형님, 훗날 나에게 돈이 있으면 다시 장가를 갈 거예요” 였다. 내가 남편 옆에 앉아 있었는데 말이다. 당시 나는 사부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현재의 사람들은 정(情)을 매우 중하게 본다. 그러나 정이란 가장 믿을 수 없다.”[2] 나는 ‘미혹 중의 사람이란 정말 가련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심성을 지켰고 마치 아무것도 듣지 못한 것처럼 했다.

또 3개월이 지나자 나는 모든 것이 정상으로 회복되었다. 나의 일은 현지에서 아주 큰 파문을 일으켰고 나의 이질녀도 그 일로 대법 수련에 들어섰다.

한번은 다리 위에서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있었다. 나는 대법이 병을 치료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데 신기한 효과가 있다고 말하고 내가 몸소 겪은 일들을 말했다. 옆에서 한 여인이 “그녀는 그때 간암에 걸려서 거의 죽게 되었는데 파룬궁을 수련하고 좋아졌어요”라고 거들었다. 그 사람은 순조롭게 삼퇴(중국공산당의 당·단·대 조직에서 탈퇴)를 했다. 나는 나를 도와서 말해준 그 여인에게 “고마워요! 그러나 난 당신을 모르는데요”라고 말했고 그녀는 그해에 나의 이야기를 들어서 안다고 했다.

그때 병업관을 넘는데 4개월이 넘게 걸렸다. 지금 와서 말하기는 쉽지만 사실 당시에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백 가지 고생 한꺼번에 내리거니”와 같았고 사부님께서 도와주셔서 거대한 난을 지나온 것이다. 나는 시종 나에게 병이 없다고 확신했고 고통스러울 때 사부님께서 점화해주신 그 단락의 법을 읽으니 마음이 특별히 깨끗해졌다. 누군가가 나에게 “당신 남편이 그렇게 당신을 대하는데 조금도 화나지 않아요?”라고 물었다. 하지만 남편은 속인이고 나는 신의 길을 가는 대법제자이기에 차이가 천만리나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2. 남편이 뇌혈전에 걸려 똑바로 서지 못할 때

2013년, 남편은 뇌혈전에 걸려 똑바로 서지도 못했다. 그때부터 집안의 크고 작은 일을 나 혼자서 했다. 그는 대소변을 침대나 바지에 보았다. 나는 그에게 전용 의자와 요강을 사주었으나 소용이 없었다. 그리하여 그의 몸에서나 집안에서 늘 냄새가 났다. 나는 매일 그를 깨끗하게 닦아주었다. 어떤 때는 그를 데리고 바람 쐬러 나가고 어떤 때는 전동차에 태우고 나가서 진상을 알린다. 나는 매일 법공부, 연공, 발정념을 하고 진상 알리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하루 세끼, 청소하는 것, 두 아들의 결혼, 설에 여덟 식구가 먹는 것, 모두 나 혼자 감당한다. 어떤 때는 정말 지쳐서 몸이 부서지는 것 같다. 가끔 남편을 원망하고 미워하는 염두가 나오면 나는 바로 사부님의 법을 외운다. “그것은 일종의 홍대(洪大)한 관용(寬容)이고, 생명에 대한 자비이며, 일체를 모두 선의(善意)로 이해할 수 있는 상태이다. 인간의 말로 하면 다른 사람을 모두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4] 나는 사부님의 말씀을 반드시 들어야 한다고 자신을 훈계한다. 나는 아무런 원망도 없이 이 모든 일을 한다.

우리 골목 맨 끝 집 남자도 뇌혈전에 걸렸는데 그의 아내는 그를 방에 가두고 상대하지 않는다. 우리 남편은 그 집 문 앞을 지나면서 자신이 이전에 한 행동과 대조하면서 대법이 그에게 복을 가져다줬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만약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아주 비참했을 것이다. 그는 대법 사부님에게 매우 탄복한다. 주위 사람들도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다.

3. 사방 30리에 진상을 알리다

파룬따파가 박해를 받은 후, 나는 수련생들과 함께 나가서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했다. 나는 처음에는 걸어 다니다가 나중에는 수련생들과 함께 렌터카를 타고 다녔으며 지금은 전동차를 타고 나간다.

한번은 40세가 넘은 남성을 만났다. 그는 더는 부처님을 믿지 않는다고 했다. 원래 그의 모친이 부처님을 믿었었는데 고부간에 싸워서 아내가 자살했다고 했다. 나는 “진정으로 부처를 믿는 사람은 자비롭고 선하게 사람들을 대해요. 당신 어머니가 믿은 것은 말법시기의 불교인데 불교는 이미 사람을 구도할 수 없어요. 당신 아내는 아마 순간적으로 생각을 잘못해서 자살했을 거예요. 그러나 당신은 신불을 탓할 수 없어요. 대법 사부님께서는 ‘불성이 나오면 시방세계를 진동한다.’[1]고 말씀하셨어요. 만약 당신이 진정으로 부처님을 믿으면 신불은 당신을 보호해줄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 남자는 내가 말한 것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되어 진상 자료를 받고 삼퇴도 했다.

하루는 신분이 있어 보이는 노인을 만났다. 그는 사당(邪黨)이 매달 생활비로 50위안(약 9천 원)을 준다면서 좋다고 했다. 나는 “할아버지, 이 연세면 아주 많은 일을 겪으셨겠네요. 젊어서는 일 년 내내 힘들게 일해도 늘 식량이 모자랐지요? 그랬지요? 돈이 어디로 갔을까요? 사당이 거둬간 거예요. 그들을 위해 일생 힘들게 일하셨는데 목숨을 겨우 부지하고 한 달에 겨우 50위안을 받는데 손실이 너무 큰 거 아니에요?”라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연신 그렇다고 했다. 나는 계속해서 그에게 진상을 알렸다. ‘6·4’ 학생 진압, ‘톈안먼 분신자살’ 가짜 사실로 파룬궁을 모함한 것, 파룬따파의 아름다움 등에 대해 알렸다. 할아버지는 당원인데 마을에서 퇴직한 간부라고 했다. 그도 삼퇴에 동의했다.

한번은 한 아주머니에게 대법은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게 가르친다고 말하고 현재 세계 백여 개 나라와 지역에 널리 전해졌다고 했다. 그녀는 “지금은 좋은 사람이 손해를 보고 나쁜 사람은 오히려 자유롭게 살잖아요”라고 말했다. 나는 “당신은 눈앞의 것만 보면 안 됩니다.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덕입니다. 좋은 일을 하면 덕을 쌓고 나쁜 일을 하면 덕을 잃습니다. 덕이 많은 가정은 번창하고 덕이 적으면 재앙이 많습니다. 당신은 멀리 보아야 합니다. 옛날 사람들은 모두 ‘응보(應報)가 없는 것이 아니라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고 하지 않았나요? 저우융캉(周永康), 보시라이(薄熙來), 궈보슝(郭伯雄) 이 사람들을 보세요, 파룬궁을 박해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까, 덕을 잃는 일을 많이 해서 지금은 낙마했지요? 장차 그들은 또 지옥에 갈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 아주머니는 “당신은 정말 말을 잘하네요. 당신 말을 들으니 정말 편안해요. 나는 단원인데 탈퇴시켜줘요”라고 했다.

나는 사방 30리 지역에 모두 진상을 알렸다. 2011년, 나는 진상 자료를 만들기 시작했다. 인터넷에 접속하고 다운받고 프린트하는 일은 모두 처음부터 배웠다. 그동안, 줄곧 멈추지 않았다. 나는 사부님의 말씀대로 자신을 잘 수련하고 사람들을 많이 구했다.

어느 날, 주방에 걸어놓은 채소 바구니 안의 상춧잎에 아름답고 성결한 우담바라 꽃이 많이 핀 것을 발견했다. 나는 수련생들을 불러 감상하게 했다. 나중에는 우리 집 콩밭에도 피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계속해서 정진하라고 나를 격려해주시고 계심을 알고 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서: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저서: ‘각지설법-아태지역 수련생회의 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마음고생’
[4] 리훙쯔 사부님 저서: ‘각지설법2-2002년 보스턴법회 설법’

 

원문발표: 2021년 2월 2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1/2/28/41959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