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세월이 참 빨리 지나가 순식간에 이미 이립(而立, 30세)의 나이가 됐다. 파룬따파(法輪大法)는 성명쌍수(性命雙修) 공법이기에 나는 여전히 젊은 모습을 유지해 대학에서 수업할 때 날 대학생으로 잘못 알 때가 많다. 많은 학생이 방과 후 호기심을 갖고 나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왜 이렇게 젊나요? 우리와 나이가 비슷한가요?”
나는 예전에 두 번 심한 우울증에 빠졌는데 파룬따파의 혜택을 보아 우울증의 수렁에서 벗어나 삶이 홀가분해졌고 마음이 평온하고 경제적으로도 독립할 수 있게 됐다.
1997년 9살 때 나는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1999년 7월 악당 장쩌민 깡패집단이 파룬따파와 대법제자를 박해하기 시작해 당시 독립적으로 수련할 수 없는 나와 가족은 점차 대법에서 이탈하게 됐다. 중학교 때부터 나는 장기간 외지에 숙박하면서 공부했는데 거의 법을 접하지 못하고 남은 것은 마음에 사부님과 파룬따파가 좋다는 것만 명심했다.
법을 수련하지 않은 나날에 나는 온종일 학업을 위해 애타게 걱정했고 등수를 올리려고 노력해 긴장되고 우울했다. 건강도 늘 사소한 문제가 발생해 어릴 때 어머니가 법을 읽고 내가 조용히 법을 듣던 나날이 그리웠다. 그때는 마음이 얼마나 조용하고 평온했던가?
다행히 사존께서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다. 나는 음악을 전공했는데 2011년 순조롭게 대학원에 입학한 후 한 대학원생 동창이 나를 대법 수련으로 이끌었다. 나는 지금도 대법에 처음 되돌아왔을 때 매우 격동되고 기뻤던 마음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처음 가부좌할 때 반가부좌해도 아파서 못 견뎠고 처음 학생과 학부모에게 진상을 알렸을 때 그 학부모가 탈당했던 일, 전체 반의 예술학교 시험을 치는 학생이 중국공산당(중공)의 공청단, 소선대 조직을 탈퇴했던 일이 기억난다.
유감스러운 것은 어릴 때 법을 배울 때 부모님께 의지했기에 다시 수련으로 돌아온 후 많은 사람 마음, 집착이 있어 수련할 줄 몰라 몇 년간 줄곧 정진하지 못해 나는 몇 년간 두 차례 우울증을 겪었고 인생이 곤경에 빠졌다.
1. 사부님께서 나를 우울증에서 벗어나도록 구해주시다
2015년 여름 나는 처음 남자 친구를 사귀었지만 그는 수련인이 아니었다. 개인 수련을 착실하게 하지 못해 구세력이 빈틈을 타 나는 우울증에 시달렸다. 한번은 내가 동공 빠오룬(抱輪)을 연마할 때 팔이 무거워 들 수 없었다. 그제야 나는 이미 오랫동안 연공을 잘하지 않았고 마음을 조용히 하고 법을 배우지 않았다는 것을 의식했다. 나는 실망하고 비관했다. 연공도 하지 못하는데 무슨 수련을 한단 말인가?
그러나 그날 연공을 실패한 후 자비로운 사존께서 나를 격려해주셨다. 내가 산 포도에 우담바라 한 송이가 피었다. 신기한 것은 포도를 이미 씻었는데도 우담바라가 씻겨나가지 않았다. 나는 사부님께서 나에게 희망을 포기하지 말라고 격려하신 것임을 잘 알았다. 나는 우담바라가 핀 그 포도를 작은 곽에 넣어 보존했다. 그 포도는 썩지 않고 건포도로 됐으며 희디흰 우담바라는 모양이 변하지 않았고 줄곧 위에 피어 있고 지금까지 나와 함께 하고 있다.
나중에 자비로운 사부님께서 나를 몇몇 동년배 수련생과 함께 집을 임대하도록 안배하셔서 수련에서든 생활에서든 수련생들은 모두 나에게 매우 큰 도움을 줬다. 내가 고통 속에서 포기하려 할 때 나는 대법에 먹칠해서는 안 된다는 한 가지 생각을 여전히 굳게 지켰다. 나중에 나는 단호하게 속인 남자 친구와의 모든 연락을 차단했다. 한때 얽히고 1년간 끌려왔던 정을 깨끗이 제거했다. 결국 나는 첫 번째 우울증의 늪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나는 착실하게 수련할 줄 몰라 잇따라 몸에 갑상선 기능 항진증이 나타나 두 번째 우울증에 빠졌다. 나는 자신이 빚진 것은 갚아야 하고 내가 수련을 잘하지 못해 이 난이 온 것을 알고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줄곧 나를 포기하지 않으셨다. 수련생들을 배치해 함께 하게 하셨고 나를 위로 끌어올리셨다.
자비롭고 인자한 백발홍안의 한 아주머니 수련생은 다른 수련생에게서 내가 우울증으로 약을 먹고 있다는 말을 듣고 몹시 걱정돼 자발적으로 날 찾아와 함께 법을 배워 나에게 매우 큰 도움을 주셨다. 아주머니는 다른 몇몇 수련생과 매일 와서 함께 법을 배웠고 나와 토론하고 교류하셨다.
매우 빨리 내 사유가 열려 수련으로 돌아오기 전 사존의 점화가 생각났다. 꿈에 사존을 뵈었는데 사존께서는 파란색 곱슬머리에 황색 가사를 입고 연화대에 서서 공중에 오랫동안 서서 자비롭게 나를 바라보셨다. 온 하늘에 회전하는 파룬과 만(卍)자 부호로 가득 찼고 하늘은 사존의 광환, 파룬과 만자 부호가 비춰 눈부셨으며 비할 바 없이 아름다웠다.
나는 대법 수련에 처음 돌아왔을 때 정진했던 상태를 생각했다. 차를 타든 수업 중이든 항상 주도권을 잡고 중생에게 대법 진상을 알렸고 애써 가족에게 대법 수련에 돌아오도록 도와주었으며 매번 좀 잘했을 때 매우 아름다운 꿈을 꾸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도 잘한 때가 있었구나. 나도 한때 진수제자였는데 잊어버렸구나.
나의 주의식(主意識)은 점점 강해졌고 정념도 점점 강해졌으며 몸에 더는 부종이 없었고 외모도 예전의 맑고 빼어났던 모습으로 돌아왔다. 수련생들도 내 변화에 모두 매우 기뻐했다.
그때부터 나는 모든 약물을 끊었다. 이때 의사의 경고가 머리에 나타났다. 나는 그것은 사상업력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마음으로부터 강대한 정념을 내보냈다. 그때부터 모든 우울증, 소극적인 마음, 부정적 물질과 생명은 나와 전혀 관련이 없었다. 나는 대법제자이기에 더는 속인의 이치에 제한되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2년간 처음 단호하고도 강력하게 사상업력의 교란을 부정한 것이다.
이어서 법공부를 하는 동안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이 모두 그렇게 마음에 와닿는 것을 느꼈다. 곧바로 사부님께서 내 신체를 정화해주셔서 나는 구토, 설사, 머리가 무겁고 다리가 가벼운 증상이 나타났고 물마저 마실 수 없었다. 나는 괴로웠지만 마음이 탁 트이고 환했다. 나는 여전히 몇몇 수련생들과 함께 법을 배웠다.
신체를 심하게 조정한 이튿날 ‘전법륜(轉法輪)’ 제2강을 배웠을 때 내가 읽을 차례가 됐다. 내가 사부님 말씀 “당신이 괴로울 때일수록 물극필반(物極必反)임을 설명하는데, 당신의 온몸을 정화(淨化)해야 하며, 반드시 전부 정화해야 한다. 병근(病根)은 이미 떼어버렸고, 남은 요만한 검은 기, 그것이 스스로 나오게 하여, 당신에게 고만한 난(難)을 겪게 하며, 고통을 좀 받게 하는데, 당신이 조금도 감당하지 않는 이것은 안 된다.”[1]를 읽었을 때 순간 나는 끊임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나를 격려하고 제자에게 근심하지 말라고 알려주신 것이다. 사부님께서 내 신체를 정화해주시고 있다! 이렇게 3일 지난 후 구토, 설사 등 증상이 모두 사라졌다.
2. 사존의 보호로 정념으로 검은 소굴에서 걸어 나오다
2017년 9월 말 추석과 10월 1일 장기 휴가를 맞아 수련생 H가 나와 함께 그녀 고향으로 가자고 부탁했다. 그녀는 이미 여러 번 나를 초대했기에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그녀는 나를 도와 기차표를 예약해줬고 9월 29일 우리 둘은 출발했다.
그런데 기차를 탄 후 약 30분 뒤 내가 전자책으로 법을 배우고 있는데 한 철도 경찰이 다가와 노기등등하게 소리쳤다. “당신이 ○○입니까?” 그가 내 이름을 불렀기에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는 “물건을 모두 갖고 나를 따라오시오”라고 말했다. 나는 그를 따라 경호실에 갔다. 그는 화를 내며 내 가방을 뒤져 신분증, USB 메모리 하나와 연공음악이 담긴 메모리카드를 꺼냈다. 내가 전자책을 열자 그는 노기등등해 “이건 무슨 내용이죠?”라고 묻고 그의 옷 주머니에 넣고 나에게 돌아가라고 했다.
나중에 그는 또 나를 안쪽 칸과 가까운 곳으로 데려갔다. 안에는 소위 지도자가 무언가를 상의하고 있었다. 그는 날 잠시 기다리라고 했고 잠시 후 안에서 몇몇 사람이 나왔고 한 사람만 남았다. 철도 경찰이 나에게 말했다. “들어가시오. 이분은 우리 지도자입니다.”
그 지도자는 40대로 보였고 표정이 그다지 사납지 않았다. 그는 나에게 물었다. “당신은 무슨 활동에 참가합니까?” “아니요.” “그럼 왜 다른 사람이 당신을 지켜보는 겁니까?” 나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물었다. “당신은 이렇게 젊은데 어느 때부터 수련했습니까?” 나는 말했다. “9살 때 그때 거리와 골목에 모두 수련하는 사람이 있었고 나중에 (중공이) 박해했습니다. 나는 줄곧 외지에서 학교 다녀 점차 대법을 이탈했습니다. 나중에……”
나는 평온하게 그와 얘기를 나눴고 그에게 내가 어떻게 수련으로 돌아왔고 어떻게 심한 우울증에서 벗어났는지 말했다. 나는 진심으로 그에게 말했다. “대법이 나를 구해주지 않았다면 지금 내 몸이 어디에 있을지 모릅니다. 아마 벌써 이 세계에서 사라졌을 것이고 당신 맞은편에 앉아 얘기를 나누지도 못했을 겁니다.” 그는 나를 오라고 한 철도 경찰에게 말했다. “그들에게 전화해서 검사했는데 별문제 없다고 말하세요. 그리고 전자책을 저분에게 돌려드리세요!” 그 철도 경찰은 즉시 전화를 걸어 그쪽 지도자에게 말했다. “방금 뒤져 보았는데 아무것도 없습니다.”
얘기 중에 그들은 내가 음악을 전공한 석사 대학원생이고 학업, 사업이 매우 우수하다는 것을 알고 매우 감탄했다. 말속에서도 대법제자에게 감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잠시 후 일남일녀 두 젊은이가 들어와 우리 옆에 앉았다. 그들은 동창인데 갓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매우 막막하다면서 우리와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얘기 중에 남학생이 “도대체 뭘 믿어야 합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말했다. “일반인은 양심을 믿으면 되지만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처사하고 일 처리하면 괜찮을 겁니다!” 그다음 서로 말을 주고받으면서 길에서 줄곧 얘기를 나눴다. 그 지도자도 나에게 중공이 파룬궁수련생의 장기를 생체 적출한 일이 정말인지 등 일부 문제를 물었다. 내가 일일이 사실로 그에게 진상을 알렸더니 그는 이해했다고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후 6시가 됐다. 거의 역에 도착할 때 나는 내 신분증과 USB 메모리, 메모리카드를 모두 나에게 돌려주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그 철도 경찰을 찾았다. 그는 “시름 놓으세요. 잠시 후 기차에서 내리면 돌려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물건이 필요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역에 도착했는데도 그들은 여전히 내 물건을 돌려주지 않았다. 기차에서 내린 후 그들은 나에게 역에서 맞이하러 온 두 사람(사복경찰)을 따라가라고 했다. 나는 다른 수련생을 연루시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H에게 “괜찮습니다. 먼저 가세요”라고 말했다. 다음 나는 두 사복경찰을 따라갔다.
날은 이미 어두워졌고 얼마 가지 않아 그들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문에 들어서자마자 몸을 수색한 다음 날 데리고 취조실로 갔다. 한 젊은 경찰이 내 가방을 뒤져 진상지폐를 찾아낸 후 난폭하게 나에게 물었다. “이건 뭐죠? 어디서 난 겁니까?” 나는 “이것은 제가 수집한 겁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수집한 거라고? 어찌 된 일입니까? 파룬궁을 사랑합니까?”라고 말했다. 나는 전혀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네, 이것은 제 신앙입니다!” 당시 그는 마치 감전된 것처럼 멍하니 어떻게 날 대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았다.
그 후 그는 내가 기차에서 파룬궁을 선전했다면서 기록과 서명에 협조해야 한다는 등을 말했다. 나는 말했다. “당신이 진상을 알아보려 하면 제가 말할 수 있지만 저에게 기록과 서명에 협조하게 하는 일을 하라면 절대 불가능합니다. 전 범죄자가 아니고 잘못이 없으며 더욱이 죄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또 한 번 화가 나서 “진술을 거부한다고 우리가 방법이 없을 줄 알아? 당신은 여기가 해외인 줄 알아? 여기에 증인, 증언이 있어. 당신이 모 열차에서 어느 시간에 승객에게 파룬궁 선전을 한 사실이 있으면 형을 선고할 수 있어.”
나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고 그의 말을 상대하지 않았다. 그 후 그는 부드러운 수를 썼다. “좋아요. 정말 괜찮습니다. 당신이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쓰지 않아도 저는 홀가분합니다. 저는 말을 하지 않는다고 쓰면 되니까요.” 다음 그는 날 불법 취조한 내용에 ‘말을 하지 않는다’, ‘말을 하지 않는다’, ‘말을 하지 않는다’라고 썼다. 그제야 나는 기차의 그 두 젊은이가 거짓 증언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
다음 또 눈이 부은 40대 중년 남성 경찰이 들어왔다. 그는 국내안정보위국(국보) 대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매우 위선적이었다. 나는 그에게 진상을 알리고 내가 어떻게 파룬따파 수련을 통해 심한 우울증에서 벗어났는지 말했다. 그는 매우 고집스러웠다. 그는 온종일 휴식하지 못하고 밥을 먹지 못했다고 나에게 업무에 협조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나는 말했다. “협조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지금 집에 돌아가 휴식하는 것을 택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알려는 일을 다 알았고 제 입장도 표시했습니다. 저도 지금 배고프니 가야겠습니다!” 그는 “안 됩니다. 당신은 오늘 못 갈 겁니다”라고 말했다.
밤에 나는 작은 방에 감금됐고 오랫동안 잠을 잘 수 없었다. 그 과정을 돌이켜보고 자신의 매 사람 마음을 찾아봤다. 기차에서 경찰 지도자가 나와 상냥하게 웃으며 철도 경찰에게 전자책을 나에게 돌려주라고 할 때 내 마음은 설레었고 그것이 (情)이었다. 그래서 나는 발정념으로 이런 사람 마음과 정에 대한 나쁜 것들을 제거했다.
더 아래로 찾아보니 원망심이었다. 나는 사상 속에서 H에게 그녀와 함께 그녀 집으로 가겠다고 대답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했다. 잠재의식 중에 원망이란 물질이 있다는 것을 알고 즉시 배제했다. 이런 것이 아니다. 내가 겪어야 할 일이면 여기가 아니면 저기에서라도 반드시 직면해야 한다. 더 분명한 것은 기차에서 두 젊은이와 경찰 지도자가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상냥하고 이해하는 듯했으나 암암리에 나를 모함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원망이라는 것을 의식하고 즉시 자기 사상을 바로잡았다. 잇따라 자비로운 힘이 솟아나 이런 원망심도 곧 제거됐다.
나는 나에게 또 물었다. 가장 내려놓기 어려운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당시 내가 가르친 학생이 점점 많아졌고 사업이 잘 됐고 돈, 사업과 같은 명리는 나를 견제할 수 없었으나 유독 내려놓기 어려운 것은 여전히 아버지에 대한 정이었다. 나는 내 마음에 진실하게 물어봤다. ‘너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 수 있어?’ 나는 확고하게 자신에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가장 넘기 어려운 가족정은 그 일념을 정했을 때 지나갔다.
이렇게 온밤 나는 안으로 찾고 사부님의 법을 외워 마음은 비할 바 없이 훤히 트였다. 우울했던 시기에 비기면 몸이 검은 소굴에 있어도 마음은 밝고 떳떳했으며 우울하거나 두렵지 않았다.
이튿날 정오 무렵 좀 나이 있는 경찰이 와서 날 데리고 신체검사를 하러 간다고 했다. 나는 처음 이런 일을 겪었고 이전에 정상적으로 밍후이왕을 접속하지 못했기에 박해 문장에 대한 보도를 별로 보지 못했다. 그저 모호한 상태여서 생체 장기적출은 혈액형을 검사해야 한다는 것만 알았다. 당시 ‘설마’라는 생각이 들어 나는 “왜 혈액을 검사하죠? 검사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반드시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모두가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나이 든 경찰이 나에게 나가면 큰소리로 외치지 말라고 당부했다. 나는 “나가면 도망칠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럼 수갑을 채울 겁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공안 병원에서 불법적으로 혈압과 혈액 검사를 받았다. 결과가 나온 후 경찰은 “15일 구금할 겁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자신의 모든 것을 사부님께 맡긴다고 생각했다.
그는 나에게 누구에게 알릴 거냐고 물었다. 나는 어머니도 수련생이고 아버지에게 전혀 알려서는 안 되고 다른 수련생 등 누구에게도 알릴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차를 몰고 나를 유치장에 보냈다. 도중에 언제 닦은 길인지 모르지만 도로에 큰 구덩이가 있어 지나갈 수 없었다. 차를 몰던 나이 든 경찰과 젊은 경찰이 말했다. “그럴 리 없는데!” 여기를 방금 지나왔는데 어찌 큰 구덩이가 있을 수 있느냐는 뜻이다. 그래서 길을 에둘러 다른 길로 갔다. 유치장에 도착한 후 그는 검사서를 안에서 전화를 걸고 있는 경찰에게 건네줬다. 나는 문 앞에 서서 안의 철문을 보았지만 두렵지 않았다.
이때 젊은 경찰의 핸드폰이 울려 그는 나가서 전화를 받았다. 내 사상 속에서 일념이 전해져 나왔다. ‘나는 별일 없이 안전하다.’ 과연 그는 전화를 받고 돌아와 다급하게 가서 검사서를 유치장 경찰 손에서 건네면서 말했다. “미안합니다!” 문밖에서 나는 젊은 경찰에게 진상을 알렸다. 그는 이해한다면서 15일 후 나오는 날 그에게 다른 일이 없으면 나를 데리러 와서 물건을 가져가러 가겠다고 했고 전화번호를 줬다.
잠시 후 나이 든 경찰이 나온 후 말했다. “갑시다. 돌아갑시다.” 나는 “무슨 상황인가요? 내 친구가 나를 찾으러 왔습니까?”라고 말했다. 그는 말했다. “구체적인 일은 모르겠습니다! 지도자가 지시를 받고 당신을 데리고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다음 그는 그에게 감사드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길을 잘못 가서 시간을 지체하지 않았다면 오늘 반드시 여기에 머무르게 될 거라고 말했다. 그들은 두 개 기관이기에 인수인계가 끝나면 아무도 방법이 없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디 당신들의 공로인가? 사부님께서 날 보호하신 것이다.”
사존의 자비로운 보호로 나는 정념으로 검은 소굴에서 벗어났다. 안에서 24시간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지만 전혀 배고프지 않았고 불편하지 않았다. 사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제자가 정념이 족하면 사부는 회천력(回天力)이 있노라”[2] 대법제자로서 나는 확고하게 믿는다. 내가 직접 겪은 중요한 순간의 우여곡절에서 파룬따파의 위력을 직접 보았다.
그날 밤 검은 소굴에서 벗어난 후 나는 H를 따라 그녀 고향에 가지 않았다. 우리는 만난 후 그녀가 내 소식을 어머니와 연락할 수 있는 다른 수련생에게 알려주어 나를 도와 발정념하게 한 사실을 알았다. 여기에서 수련생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3. 대법의 은혜
나중에 나는 새로운 환경으로 이사를 가 새로운 수련 생활을 시작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수련 상태가 점점 좋아졌고 학생도 점점 많아졌다. 사존의 배치로 나는 또 매우 순조롭게 집을 샀다. 그 집은 거기에서 나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당일 우연히 그 집을 보았을 때 사부님께서 날 위해 배치한 것임을 알았다. 장소, 구조와 장식이든 아니면 거주 조건을 보든 모두 가장 적합했다.
우울증을 앓던 기간 사직했던 예술학교 교장이 직접 방문해 나에게 돌아오라고 초청하면서 봉급을 올려주겠다고 했다. 나에게 엘리트 반의 이론과를 가르치게 함과 동시에 전공 기교과를 겸해서 가르치게 했다. 그는 또 “선생님은 자체로 이렇게 많은 학생을 가르치고 있고 일반인은 꺼리겠지만 이렇게 여러 해를 거쳐 저는 선생님의 인품과 능력을 믿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예술학교에서 유일하게 이론과와 전공과를 겸해서 가르치고 봉급이 가장 높은 교사가 됐다.
이와 동시에 내가 공부했던 대학교 과주임도 적극적으로 나와 연락을 취했다. 내가 대학에 가서 글을 가르치기 바란다면서 나에게 관련 증명서만 갖고 오면 면접 절차나 사악한 정치 심사 증명이 필요 없이 바로 계약하면 된다고 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 대학에서 교수가 되려면 학력, 돈, 권세, 인맥 등 많은 방면의 문제와 관련되기에 문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나는 신기하게 전혀 준비 없이 우리 성에서 가장 좋은 대학교 교수가 됐다.
표면적으로 보면 나는 학교에 다닐 때 공부 성적이 우수하고 주임이 믿고 나를 추천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졸업한 후 우리는 별로 연락하지 않았다. 나는 이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임을 잘 알고 있다.
외출하기에 편리하도록 나는 차를 샀다. 이전의 우울증 상태로는 운전은커녕 길을 걸어도 걸려 넘어지기 쉽다. 문을 나서면 길을 잃어 집을 찾지 못했고 지하철을 타도 잘못된 방향으로 탔다. 나는 내가 온종일 차를 운전하고 출퇴근하며 평온하게 수년간 운전한 기사처럼 운전할 수 있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이다. 나는 사부님께서 내 지혜를 열어주신 것으로 생각한다.
파룬따파를 수련해 지혜가 열렸고 마음이 평온해 처음부터 대학에서 숙련되고 전문적으로 학과를 가르칠 수 있었다. 다음 해 대학 지도자는 또 나에게 다른 두 학과, 두 개 학년의 반을 맡겼다. 일주일에 약 500~600명의 학생을 가르쳤는데 나는 당시 그 학기에 과목을 가장 많이 맡고 수업 시간이 가장 긴 교수였다. 나중에는 시간 문제로 잇따라 많은 학과 강의를 거절했다.
그때 많은 학생과 교수가 내 수업 양에 놀라워했다. 나는 이렇게 많은 과목을 가르치면서도 활력이 넘쳤다. 그렇다. 우울증을 앓던 기간 나는 한 과목을 가르치기도 고통스럽고 피곤했으며 몇 마디만 하면 목소리가 쉬었다. 지금 이렇게 많은 과목을 가르쳐도 수업 질이 좋았고 피곤하지 않았다. 파룬따파는 정말 너무 신기하고 위대하다.
대학교 수업에서 나는 정통적인 방법으로 학생들에게 규칙을 정했다. 수업 중에 은연중에 사람 됨됨이를 말했다. 내 수업 사고 방향은 또렷하고 명확했다. 그들에게 숙제를 내주고 과제를 수정하며 격려하는 말을 썼다. 학생들은 여기에서 간만에 공부 열정을 찾은 것 같았다. 많은 학생이 내 수업을 듣기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줄곧 걸어오면서 나는 사존의 크나큰 불은(佛恩)에 감사드리고 파룬따파를 수련한 것은 복이라는 것을 체험했다. 나는 머리를 써서 돈을 벌려거나 어떻게 사교를 하려 노력하지 않았다. 나는 줄곧 매우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랐고 매우 단순한 상태였다. 조용하고 평온했으며 자신을 단속했다.
수련의 길에서 몇 번 고난을 겪었지만 내 마음은 항상 밝은 빛으로 넘쳤다. 그 밝은 빛은 내심의 가장 확고한 신념이기 때문이다! 매번 자비롭게 우리를 제도하시는 사존을 생각하면 나는 항상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진다. 나는 사존께 말하고 싶다. “사존, 노고 많으십니다. 제자를 보호하시는 사존께 감사드립니다. 엎드려 사존께 감사드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
[2] 리훙쯔 사부님 시: ‘홍음2-사도은(師徒恩)’
원문발표: 2021년 1월 3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1/31/41931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