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허베이(河北) 대법제자 찡신(淨心)
[밍후이왕] 여기서 나는 자신이 수련 과정 중에 두려움의 그늘에서 걸어 나와 ‘두려움’의 물질을 해체한 과정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걸어 나오지 못한 수련생들에게 다소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다.
걸어 나오지 못한 것은 두려운 마음이 조성한 것으로 생각한다. 수련인으로서 사존께서 선정한 대법제자는 조사정법하고 중생구도해야 한다. 이는 우리가 세상에 온 목적이고 최후 관건적인 시각에 우리는 자신을 잘 수련해 사람을 더 많이 구해야 한다.
두려움의 양성
나는 ‘80후’이고 농촌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날이 어두운 것을 두려워하고 날이 어두워지기만 하면 무수한 눈들이 나를 노려보는 것 같았다. 길을 걸을 때 늘 뒤에 사람이 따라오는 것 같았지만 고개를 돌려 보면 사람이 없었고 나의 공포를 더욱 가중했다. 다시 고개를 돌려도 사람이 여전히 없는 것을 보았다. 이 시기에 나는 놀라서 집으로 미친 듯이 뛰어갔다. 저녁에 감히 혼자서 화장실을 못 갔고 이런 어둠을 두려워하는 것은 계속 나의 대법수련 이후까지 따라다녔다.
대법수련을 시작한 후 나는 자신에게 물었다. 나는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나는 자신에게서 답을 찾았다. 나는 세상에 귀신이 있는 것이 두려웠다. 우리 남매 3명 중 나만 아버지에게 매를 맞지 않았고 2명은 모두 매를 맞았다. 아버지는 내가 매를 맞지 않은 것은 그가 특별히 화났을 때 내가 말하지 않아서라고 여겼다. 그러나 언니와 남동생은 아니었다. 화를 내는 것을 보면서도 끊임없이 불을 지폈다. 후에 생각해 보니 내가 매를 맞지 않은 것은 내가 매를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중공 사당의 박해가 발생한 후 나는 세 번 불법적으로 세뇌반에 수감되었는데, 두 번째로 내가 세뇌반에서 나올 때 나는 자신에게 물었다. 나는 왜 마음속으로 그렇게 고통스러운가, 또 마음을 어기고 사악에 타협했는가? 내가 얻은 답은, ‘나는 매 맞는 것이 두렵다’였다. 그 사악한 검은 소굴에서 그런 공포 분위기로 나는 저녁에 전혀 잠을 잘 수 없었다. 이불 속에 숨어서 덜덜 떨었다. 왜냐하면, 야밤에 벽을 사이에 두고 가슴을 찢는 소리가 들렸는데 사람을 때리는 소리와 구타당하는 수련생의 비명이 하나로 교차하였다. 나는 거의 질식당하는 것 같았고 1초도 그러한 환경에서 머물 수 없었고 자신의 심리 감당능력이 극한에 달한 것을 느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원인은, 바로 1년이 넘도록 법공부를 별로 하지 않았는데, 부모님이 불법적으로 노동개조 당할 때 우리 세 남매는 집을 떠나 떠돌아다니는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박해를 받지 않을 때 나는 경찰에 대한 공포가 없었다. 2000년 농촌은 가로등이 없어 저녁이 되기만 하면 손가락을 내밀어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다. 겨울날 시커먼 밤에 나는 나가서 자료를 배포하고 현수막을 걸어도 전혀 두렵다는 개념이 없었다.
2001년 나는 불법적으로 가택 수색을 당할 때 사부님의 신경문 ‘건의’가 갓 발표되었다. 사존께서 말씀하셨다. “오로지 대법(大法) 속에서 좋은 점만 얻으려 하고 대법(大法)을 위해 지불하지 않는 사람은, 신(神)의 눈으로 보면 이러한 사람은 가장 좋지 못한 생명이다. 게다가 이 법은 우주의 근본이다. 지금까지 걸어 나오지 못한 그런 사람들은 이번 마난(魔難)이 지나간 후 곧 도태될 것이다. 그 중에는 연분이 아주 큰 사람이 매우 많다. 이것이 바로 사부가 왜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가 하는 원인이다.”[1]
나는 나를 납치하러 온 경찰에게 진상을 알렸다. (부모님은 벗어남) 그들은 나와 남동생을 강제로 공안국에 납치했는데, 나의 두 손을 의자 뒤로 수갑으로 채웠고 내 대법책으로 얼굴 양쪽을 때렸다. 나는 단번에 맞아서 멍해졌다. 그전에 나는 경찰에 대한 인식이 악을 처벌하고 선을 선양하는 것이었다. 이 시각 경찰에 대한 나의 인식은 철저히 뒤집어졌다. 후에 나는 현지에서 악명이 자자한 세뇌반에 수감되었다. 두려움으로 인해 구타가 두렵고 ‘전향’이 두려워 나는 세뇌반에서 도망쳤다.
박해가 발생한 후 우리 집은 불법적으로 가택 수색당하고 소란을 당했는데, 아버지는 박해로 세상을 떠났으며 어머니는 여러 번 불법으로 노동개조당했다. 그 후로 나는 또 자신을 보호하려는 아주 많은 관념이 생성되었고 증거만 잡히지 않으면 안전한 것으로 생각했다. 두려운 마음의 조종으로 이런 교활한 관념이 이른바 자신을 보호하였다.
사부님께서 법에서 말씀하셨다. “그러나 내가 희망하건대 여러분은 곤두박질친 후에 바른 면의 교훈을 받아들이고, 늘 반면의 교훈을 받아들이지 말라. 반면 교훈을 받아들이면 바로 사람의 마음으로 문제를 생각하게 되어 자신을 교활하고 원용하게 변화시키게 되는데, 그것은 나쁘게 변한 것이다. 무엇이 나쁜 사람인지, 내가 당신들에게 말했을 것이다. 그 교활한 사람이 나쁜 사람이다. 심지(心地)가 선량하고, 그리 복잡한 사상이 없는, 그것이 좋은 사람이다. 바른 면으로 문제를 생각해야 하고, 곤두박질했다면 수련인의 각도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내가 어떤 것을 잘못했는가? 법으로 가늠해야만, 당신은 비로소 바른 면의 교훈을 받아들일 수 있으며, 정말로 이처럼 할 수 있다면 반드시 좋아질 것이다.”[2]
경찰을 두려워하고 경찰차를 두려워했다. 그 시기의 나는 경찰이 불법으로 가택 수색하러 온 것을 보기만 하면 마음이 두근거리고 거리를 걸을 때 경찰차가 보이기만 하면 역시 긴장했다. 바로 이렇게 여러 해 박해의 그림자는 나 여기에서 두터운 한 층의 두려움의 물질과 두려움의 장을 형성했다. 나는 늘 자신이 사는 것이 매우 분하다고 느꼈다. 그러한 두려움의 물질은 내가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내리누르고 있었다. 사람을 구하는 일을 함에 있어도 두렵고 무척 순정하지 못한 마음이 섞여 있었으며 바로 자신이 누락될까 봐 두려워했다. 아울러 두려워할수록 아주 많은 가상이 나에게 표현되었다. 저녁에 퇴근하여 결산하고 집에 돌아오면 이미 11시였다. 집에 돌아온 후 집밖에 서 있는 경찰차 한 대를 보고 나는 놀라서 감히 계단을 올라가지 못했다. 그러나 늦은 밤이라 어디에 또 갈 곳이 없어서 억지로 집에 돌아갔다. 나중에 경찰차는 집주인 며느리 회사의 차인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렇게 여러 해의 박해로 ‘두려움’은 나 여기서 죽을 고비[死關]로 되었다. 나는 거의 이 ‘두려움’을 수련해 제거하지 못했고 나는 이 ‘두려움’을 크게 키웠으며 반대로 그것이 나를 제약하기 시작했다. 한번은 법을 배운 후 열려서 수련하는 한 수련생이 나에게 말했다. 그는 나의 공간장에 두 구세력의 신이 나의 왠선을 누르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그 당시 그가 나에게 말할 때 그가 무척 화가 났다고 했다. 어찌하여 이렇게 사람을 괴롭히는가? 그가 말한 정경은 마치 나의 그 시기에 진실한 심리적 느낌이었다. 마음은 그러한 두려움의 물질에 눌려 거의 숨을 쉬지 못하고 늘 우울하고 즐겁지 않았다. 나는 태연하고 정정당당하고 대법을 수련하고 싶었고 나는 큰소리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크게 외치고 싶었지만, 감히 외치지 못했다.
두려움의 물질을 해체
모든 것이 생명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내가 방임한 두려움의 물질, 그것은 나의 공간장에서 형성되고 크게 키웠고, 반대로 두려움 이 살아있는 생명은 나를 제약하기 시작했다.
2013년 나는 회사를 사직하고 집에 돌아왔고 자신의 수련상태를 한번 조절하려고 생각했다. 집에 돌아온 후 나는 현지 단체 법공부에 참가했고 이 법공부팀은 갓 설립되었다. 법공부팀에는 한 아주머니 수련생이 있었는데 2002년부터 시작하여 그녀는 얼굴을 마주하고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고 있었다. 아울러 사악의 미친듯한 박해 속에서 구사일생으로 걸어 나왔다. 나는 그녀가 나를 데리고 나가기를 바랐고 나도 나가고 싶었다. 나는 수련생과 함께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다.
막 시작할 때 모두 그녀가 말하고 나는 발정념으로 도와주었고 감히 말하지 못했다. 수련생이 말하는 과정 중에 가끔은 듣지 않는 이를 만나거나 좋지 못한 말을 하는 이를 만났다. 나는 곧 긴장했고 두려웠는데, 천천히 두렵지 않게 되었다. 나는 그녀를 아주 오랫동안 따라다녔지만 역시 감히 말하지 못했다. 가끔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아서 말했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 비교적 안전하다고 느껴졌다. 천천히 나도 시장에 가서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게 되었다. 나는 시장에서 사람들에게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진선인은 좋습니다”를 기억하라고 말할 때 나의 공간장이 단번에 밝아지는 것을 느꼈다. 일종 뚫리는 듯한 느낌이 나의 온몸을 감쌌다. 마치 내가 밀봉되고 빛이 보이지 않는 방안에서 오래오래 갇혀 있다가 방안에 삽시에 구멍이 하나 생기면서 햇살이 방 전체를 가득 비추는 듯했다. 그 순간에 나는 자신이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느꼈다. 나는 사부님께서 나를 도와 그 두려움의 뿌리를 제거해 주신 것을 알았다. 나의 마음도 단번에 밝아졌다. 진짜로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修在自己),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功在師父).”[3] 우리가 수련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만 하면 우리가 노력하여 행할 때 그 산과 같은 물질을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도와서 조금씩 아래로 제거해 주신다.
바로 이렇게 단체 법공부 환경에서 나도 다른 법을 실증하는 항목에 참가했다. 현지에 한 수련생이 있는데 나는 그녀가 순정하고 두려워하지 않는 장을 지녔다고 늘 느꼈다. 그녀는 확실히 담이 아주 컸고 그녀의 이 장도 나를 끌어주었다. 단체 법공부를 한 후 우리 둘은 가끔 나가서 접착식 진상자료를 붙였고 붙이는 과정 중에 나는 늘 주변을 둘러보며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를 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보지도 않았다. 그녀는 붙인 후 나에게 말하기를, 우리는 속인과 같은 공간장에 있지 않기에 속인은 우리를 볼 수 없고 속인은 전혀 당신을 보지 못한다고 했다. 바로 이렇게 붙일수록 순조롭고 100여 장에 달하는 A3 접착자료를 2시간 좌우에 모두 붙였다.
전염병이 시작된 후 우리는 모두 시간의 긴박감을 느꼈다. 중생들은 모두 구도되기를 바랐고, 우리는 반드시 구도되는 기회를 중생들 앞에 펼쳐주어야 하며, 한 명이라도 더 구해야 했다. 우리는 현지의 지역구를 통계한 후 대량으로 진상자료를 배포해 사람을 구하기 시작했다. 오로지 행하기만 하고 결과에 집착하지 않았다. 행하는 과정 중에 두려움의 물질을 해체했다. 전에 조마조마하던 데에서 당당하게 진상자료를 중생의 손에 배포했다. 한번은 한 작은 지역구에서 진상 간행물을 배포하는데 한 할아버지가 우리에게 무슨 광고를 배포하는지 물었다. 나는 ‘천사홍복(天賜洪福)’ 한 권을 두 손으로 그에게 건네면서 그에게 “하늘이 홍복을 하사하니 잘 보세요.”라고 했다. 그가 뒤에서 “파룬궁이네. 당신들은 정말 감히 배포하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2015년에 시작된 장 고소 대조에서 우리 온 가족은 고소장을 보냈다. 성공적으로 답장도 받았고 행하는 과정 중에 두려움의 물질을 해체했다. 오로지 마음이 바르기만 하면 그 사악은 감히 침입하지 못한다. 2017년 사당의 잔여 세력은 노크 운동을 시작했고 내 집도 영향받았다. 내가 다시 경찰을 마주할 때 나는 마음이 두근거리지 않음을 발견했다. 나는 더는 경찰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비록 내가 자비와 선으로 그들을 대했지만, 오히려 그들을 성공적으로 쫓아내게 되었다.
이 과정을 서술하는 것은 아직 걸어 나오지 못한 수련생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 행하는 과정은 자아를 내려놓는 과정이다. 두려움의 물질은 행하는 과정 중에 사부님께서 우리를 도와서 제거해 주신다. 개인적인 느낌은, 걸어 나오지 못한 수련생들이 아주 많이는 두려움 때문이고 이렇게 오랜 세월 박해당하여 자신이 두려워 감히 걸어 나오지 못하게 했다. 나오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감히 나오지 못한다. 수련하는 사람은 누가 사부님의 말씀으로, 법으로 자신을 대조하고 자신을 잘 수련하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행동이 있어야 한다! 당신이 두려워할수록 이 두려움의 생명을 더욱 키우게 된다.
2020년 초에 내가 ‘전법륜(轉法輪)’을 베낄 때 “당신은 이미 자신의 主意識(주이스)를 놓아버리는 습관을 양성했는데,”[3] 내가 이 한 단락 법을 베껴 쓸 때 사부님께서는 나더러 ‘양성’ 이 두 글자 배후의 한 층의 내포를 깨닫게 하셨다. 일체 좋지 못한 습관과 좋은 습관은 모두 내가 그것을 양성한 것이고 이미 무형에서 유형적인 생명이 되었다. 그럼 우리가 행하는 과정 중에서 양성된 두려움의 이 물질을 제거해야 하며,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과정이 바로 두려움의 물질을 해체하는 과정이다. 역시 자아를 내려놓고 심성을 제고하는 과정이다.
우리는 조사정법하고 중생구도하러 온 것이다. 만약 우리가 사람을 구하지 않으면 어찌 사존의 자비로운 구도에 면목이 있을 수 있으며, 어찌 무량 중생의 기대에 면목이 있을 수 있겠는가. 사부님의 정법노정은 이미 오늘 이 일보까지 걸어왔고, 다른 공간의 사악요소는 해체되어 이미 얼마 남지 않았으며, 환경은 아주 큰 변화가 발생했다. 사악의 요소는 갈수록 적어지는데 좋은 수련환경은 행하는 과정 중에 개척하는 것이지 기다려서 오는 것이 아니다.
최근 이 몇 년 동안 현지의 법을 실증하는 환경도 아주 큰 변화가 발생했다. 사악은 이미 사악해지지 못했지만, 이 환경 역시 수련생들이 정체적으로 협조하여 대법을 실증한 결과이다. 현지 민중을 향해 현지 사악을 폭로하는 전시판이 큰 거리 작은 골목 전부 붙여져 악을 행한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변호사를 청하여 수련생을 구출하고 공검법(公檢法) 부서의 사람들이 진상을 알게 했다. 얼굴을 마주하고 진상을 알리며 진상자료를 배포하여 중생이 구도되게 했다. 대면적으로 진상포스터를 붙여 다른 공간의 사악을 대량으로 해체했고 바른 장을 개창했다. 그리하여 현지의 환경이 좋게 변한 것이다.
수련생들이여, 우리는 가서 행해야 한다. 먼저 작고 작은 한 점 한 점부터 시작하더라도 당신의 한 점 한 점의 노력은 두려움의 물질을 해체하고 있고, 자신이 그 어둡고 잠긴 마음의 방에서 걸어나가게 하여 당신의 마음의 방에 법광이 비치게 해야 한다.
션윈(神韻) 공연의 마지막 프로그램에서 홍수가 곧 올 때 사악은 여전히 대법제자를 미친 듯이 박해했다. 사부님께서 법에서 말씀하셨다. “내가 예전에 말한 적이 있다. 박해의 최후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사악은 줄곧 모두 박해를 중지하지 않을 것이며, 내일 끝나더라도 오늘 그 사악은 여전히 예전처럼 악행을 할 것이다. 법을 바로잡는 것이 끝나기 전의 우주 그것은 바로 그러한바, 그것이 법을 바로잡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좋게 변하지는 않는다. 법을 바로잡지 않았는데, 그것이 어떻게 좋아질 수 있겠는가? 그 독약 그것은 바로 독이 있는 것으로서, 당신이 그것이 독을 쓰지 못하게 하려고 해도 그것은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점에서 보더라도, 우리는 사악한 세력, 속인을 포함한 대법을 파괴하는 그런 악인들에게 그 어떤 환상도 품지 말아야 한다.”[4]
수련은 마지막 일보에서도 모두 고험이 있는 것이고 우리는 반드시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것을 잘해야 하고 사존의 호탕홍은(浩蕩洪恩)을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
맺음말
1999년 7.20부터 지금까지 이미 긴 20년이 지났고 이 오랜 세월 속에서 사부님의 무량한 자비는 오늘날의 우리를 성취하셨다. 우리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자신을 잘 수련하고 그 일보를 내디뎌야 한다. 걸어 나와서 사람을 더 많이 구도하고 자신에게 너무 많은 아쉬움을 남기지 말아야 한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건의’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11-2010년 뉴욕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4] 리훙쯔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2-2002년 미국 필라델피아법회 설법’
원문발표: 2021년 2월 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1/2/1/41936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