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랴오닝(遼寧)성 대법제자 잉춘(迎春)
[밍후이왕] 현재 저는 수련의 길에서 이미 22년의 세월을 걸어 지나왔습니다. 오늘은 최근에 완강했던 집착심들을 제거하는 과정을 작성하여 수련생 여러분들과 교류하고자 합니다. 법에 있지 않은 점은 수련생 여러분이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1. 자아에 집착하여 곤두박질하다
저는 1998년부터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기 시작했습니다. 법을 실증하는 여러 항목은 배우기만 하면 쉬웠는데 저의 이런 능력은 모두 사부님께서 주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자아가 팽창했습니다.
갈수록 수련생들이 일을 도와달라고 저를 찾아왔고 저도 갈수록 바빠졌습니다. 이렇게 기세등등한 일을 하고 있다고 느꼈고, 매우 충실하게 보냈고,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존재이며 사람들에게 존중받는 느낌이 매우 좋았습니다. 그래서 법을 실증하는 항목을 할 때 보통 모든 일을 혼자 도맡아 했습니다. 이로 인해, 수련생들을 가르쳐 장래에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 않아 다른 수련생들이 스스로 길을 걷는 것을 심각하게 교란했습니다.
더 깊이 내려가서 찾아보니 남을 돕는 배후에 사실 자신을 위하는 마음이 있었고 명(名)을 구하는 마음과 허영심을 만족하게 하기 위한 것이 있었습니다. 저는 속세 중에 명예와 지위를 추구하지 않는데 오히려 대법제자들이 하는 항목에서 이런 느낌을 추구했습니다. 이렇게 강한 집착심이 구세력에게 틈을 탈 기회를 주었고 박해를 초래했습니다. 저는 억울하게 3년 징역을 받았고 수련의 길에서 곤두박질했습니다.
2. 안으로 찾지 않아 환경이 긴장되다
저는 박해를 받기 전에 늘 유쾌하고 두려워하는 마음 없이 정정당당하게 수련했습니다. 예전에 질병이 많았던 몸은 대법을 수련한 후엔 완전히 병이 없어 가벼워졌습니다.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일하고 아들은 똑똑하고 기특하여 공부를 잘해 친척과 동료들도 모두 대법이 좋다는 것을 인증했습니다. 감옥에서 저를 감시하는 죄수도 저보고 늘 만면에 웃음을 띤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억울한 징역이 모두 끝나고 제가 집으로 다시 돌아왔을 땐 모든 것이 전과 같지 않았습니다. 3년의 억울한 징역으로 인해 객관적으로 가족들에게 아주 큰 상처를 안겨주었고 그중에도 특히 아이에게 준 상처가 제일 컸습니다. 아들이 세 살 때 아빠가 외도하여 먼저 저에게 이혼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후에 저는 혼자 아이를 키웠습니다. 아이는 어려서부터 대법에서 자랐고 자신도 매우 정진했으며 공부도 잘했습니다. 많은 가정처럼 아이 공부 때문에 그렇게 많은 시간과 정력 및 재력을 투입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직장이 좋아 경제적으로도 나쁘지 않아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사당(邪黨)에 박해를 받아 아이는 집에 갈 수 없게 됐습니다. 할아버지 댁이나 외할머니댁에 머물 수밖에 없었는데 어른들이 아이가 위험해질까 봐 더는 대법을 배우지 못하게 했습니다. 아이가 직면하게 된 수련환경이 아주 열악하게 변해 생활과 공부 질서도 모두 틀어지고 말았습니다.
가족들도 같은 문제에 직면했는데 아이의 모든 공부와 일상생활을 모두 도맡았습니다. 중학생이라 각종 잡다한 일이 많았는데 등하교시키고 빨래하고 밥하고 야간 자율학습에도 학부모들이 정기적으로 당직을 맡는 등 숨 쉴 틈 없이 바빴습니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감옥에 있는 저를 보러왔고, 예금도 저축해 두셨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스트레스 줄까 봐 아무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마음에는 매우 원망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제가 집에 돌아온 후에 원래 저를 지지했던 가족들은 웬만하면 대법을 더는 배우지 말라고 말렸습니다. 수련생들도 만나지 말고 아이도 배우지 못하게 하며 영향 주지 말라고 했습니다. 가족들이 이구동성으로 반대하는 목소리에 저는 점점 웃음이 사라졌고 수련환경이 긴장되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가족들이 과거 3년 동안 저와 아이를 위해 얼마나 애태웠는지 얘기를 자주 했습니다. 저는 가족들에게 진 빚을 다 갚지 못했다고 여겨 스트레스 또한 매우 컸습니다. 일은 이미 발생했고, 가족들이 확실히 저를 도와 아이를 3년 동안 힘들게 키웠고, 큰 희생을 했습니다. 이 일은 확실히 저의 도도하고 남에게 빚지고 싶지 않은 자만심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저는 제가 수련을 잘못해서 객관적으로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을 인증하고 싶지 않았는데 정확하게는 저의 잘못을 인정하기 싫었습니다. 물론 대법을 배워서 잘못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되든 제가 박해받음으로써 가족과 아이에게 뜻밖의 번거로움을 가져온 것에 대해서 진정으로 사과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냥 제가 사과하기가 싫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제가 일반적인 일 때문에 가족들에게 번거로움을 안겨준 것이 아닌 중공의 박해가 초래한 것이므로 잘못이 저에게 있지 않고 중공 사당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법을 핑계로 자신이 수련해야 할 마음을 가려 제거해야 할 집착심을 보호했습니다.
감옥에서 돌아온 후 제 수련 상태를 조절하지 못한 채 다음 날 바로 입원해 수술해야 하는 어머니를 보살펴야 했습니다. 어머니가 퇴원하자마자 지인이 또 저에게 직장 한 곳을 소개했습니다. 이 직장에선 사람이 급하게 필요해 곧바로 출근해야 했습니다. (억울한 판결로 전 직장이 계약을 파기함) 마침내 3년 동안의 체계적인 법공부 부족으로 일에 부딪히면 안으로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고, 자신의 집착을 재빨리 바로 잡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눈 밑이 늘 파랬고 성격도 좋아지지 않아 인내심이 사라져 수련인의 풍모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표현은 다른 사람이 뭐라고 말하기만 하면 폭발하여 조그마한 비평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부모님과 말할 때도 말투가 그리 존경스럽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어머니는 잔소리가 많으시고 아버지는 귀가 잘 안 들리셔서 반복하여 몇 번이나 말해야 했고 또 자꾸 중간에서 끊으시니 반복하기 싫고 인내심이 없었습니다.
직장에서도 마음속으로 승부욕이 아주 강했습니다. 동료가 실수하면 진심으로 동정해 주진 않고 업신여기며 내가 하면 그보단 잘할 거로 생각했습니다. 아들에게도 제 마음에 들지 않은 부분을 가족들 앞에서 가림없이 지적하여 다른 사람 앞에서 아들의 이미지를 훼손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사실 근본적으로는 제가 남보다 잘한다는 것을 과시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집착심이 아주 강했으며 자선한 마음이 없었고 자비한 상태가 없었습니다.
3. 마난이 닥쳐오고 아들이 우울증에 걸리다
저와 아들이 매주 하는 법공부 효과도 좋지 못했습니다. 항상 법공부 하다가 일 얘기를 의논하게 돼 법공부에 교란이 왔고 효과도 좋지 않았습니다. 이 상태는 아들이 대학교 1학년 하반기까지 지속했습니다. 아들은 현지에서 대학을 다녀서 주말마다 집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저는 아들이 갈수록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자주 월요일 아침이 돼서야 학교에 가는데 원래 일요일 저녁에 학교로 가야 했습니다. 나중에는 일반인이 우울증이라고 하는 상태가 나타났고 말하는 목소리도 매우 힘없이 변해 뭐라고 말하는지 알아듣기 힘들었습니다. 매번 불을 끄고 창문을 닫고 커튼을 치라고 했고 방에서 나오지도 1층으로 내려오지도 않았습니다. 나중에 어쩔 수 없이 학교에 가서 휴학 신청을 하고 집에 있게 됐습니다. 선생님들도 휴학하면 다시 돌아와 학교생활을 이어가는 경우가 드물고 거의 학습 과정이 끝났다고 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얘기를 들으니 우리는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일반인의 이치로 보면 우울증은 보통 여의치 않은 일이 있었거나 마음에 매듭이 풀리지 않는 일로 조성됩니다. 아들도 마음에서 풀리지 않은 일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면, 시댁 사람들이 아들이 대법을 배워 일이 생길까 봐 두려워 아들이 설법을 듣기 위해 산 몇백 위안의 애플 아이팟(MP3) 몇 개를 버렸습니다. 아들은 이 일 때문에 그들을 원망하고 용서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은 자주 아들 몰래 그의 물건들을 뒤졌고, 중학교 학우들이 이유 없이 아들을 동성애자라고 했으며, 대학교 학우들과도 모순이 있었습니다. 이런 일들을 생각할 때마다 아들은 몹시 화를 내며 감정을 통제할 수 없었습니다. 수업을 들을 수가 없었고, 교실에 앉을 수가 없어 공부가 되지 않았습니다. 책을 보면 글자들이 마치 모두 그를 비웃는 것 같아서 법공부도 잘되지 않았습니다. 그때 아들은 명확히 더는 공부하기 싫다며 퇴학하고 싶다고 뜻을 밝혔습니다.
나중에 더욱 심각한 상태로 발전되어 아들의 주의식은 뚜렷하지 않은 상태에 처했으며 다른 공간의 생명에게 통제되어 조증이 나타났습니다. 아들이 날마다 게임을 했고 한밤중에 창문을 열어 아래를 향해 큰 소리로 부르짖었는데 목도 다 쉬었습니다. 하는 말이 온통 막말이었고 남자만 보면 도발적으로 싸우려고 했습니다.
나는 마음이 매우 조급해져 아들이 정신이 들 때마다 대법의 법리로 그를 달랬습니다. 아들이 이해하고 마음의 매듭이 풀리기를 희망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위해 전력으로 발정념을 했는데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했습니다. 하지만 효과가 미미하여 저는 몹시 곤혹스러웠습니다. 저는 문제가 아주 심각하다는 것을 깨닫고 이런 맞지 않은 상태를 급히 바꿔보려 했지만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자비하신 사부님께서는 수련생의 입을 빌려 문제가 바로 제게 있고 근원이 바로 제게 있다는 것을 점오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자꾸 밖으로 찾았고 아들을 대신해 아들 문제를 찾아주었습니다. 제 수련에 문제가 없다고 여기며 자신을 찾지 않고 자신의 씬씽(心性)을 제고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제가 바르기만 하면 아이도 곧 나아질 것입니다. 아이의 표현으로 저에게 바르지 않은 상태들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 기간에 제가 처한 상황은 또 어땠을까요? 아들의 상태에 가족들은 몹시 마음 아파했습니다. 아들은 아직 젊고 가야 할 길이 긴데 이렇게 가다 보면 일생을 모두 망칠 것입니다. 가족들은 아이를 아끼는 마음에 책임을 모두 저에게 몰았고 날마다 저에게 잔소리했습니다. 제가 잘못되어 아이가 이렇게 된 것이고 아이도 어렸을 때부터 대법을 배워 학교에서 이해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차별 대우를 받았고 사회적인 여론에 스트레스도 적지 않게 받았을 거라고 했습니다. 아이가 감당한 것이 어느 정도 쌓이니 그때 표현되어 나오지 않은 것들이 이제야 폭발해 나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렸을 때 떠난 아빠도 못났지만, 엄마도 잘못 만나 아이가 참 불쌍하다고 했습니다. 하나하나의 지적하는 목소리가 마치 예리한 칼처럼 저를 찔렀습니다.
사실 제가 집으로 돌아온 이후 몇십 번 같은 꿈을 꿨습니다. 늘 날짜가 다 되었지만, 감옥에서 석방되지 않는 꿈을 꿨습니다. 어떨 때는 날짜가 한 달이 지나도 석방되지 않는 저 자신을 꿈에서 봤습니다. 사실 제 마음이 아직도 박해받은 트라우마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저는 계속해서 씬씽(心性)을 제고하고 자신에게 어디가 누락이 있었는지 찾아봐야 했습니다. 부끄럽게도 제가 수련을 잘못해서 곳곳이 누락이었습니다. 하지만 여러 집착 중에 저는 반드시 어느 한 가지가 제일 근본적이고 아주 깊숙이 숨어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당시에 저는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사실 저의 근본적인 집착은 바로 원망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는 그 자신의 본질적인 이익에 상처 입지 않기 위해 완강하게 지키고 상처받기만 하면 반격하여 원망을 형성했습니다. 하지만 원망이라는 물질은 강렬하게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도 상처를 줍니다. 저는 저를 지적하는 가족들에게 아주 강렬한 원망이 있었고 아들에게도 원망이 있었습니다. 아들이 대법의 이미지를 파괴했고 저에게도 끊임없는 번거로움을 초래했으며 제가 지적받게 하고 대법에 흠집을 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사당의 박해와 제가 잘못된 것에 대한 강렬한 원망이 있었습니다. 만약 제가 잘못되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마침 사람들은 하늘이 자신에게 불공평하다고 원망하듯 저는 저를 박해하는 구세력을 미워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누가 저를 교란했거나 저를 지적했다면 저는 누구를 미워했습니다. 전에 위챗 앱을 삭제했을 때도 그랬듯이 다들 모두 사람들 앞에서 제가 위챗을 쓰지 않는다고 지적해서 창피를 준 적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저는 아들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위챗이 정말 미워 죽겠어. 얘 때문에 내가 얼마나 많은 지적을 듣고 다녔다고” 이는 제가 숨겨진 원망하는 마음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인식하지 못했는데 왜냐하면 이는 이미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 됐기 때문이었습니다.
4. 안으로 원인을 찾으니 막혔던 앞길이 열리다
사부님께선 제가 정말로 깨닫지 못하고 어디서부터 찾아야 하는지를 모르는 것을 보시고 저에게 하루 오후의 빈 시각을 배치해 친한 친구의 입을 빌려서 제가 어디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지 점오해 주셨습니다. 점점 저는 처음 인정하기 싫은 것에서 점차 이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조금씩 자신을 바로 잡게 되었으며 위에서 언급된 집착들을 찾았습니다. 저는 오랜만에 처음처럼 수련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선 저는 저를 지적하는 가족과 친구들을 용서하게 되었습니다. 아들의 일은 보기엔 좋은 일이 아니지만 제가 씬씽(心性)을 제고할 기회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들은 저를 지적하여 저의 원망하는 마음이 수면 위로 떠 오르게 했고 제게 보이게 하고 제거하게 했습니다. 자신을 보호하여 상처받기 싫어하는 마음을 제거하는 것이 업력을 없애며 씬씽(心性)을 제고하는 아주 좋은 기회입니다. 제가 어찌 또 그들을 원망하겠습니까? 이 또한 제가 예전에 잘못해서 조성된 것이 아닙니까? 예전에 누가 저를 나쁘게 말하면 누구를 원망했는데 심지어 그들을 더는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특히 다른 사람이 저의 행위로 인하여 대법에 불만을 표현할 때 저는 더욱더 심했으며 말하기만 하면 폭발했습니다. 대법이라는 허울 좋은 핑계가 있으니 저는 저의 집착을 숨어서 안으로 찾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가족과 친구들이 대법을 존경하지 않는다고 원망했습니다.
저는 또 제가 후천적으로 형성된 교만한 마음으로 가족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늘 대법을 핑계 삼아 3년의 억울한 징역은 저에게 잘못이 없으며 가족들에게 도움을 청한 것도 어쩔 수 없었던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은 확실히 3년 동안의 아이 성장에 너무 많은 고생과 희생을 하셨습니다. 아이는 한 끼도 굶지 않았으며 학부모 회의에도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었습니다. 아들은 중점고등학교에 입학했고 일선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저는 이는 모두 사부님의 배치고 사부님의 도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마침내 저의 수련하지 않는 가족이 도와서 실현해 준 겁니다. 그래서 저는 저 자신을 바꾸고 잘난 체하는 마음을 없애 가족의 처지에서 다시 새롭게 이 일을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잘못을 인정하기 싫었고 남을 내려다보는 자만하는 마음을 버려 제가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나오자 가족들은 갈수록 저를 지적하는 수가 줄어들었습니다.
친구는 또 제가 아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일깨웠습니다. 이번의 일로 아들에게 가져온 여러 가지의 힘든 일에 전부의 책임이 저에게 있다는 것을 아들에게 인정하라고 했습니다. 전에 저는 늘 이는 모두 인연 관계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들이 이번 일에 부딪히게 된 것도 아들의 팔자고 이번의 마난 또한 아들을 단련하는 기회로 아들을 성취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늘 수련의 이치로 아이에게 요구했는데 아이의 처지를 생각해 주지 못했습니다. 당시 아들도 이제 막 14살이 된 중학교 2학년 어린아이였습니다. 갑자기 이런 변고를 당해 아이의 심신에 가져다준 상처, 그리고 아이의 수련에 뜻밖의 어려움을 가져다줬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아이를 감시하고 있어 대법을 접촉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그렇게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4살 때부터 쌓아온 기초에 의지하여 매일 기억에서 ‘홍음’을 외우고자 애썼고 외할머니댁에 가게 될 때 시간을 짜내서 ‘전법륜(轉法輪)’을 읽었습니다. 아들은 그것이 ‘충전’이라고 했습니다. 사부님의 보호에 아들이 평범하지 않았던 세월을 걸어왔습니다. 나중에 아들의 성적은 잠시의 하락에서 다시 회복해 올라갔고 선생님이 아들에게 ‘최우수 진보상’도 주었습니다. 마지막에 중점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고등학생이 된 후에 아들이 저를 보러 감옥에 왔을 때 집에 일찍 오려고 ‘전화(轉化)서’를 쓰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가 잘 지내고 있다며 제가 집에 없어도 생활에 지장이 없으니 일찍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습니다.
이런 아이에게 제가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에게 조성된 상처에 대해 사과해야 하지 않을까요? 예전에 저는 늘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일이 이미 벌어졌는데 나보고 또 어떻게 하라고? 사과해도 일은 이미 벌어진 거잖아. 나는 그래도 너의 엄만데 무슨 남 보기 부끄러운 짓을 한 것도 아닌데 사과할 필요가 있나?’ 사실 저도 아들에게 사과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형식적인 사과였고 진심이 아녔습니다. 실질적으로는 그것도 체면을 내려놓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진심으로 아들에게 편지를 써서 사과한 후에 아들의 상태가 많이 나아졌으나 완전히 나아지진 않았습니다.
나중에 저의 또 다른 친구가 전화해서 말했습니다. “당신은 여당에 대한 원망은 없습니까?” 저는 알았습니다. 아, 저는 아직도 원망이라는 집착을 못 찾은 거였습니다. 아들이 매번 ‘발병’할 때를 생각하면 항상 아주 큰 소리로 기침을 한 번 하곤 했습니다. 그 소리가 듣기에 아주 소름 끼칠 정도인데 아주 멀리까지 전해졌습니다. 그 소리는 명확히 아들의 소리가 아니며 다른 생물이 아들을 통제하여 낸 소리였습니다. 그 소리는 원망(hen, 恨)’처럼 들렸습니다.
원망하는 마음을 찾고 나니 이번에 근본적인 원인을 찾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앞에 꽉 막혔던 한 짝 문이 열렸고 확 트인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왜 원망할까?’ 나 스스로가 상처를 안 받으려고 보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사존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수련하는 사람이 단지 표면상으로만 내려놓고 마음속에는 아직도 지닌 채, 한 가지 것을 고수하면서, 당신 자신의 그 가장 본질적인 이익을 다른 사람이 해치지 못하도록 고수하고 있다면,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바 그것은 가짜 수련이다! 당신 자신의 내심을 움직이지 않으면 당신은 한 발자국도 제고할 수 없는바, 그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오로지 당신이 진정하게 내심에서 제고 해야만 당신은 비로소 진정하게 제고된다.”[1]
과거를 돌이켜 생각해보니 저는 정말로 진정으로 제고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모두 표면에만 머물러 수련했지 착실하게 진정으로 수련하지 않았습니다. 현재 제가 매번 발정념하고 저 자신을 청리할 때 모두 원망하는 마음을 없애는데 주의를 기울였고 그 마음도 많이 적어진 것을 느꼈습니다. 수련에서 원망하는 마음이 나올 때마다 저는 재빨리 그를 발견하고 제거할 수 있었습니다. 수시로 사부님께서 ‘홍음 4’에서 말씀하신 “원한을 품지 말고 당신의 선(善)을 지켜야 할지니”[2]를 외웠습니다. 제가 귀정하니 웃음도 다시 제 얼굴에 나타났습니다. 아직 제일 좋은 상태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이미 눈에 보이는 발전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여러분도 아마 다 아실 겁니다. 아이의 우울증은 현재 이미 완전히 나았습니다. 이렇게 저 자신을 바로 잡은 후에 아들도 모르는 사이에 모두 나았습니다. 가족과 친구들이 다시 이 얘기를 꺼내면 모두 불가사의하고 한 바탕의 꿈과 같았다고 합니다. 아들이 갑자기 발병하고 또 갑자기 나았는데 우울증에 걸렸었던 흔적이 전혀 없습니다.
이 시점에서 가족들은 아이를 걱정하는 마음도 드디어 내려놓을 수 있었고 모두 기뻐했습니다. 현재 아이는 다시 근심 걱정 없이 학교에 다니고 그가 좋아하는 전공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됐습니다. 기말시험에 우수한 성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법공부를 할 수 있게 됐는데 가끔 제가 하는 대법의 일에도 도움을 주는 등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바로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과 똑같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반드시 이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 어떤 일에 부딪히거나 번거로운 일, 내키지 않는 일 혹은 누구와 충돌이 발생했을 때, 꼭 자신을 살펴보아 자신을 찾는다면 당신은 해결되지 않는 문제의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많은 사람이 과거 기공 수련을 열심히 할 때, 자기 몸의 에너지장이 외면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은 이런 일이 아니다. 당신 자신이 잘못되어 있어 이 우주특성으로부터 빗나가 있기 때문이며, 주위의 일체가 당신과 모두 조화되지 않음을 발견하는데, 바로 이러한 관계이다. 당신 자신이 그것을 조화롭게 하면 일체가 다 순조롭게 된다. 바로 이러하다.”[1]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북미 제1기 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4-미혹의 올가미를 풀다’
원문발표: 2021년 1월 2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big5.minghui.org/mh/articles/2021/1/22/41698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