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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쑤 파룬궁수련생 중충빈의 사망, 훙쩌후 감옥 ‘독극물 박해’ 의심돼

[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장쑤 보도) 장쑤(江蘇) 롄윈강(連雲港)시 파룬궁 수련생 중충빈(仲崇賓)은 장쩌민(江澤民)을 고소한 이유로 2015년 6월 12일부터 2018년 6월 12일까지 3년의 징역형을 무고하게 선고받았다. 출소 후 집에 돌아온 그는 2개월 만인 8월 14일에 사망했다. 당시 그의 아내 샤정옌(夏正豔)도 장쩌민을 고소한 이유로 억울하게 징역형을 선고받았는데, 그 후 한 번도 볼 수 없었다.

친구들은 모두 중충빈의 사망에 대해 매우 수상하게 여겼다. 사정을 아는 사람의 폭로에 따르면, 중충빈의 시신을 화장한 후 절반 정도가 까만 흑색이었다. 당시 화장공이 “이 사람의 골회는 어떻게 검은색이죠?”라고 질문했다. 가족이 “이 사람은 막 감옥에서 나왔어요”라고 대답하자, 그 화장공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중충빈이 사망한 표면적인 원인은 집으로 돌아온 후 입맛이 떨어지고 식사를 제대로 할 수도 없어 식사량이 하루하루 줄어들었고, 결국 몸의 장기들이 쇠약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악한 공산당은 오히려 그가 폐결핵에 걸렸는데 약을 먹지 않고 치료받지 않아 사망한 것이라고 새빨간 거짓말을 했다.

박해로 폐결핵 증상이 나타났으나, 그는 약을 먹지 않고 모두 토해버리고 또 주사를 맞지도 않았다. 독방 격리 기간, 그는 격리실에서 가부좌하고 연공하면서 건강을 회복했다. 그 후 병원에서 검사했는데, 검사 항목 지표가 모두 정상이었다. 그제야 그를 입감대로 옮겨갔다. 그는 어떻게 병이 완쾌됐는지에 관한 진실을 의사에게 알려주었다. 그는 “당신들이 저를 치료해 낫게 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사실 저는 연공을 연마해 나아졌습니다. 저는 약을 모두 토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결과 이튿날 병원에서는 곧 그를 다시 데려갔다.

중충빈은 그의 한 친구에게 다음과 같이 폭로했다. 그가 병원으로 끌려 돌아간 후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밥을 먹을 수 없었는데, 아마 출소하기 3개월 전이었을 것이다. 훙쩌후(洪澤湖) 감옥에서 그에게 무엇을 했는지는 감옥의 악독한 경찰들은 가장 명백하게 알 것이다. 골회가 검은색을 띤 것에 대해 만성중독으로 사망(가장 확실한 판단은 바로 중충빈의 음식에 독약을 투입했다는 것임)한 것이라고 분석하는 사람이 있었다.

1961년에 출생한 중충빈은 공군 레이더병 제52단에서 은퇴한 군인으로 롄윈강시 법률 사무센터에 취직했다. 중충빈은 1999년부터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는데, 수련한 지 1개월 후 중공(중국공산당)은 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시작했다. 중충빈이 수련을 포기하지 않자, 줄곧 중공에 박해당했다. 2004년 7월, 중충빈은 노동교양소 소굴에서 돌아와 6개월 후, 거듭 신푸(新浦)구 ‘610’ 악독한 경찰 양광우(仰廣武), 쿵제(孔傑)에게 납치돼 학대당했다. 그 후 무고하게 4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훙쩌후 감옥에서 고문 학대를 당했다. 2015년 6월 12일 오후, 중충빈은 파룬궁을 박해한 장쩌민을 고소했다는 이유로, 불법 납치돼 가택수색을 당했고, 그 후 불법 재판으로 3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중공은 파룬궁을 박해함에 어떠한 최저선이 없이, 몸이 건강하고 정신 상태가 정상인 파룬궁 수련생을 강제로 정신병원에 가둬 약물 박해와 고문을 진행했다. 감옥, 노동교양소, 파출소, 구치소 등 장소에서 약물을 투여해 심신이 건강했던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했다. 파룬궁 수련생의 밥과 반찬, 물 등의 음식물에 독약을 투입해 약물 반응의 증상이 나타나면, 치료한다는 명목으로 중추신경을 파괴하는 약물을 주사하거나 링거 속에 독약을 넣는 방법이다.

하늘의 그물이 매우 넓고 성글지만, 빠뜨리지 않는다. 언젠가는 진상이 똑똑히 밝혀질 날이 있을 것이다.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이 독극물 박해로 사망한 중충빈의 상황에 관해 계속 보충해주길 바란다.

 

원문발표: 2021년 1월 20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망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1/1/20/41880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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