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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생 속에서 당(黨) 문화의 몇 가지 두드러진 표현

글/ 해외 대법제자

[밍후이왕] 우리는 모두 당 문화를 제거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중국에서 오래 살았던 사람이나 중국 밖에 오래 있었어도 당 문화 속에 있던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이 당 문화인지 모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당 문화라고 말하면 기분 나빠한다. 당 문화는 사악한 공산당 악마가 만들어놓은 나쁜 물질이다. 이 물질을 깨끗이 제거하지 않으면 우리의 수련 및 사명에 영향이 있다. 당 문화 중에서 비교적 두드러진 문제를 토론하고 선의로 일깨워주려는 뜻에서 본 문장을 작성했다.

1. 다른 사람을 자기 생각대로 하려 한다

중국에서 온 사람들은 남의 일에 대하여 자기 생각을 멋대로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자기가 그 일의 담당자인 것처럼 남에게 이래라저래라 한다. 아마 출발점은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이런 방법은 좋은 효과가 없다. 그것은 중공의 사악한 유전자인 ‘통제’에서 온 것으로 생각한다. 다른 사람의 언행을 자신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통제하려고 한다. (거꾸로 상부의 지시를 따라야 할 때는 반항적이고 오만하며 사사건건 맞받아치는데, 마치 상부의 리드, 피드백, 지도, 시정요청을 들으면 자신을 경멸한 것처럼 느낀다. 이것은 같은 관념이 두 개의 상반되는 극단에서 반응한 것이다.)

사실 해외의 환경에서, 개인은 모두 자신들의 일을 잘하는 것을 중시하고 개개인은 자신의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능력이 있으며 업무 관계를 바로잡고 타인을 존중한다. 다른 사람의 도움과 조언이 별로 필요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탐구하는 것이 기본이다. 앞장설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사람들에게 충분한 자유를 행사할 공간을 준다. 마음이 정말로 선의(불만이 조금 있다거나 사람의 정이 넘치거나 자아가 너무 강한 것은 제외)로 가득 차 있을 때는 남을 그렇게 대하지 않을 것이다.

2. 남의 물건을 함부로 다룬다

허락 없이 함부로 타인의 물건에 손을 대거나 먹고 마시며 주고받는 이런 행위는 보기에는 사람과의 거리를 좁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예의와 교양이 모자란 표현이다. 어떤 사람은 한가할 때 다른 사람의 물건을 마음대로 가져와서 보고 평가하는데 자신이 이미 타인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어떨 때는 자신의 호의를 남에게 강요하는데(내가 너에게 준 것은 좋은 것이니 너는 받아들여야 한다) 도리어 인간관계를 왜곡시키게 한다.

사실, 자신의 물건에 대하여, 사람마다 모두 자기의 계획이 있을 수 있다. 만약 다른 사람이 허락 없이 마음대로 건드리고 마음대로 말한다면 바로 타인을 침범하는 것으로 싫어하게 된다. 비록 다른 사람이 아주 열정적이라 해도 당신이 주인처럼 마음대로 건드려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마땅히 유지해야 하는 거리를 지키는 것이 예의와 교양의 기본적인 표현이다.

3. 언제 어디서나 남을 평가하고 결론을 내린다

당 문화가 심한 사람은 습관적으로 자신을 높이 치켜세우고 건방지고 교만하며 모든 사람과 일에 대해서도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는 것이 마치 자신이 정신적 지도자인 것 같다. 일보다 사람을 보는 특징이 있는데, 어떤 일을 보면 첫 반응은 모두 이러쿵저러쿵 평가하여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마치 모든 사람, 모든 일이건 그(녀)가 결론을 내리지 않으면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우리는 반드시 수구(修口) 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아마 잘 모르고 본인 생각에 다른 사람이 어떠하다는 것은 아마 속인의 관념과 업력일 것이다. 그렇게 말하면 바로 업을 쌓고 대법제자 사이가 화목하지 못하며 심지어 사부님의 이미지를 손상할 수도 있다. 그렇게 많은 결론을 달고 다니며 입만 열면 나오는데 분수에 맞는지 아닌지도 따져보지 않는다. 사부님께서는 “일에 대해 말하지 사람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므로”[1]라는 법리를 말씀해주셨다.

중국 옛사람들은 예로부터 겸손한 군자였고, 여성도 현명하고 선량했다. 그러나 독선적이고 제멋대로 굴며 자기를 기준으로 삼는 사람은 사회에 설 곳이 없다. 현재 사회는 파괴되었고 바른 것과 바르지 못한 것이 뒤바뀌었다. 모두가 그것을 보았지만, 왜 그런 사람들이 대법제자 중에서 아직도 설치고 다니는가? 여러분들의 관념이 집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무엇이 일부 사람이 타인을 존중하지 않게 하고 심지어 대법에 대해 존중하지 않게 하는가? 무엇이 속인들의 도덕이 부패한 후의 비뚤어진 이치와 시비로 수련생들 항목에 와서 작용을 일으키게 하는가?

정말로 선의가 가득할 때(불만과 악의가 조금도 없을 때)는 그렇게 다른 사람을 대하지 않을 것이다.

4. 제멋대로 타인을 공격한다

당 문화에 심하게 물든 사람은 입만 열면 원망과 비난, 욕설까지 퍼붓는데 문제나 갈등이 생기면 손전등과 고사포처럼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고 제자리를 찾지 못한다. 우리가 남을 위해 정말 사심이 없을 때, 정말 선의로 가득 차 있다면 불만을 표출할 때 그렇게 타인을 대하지 않을 것이고 효과도 완전히 다를 것이다.

당 문화가 심한 사람들은 신을 믿지 않기 때문에 도덕의 구속을 잃고 신마저도 짓밟는데 짓밟지 못하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규정, 제도는 적이고 업무심사는 적이며 부동한 의견도 적이며 나를 좋게 대해야만 좋은 것으로 생각하고 나와 좋지 않으면 당신을 편히 놔두지 않는다. 선과 악,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이 일찍이 엄중하게 비뚤어졌기 때문에 감히 습관적으로 제멋대로 타인을 대한다. 그러나 그런 옳고 그름이 뒤바뀐 기준은 공산 악마가 당신이 젊었을 때 당신에게 주입한 것이고 강제로 당신에게 준 것인데 왜 아직도 그것을 간직하고 있는가?

해외에 잠깐 살아본 사람은 해외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서로 사랑하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의 부족한 점도 모두 도와주면서 선의로 일깨워주는 마음으로 ‘자신이 싫은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타인의 사생활을 존중하고 타인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게 주의한다. 이것은 공산당의 빼앗고 부수는 망나니 습성과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5. ‘확성기’를 즐겨 쓰고, 남을 끌고 가려 한다

나는 갈수록 많은 사람이, 타인에게 어떻게 하라 하고, 대중 앞에서 발언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사실 이것도 공산당의 교만과 무지의 표현이다. 역사적으로 많은 유명인은 아주 겸손했다. 아무런 성과도 없는 사람이 다양한 사람과 사건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것을 특별히 좋아하며 심지어는 대중 앞에서 강연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그를 따라가기를 호소하기도 한다. 정상적인 사람은 이런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이것은 대법제자 중에서 특히 엄중한 문제가 된다. 그것은 우리는 사람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법을 스승으로 모셔야 하기’[2] 때문이다. 사람마다 자신의 길을 걸어야 하고 자신의 과위를 깨달아야지 다른 사람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약 줄 수 있다면 사부님께서 직접 사람들을 하늘로 데리고 가는 것이 더 빠르지 않겠는가? 대법제자는 호위인사(好爲人師, 매사에 남의 스승 되기를 좋아하는 사람)를 따라 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마다 법 중에서 깨달아야 하고 수련생이 어떻게 하라고 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한다면 대법이 사람을 제도하는 것인가? 아니면 당신이 그를 제도하는 것인가?

다른 사람이 깨달은 것은 아마 당신이 깨달은 것과 같지 않을 수 있다. 제멋대로 타인에게 알려준 것은 자신이 도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사실 모두 자기 층차에서 깨달은 것으로 다른 사람에게 반드시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골목 소식이나 친분으로 사람들이 자신을 따르게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큰 잘못을 범하게 될 것이다.

6. 멋대로 다른 사람을 논하고 옳고 그름을 논하며 불평한다

자기가 말하면 사실이고 모두 옳다고 하며 시비를 헛갈리게 하여 사실을 되돌리기 어려워 내부 마찰이 매우 크다. 이런 것들은 비록 작은 잘못이지만 오히려 큰 손해를 조성할 수 있고 수련인의 장에서 파괴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다른 사람을 논하고 한 무리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특정인을 공격하고 배척하는데 이런 대법제자가 어찌 협조를 잘하고 서로를 신임할 수 있겠는가?

또 이런 현상은 더 깊게 발전하여 상응하는 행동을 가져올 수 있다. 정말 어떤 수련생은 정체에 들어가지 못하고, 여러 사람과 협력하지 못한다. 사실 그런 의논은 그저 하찮은 일로서 통상 정진하지 않고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이 한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에게는 매우 큰 부정적인 작용을 하게 된다.

자신의 사상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지만, 여기저기에서 말하고 심지어 다른 수련생을 배척하는 행동을 유발하여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사람을 구하는 일을 정말로 방해할 수 있는데 그러면 사부님을 어떻게 대하겠는가? 비록 어떤 때 성공했다 하더라도 구세력의 이간질에 들어간다. 옛사람들은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하기 마련’이라고 했는데 무엇이 자신을 그토록 분노하게 하고 수구하지 못하게 하며 무엇 때문에 자신을 보지 못하고 단속하지 못하는가?

7. 습관적으로 규칙을 어긴다

규정, 규칙을 듣고, 우선 선의로 이해하고, 선의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습관적으로 반발한다. 첫 번째 반응은 ‘나는 특수한 경우라 지킬 수 없다. 나에게는 이유가 있다.’이다. 마치 규정과 규칙을 지키는 것이 자신에 어긋나는 것처럼 매우 강하게 반항한다. 이런 습관 속에는 중국에서 생활하면서 사악한 당에 의해 박해받은 후유증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사악한 당의 세뇌를 받아들였다는 관념적 반응도 있다.

속담에 내리막은 쉽고 오르막은 힘들며 좋은 것을 배우기는 어려워도 나쁜 것은 쉽게 배운다고 한다. 즉, 잘 배우려면 자기 수양과 학습을 끊임없이 해야 하는데, 나쁜 것은 한 번만 봐도 금방 알 수 있다. 중국에서 생활한 적이 없지만, 학교를 나온 서양인 수련생들이 일에 부딪히면 입을 삐죽거리고 무엇을 들으면 콧방귀를 뀌고 즉시 부정적인 결론을 내리는 것에 대하여 이상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서양 수련생들이 사회주의 중국에서 왔는가? 우리의 언행이 그들에게 당 문화를 전염시킨 것은 아닌가?

규칙과 전통을 어기는 관념에 강제성을 더하면, 부산물이란 자신도 규칙을 어기고 전공지식과 전문경험을 배우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고 다른 사람도 자신의 ‘낙후한 방식’으로 일하게 한다. 사실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해야 한다.’ 모르면 배우는 것도 지식을 존중하고 타인을 존중하는 선의이고 모르면 배우는 것이 좋은 일이며 나쁜 것이 아니다. 어떤 관념이 자신을 무식하게 하고도 그렇게 잘난 척하고 횡포를 부리게 만드는가? 바로 젊었을 때 공산당이 주입한 그런 당 문화다. 수련하므로 반드시 자신을 청리해야 하는데 그런 관념은 버려야 한다. 심지어 다년간 수련했지만, 아직도 당 문화의 관념이 통제하고 있다.

이 문장은 수련생들에게 존재하는 당 문화 현상의 몇 가지 예이다. 사부님께서는 사람보다 일을 겨냥하라고 말씀하셨다. 아무에게나 결론을 내릴 것이 아니라 수련하여 당 문화를 제거하려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만약 여러분이 자신의 당 문화 관념을 뿌리 뽑을 수 있고 마지막 순간에 나쁜 물질에 대한 집착을 제거할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사부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고 사악이 두려워하는 것이다. 늘 자신에게 존재하는 문제를 외면하고 피하면서 숨기고, 필사적으로 저항한다면 그곳이 바로 공산 사령이 목숨을 의탁하는 곳이다. 따라서 우리는 신의 일면이 주도적인 작용을 하도록 하고 당 문화가 우리에게 강제적으로 가져다준 파괴물질을 없애야 한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파룬따파의해-베이징(北京) 法輪大法(파룬따파) 보도원회의에서 말씀하신 정법(正法)에 관한 의견’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시드니 법회 설법’

 

원문발표: 2021년 1월 1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1/1/15/41856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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