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밍후이 통신원 헤이룽장 보도) 헤이룽장(黑龍江)성 허강(鶴崗)시 파룬궁(法輪功) 수련인 장윈징(姜允敬)은 신앙을 고수한다는 이유로 13년 억울한 옥살이를 당했다. 그는 2020년 12월 11월부터 13일까지 또 허강시 공안국 공농분국 훙치(紅旗)로 파출소 경찰관에 의해 허강시 구치소로 납치됐으며 그를 납치한 경찰은 그에게 징역형을 내릴 예정이라며 큰소리를 쳤다.
장윈징(남, 1968년생)은 박해받기 전 자무쓰(佳木斯) 철도 장커우(江口) 토목공사 구간 바오취안링(寶泉嶺) 공사 구역에서 일했다. 중공이 파룬궁에 대해 21년 넘게 박해하는 과정에서 그는 13년간의 무고한 옥살이 박해를 받았지만 그는 여전히 진실하고 선한 마음으로 주변의 매 사람을 대했다.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해맑은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지금 다시 납치 박해를 받은 후, 그의 최대의 염원은 여전히 더욱 많은 사람이 대역병이 오기 전 평안하게 시련을 지나갈 수 있고 아름다운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1. 고덕대법(高德大法)은 그를 좋은 사람이 되도록 가르쳤다
파룬궁 수련 전, 장윈징은 위염, 장염 등 질병을 앓았다. 1998년 봄, 그는 소장 절제 수술을 받은 후 몸이 매우 허약해져 50미터를 걸어도 힘들어서 지쳤으며 온몸에 식은땀이 났다. 그는 날음식과 매운 음식을 먹지 못했으며 먹으면 끊임없이 화장실에 갔다. 사회 기풍이 날로 나빠지는 큰 염색항아리 속에서 그는 쟁투심이 강해서 참고 양보하지 못했고 어떨 때는 사람과 싸우기도 했다. 몸이 허약하고 무기력해 업무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는 자신이 맡은 철도 노선을 순찰할 때도 걷지 못했고 태만해 차를 타는 것을 또 좋아했다.
파룬궁을 수련한 후, 장윈징의 심신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파룬궁을 수련한 지 3개월이 되자 장윈징은 무엇을 먹어도 괜찮았고 음식을 꺼리지도 않았으며 병이 없어 온몸이 홀가분해졌다. 식은땀이 나지도 않았고 매일 기분이 좋았으며 건강한 보통 사람보다 더 활력이 넘쳤다. 예전에 병마에 시달릴 때 무기력했던 그는 생기가 넘쳐나 동료들 눈에도 다른 사람이 된 듯 보였다.
파룬따파(法輪大法)가 장윈징을 개변시켰다. 고덕대법 파룬따파는 장윈징을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고 도덕이 고상한 사람이 되도록 가르쳤다. 파룬궁 수련 후, 장윈징은 직장에서 착실하게 근무했고 이익을 다투지 않았다. 그가 철도 노선을 순찰할 때 조금도 빈틈이 없었다. 주변 사람의 부재 여부를 떠나 그는 모두 진지하고 열심히 철도 노선을 순찰하면서 노고를 마다하지 않았으며 본직을 잘 수행했다. 예전에 직장에서 규정을 위반하는 사람들을 조사하면 매번 거의 모두 그가 해당됐었지만 파룬궁을 수련한 후 다시는 규정 위반 명단에 그가 없었다. 그의 변화를 본 동료들은 불가사의하게 생각했지만 이후 그가 파룬궁을 수련해 비로소 이처럼 큰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알았다.
2. 도덕과 양심을 지킨 이유로 납치돼
1999년 7월 20일 중국공산당(중공) 장쩌민 깡패 집단은 흑백과 선악을 전도해 광적으로 파룬궁을 탄압했다. 피비린내 속에서 전국적으로 시민들이 전부 거짓말에 중독된 가운데 장윈징은 개인의 안위와 이익을 제쳐두고 1999년 7월 23일,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가 천안문 광장에서 납치됐다. 그 후, 허강 주재 사무소로 납치됐다. 허강으로 납치돼 가던 기차에서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선량한 장윈징은 수갑을 차고 있었다. 이것은 선량한 사람의 인격을 모욕하는 것이다. 허강시 싱산(興山)구의 한 부구역장과 링베이(嶺北) 파출소 부소장 및 장윈징의 직장이 박해에 참여했다. 당시 그는 박해를 받아 구금된 지 15일이 지나서야 석방됐다.
파룬궁 수련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장윈징은 두 번째로 납치돼 링베이 파출소에 구금됐다. 그는 제2구치소로 납치됐고 보증서를 쓰라고 강요받았지만 거절했다. 파출소 측은 강제로 차가운 얼음장 같은 시멘트 바닥에 그를 앉힌 뒤, 9일간 밤잠을 못 자게 했다. 인성을 상실한 박해 속에서 장윈징은 여전히 마음속에 선념을 품고 ‘진선인(真·善·忍)’의 표준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됐다. 그의 선념과 선행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존중받았다. 이후 파출소는 그에게 죄수들을 관리하게 했는데 그는 새로운 죄수가 감방으로 들어오면 위세를 부리거나 괴롭히지 않아 감방은 평화롭고 우호적인 분위기로 바뀌었다.
3. 불법 노동교양 박해
오래지 않아 장윈징은 허강시 노동교양소로 납치돼 2년 박해를 받았다. 겨울철에 언 배춧국을 먹었고 노역을 하면서 나무를 들고 건축 현장에 가서 일해야 했다. 노역하지 않으면 하루에 두 끼니밖에 주지 않았으며 노역을 해야만 세 끼를 주었다. 연공하지 못하게 했고 전향하지 않으면 죄수에 의해 시달림을 겪어야 했다. 그는 강제로 바닥에 엎드려 사지가 죄수에 의해 끌어당겨졌고, 목재로 매를 맞았으며, 둔부가 맞아서 퍼렇게 멍이 들었다. 혈압 이상이 나타나 고혈압 증세가 나타났다. 자오펑후이(趙豐會), 자오시쩡(趙喜增), 양융잉(楊永英), 궁구이둥(宮貴東), 쑨스훙(孫士洪) 등 파룬궁수련생들도 동시에 매를 맞았다.
1년 후, 장윈징이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몇 개월을 앞두고 그는 또 쑤이화(綏化)로 납치돼 노동교양 박해를 받았으며 매일 세뇌를 받았다. 법원, 검찰원 관계자는 파룬궁수련생으로 사칭해 노동교양을 하면서 기만했고 그들에 대해 정신적인 세뇌를 진행했다. 장윈징은 거듭 2개월간의 불법 연장된 형기를 마치고서야 집으로 돌려보내졌다. 집으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돼 70세가 다 되어가던 아버지가 걱정과 공포로 인해 생긴 중풍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박해받던 시기에 어머니도 자주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 하룻밤 지냈는데 거우난(溝南) 파출소 소장 장(張)씨가 싱산구 진(金) 구역장의 지시로 또 그를 구금해 15일간 납치했다. 단식으로 위독해지자 그를 다시 풀어줬다.
4. 잔혹한 고문도 선을 향하는 사람의 마음을 가로막지 못하다
2002년 3월 허강시 공안국, 싱산분국 경찰관이 바오취안링의 장윈징 직장에 와서 그를 또 납치했고 도중에 그는 도망쳤다. 그는 몸 둘 곳 없이 반년간 떠돌아다니다가 9월, 허강시 싱산분국 경찰과 국보대대에 의해 납치됐다. 그중 한 여성이 두목이었다. 그를 싱산분국으로 납치해 밧줄로 꽁꽁 묶은 뒤 팔을 뒤로 묶고 바닥에 엎드려 있도록 누른 다음 발길질로 때렸고 구두로 걷어찼는데 거의 숨이 멎을 지경이 돼서야 구타를 멈췄다.
장윈징은 수갑을 차고 허강시 제1구치소로 납치됐고 제1구치소 회의실에서 또 잔인무도한 박해를 받았다. 그와 류위잉(劉玉英), 한잉(韓英) 등 사람들은 격리되었고 한 방에 한 사람씩 들어가 박해를 받았다. 제1구치소 회의실에서 경찰관은 장윈징에게 족쇄, 막대기, 수갑을 채워 박해했다.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할 때 형구를 차고 있던 장윈징을 매달아 놓아 수갑이 살을 파고들 정도로 고통은 참기 어려웠다.
장윈징은 쇠막대를 차는 박해를 6일 밤낮으로 받은 후에야 감방으로 들여보내졌다. 이 기간에 매일 시달림으로 그는 심신이 파괴됐고 경찰은 또 주먹으로 그의 늑골을 겨냥해 괴롭혔는데, 가려움과 고통을 동반해 일분일초가 극심하게 고통스러웠다. 장윈징은 족쇄를 차고 최소 3개월을 박해당했고 그가 단식으로 항의한 지 7일이 지나서야 족쇄를 풀어줬다. 단식 기간 야만적으로 옥수수죽 안에 소금을 진하게 넣은 음식을 강제로 주입해 그의 위장이 불에 타는듯했다.
그와 함께 같은 감방에 수감된 많은 죄수는 모두 파룬따파가 좋다는 것을 알았다. 한 죄수가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외치자 다른 죄수들도 함께 따라서 외쳤다. 감방에서 어떤 죄수는 파룬궁 수련을 시작하기도 했다. 강도 행위로 들어온 한 죄수는 연공으로 인해 1개월간 쇠막대를 차게 됐고 그중 보름 동안은 그의 손이 발에 채워져 밤낮 시달렸다. 그는 “저는 예전에 나쁜 사람으로 죄를 범했어요. 지금 좋은 것을 배웠는데 왜 저를 박해하죠?”라고 말했다. 경찰은 사회에 강도와 범인이 더 늘어나는 한이 있더라도 그가 삿된 것을 바로 고쳐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 죄수는 밤낮 얼음장 같은 바닥에 강제로 앉아있었지만 연공을 포기하지 않아 또 15일 박해가 연장됐다. 이렇게 그를 괴롭혀도 그는 더 이상 나쁜 사람이 되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다. 한 사람이 인생의 참뜻을 깨닫게 됐는데 어떻게 선량한 선택을 포기할 수 있겠는가?!
5. 13년의 억울한 옥살이
2003년 초, 허강시 싱산구 공안분국, 검찰원, 법원이 결탁해 장윈징에게 13년 형을 불법 선고했다. 그해 9월, 장윈징은 샹란(香蘭) 합숙팀으로 납치돼 박해를 받았다. 아침부터 밤까지 고된 일을 했고 노역으로 운동장을 만들게 했다. 배불리 밥을 먹지 못하고 한 끼에 찐빵 한 개, 장아찌 한 개, 반찬과 채소 잎마저 없이 소금국 한 그릇만 먹을 수 있었다.
그 후, 그는 무단장(牡丹江) 감옥으로 납치됐다. 감옥에서 세뇌 박해와 녹화를 진행했다. 그는 협력하지 않았고 신앙을 포기하지 않았다. 13년간 그는 계속 노역을 거절했고 숫자를 보고하지 않았으며 죄수 명찰을 달지 않았다. 그는 네 차례 협소한 방에 갇혔는데 방은 매우 좁고 음산하고 어두웠으며 습하고 화장실과 같이 있어 공기가 탁하고 이불이 없었다. 그 방에 갇힌 사람들은 등을 맞대고 온기를 얻어야 했다. 장윈징의 두 손은 두 번이나 족쇄에 함께 채워졌다. 바닥에 다시 고정된 상태로 허리를 펼 수 없이 구부린 채 쪼그리고 앉아 밤낮으로 잔혹한 고문에 시달리면서 고통을 받았다. 매번 협소한 방에 갇히면 모두 15일간 박해를 받았다.
한 번씩 박해를 받을 때마다 가족에게 끝없는 시련을 가져다줬다. 아내는 7살 아들을 데리고 힘겨운 나날을 보내면서 수많은 고통을 감당해야 했다. 아이는 어려서부터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그해 그는 35세였고 인생에서 가장 좋은 시절을 맞이하던 때에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된다는 이유로 독재정권 장쩌민 깡패 집단과 중공에 의해 투옥됐고 잔인무도한 비인간적인 시달림을 겪어야 했다.
2015년 7월, 장윈징은 마침내 13년 감옥살이 박해를 마쳤다. 그러나 허강시 싱산구 610두목, 싱산분국의 경찰관은 장윈징의 남동생과 여동생을 속여 서명하게 해 장윈징을 감옥에서 허강시 사악한 검은 감옥인 세뇌반으로 납치해 박해했다. 매일 사실을 왜곡하는 영상 시청을 강요했고 이른바 사상보고서를 쓰고 거짓말을 하도록 강요했다. 장쯔룽(張子龍)은 전기봉으로 그의 얼굴, 흉부를 충격했고 장윈징의 얼굴은 전기 충격으로 부었다. 박해로 한 달 반 시달리고 나서야 소굴을 벗어날 수 있었다.
6. 맺음말
2020년 12월 11일부터 13일까지 장윈징은 헤이룽장성 허강시 공안국 공농분국 훙치로 파출소에 납치됐다. 경찰은 그에게 수갑을 채워 강제로 혈액을 채취해 항목별 신체검사를 한 뒤, 허강시 구치소로 보내 불법 수감했다. 장윈징의 집이 불법 가산몰수를 당하면서 냄비와 같은 개인 물품을 빼앗겼으나 경찰관은 큰소리를 치면서 형을 선고해 그를 모함했다.
장윈징은 선을 향하는 마음으로 더욱 많은 사람이 대역병이 왔을 때 평안하게 시련을 지나갈 수 있게 하려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다. 선량한 좋은 사람이 한 차례씩 납치돼 박해를 당한 것은 중공의 폭정과 사악함을 더욱 뚜렷이 부각시켰다. 여기서 선량한 국가와 정의로운 인사들께, 선량한 좋은 사람 장윈징이 조속히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도움의 손길을 바란다!
허강시 공안국장: 쉬롄빈(徐連斌)18404680001
허강시 공안국 국보대대 부책임자: 장푸성(張福生)
허강시 공안국 공농분국 훙치로 파출소 전화번호: 0468-3409110
허강시 공안국 공농분국 훙치로 파출소 소장: 장하오위안(張浩源) 18646810417
원문발표: 2021년 1월 10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1/10/41834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