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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에서 대법수련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보다

글/ 미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사부님의 ‘전법륜’에서 우리는 알고 있는데 우리는 군체(群體) 관계 속에서 사심(私心) 또는 집착하는 마음이 생겨났기 때문에 우리는 속인사회 중으로 떨어져왔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날 돌아가고자 한다면 복잡한 사람무리(人群)와 군체적인 사회환경을 이탈할 수 없으며 오직 이렇게 해야만 돌아감이 비로소 빠를 수 있다. 지금의 미국은 바로 미국과 세계에 이런 한차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왜냐하면 대통령 선거 때문에 전체 사회가 하나의 무형의 힘에 휘저어져 사람들의 마음이 모두 끓어오르고 있거나 심지어 사회 최하층민마저 다 그 속에 참여하고 있다. 표면적으로 평온하고 공평하며 평화롭게 보이던 예전의 사회 환경이 최근 두 달 사이 가라앉았던 찌꺼기가 단번에 표면으로 떠오르면서 양극 분화 및 그 중간의 무수한 중간지대를 형성하면서 사회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층을 나누고 위치를 정하며, 사람마다 곳곳에서 체로 걸러지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미국 대선은 마치 가장 원시적으로 사금을 채취하는 과정의 한 동작과 같다. 그것은 바로 맹렬하게 반복적으로 체를 흔들어, 흐르는 물로 여러 차례 광물을 세척하는데 최후까지 떠밀려가지 않고 남는 것이 비교적 밀도가 큰 금광석(金鑛石)이다. 현재 세상의 중생 역시 한 번 한 번 체로 걸러지고 있으며 남을 수 있는 것이야말로 바로 금광석이다. 떠밀려나가는 것은 모두 도태되는 진흙과 모래이다.

그렇다면 체 안에 들어 있는 금광석과 모래가 지내는 게 아무리 힘들지라도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어떻게 그들을 구별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지내기가 힘든 것이다. 왜냐하면 사회의 존재는 사람에게 잘 지내라고 준 것이 아니며 사람에게 정화하고 승화할 기회를 준 것으로 인류사회 속에서 사람에게 준 금인지 아닌지 펼쳐 보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미국 대선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 심지어 일부 수련자들을 붙잡고 있는데 이는 또 수련자가 자신의 부족을 볼 수 있는 하나의 과정이다.

주지하다시피 흑연과 다이아몬드는 같은 원소로 구성된 동소체(同素體)다. 비록 모두 탄소원자로 이루어져 있지만 미시적인 원자의 배열순서가 다르기 때문에 우리 이 공간에 나타나는 성질이 천양지차다. 흑연은 아주 무르지만 다이아몬드는 가장 단단하다. 그러나 흑연을 다이아몬드로 만들려면 원자배열 순서를 바꾸는 고통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조건은 섭씨 2000도 이상의 고온과 약 10만 기압 이상의 고압이 있어야 한다. 고온・고압 하에서만 비로소 물질의 성질을 개변할 수 있는 것이다.

같은 이치로 인류사회의 고온・고압 하에서는 또 수련인의 품행을 단련할 수 있다. 수많은 수련인들이 이 과정에서 일상적인 온도와 평상적인 시기에는 볼 수 없었던 자신의 집착심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고온고압 하의 비평화적인 상태에서는 오히려 자신을 더 잘 반성할 수 있고 불법(佛法)에 대한 확고함과 확고하게 지키는 정도를 고험할 수 있다. 견정할 수 있는 사람은 유력하게 자신을 개변할 수 있고, 제고해 올라갈 수 있으며, 불법을 확고하게 믿는 새로운 높이까지 도달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미국 대선은 수련자가 자신을 제고할 가장 좋은 기회가 아닌가? 아울러 이런 기회는 절대 속세를 피하는 수행자나 사회실천 속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이 불법(佛法)을 실천하는 중에서 만날 수 없는 것이다.

한 대법수련자로서 나는 줄곧 조용히 발생한 이 일체를 느끼면서 수련의 본질을 깨달았고, 불법(佛法)의 현묘함을 느끼면서 대법이 세간에서 사람을 구하고 제도하는 기적을 목격했다. 우리는 현실을 이탈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현실 속으로 빠져 들어갈 수도 없다. 또 사악을 좌시하거나 상관하지 않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또 일 자체에 빠질 수도 없다. 기존의 규범을 내려놓아야 하지만 또 낡은 틀에 떨어져서도 안 된다. 어떻게 법을 실천하고 세인을 추동하고 이끌어 세인들이 중공사당을 똑똑히 알고 공산사령의 본질을 간파하도록 돕는 동시에 사람들의 선념(善念)을 일으키고 양지(良知)를 불러와 최후에 대법을 인정하고 이를 통해 구도 받을 수 있게 할 것인가, 이것이 바로 내가 줄곧 사고해온 문제의 줄거리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나는 내심이 평온해졌고 대법에 대한 신심으로 충만해졌다. 요즘 사부님의 시 ‘대법은 좋다(大法好)’가 줄곧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다.

“法輪大法(파룬따파)는 좋아
법광이 대궁을 비추네
정법의 홍세(洪勢) 지나고 나면
비로소 끝없이 묘함을 알리라

法輪大法(파룬따파)는 좋아
점차 세인의 도(世人道)로 들어가네
중생들아 조급해 말라
신불은 이미 웃고 있도다”[1]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 ‘홍음 2-대법은 좋다’

 

원문발표: 2021년 1월 1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1/1/12/41848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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