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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이 있을수록 굳건히 믿는다

우리 마음이 있는 곳이 우리의 위치이다

글/ 중국 하얼빈 대법제자

[밍후이왕] 의문이 있으면 지혜로 그것을 타파한다. 더욱 큰 의문이 있으면 더욱 큰 지혜로 그것을 타파한다……. 깨뜨리기 전에는 그 속에 빠져있는데, 대법제자는 이렇게 할 필요가 없다. 나는 의문이 생길수록 더욱 믿고, 더 큰 의문이 있으면 더욱 믿는다. 이는 대법이 육성한 생명의 본성이며 법 중의 입자이다. 대법에 대한 신념은 대단히 견고해 파괴할 수 없다.

법의 입자가 법에 대해 질의를 할 수 있겠는가? 그럴 리가 없다. 법에 대해 질의하는 것은 법을 이탈한 것이고 그것은 법의 입자가 아니다. 따라서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그저 표상일 뿐이다. 미혹 속의 일종 표상이다. 이해되는지 되지 않는지 하는 표상에 빠지지 말고 마음을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설사 이해한다 해도 각종 층차에서의 이해이며 근본이 아니다. 근본적인 이해는 바로 믿음이다! 최고의 지혜는 법에 대한 견정한 믿음이다!

나는 미국 대선 중에 텍사스주 연방 법원 소송에서 꼭 승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각되자 실망이 컸다. 요새 발정념도 잘했고 전 세계에서 발정념을 하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대법관이 보수층인데 왜 그렇게 됐지?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단 말인가?…… 사실 이런저런 의문이 나타나면 이미 법에 대한 정념에 누락이 생긴 것이다. 이것은 버려야 하는데, 어떻게 버려야 할까? 어떻게 해야 대단히 견고해서 파괴할 수 없을까? 나는 한 가지 이치를 깨달았다. 나를 동요하는 것일수록, 대법을 믿고 그것을 제거해야 한다. 표면적인 이치로는, 흔들릴수록 마의 교란과 검증이 큰 것을 설명하므로, 법을 더 굳게 믿어야 한다. 또 한 층 함의는, 우리는 대법이 만든 생명이기에 우리의 뿌리는 대법에 있고, 따라서 굳게 믿고 근본을 지켜야 한다.

매 한 차례 정(正)과 사(邪)의 전투에서 결과가 좋은 쪽으로 나오면 확신이 생기고 사부님을 확고히 믿는다. 결과가 좋지 않은 쪽으로 나왔다면 더욱 확신을 해야 한다. 법에 따라 자신을 찾고 자신을 정화하는 동시에 더욱더 사부님을 확고히 믿어야 한다. 이렇게 매 한 차례 정사(正邪)의 검증에서 자신이 더욱더 확고히 믿으면 사부님과 법에 더욱 가까워진다.

이 인식은 내 마음속의 견정한 믿음에서 온 것이다.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주셨고, 사부님께서는 모든 것을 감당하신다. 따라서 모든 것이 사부님께 귀속되며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러므로 생명으로서 가장 가치 있는 표현이란, 대법과 사부님께 드리겠다고 하는 것이다. 어려움에 처할수록, 의문이 생길수록 모든 사상 활동을 멈추고 신사신법(信師信法)해야 한다. 이는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것이며, 할 수 있다.

사람의 사유는 일반적으로 받고 확인하며 이로운 것이 있으면 비로소 믿는다. 또는, 믿었더니 그다음에 받았고 확인됐으며 혜택도 보게 되면 깊이 믿는다. 그렇다면, 받지 못하고 확인도 되지 않으며 이득도 보지 못했다면 믿을까? 심지어 받지 못하고 손해를 보며 내가 바라던 것이 아닐 때 믿을 수 있을까?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까? 여전히 굳게 믿을 수 있을까?

대법제자는 대법을 견정하게 믿는다. 그러나 수련 과정에서 구체적인 표현에 있어 의문을 품는 경우가 많은데 이 때문에 시련에 빠진다. 대법제자는 매번 사부님께서 너무 많이 감당하시게 해서는 안 된다. 사부님께서 기뻐하시고 위안이 되시게 해야 한다.

모든 것은 표상이며 대법에 대한 견정한 믿음만이 근본이다. 수련 과정은 대법에 대해 끊임없이 더욱 견정히 믿는 과정이며, 부족함이 없이 대단히 견고해 파괴할 수 없을 때까지다.

병업 문제, 정법(正法) 시간의 문제, 또 많고도 많은 문제를 우리는 수련 중에서 자신의 오성(悟性), 지혜, 심성에 근거하며 다소 의문이 있을 수 있다. 너무 이해되지 않을 때, 먼저 내려놓아야 한다. 그러나 이 의문이 늘 나타나고 어떤 것은 나타나지 않았어도 은폐된 것이지 없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모두 대법을 믿는 중에서 부족한 점이다. 시간이 길어져 많이 쌓이면 여러 문제나 교란에 맞닥뜨리게 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자기를 내려놓고 자기 이해를 내려놓으며 자기 인식을 내려놓아야 한다. 개인 깨달음이건 인식이건 모두 법에 대한 견정한 믿음을 위한 것이다. 인식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할 때 그것을 내려놓으며 그것에 방해받지 말고 뛰쳐나오자. 나는 의문이 있을수록 더욱 믿는다.

수련 과정에서 일부 문제를 이해할 수 없거나 의문이 나타날 때 자기의 각종 생각이 중요한 것인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오직 마음에 법이 있고 사부님이 있는 이것이야말로 가장 진귀하다. 우리는 대법제자이기에 우리 마음에는 자아가 없고 오직 사부님과 법이 있지 않은가. 우리 생명의 일체는 사부님께서 주신 것이고 모든 것은 또 사부님께서 감당하신 것이기에 마음은 오직 사부님께 가 있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법의 입자가 되도록 하셨기에 우리 마음은 오직 법에 있다.

혼란스러울수록 믿고 의문이 들수록 더욱 믿는다. 소침할수록 믿고 뜻대로 되지 않을수록 더욱 믿는다…… 우리는 대법제자이기에 마음은 오직 법, 거기에 있다. 혼란, 의문, 의기소침, 뜻대로 되지 않는 곳에는 대법제자의 마음이 머물지 않는다…… 우주 중 생명 고유의 사유 틀에서 벗어나, 최후시각에 매 대법제자는 완전히 이 능력을 갖추었다.

사실 우리 마음이 어디에 있으면 우리 위치가 거기에 있는 것이다. 사부님께선 이미 일찍이 우리를 가장 높은 위치에 올려놓으셨다. 우리는 자신을 아래로 내려오게 할 수 없다. 의문이 있을수록 더 믿고 마음을 시종일관 대법에 놓고 사부님께 놓자!

정말로 해내면 모든 혼돈, 교란은 스스로 사라진다!

 

원문발표: 2020년 12월 2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0/12/23/41689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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