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1999년 7.20, 사악한 공산당이 파룬궁(法輪功)을 박해한 이래, 저는 여러 번이나 불법적으로 수감되고 노동교양을 당했으며 검은 소굴에서 10여 년을 보냈습니다. 제가 대법에 견정하고 확고한 신념이 있었던 것은 모두 사부님의 보호와 대법이 부여해준 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환경에서든지 막론하고 저는 모두 사존의 요구에 따라 대법제자의 세 가지 일을 잘하면서 진상을 알려 세인을 구하고 자신의 사전 서약을 실행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진정한 자비의 힘은 일체 바르지 못한 요소를 해체시킬 수 있다. 당신이 그에게 이야기할 때 에너지가 밖으로 방출되어, 그런 사악한 것을 해체시킬 수 있는데 다른 공간의 사악은 감히 접근하지 못하고 사람을 통제하지 못한다.”[1] 여기서 제가 교류하려는 것은 사악한 공산당의 검은 마굴에서 경찰에게 진상을 알린 체험입니다.
1. 거짓말에 독해된 생명을 자비롭게 마주하다
중국공산당(이하 중공)의 구치소, 노동교양소, 감옥의 어둠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고취한 것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정치 기관’이며 이야기한 것은 적에 대해 ‘혹독한 겨울처럼 잔혹하고 무자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찰관들은 모두 자신을 ‘정부’로 여기면서 경찰의 말을 듣는 것을 ‘정부’의 말을 듣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경찰에게 대드는 것은 ‘정부’에 대드는 것이라고 여기므로 수감자를 함부로 때리고 욕하며 처벌하는 것이 다반사였습니다. 일부 감옥 경찰 배후의 사악한 요소가 조종하여 파룬궁 수련생에 대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적대시하게 하고, 파룬궁 수련생의 일부 행동(연공, 타인에게 진상 알리기 등)을 전부 ‘정부’에 대항하는 것으로 간주하게 하여 쉽게 욕하고 심한 경우 잔혹한 고문으로 괴롭힙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사악한 박해를 저지하면서도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진상을 알려 세인을 구하려면 대법제자는 더욱 강한 정념으로 수련의 길을 올바르게 걸어야 하는 것이 요구됩니다. 당신을 박해하는 경찰관을 마주하여 그런 구할 수 있는 생명을 구할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대법제자에게는 확실히 시험이며 박대하고 자비로운 흉금이 있어야 합니다.
2001년 저는 납치되어 구치소에 갇혔습니다. 노동교양을 당하게 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단식으로 사악한 박해를 배척하기 시작했습니다. 단식한 지 막 이틀이 되었을 때, 공안기관에서 저를 노동교양소로 보냈습니다. 노동교양소 병원에서 신체검사를 마친 뒤, 경찰관은 재차 제게 “잘 생각(전향 여부)해봤어?”라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노동교양소의 경찰관에게 넘기고는 활갯짓하며 성큼성큼 가버렸습니다. 그때, 저는 저를 박해한 공안 경찰관에 대해 원망과 미움이 가득했습니다.
노동교양소에서는 제가 단식하는 것을 알고 노동교양소의 소장부터 각 과와 집중교육 개조팀(集訓隊)에 이르기까지 10여 명의 경찰관이 한 회의실에서 저를 에워싸고 ‘공작’을 하고 있었습니다. 중공에 기만당한 경찰관들이 중공을 도와 나쁜 일을 하면서도 자신이 사람을 구하고 있다고 여기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그들의 행위가 가소롭고 가련하게 느껴졌습니다. 갑자기 제 마음속에서 그들에 대한 연민과 자비로운 마음이 우러나와 저는 당초에 단식으로 박해를 배척하려던 생각을 바꾸어 이 환경과 기회를 이용해 진상을 알려 인연이 있는 사람을 구하려고 했습니다. 저는 원망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닦아 없애고 평온한 마음 상태로 파룬궁을 수련한 뒤의 우리 일가족의 심신 변화를 설명했습니다. ‘진선인(真·善·忍)’을 신앙하며 좋은 사람이 되었지만, 직위가 해제됐고 경찰관에게 미행을 당했으며, 거주를 감시당했고 직장에서 불법으로 구금됐으며, 지금은 단지 파룬궁 수련을 견지한다고 밝혔다는 이유로 또 노동교양을 받는 무고한 박해를 당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그들에게 “제가 단식하는 것은 파룬궁에 대한 장쩌민(江澤民)의 탄압 박해를 겨냥한 것이고 공안국보 경찰관의 불법적인 납치를 겨냥한 것입니다. 지금 저는 노동교양소로 납치됐습니다. 저는 단식을 멈출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가 타협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여러분이 파룬궁 수련생에게 더는 죄를 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라고 했습니다. 한 시간여의 진상 알리기를 통해 저는 많은 사람이 동정하는 마음을 드러낸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어떤 사람은 눈물을 머금고 있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한 경찰관은 “저는 당신이 우리와 정책 제정자를 분리한 것에 찬성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고 그들은 파룬궁에 대한 저의 확고한 신념을 알았기 때문에 저에 대해 무슨 ‘세뇌 전향’을 지속하지 않고 서둘러 저를 혼자 농사일을 하는 대대로 보냈습니다. 대대에 가서 경찰관은 저를 전향시키려 하지 않았고, 다만 두 명의 바오자(包夾, 수감자로 이뤄진 감시원)를 보내 24시간 감시하게 했습니다. 나중에 바오자는 제가 알린 진상을 들은 후 저와의 좋은 관계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제 일을 상관하지 않았고, 저는 무엇을 해야 하면 여전히 그것을 했습니다. 아마 경찰관이 저의 영향을 받을까 봐 다른 경찰관이 저와 접촉하지 못하도록 한 것 같았습니다.
제가 있던 대대의 부대장은 제대군인으로 피부가 검고 흉악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그가 중대장을 맡을 때, 노동교양을 받는 사람에게 매우 흉악하게 대했고 풀을 뽑을 때 낫과 호미 대신 손으로 뽑게 했습니다. 그는 대회에서, 지금 토종닭을 사기는 어렵지만, 노동교양을 받는 사람 한 명이 죽어 나가는 일은 대수가 아니며, 몇 위안(한화 몇백 원)에 토기를 사서 보내버릴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말했습니다. 그는 부대장으로 진급한 뒤 노동교양을 받는 사람은 물론 경찰관까지 때렸습니다. 어느 날, 모두가 처마 밑에서 낮잠을 자던 중, 그가 갑자기 사합원(四合院)으로 들어왔다가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것을 보고는 모두를 불러 모아 놓고 훈시를 했습니다. 한 사람이 잠깐 웃음을 터뜨리자 그는 가는 대나무 막대기로 후려치면서 발길질을 가했고, 때리면서 욕했습니다. 그는 제가 사람들 무리 속에서 그를 보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한참을 후려치던 그는 일이 있다고 하고는 노발대발하며 가버렸습니다. 잠시 후, 감옥 경찰대장이 와서 사람들을 흩어지게 했습니다. 저는 “왜 벌씌우고 사람을 때리기까지 하나요? 어찌 됐던 이유가 있어야 하지 않나요?”라고 했습니다. 저녁 식사 후, 부대장이 잔뜩 취한 모습으로 와서 아침에 벌썼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먼저 제게 점심때 일어났던 일에 대한 견해를 물었습니다. 그의 몸에서는 온통 술 냄새가 풍겨서 저는 “저는 직장에 출근하면서 술을 마시면 다른 사람들과 공적인 일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술을 마시면 이성을 흐리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난처해 하며 “그러면 당신과 이야기하면 괜찮을까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단독으로 이야기하면 괜찮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른 사람들을 가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함께 두 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기쁘게 이야기하는 기회를 빌려 저는 그가 대회에서 “토종닭은 사기 어려워도 노동교양을 받는 사람이 죽어 나가는 것은 대수가 아니다.”라고 말했던 일을 짚어냈습니다. 저는 “사람의 생명을 어떻게 닭 한 마리의 목숨과 한데 섞어 논할 수 있을까요? 사람은 만물의 영장입니다. 지금 그들은 비록 마약 흡입과 도박으로 갇혀 있지만, 오늘날 이런 현상의 근원은 누구일까요? 그것이 바로 현재 집권하고 있는 중공 아닌가요? 중공은 수십 년간 집권하면서 ‘무신론’과 ‘투쟁 철학’을 고취하여 국가를 이 모양으로 만들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중국인과 중국 가정이 재난을 당했습니까? 우리 일가족은 바로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었다는 이유로 정부와는 대립 면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국가에 아직 희망이 있을까요?”라고 했습니다.
이번 대화 후, 그의 언행은 다소 신중해졌습니다. 그는 제가 노동에 몇 차례 저항하고 단식할 때 생활의 측면에서 제게 관심을 기울이는 태도를 표했습니다. 예를 들면, 저는 태양열 목욕탕에 가서 목욕할 수 있었고(노동교양을 받는 사람은 음력 섣달그믐날에 한 번 씻는 것 외에 1년 사계절 동안 차가운 물로 냉수욕만 할 수 있음) 장기를 둘 수 있었으며(명절 외에 평소에는 장기를 둘 수 없음),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한 여성 경찰관이 저와 이야기를 나눌 때 “노동교양을 받는 사람들은 모두 부대장을 두려워해요. 그를 보면 쥐가 고양이를 만난 것 같아요. 게다가 우리 여성 경찰관마저도 다 그를 두려워하죠. 하지만 저는 그가 당신을 보면 정색하던 얼굴이 바로 웃는 얼굴로 바뀌는 것을 발견했어요. 여기서 당신만이 그를 무서워하지 않아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는 흉악해요.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 그를 두려워하고 미워하죠. 저는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수련하는 사람이라서 어떤 일을 하든지 타인을 고려해요. 게다가 나쁜 일을 하지도 않아요. 제가 어떻게 그를 두려워하겠어요? 더욱이 그를 미워하지도 않아요. 오히려 그를 연민하죠. 그가 어떻게 까닭 없이 저를 미워할 수 있겠어요? 그가 저를 보고 바로 웃는 얼굴로 바뀌는 것은 제가 ‘진선인(真·善·忍)’을 수련하는 연공인이기 때문이에요”라고 했습니다.
2. 속인의 집착에 따라 진상을 알리다
사부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지(理智)로 법을 실증하고, 지혜로 진상(眞相)을 똑바로 알리며, 자비로 홍법(洪法)하고 세인을 구도하는, 이것이 바로 각자(覺者)의 위덕을 세우는 것이다.”[2]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모두 대법을 위해 온 것이며, 이번 차례 대법제자에 대한 사악한 박해 속에서 박해에 참여한 경찰관 대부분은 기만당해 자신의 밥그릇을 위해 나쁜 일을 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집행자와 중공을 구별해야 합니다. 사람의 일면과 배후의 사악한 요소를 구별해야만 비로소 그들의 선한 일면을 불러 일깨울 수 있습니다. 옛말에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는 말이 있듯이 사람은 곧 정을 위해 살고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시간이 오래되면 서로 많이 접촉하게 되므로 정이 생겨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입니다. 물론 우리 대법제자는 정에 의해 이끌리지 말아야 하지만, 속인의 정을 이용해 진상을 알리고 그의 선념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2005년, 저는 불법으로 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감옥 경찰대장은 저를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제게 몇 가지를 요구했습니다. 저는 “제가 파룬궁을 수련하는 것에는 죄가 없습니다. 저는 감옥살이를 하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저는 어떠한 약속과 보증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감옥 경찰대장이 “당신이 감옥살이하러 온 것이 아니면 무엇을 하러 왔단 말인가?”라고 하자 저는 “저는 ‘610’과 국보 경찰에게 납치당하여 갇힌 것입니다. 제가 이곳에 온 것은 여러분에게 파룬궁의 진상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후 그는 저를 관리하던 감옥 경찰에게 소개할 때에도 “그는 감옥살이하려고 들어온 게 아니에요”라고 했습니다. 아마 저의 이 일념으로 한 창고로 배치된 것 같았습니다. 저를 지켜보던 두 ‘바오자’는 모두 동갑내기여서 화목하게 지냈고 서로를 존중했습니다. 그중 한 바오자는 제가 그를 좀 도와주었더니 제게 더욱 예의 바르게 대했습니다. 그는 제게 커다란 탁자를 설치해줬고, 자신의 문방사우를 제게 사용하게 했습니다. 한 감옥 경찰은 또 제게 일부 선지[宣紙, 안후이(安徽)성의 쉬안청(宣城)시에서 나는 서화용 고급 종이]와 각종 종이를 가져다줘서 정말 없는 것이 없었습니다.
창고에서 몇 년째 일해 온 한 노동자가 공무원 시험에 통과하지 못해 줄곧 경찰관으로 전환하지 못했고 감정이 굉장히 좋지 않아 오늘날의 중공 독재정권 체제에 불만이 많았습니다. 그가 당한 불공정한 대우와 부딪힌 가정의 갈등으로 저는 그를 매우 동정했습니다. 그가 부딪힌 갈등에 대해 저는 ‘인과’관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 관계로 그를 일깨워 주어 그가 많은 번뇌를 없앨 수 있게 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파룬궁을 소개했고 그는 파룬궁의 ‘진선인(真·善·忍)’ 법리를 아주 잘 받아들였으며 파룬궁을 몹시 동정하고 지지했습니다. 그는 또 자발적으로 저를 도와 외부로부터 사부님의 ‘전법륜(轉法輪)’, 발표되었던 모든 경문과 모든 설법의 MP4, 사부님의 각지설법 합본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전법륜(轉法輪)’과 사부님의 설법을 볼 수 있게 되어서 저는 비할 바 없이 행복했습니다. 어떠한 언어로도 사존의 홍대한 은혜에 감사드릴 방법이 없었습니다. 저 역시 우리가 제때 자신을 수련인으로 여기고 일체 사람의 마음을 내려놓기만 하면 사부님께서는 무엇이든 다 제자를 위해 해주신다는 것을 체득했습니다. 저는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법을 보고 필사하며 외울 시간이 더욱더 많아졌습니다. 저는 법을 외웠으며 ‘전법륜(轉法輪)’을 한 번 필사했고 ‘홍음’과 ‘홍음2’를 여러 번이나 필사했습니다.
무릇 창고에서 인연이 있는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감옥 경찰이든 징역을 사는 사람이든 외부 협력 관계자든 막론하고 저는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습니다.
3. 구치소에서 ‘어떻게 사람이 될 것인가?’에 대한 강의를 요청받다
2012년, 저는 다시 납치당해 구치소에 갇혔습니다. 이튿날, 주무 경찰관이 저를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 저는 그에게 우리 일가족이 파룬궁을 수련한 후의 심신 변화와 신앙을 확고하게 견지한다는 이유로 일가족이 박해를 당한(아내와 딸도 저와 함께 구치소에 갇힘) 이야기를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나는 당신이 구치소에 갇혀 있는 기간 동안 소송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보장할 뿐이다. 나는 당신의 신앙은 간섭하지 않겠다. 당신은 요구할 것이 있으면 해도 된다.”라고 했습니다. 제가 연공과 발정념을 하며, 구금된 사람에게 어떻게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설명하겠다고 하였고 그는 이 요구에 모두 동의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감옥 당직 관계자(옥졸)에게 설명하여 당부하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여러 차례 과도소(過渡所, 구치소에 들어가면 먼저 과도소에 가서 이른바 ‘규칙’을 배워야 함), 경찰, 의사들도 골머리를 앓던, 구금된 사람 한 명이 있었습니다. 그는 ‘히스테리’를 앓고 있어 걸핏하면 사람들과 싸움을 하여 여러 번이나 구금돼 족쇄를 차고 경찰관에게 맞는 등 거의 매일 사고를 치다시피 했습니다. 주무 경찰관은 저를 불러서 “당신에게 저 사람이 더는 소란을 피우지 않게 할 방법이 있어? 그를 불러와 파룬궁을 수련하게 해도 돼”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당신의 그 한마디 말 때문에 틀림없이 될 거예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의 동의를 거쳐서 그에게 사부님의 ‘홍음’을 외우게 했습니다. 그에게 “대법이 몸을 떠나지 않으니 마음에 真善忍(쩐싼런) 있네 세간의 대나한(大羅漢) 신도 귀신도 몹시 두려워하네”[3]를 외우게 하고, 다섯 가지 공법을 가르쳤을 뿐인데도 그는 그날부터 더는 소란을 피우지 않았습니다. 이 일은 구치소의 경찰관들 사이에서 매우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나중에 다른 한 수감소의 주무 경찰관이 저를 그가 관리하는 수감소로 가도록 했습니다. 이 경찰관은 자격을 갖춘 지 오래되었지만, 재능이 있으면서도 펼 기회를 만나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제게 자신이 불문에 귀의하고 사부도 모셨다고 말하면서 제게 불교의 이야기도 해줬습니다. 그는 매일 ‘아미타불’을 몇 번씩 외운다고 했습니다. 저는 “당신이 모시는 스승은 속인에 불과합니다. 그가 당신을 제도하여 원만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저의 사부님은 대법 사부님이십니다. 당신이 진수(真修)하기만 하면 그분께서 당신을 제도하여 원만에 이르게 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저는 그가 불교에 관심을 두는 부분을 겨냥해서 대법 중의 불교에 대한 인식으로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눌 때, 저는 사부님의 ‘홍음’을 자주 외웠고 “당신이 매일 ‘아미타불’을 외워서 무슨 작용을 일으키겠습니까? 당신이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우면 보증코 작용을 일으킬 것입니다.”라고도 했습니다. 이런 말들은 그에게 적지 않은 동요를 일으켰습니다. 저는 제가 610에 쓴 ‘만언서(萬言書)’, 자아‘변호사(辯護詞)’, ‘항소서(上訴書)’ 등을 그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제게 “저는 정말 당신에게 감복해요. 당신은 ‘사형범’, 싸움하기 좋아하는 ‘깡패’를 변화시켰어요. ‘깡패’가 글쎄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는다.’라고 말하지 뭐예요. 파룬궁 신앙에 대한 당신의 확고함에 탄복해요. 당신이 쓴 것은 제가 본 것 중 최고예요. 이치가 있고 증거가 있으며 논리성이 강해서 사람을 매우 감동케 해요”라고 했습니다. 그는 또 제가 매일 갇힌 사람들에게 강의하게 했습니다. 물론 저는 원했습니다. 나중에 수감소에서는 2개월 동안 그가 없는 상황에서도 때리고 싸우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다른 교도소 경찰관들이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후, 서로 앞다투어 저를 자신들이 감독하는 수감소로 불러서 ‘어떻게 사람이 될 것인가’에 대한 ‘강의’를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저는 기회가 있어 수감자 수십 명과 일부 경찰관들이 ‘삼퇴’하게 해주었습니다.
4. 자신의 특기를 이용해 진상을 알리다
저는 의료업에 종사했고 배운 것이 서양 의학이었지만, ‘문화대혁명’ 서학(西學) 시기에 일부 중의학 지식을 습득했습니다. 그리고 또 그림 그리기 등의 특기도 가지고 있어 진상을 알릴 때 정말 유용하게 쓰였습니다. 저는 이런 지식을 갖게 된 것도 우연한 것이 아니라, 이것을 대법을 널리 전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과정에 사용하면서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라고 배치한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구치소에서든 노동교양소에서든 감옥에서든 특기를 활용해 충분히 진상을 알렸습니다.
어떤 사람이 저를 찾아와 병을 보이면 저는 먼저 서양 의학과 중국 전통 의학, 일반적인 기공의 진료 방법을 설명해주었습니다. 마지막에는 사람이 병에 걸리는 근원과 뿌리까지 치료하는 방법은 사람의 전통적인 도덕으로 되돌아가는 것임을 설명해주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제가 설명하는 것을 듣기만 하다가 선념을 움직인 것인지 당시에 고통이 사라졌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홉 글자 진언’을 외워보더니 여러 해 동안 치료해도 낫지 않던 병이 나았습니다. 그래서 많은 경찰관과 복역하던 사람들이 모두 저를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저는 어떤 한 곳으로 갈 때마다 자발적으로 벽보 제작(중대의 통신원은 매월 반드시 한 편의 원고를 제출해야 했고 상금이 있었으며 완성하지 못하면 감점됨)과 ‘소보(小報)’ 원고 작성, 복역자의 가서(家書) 쓰기를 돕는 일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전통문화와 ‘진선인(真·善·忍)’의 이념을 발양했고, 일체의 기회를 활용해 진상을 알렸습니다.
2005년, 제가 감옥으로 막 납치됐을 때, 하루는 수감구역 경찰대장이 저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파룬궁을 X교라고 욕했습니다. 저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냉철하게 그에게 “우리 스승님께서는 우리에게 갈등에 부딪히면 원망하지 말고 모두 안으로 자신을 찾으라고 알려주셨습니다. 당신은 파룬궁을 X교라고 말씀하셨고 저는 그중의 일원입니다. 저의 어떤 부분이 사(邪)한지(저 자신을 가리키며) 보시고 지적해주세요. 저는 반드시 바르게 고칠 거예요”라고 했습니다. 그는 잠시 생각해보다가 “당신은 좋은 사람이야”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어서 그에게 “그러면 좋은 사람이 왜 납치돼 감옥살이할까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그건 상급의 일이야”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상급에서는 왜 좋은 사람을 납치하는지 당신은 생각해보셨어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할 말이 없어서 “난 말로 당신을 이길 수 없어”라고 했습니다. 저는 “당신이 말로 저를 이길 수 없는 것이 아니에요.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은 모두 상급과 언론 매체에서 행한 파룬궁에 대한 유언비어와 모함이에요. 그러나 제가 당신에게 알려준 것은 제가 직접 겪은 체험이고 우주 대법이 제게 알려준 법리예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 한 명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기회가 있으면 그에게 어떻게 전통도덕으로 아이를 가르쳐야 하는지 알려주었습니다. 그는 매우 공감했고 무슨 문제에 부딪히면 저를 찾아와 물어보곤 했습니다. 저는 그의 아이에게 시 한 수를 지어주기도 했습니다. “삼자 진언을 마음속에 새기면 사악한 마를 몰아낼 수 있고 만 가지의 위험을 극복할 수 있다. 인간 세상을 멋지게 돌아보고 반본귀진(返本歸真)하는 것은 불연(佛緣)이다” 그는 기뻐하며 연이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했습니다. 나중에 설 무렵 감옥을 검사할 때 어떤 사람이 고발하여 저의 모든 대법 자료와 제가 필사한 ‘전법륜(轉法輪)’ 등을 빼앗겼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수감구역으로 옮겨갔을 뿐 다른 박해는 당하지 않았습니다.
2013년, 저는 다시 불법적으로 감옥의 다른 한 수감구역에 갇혔습니다. 감옥구역을 관리하는 사무실 주임은 비장과 위가 좋지 않아 자주 제게 자신의 맥을 짚어보게 했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뇌경색’을 앓았기 때문에 제에게도 ‘뇌 혈전’ 예방법을 물어보곤 했습니다. 우리는 여러 번 이야기를 나누었기에 그는 진상을 많이 알게 돼 파룬궁 수련인의 행위를 보고도 못 본 척해주었고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그는 저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일부 범인이 기록된 노트를 갖고 자주 우리에게 당신들이 어떠어떠하다고 알려주는데, 우리가 당신들을 상관했던 적 있어요? 저야말로 상관하고 싶지 않아요!”라고 했습니다.
그 후, 수감구역에 새로 전근해온 교도관 한 명이 있었습니다. 첫날 오자마자 회의에서 “내가 바로 하늘이고 내가 바로 땅이며 내가 곧 법이다. 내 말이 곧 결정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또 매점에서 파룬궁 수련생만 매월 50위안(한화 약 8500원)의 생활용품을 사도록 규정했습니다. 또 제가 붓글씨를 연습하던 책상도 ‘방범초소’라며 철거해갔습니다. 제가 사무실 주임에게 이 사실을 말하자 그는 곧 매점을 관리하던 복역자를 불러와 “그의 말을 듣지 말아요. 예전에 하던 대로 하세요”라고 했습니다. 아마 감옥 경찰들도 모두 새로 전근해온 교도관에게 반감이 들었는지 그는 매우 빠르게 전근되었습니다.
제가 처음 감옥에 들어갔을 때, 수감구역장을 알게 됐습니다. 그때, 그는 교도관이었고 파룬궁 진상도 많이 알았기 때문에 파룬궁 수련생을 선하게 대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저를 찾아와 “당신은 젊은 범인에게 어떻게 사람이 될 것인지에 관한 이치를 많이 설명해줘요.”라고 말했습니다. 저의 형기가 거의 다 되었을 때, 새로 전근해온 수감구역장은 ‘좌골신경통’을 앓고 있어서 자주 저를 찾아왔고 저는 그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도 시켜주었습니다. 그는 저를 작업장 안에서 많이 움직이면서 활동하도록(감옥 규정에 따르면 작업장 세 명의 작은 팀은 반드시 행동이 일치해야 함) 했고 “상급에서 검사할 때에는 잠시 피해요. 눈에 띄지 않으면 돼요.”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저는 더욱더 많은 사람을 접촉할 수 있었고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하게 해주었습니다. 제가 출소할 때, 수감구역 안의 ‘삼퇴’를 원하는 사람들을 모두 삼퇴하게 해주었고 또 일부 감옥 경찰에게도 해주었습니다.
마굴에서의 10여 년 동안 저는 비록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하는 세 가지 일을 하긴 했지만, 장기적으로 체계적인 법 공부가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에 대법의 요구와 거리가 매우 커져 많은 유감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유한한 수련 시간 동안 오직 다그쳐 법 공부를 하고 안으로 자신을 잘 수련하여 더욱더 많은 중생을 구하겠습니다!
개인적인 체험과 방법이며 층차의 한계로 적절하지 않은 곳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바로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 지역 설법 10-맨해튼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정진요지2-이성(理性)’
[3]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위덕(威德)’
원문발표: 2020년 11월 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0/11/6/41453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