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두려움’에서 ‘정(情)’의 굴레를 찾다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1999년 ‘7.20’ 중국공산당(이하 중공)이 파룬궁(法輪功)을 박해한 이래 아내는 악당에 의해 여러 번 납치되고 감금, 노동교양,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감옥에서 또 ‘독방 감금’, 장기간 ‘쪽의자에 앉기’, 폭력과 세뇌 등 고문을 받아 감옥에서 나온 후 2019년 3월에 갑자기 사망했다. 아내의 죽음은 나에게 매우 큰 충격을 줬지만 나는 가족의 죽음을 바르게 대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나에게 갑자기 두려운 마음이 생겼고 점점 더 강해져서 공포심으로 발전했다. 처음에는 몸이 불편해 나도 세상을 떠날까 봐 두려웠다. 나중에는 경찰과 주민센터 관계자의 괴롭힘으로 공포심이 더해졌고, 낮이든 밤이든 구급차·소방차·경찰차 경적, 집 밖의 발걸음 소리, 노크 소리가 들리기만 해도 놀랐고 때론 잘 때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다.

어느 날 3시쯤 일어나 연공하던 중, 제2장 공법 포륜(抱輪)을 연마할 때 갑자기 주방에서 쉬쉬 소리가 들려 나는 놀라 머리카락마저 곤두섰다. 나는 방안의 모든 전등을 켜고 주방에 가 보았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또 계속 포륜을 했다. 그러나 곧 같은 소리를 들었고, 나는 너무 놀라서 더는 연공할 수 없어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을 자면서 두려움을 피해야 했다.

이튿날 아침 딸이 일어나 부엌에 갉아먹은 국수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나를 불렀다. 나는 쥐가 국수를 갉아먹은 것을 보고 그전에 나를 놀라게 한 소리는 쥐가 낸 것임을 알았다. 나는 자신을 비웃었다. 쥐 한 마리에 이 지경으로 놀라다니, 이 일을 겪은 후 공포심은 좀 나아졌지만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나에게 왜 ‘두려움’과 ‘공포심’이 나타났는가? 도대체 내가 뭘 두려워하고 뭘 무서워하는가? 나는 부대에 있었고 군대에서 싸움도 했으며 위험한 일도 적지 않게 겪었는데 이렇게 두려워한 적은 없었다. 박해가 시작된 후 파룬궁을 위해 공정한 말을 했고 청원하러 갔다가 납치됐으며, 세뇌반에 저항하기 위해 집을 떠났다가 수배돼 공안에 의해 노동교양소에 납치되기도 했다. 진상을 말하거나 수련생과 협력해 진상을 알리다가 여러 번 납치돼 감금되고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검은 소굴에서 노역에 항의하고 단식, 강제 세뇌에 저항하는 등 여러 일을 겪었어도 나는 두려워한 적이 없다. 왜 갑자기 두려운 마음, 공포심이 나온 걸까?!

나는 그것을 제거하기 위해 법공부와 안으로 찾기를 강화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닦았지만, 효과가 별로 없었다. 오랜 시간을 끌었지만 나는 법에서 잘 생각하고 깨닫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날 ‘전법륜(轉法輪)’ 제6강을 베껴 썼다. “사람에게는 정이 있기 때문인데, 화를 냄도 정이요, 기뻐함도 정이요, 사랑함도 정이요, 증오함 역시 정이요, 일하기 좋아함도 정이요, 일하기 싫어함 역시 정이며, 누가 좋고 누가 나쁘게 보이며, 무엇을 하기 좋아하고 무엇을 하기 싫어하는 일체가 다 정이라, 속인은 바로 정을 위해 산다. 그렇다면 한 연공인(煉功人)으로서, 한 초상(超常)적인 사람으로서는 이런 이치로 가늠할 수 없으며 이런 것을 돌파해야 한다. 그러므로 정(情) 중에서 파생되어 나온 많은 집착심을 우리는 그것을 담담히 보아야 하며 최후에는 완전히 내려놓아야 한다.”[1] 사부님의 점화는 자신의 잠재적인 ‘정’의 방해임을 나에게 깨닫게 했다. 그것이 ‘두려움’으로 표현되고 ‘공포심’으로 나를 교란하여 나는 그것에 빠졌던 것이다.

왜 정인가? 겉으로는 나 자신이 ‘정’에 빠지지 않은 것 같지만, 사실 나는 아직도 매일 ‘정’에 얽매여 있다. 나와 아내는 동창이었고 함께 ‘문화대혁명’을 겪었다. 아내는 성격이 외향적이고 나는 내향적이었지만 우리는 마음이 잘 맞았고 결혼 후 사이도 매우 좋았다. 특히 온 가족이 함께 대법 수련에 들어서 화목했고 충실하게 생활하며 화기애애한 모습을 보여 친척, 친구, 동료들의 부러움을 샀다. 수련 이후 각자의 일을 제외하고는 거의 붙어 다니며 함께 법을 배우고 홍법(洪法)하며 뜻을 같이했다. 박해가 시작된 후 또 함께 청원하러 갔고 함께 공안, 직장의 박해를 받고 집을 떠났다. 함께 진상을 알리고 진상자료를 만들었으며 진상자료를 배포했다. 무슨 일이 있으면 함께 감당하고 서로 협력하고 협조했다. 심지어 함께 납치되고 감금, 노동교양,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결혼한 후 집 안팎 일을 모두 아내가 응대해 나는 집안일을 걱정하지 않았다. 아내는 인기가 좋아 많은 일을 했다. 수련생과 연락할 때도 아내는 나를 데리고 갔다. 잠자기 전에 우리는 늘 사부님의 ‘홍음’을 외우고, 법리에 대한 이해와 몇몇 문제에 대한 의견을 교환한다. 대부분은 그녀가 내 말을 들어줬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무슨 일을 할 때면 아내가 있었으면 일을 덜고 이 일을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와 아내는 수련 전에는 같이 있는 시간이 적었고 박해가 시작된 후 우리는 10여 년 검은 소굴에 감금됐기에 가족이 모일 수 있는 시간을 나는 매우 소중히 여겼고 지난날의 부족한 점을 늘 보충하려고 애썼다. 아내가 갑자기 떠났을 때, 진상을 알리는 많은 항목이 중단됐고, 친지들과의 왕래도 뜸해졌다. 수련생과의 연락도 거의 끊겼으며 아내가 없으니 수련생의 집 방향마저 몰랐다. 아내가 있을 때 나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았다. 사실 이것은 정에 의한 의타심, 상실감,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이 나를 교란한 것이다. 사람 여기는 ‘두려움’과 ‘공포심’으로 표현되는 것 같다.

그것이 ‘정’ 때문임을 알게 된 나는 법을 배우면서 두려움과 공포심을 떨쳐버리게 됐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저서: ‘전법륜’

 

원문발표: 2020년 10월 1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10/15/413326.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