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지린성 류허현 파룬궁수련생 쑨췬잉, 박해로 억울하게 사망

[밍후이왕] (밍후이왕 통신원 지린 보도) 지린(吉林)성 류허(柳河)현 파룬궁수련생 쑨췬잉(孫群英)은 두 차례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았는데, 합해서 노동교양소에서 5년간 불법 감금되어 고문과 박해를 당했다. 2017년 6월 20일, 3년 6개월의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2020년 10월 8일에 악독한 경찰의 협박 중에 사망했다.

쑨췬잉은 대략 1957년에 출생했고 63세이며, 1997년부터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1999년 7월에 중공(중국공산당) 사당이 대법을 박해한 후, 쑨췬잉은 세인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실증한 이유로 본 현 공안국에 의해 불법 구류와 벌금을 냈다.

2000년, 쑨췬잉은 3천 위안(약 51만 원)의 벌금을 갈취당했다. 약 50일 만인 2000년 6월에 그는 또 1개월의 불법 구류처분을 받았고, 그 후 또 2년간 불법 노동교양처분을 받았다. 이 기간에 그는 3개월 동안 병 보석으로 풀려나 치료를 받은 후, 2001년 12월 29일 밤중에 현 공안국 부국장 쑹푸핑(宋福平), 정보과 인촨치(尹傳奇)는 어떠한 수속도 없이 쑨췬잉을 체포해 창춘(長春) 차오양거우(朝陽溝) 노동교양소로 보냈다.

차오양거우 노동교양소에서 파룬궁수련생은 잔인무도한 박해를 당했다. 2002년 4월 6일 저녁, 차오양거우 노동교양소 소장 왕옌웨이(王延偉), 왕젠강(王建剛) 등은 ‘교육전향공견전(攻堅戰)’을 실시해 교양소 안의 400명 파룬궁수련생에 대해 단체로 폭력을 가해 모든 파룬궁수련생에게 ‘5서(五書)’를 쓰도록 핍박했다. 쓰지 않은 사람은 악독한 경찰에게 전기봉에 의한 전기 충격, 가차없는 구타를 당했으며 긴 솔 같은 모양의 죽판으로 진행한 구타를 당했다. 쑨췬잉은 수련을 포기하지 않고 단호히 쓰지 않았다. 악독한 경찰은 형사범 리훙바오(李洪保), 후옌밍(胡豔明), 원잔쥔(溫佔軍), 왕바오리(王保利)와 당직팀의 5, 6명의 사람을 시켜 그를 함께 구타하게 했다. 등에서부터 발바닥까지 구타를 당해 자색을 띠었다. 구타해 쇠 관이 구타로 굽은 후, 하나를 떼어내 그의 다리를 긁어 큰 상처가 생겨 선혈이 줄줄 흐르게 했다. 경찰은 싸매 주지도 않고 작은 나무 의자에 앉도록 했다. 악독한 경찰 천 씨는 이것이 그를 잘 대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기간의 고문 학대로 심신에 심각한 상해를 입은 이유로, 쑨췬잉은 핍박으로 마음을 어기고 ‘5서’ 위에 서명했다. 4월 7일, 악독한 경찰은 쑨췬잉을 4대대로 옮겨갔다. 쑨췬잉은 생각을 바꿔 대법은 잘못이 없으며 좋은 사람이 되려 함은 무죄라고 인정했다. 그래서 그는 5월 13일에 정식으로 교도관 마윈타오(馬雲濤)에게 그가 쓴 ‘5서’를 전부 폐기한다고 성명했다. 악독한 경찰이 듣더니 부끄럽고 분한 나머지 화를 냈다. 일이 끝나고 점심때 그를 사무실로 불렀다. 그가 그곳에 도착하자 마자 대대장 푸궈화(付國華) 및 3, 4명의 악독한 경찰은 그의 귀뺨을 때렸다. 부대장 판성루(范盛祿), 악독한 경찰 저우수쥔(鄒樹軍), 마윈타오(馬雲濤), 자오젠핑(趙建平) 등이 끈으로 그의 두 손을 묶어 수갑으로 채우고, 윗옷을 벗기고 머리를 사다리의 빈틈에 끼워 놓아 한 번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들은 V벨트, 두 개의 전기봉을 함께 사용해 쑨췬잉을 줄곧 오후 2시가 넘을 때까지 구타했다. 맨 마지막에 그는 구타로 입에서 선혈을 토했고 온몸이 부상을 입어 인사불성이 되었다. 그리고 또 그에게 대회에서 반성문을 써서 읽도록 핍박했다.

그리고 또 한 차례 악독한 경찰은 밤중에 거듭 쑨췬잉을 핍박해 믿음을 포기하도록 했다. 쑨췬잉은 불복해 또 한 차례 악독한 경찰에게 혹독한 구타를 당해, 코에서 출혈했고 두 눈에서는 줄곧 별이 번쩍여 걸을 수 없었다.

장기간 감금당하고 악독한 경찰의 혹독한 구타로 학대당했지만 쑨췬잉이 대법을 굳게 수련하려는 신념은 더욱더 충족했다. 매번 이른바 ‘사상 회보’를 쓸 때면 모두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썼다. 매번 쓰면 20일의 형기를 연장 당했는데, 합해서 기한을 초과해 218일을 감금당했다. 2003년 8월 18일에 가족이 마중와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갔는데, 다른 사람 누구도 그를 감히 알아보지 못했다.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여위고 온 얼굴에 상처 자국이었으며, 얼굴이 누렇게 뜨고 몹시 수척했고, 두 눈의 시력은 심각하게 손상을 입어 텔레비전마저 똑똑히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두 다리는 걷기가 불편해 노동 능력을 상실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악인은 그에 대한 박해를 멈추지 않았다. 2004년 5월 9일 오후, 현 공안국 정보과 인촨치, 파출소 경찰은 지역 사회 등 사람들과 함께 그의 집으로 가서 교란해 그에게 서명시켰다. 쑨췬잉은 거부한 후 벗어났고, 집은 감시당했다. 저녁에 집으로 되돌아와서 인촨치, 분국의 자오쥔(趙軍) 등에 의해 강제로 체포당했고, 또 집안의 대법책과 사부님의 법신상을 강탈당했다. 그는 류허현 구치소에 불법 감금돼 박해를 당했다.

2016년 7월 15일 저녁 7시 반쯤, 류허현 젠서(建設)분국과 파출소 경찰 일행 여러 명은 쑨췬잉의 거처로 가서 그를 젠서 분국 파출소로 납치했다. 게다가 대법 서적 한 세트, 위성안테나 여섯 세트를 강탈했다. 쑨췬잉은 불법 형사구류처분을 받고 류허현 구치소에 감금당했다.

7월 16일, 류허현 국가보안대대에서는 쑨췬잉, 장잉과 등 사람을 퉁화(通化)시 제3인민병원 즉 철도병원으로 납치해 몸 검사를 진행했다. 쑨췬잉에게 고혈압과 심장병 증상이 나타난 이유로, 7월 28일에 류허현 국가보안대대에서 가족에게 보증금을 갈취한 후, 쑨췬잉은 보석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7월 29일에 류허현 검찰원에 의해 불법 체포영장이 발부되어 다시 재판을 받게 됐다.

2017년 3월 24일, 쑨췬잉은 불법 재판을 받았고, 6월 20일에 3년 6개월의 불법 징역형, 3천 위안(약 50만 원)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혈압이 280에 달한 이유로 쑨췬잉의 가족은 그를 위해 감옥 밖에서 집행하는 수속을 밟았다.

쑨췬잉이 집에 있는 기간에 민감일이 되기만 하면 경찰은 와서 교란을 진행했다. 2019년 11월에 쑨췬잉의 3년 6개월의 형기가 끝났는데 현임 국가보안대대 대대장 장후이(姜輝)가 집행해 쑨췬잉을 전화로 불러내서 몸 검사를 진행했다. 게다가 3년 넘게 감옥 외에서 집행함은 무효라며 다시 3년 6개월의 형기를 집행해야 한다고 공언했다. 쑨췬잉의 정신에 극심한 압력을 조성했고, 몸에 심각한 박해를 당해 걷기가 어려웠고 눈도 똑똑히 앞을 볼 수 없었다. 2020년 10월 7일, 쑨췬잉은 뇌혈전 증상이 나타나 병원에 입원해 응급처치를 받았지만 결국 10월 8일 오후 5시가 넘어 사망했다.

관련 박해 기관과 박해자의 정보는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0년 10월 17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0/10/17/413892.html

ⓒ 2024 명혜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