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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응이 두렵지 않다”거나 “보응을 받지 않았다”고 자랑하지 말라

아직도 파룬궁을 박해하고 있는 모든 중공 당원에게 고함

글/ 윈허(雲鶴)

[밍후이왕] 2020년 9월 밍후이왕(明慧網)에 한 기사가 보도됐는데 기사 중에 “윈난(雲南)성 쿤밍(昆明)시 시산(西山)구 국보 대장 추쉐옌(邱學彥)이 한 파룬궁(法輪功) 수련생을 위협하면서 ‘나는 보응이 두렵지 않다. 그런 것들을 믿지 않는다. 몇 번이나 국제추적조사를 당했고, 밍후이왕에서도 몇 번이나 나를 폭로했지만, 뭐가 어떤가? 이렇게 여러 해 지났어도 난 여전히 멀쩡하다.”고 인용한 기사가 있다. 밍후이왕의 보도는 추쉐옌이 박해에 가담한 기사가 2009년 4월 27일부터 중단된 적이 없다. 그렇다면 선악에는 보응이 있다는 천리가 추쉐옌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파룬궁 박해에 가담한 많은 중공사당 당원이 모두 유사한 말을 한 것으로 기억된다. 밍후이왕에서 “나는 보응이 두렵지 않다”를 검색하면 관련된 글이 많은 편인데 내용을 클릭해 들어가면, 비슷한 말을 한 중공사당 당원들이 일찍 혹은 늦게, 나중에는 모두 보응을 받은 것으로 확인된다. 다음은 전형적인 몇 가지 예를 든 것이다.

◇ 랴오닝(遼寧)성 차오양(朝陽)현 류청(柳城)파출소장 판스(潘石)는 충고를 듣지 않고 다년간 미친 듯이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하여 차오양시 ‘610 사무실’로부터 소위 우수경찰[先進典型]로 인정받았다. 그는 “나는 보응이 두렵지 않으니 (파룬궁 수련생을) 때리고 붙잡을 것이다. 나는 공산당을 따라가기로 정했다”며 기고만장하게 큰소리쳤지만, 2개월도 채 안 되어 평소 건강했던 그가 41살 생일날 갑자기 급사했다.

◇ 쓰촨(四川)성 바중(巴中)시 공안국 쟝베이(江北) 경제 개발구 분국 국보대대 경찰 쟝핑(江平)은 나쁜 짓을 하지 말라고 권하는 파룬궁 수련생에게 “내 손으로 직접 그렇게 많은 당신들(파룬궁 수련자)을 붙잡았지만, 나는 여전히 당신들보다 편안하게 살고 있다. 무슨 선악에 보응이 있단 말인가, 당신들은 내가 보응을 받는 것을 보여봐라”고 말했다. 그는 2019년 설을 앞두고 갑자기 쓰러져 급사했다.

◇ 후난(湖南)성 웨양(岳陽)시 쥔산(君山)구 국보 대장 장런우(姜仁武)는 파룬궁 수련생에게 여러 차례 큰 소리로 “너희들은 모두 보응을 받는다고 하는데, 나는 왜 보응을 받지 않느냐? 나는 시궁창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그는 2019년 10월 갑자기 암에 걸려 죽었다.

◇ 광둥(廣東)성 포산(佛山)시 난하이(南海)구 리수이(裏水)진 허순궁퉁(和順共同)향 치안주임 위안궈펑(袁國峰)은 십여 년간 현지의 파룬궁 수련생을 미행, 감시, 납치했다. 수련생은 불법을 수련하는 사람을 박해하면 언젠가는 보응을 받게 될 것이라고 알려주며 끊임없이 대법 진상을 말해주면서 선행을 하라고 일깨워주었지만 듣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나는 십여 년 동안 파룬궁을 박해했지만, 신체가 갈수록 좋기만 한데, 파룬궁이 나를 어찌할 것이냐? 나는 근본적으로 보응이 두렵지 않을 뿐만 아니라, 믿지도 않는다”고 큰소리쳤다. 그는 파룬궁 수련생이 거듭 권하는 충고를 거절하다가 바로 당일 급사했는데 그의 나이 겨우 42세였다.

◇ 쓰촨(四川)성 청두(成都) 솽류(雙流)현 톈푸(天府)신구 신분국 책임자 바이윈(白雲)은 수하를 독려하여 몇 년간 솽류 등 여타지역의 파룬궁 수련생을 잔혹하게 박해했다. 파룬궁 수련생들은 박해를 받으면서도 대선대인(大善大忍)의 마음으로 그들에게 대법 진상을 말해주었지만 끝내 듣지 않고, 기고만장하여 공개적으로 “나는 보응이 두렵지 않다! 나는 명부에 적혀있는 파룬궁 수련생들을 모두 감옥에 넣을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바이윈이 권고를 거부하며 징벌이 두렵지 않다고 했지만, 하늘의 그물은 넓었고, 선악에 보응이 있다는 불변의 진리는 존속하고 있었으므로 하늘은 그런 악인이 계속 나쁜 짓을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는 어느 날 근무 중에 교통사고를 당해 죽었다. 지금까지도 그 지역의 중공 기관에서는 바이윈의 사망 소식을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

“보응을 받지 않았다”고 자랑하거나, “보응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떠들어댄다고 해도 닥쳐오는 보응을 막을 수는 없다. 선악유보(善惡有報)는 하늘의 뜻이며 우주 법칙이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보응은 한 치도 어긋남이 없었다. 누구도 예외일 수 없고, 탈출 할 수 없다.

그런데 왜 일부 중공사당 당원들은 장기간 박해에 가담하여 나쁜 짓을 많이 하면서 “보응이 두렵지 않다”, “보응을 받지 않았다”고 자랑하고 있는가? 이에 대해 두 가지 방면으로 말해보고자 한다.

1. 무신론에 미혹되고 독해되어 보응을 모르거나 믿지 않는다

죄에 대한 응보 형식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반드시 죽음만이 응보인 것은 아니다. 박해를 주관하고 가담한 중공사당 당원들은 나쁜 짓을 한 뒤 언젠가는 자신과 가족에게 보응이 닥치게 되어 번거롭게 될 것이다. 병으로 인한 고통, 재난, 돈과 재산상 손해를 보게 되는 등 여러 가지 형태의 관이 닥치게 되는데 모두 응보가 나타나는 형식이다. 그것은 모두 하늘의 경고이자 일깨움이다.

사실 박해에 가담하거나 주도한 많은 중공사당 당원이 보응을 받았지만, 모두 우연으로 여기는 것이다. 파룬궁 수련생이 충고하기만 하면 단지 위협하는 말로 여기면서 ‘보응’이라는 말을 미신이라고 여긴다. 그러므로 심한 경우 ‘보응’을 말하면 자신을 저주하는 말로 여겨 반감을 보이면서 심하게 배척한다. 우리는 그들 중 어떤 사람은 역반응을 보이면서 소리를 지르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이 흉하게 떠들며 소리를 질러대는 것만 보지 말고, 그들이 맘속으로 떨면서 안절부절못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몇 년 이래, 우리는 많은 중공사당 당원이 자신들이 받은 응보 사실을 파룬궁 수련생 앞에서 숨기고 있음을 보지 않았는가?

많은 중공사당 당원은 어릴 적부터 중공의 무신론에 미혹되고 독해되었기 때문에 보응으로 일어난 일들을 우연으로 치거나 아예 그런 쪽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악행에 대한 하늘의 경고를 무시하고, 천지를 뒤덮을 듯이 파룬궁을 비방하고 모함하는 말에 기만되어 박해를 업무로 여기고, 파룬궁 수련자를 처리하는 것을 직업으로 여기며 여전히 무지하게 박해하고 있다.

우리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직업과 운명을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람은 이익 앞에서 매우 취약하다. 무지하게 박해에 가담한 자들 생명의 본질은 꼭 나쁜 것이 아니므로 하늘은 깨달을 기회를 수차례 준다. 우리는 왕왕 어떤 사람들은 기회를 충분히 줘서 뉘우치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소중함을 모를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하늘이 반성하고 뉘우치라는 이 제한된 시간임을 모른 채 큰소리를 칠 수 있는 자랑으로 여기는 것을 본다.

하지만 그렇게 큰소리친 결과는 무서운 것이다. 그것은 자신에게 치명적인 잘못을 선택하는 것이고, 하늘을 향해, 나는 구원을 원하지 않으니 자신을 포기해 달라는 태도표명을 한 셈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이 큰소리치고 떠든 지 얼마 안 되어 기회를 잃게 됨에 따라 참혹한 응보가 뒤따르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보게 된다. 바로 “하늘이 만든 재난은 피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자기가 만든 재난은 피할 수 없다”가 바로 이런 예인데, 그런 예는 아주 많다.

어릴 적에 총살당할 사람에게 붙인 포고문 맨 밑에 엄청 큰 빨간 줄이 무섭게 쳐진 것을 보았다. 포고문 내용 중 한마디는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는 미혹되어 깨닫지 못한다”였다. 어릴 땐 잘 몰라서 ‘미혹되어 깨닫지 못하는 건 끔찍한 일이며, 총살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운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이든 후 그 단어가 수련과 종교에서 유래된 명사임을 알게 되었다. 대체로 사람이 가상이나 눈앞의 이익에 속아 나쁜 짓을 계속하면서도 스스로 모르고 있고, 깨닫지 못하여 결국 그릇된 길로 걷게 된다는 뜻임을 알았다.

현실에서 우리는 파룬궁 박해를 주도하거나 가담한 중공의 각급 요원 중에 많은 자가 중공이 대대적으로 선전한 무신론의 미혹과 독해에 깊이 빠져들어 ‘권력’과 ‘돈’ 외에는 아무것도 믿지 않음을 볼 수 있다. 권력과 돈이 있으면 인간 세상에서 하지 못 하는 일이 없으며, 중공 사당의 지지만 있으면 아무것도 두렵지 않기 때문에 어떤 천리도 위배하며 어떤 나쁜 일이라도 모두 거리낌 없이 자행한다. 그것들의 ‘오성’은 매우 낮아서 선행을 권하는 대법제자의 거듭된 충고가 귀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것들은 지진의 진동을 깨닫지 못하고, 홍수의 잠긴 물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천둥벼락이 쳐도 두려움을 느끼지 못한다. 또 그것들은 국제제재도 깨닫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업보가 아무리 참혹해도 자신에게 일어나지 않는다면 여전히 평소처럼 무감각하게 박해의 진상을 알면서도 선량한 사람을 동정하거나 도와주지 않고, 6월에 내리는 눈을 보고도 반성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중공사당의 언론매체와 과학 분야에서도 그런 현상에 대해 말하지 않고, 덮어 감추면서 소위 ‘합리적인 해석’이라는 말로 사람을 기만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들이 미혹에서 깨닫지 못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모두 그렇게 미혹되어 깨닫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오성’이 좋은 사람도 있다. 예를 들어, 쓰촨(四川)성 량산(涼山)주 부퉈(布拖)현 공안국의 한 국보 대장은 한 대법 수련자에게 1만 위안(한화 약 172만 원)의 거액을 벌금으로 부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승용차를 몰고 가다가 전복되는 사고를 당했다. 그런데 비록 몸은 경상을 입었지만, 차량수리비가 1만여 위안이 들었다. 대법제자가 그에게 진상을 말해주며 사실을 일깨워줬다. “당신의 이번 사고는 바로 하늘이 당신에게 경고한 것이다. 더는 대법제자들에게 악행을 하지 말라. 당신이 대법제자에게 벌금으로 1만여 위안을 부과했으므로 당신에게 차량수리비로 1만여 위안을 쓰게 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현보가 아니겠는가. 만약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하늘의 경고를 무시한다면 다음에는 정말 명을 거둬가게 될 것”이라고 말해주자, 그는 즉시 깨닫고 뉘우쳤다. 그는 ‘대법제자처럼 좋은 사람들을 박해하면 응보를 받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조기퇴직을 결심했다. 그는 국보 대장의 직위를 버리고 다시는 무고한 사람을 해치지 않았으며, 죄악을 멀리했다. 바로 재난을 멀리한 것이다.

또 나는 모 시의 국보대 부대장이 오랫동안 박해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사실을 알고 있다. 그에게 대법제자가 진심으로 거듭 선행을 권했지만 듣지 않았고, 악한 짓을 자행하다가 결국 그의 가족에게까지 화가 미치게 했는데, 그의 아내는 신체의 일곱 구멍으로 피를 흘리며 죽었다. 그랬어도 그는 여전히 진상과 충고를 듣지 않다가 암에 걸렸고, 고통과 절망에 빠졌을 때 대법제자가 다시 선행을 권하자 이번에는 받아들였다. 그는 박해에 가담하지 않았고, 삼퇴(중공사당조직에서 탈퇴)를 했으며, 여러 방식으로 대법제자를 돕는 등 적극적으로 속죄했으며, 나중에는 ‘전법륜(轉法輪)’을 보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사례에서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 현의 국보 대장과 시의 국보대 부대장은 모두 자신의 몸에서 일어난 현세현보(現世現報)를 믿게 되었고, 마침내 깨닫게 되어 그들은 모두 자신의 생명을 구조한 것이다. 비단 이들뿐만 아니라 이런 사람들은 각처에 적지 않게 다 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진정 총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아닌가. 자신의 미래를 위해 생각하는 사람인 것이다.

2. 나쁜 짓을 많이 했는데도 ‘보응을 받지 않은’ 사람은 매우 위험하다

사실 일반인 중에서 나쁜 짓을 해 응보를 받았다면 아마 놀라서 금방 손을 떼어 멈추고, 정신을 차려 구제 불능이 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그 시점에서 나타난 일정한 응보는 일종의 경고와 일깨움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하늘의 사랑과 구원이기도 하다.

반대로 한 사람이 나쁜 짓을 많이 했는데도 아무런 보응도 받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정말 구제 불능이어서 하늘이 그를 버린 것일 수도 있다. 나쁜 짓을 계속 자행하면서 누구의 충고도 듣지 않는 사람은 죄악이 이미 너무 커서 그에게는 거대한 응보가 기다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늘이) 작은 응보로 그를 일깨워줄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닌가.

작은 응징을 받지 않은 사람은 대부분 마지막에 큰 보응이 닥칠 수 있는데, 그 이치는 이해하기가 쉽다. 세간에 한 가지 설이 있다. 흔히 잔병치레하지 않는 사람은 한 번 병에 걸리게 되면 큰 병을 앓게 되는데 바로 난치병이라는 것이다.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이 모두 공감하고 있다. 예를 들어 박해 원흉 장쩌민(江泽民)은 비록 목숨은 붙어있지만 오래전에 이미 지옥에 내려가는 악몽을 꾸었으므로 그에게 닥칠 것은 가장 끔찍한 종말이다. 그러므로 나쁜 일을 많이 하고도 ‘보응을 받지 않은’ 사람은 확실히 위험하므로 자랑할 일이 아니다.

나쁜 짓을 저지르고도 어떻게 갚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단지 빨리 오느냐, 늦게 오느냐 일뿐이다. 옛날 홍콩 영화의 대사 중에 이런 말이 생각난다. “나와서 어울리면 언젠가는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이 말은 중국인들에게 여러 해 동안 인용되고 회자되었다. 이 말은 사실 “갚음이 이뤄지지 않은 것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며, 일단 때가 되면 모든 것을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표현이다.

2019년 윈난(雲南)에서 ‘쑨샤오궈(孫小果)사건’에 연루되어 많은 중공관리가 낙마했다. ‘쑨샤오궈 사건’에서 교도소 관련자가 가장 많이 낙마했는데 이들은 다년간 파룬궁 수련생들을 박해할 때 상하가 서로 결탁하여 죄악을 감추며 법을 짓밟으면서 서로 싸고돌았다. 그들은 자신을 체제 내에 소속된 사람이라고 여겼고, 권력과 돈을 챙겼다. 더구나 당(사당)이 뒤를 받쳐주고 있다고 여기며 멋대로 행동했으니 누가 그들을 감히 건드릴 수 있었겠는가? 그들은 쑨샤오궈 사건으로 낙마할 줄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낙마는 응보의 시작일 뿐이다…….

하늘에는 뜻밖의 풍운이 있고, 사람의 화복은 언제 닥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쩌면 무서운 응보가 바로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응보가 올 때는 아무런 예고도 없고, 미리 알리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에 당신에게 바로 다음 순간에 올지도 모른다. 절대로 요행을 바랄 수도 없으니 더 큰소리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런 사람들(중공 사악의 우두머리 장쩌민 제외)이 생존의 기회를 바라고, 뒤에 올 비참한 운명과 끔찍한 끝장을 바꾸고 싶다면 오직 지난날의 잘못을 철저히 뉘우쳐 대법제자에게 참회해야 하고, 삼퇴를 해야 한다. 그리고 실제 행동으로 속죄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한 가닥 생존의 기회가 남아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자신이 어떻게 하는가에 달린 것이다.

사실 파룬궁 수련생의 권고를 듣지 않고 아직도 적극적으로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하는 모든 중공사당 당원은 정말 미혹 속에서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다. 박해로 눈앞의 이익을 조금 얻었겠지만 반대로 생명은 영원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그는 파룬불법(法輪佛法)을 박해한 결과가 얼마나 심각한지 모르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여전히 맹목적으로 중공사당을 따라 남을 해치고 자신도 해치고 있다. 만약 그가 오늘 파룬불법에 대한 박해의 결말이 얼마나 무서운지 안다면 죽어도 박해에 가담하지 않을 것이며, 파룬궁 수련생이 자비롭게 권할 때 “보응이 두렵지 않다”거나 “보응을 받지 않았다”고 비이성적으로 자랑하지 않을 것이다.

 

원문발표: 2020년 9월 19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0/9/19/41200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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